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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로 인한 재앙
삼상 5:6-12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8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9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10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11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삼상 5:6-12 / [법궤 때문에 받은 재앙] 법궤를 전리품으로 가져다 두었던 아스돗 주민과 그 주변 마을의 모든 주민들도 여호와께 무서운 재앙을 받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ㄱ) 직장에 견디기 어려운 종양이 돋아나게 하셨기 때문이다. 또 이때에 그 일대에는 갑자기 쥐가 들끓어 많은 사람이 무서운 공포에 사로잡혀 정신을 잃고 죽어 갔다. (ㄱ. `직장에 종양이 돋아나서 주민들이 앉거나 눕지도 못한 채 다곤 신처럼 엎어져서 땅에 얼굴을 대고 울부짖다가 죽어갔다'는 70인역에 따라 내용을 보충하였다) 7) 사태가 이렇게 험악해지자 아스돗 주민들이 아우성을 쳤다. `이스라엘 신의 법궤를 당장 치워라! 그 신은 우리 인간들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 다곤까지도 죽이려 한다!' 8)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들은 블레셋 족속의 다섯 왕을 모아놓고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법궤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가드에서 온 왕과 지도자들이 법궤를 가져가겠다고 자청하였다. 그러면 `이스라엘 신의 법궤는 가드에 가져다 놓도록 하시오!' 이렇게 해서 법궤가 가드로 옮겨졌다. 9)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가드의 주민들에게도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다.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간에 모든 사람의 직장에 악성 종양이 돋아나게 하셨다. 그러자 온 성읍 사람이 공포에 사로잡혀 정신을 잃고 죽어 갔다. 종양이 돋은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며 울부짖다가 죽었기 때문에 온 장안이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10) 그러자 자청해서 법궤를 맡았던 가드의 주민들도 그것을 다시 유다의 국경선에서 가장 가까운 에그론으로 보냈다. 그러나 법궤를 메고간 사람들이 에그론에 이르자, 그곳 주민들이 반대하며 아우성을 쳤다. `이제는 우리까지 모두 죽이려고 그 무서운 법궤를 이리로 가져왔느냐?' 11) 그리고 그들은 즉각 블레셋의 왕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주장하였다. `이스라엘 신의 법궤를 돌려보내 주시오. 그것을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냅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민족도 결국 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는 어느 도성이나 여호와 하나님의 법궤가 머무는 곳에는 악성 종양이 번져 주민들이 공포에 시달리다가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갔기 때문에 어느 성읍이나 법궤와 관련만 있으면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12) 또한 아직 죽지는 않았다고 해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악성 종양의 쓰라린 고통으로 인해 쉴 새 없이 울부짖고 있어서, 온 성읍 사람들의 비명은 하늘에까지 사무쳤다. 그들은 직장에 종양이 돋았기 때문에 앉거나 눕지도 못한 채 다곤 신처럼 엎어져서 땅에 얼굴을 대고 울부짖다가 죽어 갔다.
하나님께서는 다곤 신상을 파괴하신 후 여호와의 궤가 옮겨지는 지방마다 죽음과 전염병의 재앙을 내렸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빼앗고 즐거워했지만 오히려 큰 재앙과 심판을 받았습니다.
아스돗의 재앙(6-7)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의 목과 손이 부러지는 재앙이 임했을 뿐만 아니라 아스돗 주민들에게 독한 종기의 재앙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이 재앙으로 인하여 멸망할 것과 같은 위기의식을 가졌습니다. 이에 아스돗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신이 자신들과 자기들의 신을 친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신의 여호와의 궤를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했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은 이스라엘 신이 다곤 신을 쳐서 부서뜨리고 자신들을 쳐서 지독한 종기의 재앙이 나타났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가드의 재앙(8-9) 여호와의 궤를 옮겨달라는 아스돗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서 블레셋 방백들이 회의를 하고 가드로 옮겨가기로 결정하고 옮겼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생긴 재앙에 대한 해결책이 단순히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다곤 신이 없는 곳으로 옮기면 하나님의 진노가 멈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궤를 옮겨간 후에 심히 큰 환난이 가드에 임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멈추고자 한 블레셋 방백들의 결정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였을 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심을 강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에그론의 재앙(10-12) 아스돗에서 재앙이 나타나자 여호와의 궤를 가사로 옮겼지만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재앙이 임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냈습니다. 이에 에그론에서도 재앙이 임하자 에그론 사람들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며 하늘에 사무칠 정도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방백들은 다시 모여 여호와의 궤를 결국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적 용 : 하나님은 블레셋에서 보이신 것처럼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은 오늘 이와 같은 하나님을 얼마나 생생하게 의식하고 살고 있는지를 나누어 봅시다.
블레셋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에 이기려면 신들을 내 편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패하자 여호와의 궤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을 그들의 편으로 삼으려 한 것이고 여호와의 궤를 빼앗아 이스라엘의 하나님마저도 그들이 소유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신을 소유하거나 인간이 관리하여 둘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사람보다 못한 신입니다. 참신앙은 신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궤를 가지고 있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 설 때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호크마 주석
=====5:6
여호와의 손 - 이 표현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상징하는 신인 동성적(神人同性的) 표현이다(수 4 :24; 스 7: 9; 시 89:13).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첫번째 능력은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던 다곤 신에게 나타났었으나(3, 4절), 이제 그 능력이 블레셋 사람들에게까지 내려졌다. 한편 여기서 '더하사'( , 솨멤)는 '황폐케 하다'란 뜻이다. 독종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오팔림'( )은 일반적으로 보기 흉한 외부 질환을 통틀어 가리킨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1) 페스트의 일종으로서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의 피부염의 일종으로서 황부가 보기 흉하게 헐어서 환자 스스로 수치감을 갖게 되는 질환(Hertzberg) 등의 두 가지 중 하나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6: 4에서 블레셋 족속들이 속 건제를 위한 제물로서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을 취했다는 점에서 여기의 '독종'(毒種)은 쥐에 의해서 전염되는 페스트(pest)로 봄이 더 타당할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70인역(LXX)은 본절에 쥐 재앙을 덧붙이고 있다. 쳐서 망하게 하니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 '야크'( )는 '쳐부수다', '깔아 뭉개다' 등의 뜻으로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깃을 가리킨다(삿 15:16;삼하 11:21 ;왕상 16 : 11 ; 왕하 3 : 19).
=====5:7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 이전의 사건들(3,4절)을 모두 우연한 것으로 간주했던 블레셋 족속이 이제 그 사건들이 이스라엘의 신인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 일어났을 최초로 시인하는 장면이다. 결국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들의 신 다곤(Dagon)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셨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애굽 위에 내린 각종 재앙으로 인해 바로의 술객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한 것과 같다(출 8 : 19).
=====5:8
블레셋 사람의 모든 방백 - 블레셋의 다섯 지방 곧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글론을 각각 분할 통치하던 수령들을 가리킨다(수 13:3). 여기서 우리는 당시 블레셋이 부족 연합 성격의 국가였으며, 또한 그들이 집단 지도 체제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 Payne Smith). 한편 '방백'( ,세라님)은 성경 안에서 여기처럼 항상 복수로 나타나는(수 13:3) 비셈어 계통의 단어로서, B.C. 11세기 에서 7세기까지의 블레셋 통치자들에게 적용되었다(Greenfield). 그리고 이 단어는 헬라로 넘어가 '군주'(君主)라는 의미의 ( , 튀란노스)가 되었다. 모으고 - 이같은 블레셋 방백의 회동은 하나님의 진노가 다곤 신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여호와의 궤를 다곤 신당이 없는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는 결정을 하기 위함이었다(F.R. Fay). 가드로 옮겨 가리 - 이 곳은 구(舊) 가나안의 도시였으나, 여호수아에 의해 멸망되었다(수 10:36-39;11:21, 22). 그때 그 도시의 주민들은 아낙 자손(the Anakims)이라고 불리던 자들로서, 신체가 장대했던 자들이었다(민 13:33). 그러나 여호수아 정복 후에도 그들의 일부는 여전히 살아남았는데, 성경에서는 '가드 사람'(the Gittite) 불리워 졌다(삼하 6:10, 11;15:18, 19, 22). 한편 이 도시는 아스돗(Ashdod) 동쪽 약 20km지점에 위치하였고, 성벽이 잘 갖춰져 있던 특별히 중요시되던 지역이었던 것 같다. 수 11 :22;13:3 주석 참조.
=====5:9
심히 큰 환난 - 여기서 '환난'에 해당하는 '메후마'( )는 '큰 소요를 일으키다', '파괴하다'란 뜻의 '훔'( )에서 파생된 말로 '혼란'(confusion), '소동'(uproar), '파괴'(destruction), '난리'(tunult) 등을 뜻한다. 그러므로 '심히 큰 환난'(a very great destruction)이란 표현은 3중 강조된 말로서, 곧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이 얼마나 엄중했으며, 또산 그로 인한 성읍 사람들의 소동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작은 자와 큰 자 -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을 가리키는 관용어이다. 다쳐서 - 이 단어( , 솨타르)는 '입술이나 눈꺼풀이 깨어지다'라는 의미의 아랍어에서 온 단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극심한 피부 질환으로 피부가 완전히 해지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아스돗 보다도 가드에 더 큰 재앙을 내리셨음을 뜻한다. 결국 이것은 방백들의 모사(8절)가 어리석은 것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5:10
본절에서는 방백 회의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재앙을 수반하는 법궤의 이동 문제는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었으므로, 8절에서처럼 여기서도 방백 회의는 열렸으나 다만 생략된 듯하다.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 아스돗(Ashdod) 북동쪽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블레셋의 주요 다섯 성읍 중의 하나이다(8절). 이 성읍은 여호수아에 의해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 었으나, 그의 생전에는 점령되지 못했었다(수 13:3;15:11, 45, 46). 그 후 이 성읍이 유다 지파에 의혜 정복되긴 하였지만(삿 1:18), 얼마 안가서 블레셋의 지배 아래 떨어진 이후 유대 민족이 바벧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 그같은 상황은 계속된 듯하다(렘 25:20). 특히 이 도시에서는 '바알세붑'(Baalzebub)이라는 신이 모셔지고 있었다(왕하 1 :2, 3, 6, 16). 수 13: 3 주석 참조. 이처럼 이 도시에서 '다곤'(Dagon) 신이 모셔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이 도시로 보내려고 한 중요한 이유였던 것 같다. 우리에게로 가져다가...죽이려 한다 - 에그론(Ekron) 거민들이 이처럼 여호와의 궤를 자신들의 성읍 내로 들여놓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저할한 이유는, 이미 그들도 그 궤 때문에 아스돗과 가드에 임한 큰 환난 소식을 익히 듣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5:11
블레셋 모든 방백 - 8절 주석 참조. 궤를 보내어...죽음을 면케 하자 - '궤를 보내는 일'은 블레셋 족속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취한 방책이었다. 만일 블레셋 족속들이 언약궤를 자신들의 또 다른 도시로 보낸다 해도, 옮겨진 그 도시 역시 앞의 다른 도시들처럼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받을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약궤가 원래 보관되었던 이스라엘로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블레셋 족속은 많은 재앙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본처( , 마콤) - 성경의 여러 곳에서 '거룩한 한 장소'의 뜻으로 사용된 단어이다(출 10:23;대상 15:1;대하 5:7). 따라서 '본처'는 넓은 의미로는 언약궤가 원래 안치되었던 이스라엘을,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이스라엘의 성막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사망의 환난( , 메후마트 마웨트) - 직역하면 '죽음의 파멸'(a deadly destruction, KJV), 또는 '죽음의 공포'(a deadly panic)란 뜻이다(시 55:4). 곧 갑자기 몰아닥친 사망의 징벌로 인해 도시가 폐허화되고, 성읍 거민이 공포로 떨고 는 무시무시한 상황을 표현한 말이다.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 이것은 여타 도시들 보다도 더욱 에그론(Ekron)에 하나님의 큰 진노가 내려졌음을 보여 준다. 즉 블레셋 족속이 하나님의 크신 손길을 인간적인 지혜로 대처하고자 할 적마다 더욱 가중하여 진노가 임한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진노는 에그론(Ekron) 성읍에 언약궤가 들어온 직후부터 에그론 사람들이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다시 돌려보내기로 결정한 후, 언약궤가 그 성읍을 완전히 떠날 때까지 계속 내려진 듯하다.
=====5:12
성읍의 부르짖음이 - 여기서 '성읍'( , 하이르, 문자적으로는 '그 도시')은 단수로 언급되었는데, 시는 진노당하는 성읍이 현재 언약궤가 있는 에그론(Ekron) 한 도시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부르짖음'( , 사와)은 극한의 상황에서 구원받기 위하여 '간절히 호소하는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부르짖음'은 애굽인들로부터 극심한 학대를 받았던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도 있었다(출 2 :23;시 30:2;욘 2:2). 한편 이같은 블레셋 족속의 하늘을 향한 간절한 호소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완전한 패배를 인정하는 행위였다(욘 3 :8). 사무쳤더라 - '사무치다'( , 알라)란 말은 '자라다', '꼭대기까지 오르다'의뜻으로서, 블레셋 족속들의 부르짖음이 얼마나 크고 간절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블레셋 사람들의 이같은 부르짖는 행위를 회개 기도의 형태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블레셋 족속은 극심한 독종 재앙과 사방의 재앙으로 인해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도움을 호소했을 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진정한 회개는 없었던 것이다. 곧 진정한 회개는 여화와께 대하여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와 같은 고백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7:6).
< 설 교 >
헛된 우상과 하나님의 손
삼상 5:1-12 / 이용호목사
맹인 목사님 중 이○○목사님이 계십니다. 6.25동란 때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병으로 몸져 누웠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구두를 닦아 겨우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십일조를 떼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화를 내며 “어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나요? 아버지 죽었지요. 어머니 병들었지요. 내 눈 실명되었어요.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어머니는 “애야! 아버지 잃어버리고 내 건강 잃어버리고 너 눈 시력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믿음을 잃어버리면 영원한 것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야.”라고 했답니다. 그 목사님은 어머니의 그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언약궤도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영광도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우리들은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블레셋은 그들이 전쟁에서 빼앗은 언약궤를 [아스돗]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아스돗]은 블레셋 5대 도시 중 하나로 블레셋의 우상 [다곤]을 섬기는 중심지였습니다.
다곤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앗수르, 베니게 등에서 널리 숭배되어 온 우상으로 가나안 사람들이 주로 섬긴 농업 신 [바알]의 아버지로 알려진 신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 [다곤]을 자기 민족의 주신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아스돗]에는 엄청난 규모의 [다곤]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하나의 전리품으로 자신들의 신 다곤에게 바치려고 신전 안 다곤 신상 곁에 안치하여 두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그들의 신상이 땅에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아 있었습니다. 엄중한 신전 안에 분명히 문이 닫혀 있었고 아무도 들어 온 사람이 없는데 신상이 엎드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시 그 자리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신전에 들어가 보니 이번에는 [다곤]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아스돗]에 들어 온 뒤 [아스돗] 사람들에게 독한 종기의 재앙이 임하여 그 지역전체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의 지도자들이 모여 이 사태를 의논한 뒤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드]로 옮겨 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드] 라는 도시 전체에 하나님의 엄중한 손이 더하자 질병의 고통이 온 성에 임하였습니다.
이에 그들이 언약궤를 [에그론]이란 도시로 보냅니다. 그러자 이번에 [에그론] 사람들에게 사망과 독한 질병이 임하여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여기서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 우상은 헛된 것이요 결코 숭배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곤이 엎드러져 있었다는 히브리어 [나팔]은 ‘항복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너희들이 섬기는 민족신 다곤은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경배를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넘어져 일어나지도 못하는 우상이 무슨 복을 주며 어떻게 그들을 지켜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셋은 깨닫지 못합니다.
4절에 보면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다곤의 목과 손목이 다 끊어져 해체 되었습니다. 비록 우상이었지만 보기에 끔찍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신상의 머리가 끊어졌다는 것은 다곤은 생명이 없는 헛된 우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고, 손목이 끊어졌다는 것은 다곤이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무능한 우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온갖 신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숭배합니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신을 섬겼고 송아지를 신으로 섬겼습니다. 인도에서는 온갖 짐승을 신으로 숭배하고 있고, 동남아 일대에서는 주로 뱀을 신으로 섬기면서 집집마다 뱀의 형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 때 자기 나름대로 상상해서 만들어 세웁니다. 힌두교도들은 자신들의 신은 많은 사람을 도와야 하니까 손이 많겠지 하고 한 몸에 수많은 손을 붙여놓기도 하고, 신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겠지 하면서 불이 타는 듯한 눈을 그려 넣습니다.
성경은 모든 피조물들은 인간 보다 못한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무지한 인간들은 온갖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바위, 나무, 태양이나, 온갖 짐승들 그리고 상상속의 수많은 신들을 주물로 제작하고 조각하여 세워놓고 복을 달라고 빌고 또 비는 것입니다.
일본 같은 나라는 사람도 신으로 숭배합니다. 자기들의 왕을 천황이라고 하여 신으로 섬깁니다. 일본의 어느 마을에는 욘사마도 신으로 섬긴다는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3만개나 만들어 세워 놓고 신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이사야 44장에 보면 나무를 가지고 땔감으로 사용하여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고 하다가 그 나무로 신상을 만들어 세워놓고 그 앞에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너는 나의 신이라 하여 나를 구원하라고 하니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신이라고 하는 것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허상에 불과 합니다(시 135:15-17; 고전 8:4). 그런데 안타까운 현실은 많은 사람이 우상숭배를 한다는 것입니다. 신문에서는 대한민국이 “미신 공화국”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목사, 전도사를 합치면 약 10만 명인데, 역술인과 무속인은 그 4.5배인 약 45만 명에 달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점치는 것을 단순히 재미로 여기고, 신문광고와 인터넷 광고를 보면 운세와 점술광고가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우상의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도 싫어하십니다.
출 23:13 /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지니라.
짐승의 띠를 말하거나,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빈다는 말을 하거나, 조상의 신위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행위는 모두 우상숭배에 해당합니다.
출 20:4-6 /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기서 특별히 하나님이 질투하는 분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속이 좁고 옹졸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하여 질투를 느끼실 필요가 전혀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이 모자라서 우리 같은 피조물의 사랑을 받으려고 질투까지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는 말씀은 우리와 당신의 관계가 특별한 관계라는 말씀입니다.
질투가 무엇입니까? 질투는 사랑하는 관계에서만 일어납니다. 내 남편을 사랑한다면 남편 곁에 어떤 여자가 어른거리면 질투가 일어납니다. 내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 주변에 다른 남자가 어른거리면 질투가 일어납니다. 부부사이에 무엇이 끼어들면 질투와 분노가 생기고 살인까지도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죄와 저주로 말미암아 형편없이 망가진 우리를 살리시려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셔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보배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흘린 아들의 그 피로 나의 모든 죄를 씻어 주셨고 나를 멸망에서 건져주셨고, 너는 내 것이라고 성령으로 인을 쳐 당신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롬5:8)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보다 훨씬 진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듯이 우리도 하나님만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 앞에서 어떤 우상숭배의 행위도 금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 하나님을 사랑을 많이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후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이 아론에게 신상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론이 백성들이 가져온 금으로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이것이 애굽에서 너희들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하자 그들이 음란하게 그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우상은 물질입니다. 배금사상은 우상입니다. 주님도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6:24절)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재물을 맘몬이라고 하셨는데 돈을 사랑하는 것이 곧 돈을 신으로 섬긴다는 뜻입니다. “돈이면 다 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돈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인색한 사람도 돈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또 현대인들은 쾌락을 우상으로 섬깁니다. 성경은 정당하고 건강한 즐거움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가족이 함께 하는 즐거움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쾌락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었을 때 이런 쾌락은 이미 우상입니다. 빌3:19에서 바울은 먹는 쾌락에 빠진 사람들을 가리켜 “배로 신을 삼은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유형의 중독은 쾌락의 신에게 복종하는 행입니다. 술이나 도박, 마약, 인터넷 개임, 음란한 행위에 빠져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그것 자체가 곧 그들의 우상입니다.
또 현대인들에게는 인기와 명예가 그들의 우상입니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다 합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연예인이 그들의 우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입니다.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도 자기 이름을 내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흩어 버리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절대로 우상숭배하지 맙시다. 하나님만이 만왕의 왕이 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하나님만을 섬깁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최고의 은혜요, 최고의 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질병과 고통은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보여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6절에 보면"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여호와의 손이 그 지역을 쳤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여호와의 손으로 표현 된 것은 성령의 나타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스돗] 온 땅에 임하였습니다. 그 땅에 주민들이 무서운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합니다.
망할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그 길을 가서는 안 될 줄 알면서도 간다는 것입니다.
7절에는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일을 하나님이 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다른 여러 민족의 신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고 인간의 방법을 여전히 강구합니다. 그래서 다시 가드로 궤를 옮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9절에 보면 [가드]로 옮겨간 후 가드에도 무서운 재앙이 임하여 성읍 모든 사람들이 이 병에 걸려 죽거나 고통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언약궤를 [에그론]이란 지역으로 옮겼습니다. 그러자 11절에 보면 그 성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였다고 하였고 12절에는 성읍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미워하여 멸망시키려고 이렇게 독한 질병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고통을 당하여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사람은 미워하시지 않습니다.
니느웨는 블레셋 같이 우상을 숭배하는 민족이었고, 오히려 블레셋 보다 더 악독한 민족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어 요나를 보내어 그들을 회개시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겔 18:23, 32. 33:11).
사르밧의 과부는 이세벨의 고향인 시돈 사람 즉 이방여인이었지만 엘리야의 말을 믿고 순종하므로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도 가뭄이 있었고 수많은 과부들이 있었지만 그들 중 한 과부도 이런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였고 오직 이방여인인 이 사르밧 과부만이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의 원수인 아람나라 사람이었지만 그가 나병에 걸려 죽어갈 때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스라엘로 와서 선지자 엘리사의 말을 믿고 순종하여 나병에서 놓여나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언급하시면서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도 많은 나병환자들이 있었지만 한 사람도 깨끗함을 받지 못하였고 오직 이방인인 나아만 한 사람만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민족이나 인종을 차별하시는 하나님이 절대로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의 우상 다곤을 심판하신 사건이나 블레셋 여러 도시에 언약궤가 옮겨갈 때 마다 재앙을 내리신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고 천지간에 다른 신이 없음을 알게 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심이었습니다.
가정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납니까? 실직이나 질병이나 가족의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나요? 하나님이 부르시는 신호로 아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돌아오시기만 하면 그 넓은 품에 안아주시고 새 힘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
주 바나바목사 / 삼상 5:6-12
한국의 개신교단 성자라고 알려진 고 한경직 목사님의 목회 극복이야기입니다. 북한에서 목회 하시다가 무슨 일 때문인지 몹시 낙심이 되어서 손 하나 까딱하기가 싫어서 “이제는 목사 사표를 내고 목회를 그만 두어야겠다.”하고 엎드려 있는데 비몽사몽간에 자기가 험악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랍니다. 너무너무 피곤하여 오른쪽으로 쓰러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큰손이 나타나서 일으켜 세우더랍니다. 또 험악한 길을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왼쪽으로 쓰러지려고 하니까 다시 큰손이 나타나더니 일으켜 주더랍니다. 또 죽을힘을 다해 걸어가다가 이번에는 앞으로 쓰러지려고 하니까 두 손이 나타나더니 일으켜 주더랍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험악한 길을 걸어가다가 눈을 번쩍 떠서 보니까 잠잔 것도 아니고 생시도 아닌데 역력한 환상을 보았는데 그 때에 “내 힘으로 목회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는구나!”라고 깨달으시고,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시는 은혜로 목회생활을 승리하시며 크게 쓰임 받은 주의 종으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실제로 이 ‘하나님의 손’은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거장들과 승리하는 공동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용어입니다.
왜냐하면 이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묘사하는 하나님 현현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놀랄 만한 성공은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11:21)는 말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나타난 성령 충만함의 비밀은 바로 ‘하나님의 손’의 역사입니다.
이를 위해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다같이 모여서 몇 시간 혹은 철야와 며칠씩 계속해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손’만이 절박한 실패를 기적으로 바꾸어 주고 악한 세상에서 자신들을 구할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절감하여 그렇게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이 가장 최근 온 마음을 다해 성령으로 충만케 되기를 간구한 때는 언제인가? 당신이 정기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하나님, 주님의 손을 저에게 얹어 주시고, 주님의 성령으로 채워주십시오! 라고 기도한 때는 언제이었는가? 이 기도가 당신의 현주소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절박한 시기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 특별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현재 직면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구원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손’의 도움이 절박한 때입니다.
오늘 본문은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전쟁함으로 승리한 결과가 오히려 큰 재앙으로 확산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라의 위기적상황입니다. 본문을 주목해 보면 하나님의 역설적 ‘하나님의 손’을 보여줍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패하게 하셔서 블레셋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는가? 하나님 영광과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왜 이방인 블레셋에게 빼앗기도록 방심하셨을까? 승패의 원리는 힘의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손이 개입하심을 말씀하십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빼앗았고, 블레셋의 신이 이스라엘의 신 하나님을 이겼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블레셋에서 ‘하나님의 손’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패배한 것이지 하나님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전쟁의 승리가 오히려 화가 되어 돌아 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벤에셀에서 빼앗아 아스돗에 이르렀습니다. 아스돗은 불레셋의 수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다곤의 신전으로 옮겨 다곤의 곁에 두었습니다. 다곤 신은 ‘물고기, 곡식(옥수수)’이라는 뜻으로 블레셋 사람들이 주로 섬기던 신의 이름으로 ‘풍요와 생산의 신’인 ‘바알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곤 신의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으로 인어고기와 같은 형상입니다. 당시 아스돗 도시는 팔레스타인 북쪽에 있는 도시로, 블레셋 5대 도시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 중 하나입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거인 족속 아낙 족속이 살던 땅으로 여호수아에게 점령당한 후에도 소수의 아낙 자손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곳은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지만 그들을 다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아스돗은 불레셋 사람들의 성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불레셋 사람들은 전쟁에서 빼앗은 이스라엘의 언약궤를 바로 아스돗에 있는 그들의 신전인 다곤 신전에 갖다 두었습니다. 그들은 다곤신이 그들에게 선물로 준 전리품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은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신전에 제사하기 위해 들어가 보았습니다.
다곤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얼굴이 땅에 닿아서 완전히 항복한 모습입니다. 불레셋 사람들은 이렇게 된 일이 지진 때문이라 생각하며 그냥 우연히 이루어진 일로 생각하고 다곤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다시 다곤 신전에 제사하기 위해 가보았습니다.
그날도 역시 다곤은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어제와는 달리 그 머리와 두 손목이 다 끊어져 문지방에 놓여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다곤의 몸뚱이만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갑자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 되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곤신이 넘어진 것은 우연도 지진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불레셋이 이스라엘을 이기고 여호와의 궤를 전리품을 가져왔을 때 그들은 다곤신이 여호와의 신을 이긴 것으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와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힘이 없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쟁에서 패하도록 섭리하셨다는 메시지입니다. 이스라엘을 바로 세우기 위한 심판하시는 하나님 손의 결과였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패배한 것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표시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자들이 패배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무능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나타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죄를 회개치 않는 자들을 진노로 다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손이 여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다곤신만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에게도 엄중히 더하셨습니다.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였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하라.” 참으로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을 무시하는 자들을 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이 우리와 다곤 신을 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권능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재앙을 내리시는 신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신을 치시는 손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아스돗 사람들은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을 모았습니다. 불레셋의 다섯 방백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급박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 물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아스돗에서 가드로 옮겨가라고 결정을 내립니다. 제발 우리의 지역에는 언약궤를 두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은 아스돗 사람들의 요청대로 언약궤를 가드 지역으로 옮겨갔습니다. 가드 방백이 우리 지역으로 옮겨가자고 동의한 것 같습니다. 가드는 ‘술 짜는 틀’이란 뜻으로 예루살렘 서남쪽, 가사로 가는 길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역시 이곳에 살고 있던 아낙 자손들을 완전히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가드 사람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드로 옮겨가도 자신들은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아스돗을 쳤지만 우리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궤를 가드로 옮기자 하나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가드 성읍에 더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어떤 사람도 피하지 못하게 엄히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성읍사람들의 큰 자와 작은 자를 다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셨습니다. 언약궤를 옮기는 곳마다 재앙이 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는 어떤 성읍도 무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의 심판의 결과입니다. 어디든지 하나님의 심판이 따라다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이 에그론 사람을 치셨습니다.
가드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 도시로 보냈습니다. 에그론은 이스라엘과 가까운 곳이므로 이스라엘 가까이 보내면 괜찮을까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에 보내자 에그론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아스돗과 가드에 하나님이 징벌하신 것을 듣고 자신들에게 징벌이 내릴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에그론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가 가는 곳 성읍 사람들이 사망의 환난을 당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오자 에그론에도 하나님의 징벌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므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하였습니다.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불레셋 사람들은 에그론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시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언약궤를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자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궤로 인한 재앙을 면하자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땅 어느 지역이든지 심판의 ‘하나님의 손’을 피할 지역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니 블레셋 당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실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남으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함으로 언약궤를 그들에게 빼앗겼지만 이 전쟁은 배후에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심을 블레셋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상의 사건에서 본문으로 보면 ‘하나님의 손’이라는 말이 네 번이나 반복되어 등장합니다. 6절에 ‘여호와의 손’, 7절에 ‘그의 손’, 9절에 ‘여호와의 손’, 마지막으로 11절에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블레셋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은 재앙의 손입니다. 엄중하신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은 언약궤가 불레셋 땅의 가는 곳마다 질병을 내리고 백성들을 죽게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이겼다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았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것을 즐겨하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복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이나 블레셋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높이고 경외했더라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셨을 것입니다. 심판의 손이 아닌 축복의 손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나라의 어떤 사람들에게도 자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복음에는 차별이 없으십니다. 성서는 말합니다. 이방인으로서 가나안 여성 라합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스라엘 정탐군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으며 이방인 모압 여인 룻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여 복을 받았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가나안 여인이었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딸의 병을 고쳤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민족이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블레셋에 나타난 심판의 ‘하나님의 손’은 블레셋을 회개케 하신 후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그 하나님의 손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내시기도 하시고 원수들을 심판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고난과 심판 중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는 자들에게 긍휼과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심판의 손이 아닌 축복의 손으로 역사하십니다.
국내 첫 언어장애인 교수인 이상윤 교수님의 간증입니다. 그는 나환자촌에서 또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 열심히 섬기고 있는 주님의 귀한 일꾼입니다. 2006년도에 서른세 살의 나이에 생존확률 10퍼센트 미만의 희귀질환인 상악동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암은 광대뼈 안에 눈과 코 사이에 암이 들어가 가지고 이 암이 온 얼굴을 그 그에 퍼져서 눈과 잇몸까지 암이 퍼져서 죽는 병입니다. 그래서 이 암 진단을 받고 광대뼈와 윗잇몸을 드러내는 수술을 받아서 왼쪽 얼굴이 완전히 함몰됐습니다. 육 개월 이상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인생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안면기형과 함께 이를 다 잘라내니까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이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의학적으론 당신은 이제 재기불능이라고 말하는데 그는 하나님만 붙잡고 눈물로 기도하며 주님 안에서 꿈과 희망을 가졌습니다. 대부분 사고로 언어능력을 잃은 사람들은 99퍼센트 다 수화를 배운다고 하는데 본인은 수화를 배우지 않고 재활 수술을 통해서 입에 보철기를 물었기에 피가 계속 입에 쏟아져 나오는데도 계속 말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수술을 받고 난 다음에도 말을 할 수 있었기에 국립 부경대학교 교수로 임명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투병 중에도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손에서 놓지 않았던 성경 구절 중 달리다굼이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 말씀 부여잡고 입 속에서 피가 멈추지 않는 고통 속에서도 저는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여 저를 살릴 것을 믿었습니다. 끝까지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끈을 놓지 않자 극한 고통 속에서도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마치 커다란 파도처럼 우리의 생을 삼킬 듯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시련이 있습니다. 환난도 있습니다. 시험도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그것이 너무나도 위협적이고 두려움을 주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마치 믿음으로 물에 뛰어든 베드로처럼 결국 끝까지 의지하지 못했기에 물에 점점 빠져듭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우리 주님은 우리 곁에서 멀리 떠나 계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로 우리 옆에 계셔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말씀하시면서 빨리 그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사59:1).
하나님의 손은 언제나 내 가까이서 나를 도와주시고 나를 붙들어 주실 수 있는 능력의 손이 되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의 손은 결코 짧은 손이 아니하십니다. 주님의 손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하나님의 소유를 가지고 이 땅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축복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결코 가난하게 하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축복을 소유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 축복을 주실 대상을 당신으로 삼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축복의 손길은 지금 당신의 곁에서 당신의 손이 그의 손을 굳게 잡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은 그분의 손길을 뿌리치지 마십시오. 우리는 무엇을 하려 할 때 힘의 한계를 느낍니다. 그 때 낙심하거나 우리의 걸음이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손의 권능으로 당신의 손을 잡으십니다. 주님의 손에 당신의 손만 잡히면 당신은 능치 못한 일이 없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기도영성 회복주일입니다. 환난과 위기의 때에 기도의 영성으로 심판의 하나님의 손이 아닌 축복의 손이 나타나는 성도들이 되어서 항상 승리하시길 축원드립니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여호와의 손
삼상 5:6-12 / 남산다눔교회
📍 요절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11,12)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손이 블레셋을 전염병으로 치십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의 손이 일하시는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전쟁이든, 전염병이든, 기근이든 여호와의 손은 그것들 속에서 일하십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손은 전염병을 쓰셔서 어떻게 일하십니까? 블레셋을 친 여호와의 손은 과연 어떤 손입니까?
첫째, 엄중하신 여호와의 손. 여호와의 손은 영광의 손입니다.
6절을 봅시다.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여호와의 손(야드)이 독한 종기 재앙으로 블레셋을 쳤고 그들은 망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7절을 봅시다.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그들은 엄중히 그들을 치리 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은 자신들과 함께 할 수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손은 엄중하신 손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가벼이 여기도록 그냥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손은 가벼이 여기는 자들을 엄중히 치리 하심으로써 세상 가운데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러자 8절을 봅시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그리고 9절을 보면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셨습니다.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 4:24절은 증거합니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여호와의 손은 다곤의 손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손이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블레셋 사람들처럼 어쩔 수 없이 엄중하신 하나님의 손 앞에 굴복하기 보다, 나오미처럼 다윗처럼 하나님의 손에 우리 자신을 맡김으로써 하나님의 손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돌아가게 하는 여호와의 손. 여호와의 손은 회복의 손입니다.
가드 사람들은 언약 궤가 옮겨 온 후 심히 큰 환난을 당했습니다. 10절을 보면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냅니다.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말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11,12절을 보면 이에 에그론 사람들이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건의했습니다.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그들은 이제 여호와의 궤를 그 있던 곳으로 돌아 가게 하자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언약궤가 본래 있던 대로 돌아가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언약궤를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여호와의 손은 회복의 손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의도대로 이리저리 휘둘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원상 복귀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로 돌려 놓는 것 그것이 심판을 면하는 길입니다. 우리의 삶을 진리의 말씀으로 돌려 놓은 것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비극이 무엇입니까? 진리가 설 자리에 거짓이 서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진리가 무너지고 원칙이 무너지고 본질이 무너지면 하나님의 손이 세상을 치십니다.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을 통해서 세상이 돌아오도록 하십니다. 우리 백성이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나라가 적어도 상식으로 돌아가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함께 더불어 사는 자리로 ‘다눔 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맺는 말: 블레셋을 치신 여호와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첫째 엄중하신 손입니다. 자기 영광을 드러내시는 손입니다. 둘째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손입니다. 회복의 손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육적인, 영적인 전염병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든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프로그램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36절에서 증거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엄중하신 여호와의 손 아래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전쟁이나 기근이나 전염병이나, 좋은 상황이나 나쁜 상황이나,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종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무엘상 5:6-12
흐르는 물 / 삼상 5:6-12, 찬송 433장
어제 말씀에선 하나님께서 블레셋인들의 우상(偶像)에 대하여 심판하셨다. 그런데 이제 본문에선 하나님의 언약궤를 탈취(奪取)한 블레셋 사람들에 대하여 심판(審判)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의 우상 다곤 신상(神像)을 파괴하신 후(1-5절)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파괴된 우상의 머리가 놓인 문(門)지방까지 신성시하는 아스돗 지방의 사람들을 독종(毒腫)으로 쳐서 망하게 하시는가 하면(6-7절) 이후 언약궤가 옮겨지는 지방마다 역시 죽음과 독종의 재앙을 내리셨다.(8-12절)
이와 같은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계속된 심판은 하나님께서 결코 인간의 조롱(嘲弄)거리나 포로(捕虜)가 되실 수 없으며 세상을 공의(公義)로 심판하시는 거룩하시고 전능(全能)하신 분임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처음 있던 아스돗에서 가드, 그리고 다시 에그론으로 옮긴 이유는 혹시 다른 지방(地方)으로 언약궤를 옮기면 하나님의 재앙이 그칠까해서였다.
물론 그들의 이러한 생각은 그들의 ‘지역신(地域神) 사상’에 근거한다. 즉 당시 근동(近東) 지역의 사람들은 지역마다 그곳을 관장(管掌)하는 신이 있고 그 신은 다른 지역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전(全)우주의 통치자이시며, 창조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화를 좌초(坐礁)하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도 하나님을 단지 특정인들이 경외(敬畏)하는 숭배 대상 정도로만 간주(看做)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장차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主)요 통치자이심을 그 눈으로 확인(確認)하게 될 것이다.
아무튼 본장에서 보듯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리품(戰利品)으로 탈취함으로써 처음에는 승리를 만끽하며 즐거워했지만 곧 엄청난 재앙(災殃)과 심판(審判)을 당해야만 했다.
그들이 승리라고 생각한 순간이 곧 심판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물론 앞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道具)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의 도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蔑視)할 경우 면책(免責) 특권을 누릴 수는 없다. 이처럼 악인은 때로 성도를 징계(懲戒)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들의 죄악(罪惡)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된다. 그렇기에 성도는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지며 인내(忍耐)할 수 있다.
11절)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블레셋 사람들은 아스돗 사람들이 독종(毒腫)으로 고통을 당한 후에도 하나님의 궤(櫃)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마음이 없다. 전리품(戰利品)인 궤를 다시 돌려보내면 자신들의 승리가 취소(取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스돗을 넘어 가드와 에그론까지 독종(毒腫)이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통을 당하니 더는 버틸 수가 없다. 궤가 가는 곳마다 ‘여호와의 손’이 그곳에 재앙(災殃)과 환난을 더하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통치(統治)와 심판(審判)의 범위는 지역과 국경을 초월(超越)한다.
그러나 블레셋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서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들이 의지했던 다곤으로부터 보호(保護)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다곤을 보호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그 우상(偶像)을 버리지 못하는 블레셋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통해 우상 숭배(崇拜)의 어리석음을 보게 된다.
블레셋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많은 재앙(災殃)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깨닫고 궤(櫃)를 돌려 보낸다. 하나님의 영광을 모욕(侮辱)하는 자들은 반드시 망(亡)하게 된다. 여호와의 손이 임할 때 그들은 후회(後悔)하며 울며 떨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온 세상 어디서도 하나님이신 것을 스스로 드러내신다. 주님의 이름만이 홀로 높임을 받으소서. 주의 백성(百姓)들을 통해 주님의 이름이 영광(榮光) 받으소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결코 빼앗기지 않습니다
삼상 5:6-12 / 제자교회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워 이겼습니다. 이스라엘과 싸우기 전 블레셋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신의 상징인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스라엘의 신은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용기를 내서 이스라엘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승리하였습니다. 블레셋은 자신들이 이스라엘과 싸워 이겼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 신이 이스라엘의 신을 이겼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블레셋에 의해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이 수모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인해 겪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다곤 신상을 깨뜨리셨습니다. 다곤 신상은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아스돗 사람이 다곤 신상을 다시 세워놓았지만 다음날 또 다시 엎드러졌습니다. 하나님은 아스돗 사람에게 독한 종기의 재앙을 내렸습니다. 이것을 본 아스돗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이스라엘의 언약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언약궤를 다른 도시로 가져가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옮겨지는 도시에서는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 가져다가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며 블레셋 방백을 모았습니다. 이들은 블레셋 방백에게 “이스라엘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외친 이유는 이것이었습니다.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블레셋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신과 싸워 승리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스라엘의 신의 궤를 자신들의 신에게 전리품으로 바쳤습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했지만 하나님은 저들에게 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참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없이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언약궤가 자신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기념케 하는 것이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이방의 웃음거리가 되도록 가만히 있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스스로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결코 다른 신에게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