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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카테페가 내부 목적으로 편찬한 1937년의 통계에 따르면 1936년 계획은 5% 초과 달성 되었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통계는 적절히 다루어야하는 것이죠. 오히려 이 시기에는 심각한 경제적 하락세가 있었습니다. 신규 투자는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건설 사업이 진행상태에 있었고, 노동력과 같은 다른 많은 자원들이 거의 한계에 몰려 있었습니다. 국가 예산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한 군비로 인해 간당간당하던 상황이었죠. 1936년의 작황도 안 좋은 날씨로 인해 끔찍했습니다. 지역 관료들에 있어서 이러한 요인들은 그저 이미 달성 못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들어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뭔가 예년과 달랐습니다. 1936년의 첫 5개월 동안, 우랄의 철광석 기업체들은 목표의 28% 밖에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우랄 산업의 중핵인 철과 기계의 생산은 당연히 영향을 받게 되었죠. 작은 제철소들은 문을 닫았고 큰 제철소들 몇몇이 힘겹게 철광석을 받아 찔끔찔끔 생산하는 정도였습니다. 기계 공장은 결국 철부족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우랄의 옛 광산들로 어떻게든 이 사태의 파국을 조금 늦출 수는 있었습니다만 고갈은 피할 수 없어보였습니다. 구리 광산의 실적은 1933년 수준의 5분의 1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이는 광산 당국자들이 광산을 장기계획에 입각해서 파낸 게 아니라 접근이 쉽고 광석이 집중되어 있는 곳만 죽어라 캐내는 아마이한 운영을 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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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늘 불안불안했던 전력 생산량도 피크에 몰려 계속 블랙 아웃 블랙 아웃 신나는 노래를 외쳐댔습니다. 끝나지 않은 건설사업들은 또다른 임박한 위기였습니다. 중부우랄(Middle Urals입니다...) 구리 기업체는 1937년까지 전 연방의 구리를 탱킹해야 했지만 완성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동부 철강 기업체의 공장들의 재건축은 1930년 이후로 계속 진행 중이기만 했습니다. 수백만 루블이 이미 투자되었지만 생산을 시작하려면 계속 수백만 루블을 부어주어야 했습니다. 이 거의 무기한에 가까운 연기들은 특히 심각한 일이었는데 추후 군수산업의 기반을 만들 때 꼭 필요한 합금들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죠. 독일과 일본의 위협이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완공에 임박했다는 프로젝트들이 까보니 전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공장들이 철 부족으로 아우성 대고 있었고, 이제 유령이 되어 우랄 관료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키젤 탄전 문제는 이건 손도 못 댈 정도였습니다. 모스크바는 빨리 계획 달성을 하라고 계속 지역을 닦달했지만 이건 도저히 지역 당국자들 수준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중앙위에서는 1936년 2월, 우랄의 비철금속 산업이 스타하노프 운동에 입각한 생산성 향상을 별로 안 하는 것 같다면서 비판합니다. 1936년 가을 동안 우랄의 비철금속 기업체들은 스타하노프 운동가들의 "생산기록"에 대한 보고서를 자주 오렬보냈습니다만, 생산량은 계속 떨어져만 갔습니다. 엔카테페에서 나온 감독관들은 그걸 보며 "제대로 돌아가는 리더십의 완전한 부재"라고 코멘트하고, "생산공정에서 금속 손실을 숨기고 감추려는 바람"이 만연하며 인적구성의 심대한 변화가 필요함을 주문했습니다.
기업체의 몇몇 기업들은 깜짝 놀라 생산 보고서를 보내는 것을 중단해버립니다. 비철금속 산업이 중앙 비판의 첫빠따가 되긴 하였지만 이제 중앙의 비판으로부터 안전한 산업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문제가 악화될 수록 소브나르콤은 산업계를 향해 건설 비용과 생산 비용 감축을 이야기합니다. 1936년, 중공업 투자는 전년 대비 9.5% 올랐고 생산비 감축 목표는 11% 올라갔습니다. 동시에, 완공이 거의 다 된 사업들 위주로 투자가 이루어졌죠. 몇몇 개노답 기업체 및 건설현장에는 자금동결이 가해졌습니다.
아무리 생산을 다스리려 해도 안 돼!
일단 투자는 접는다.
이 일을 진행하면서 소브나르콤과 나르콤핀, 그리고 전연방 고스플란은 지역 당국자들의 무능에 매우 빡쳐했죠. 왜냐면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좀 시킨 대로만 쓰라고 그렇게 말해놨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당국자들이 계획에 없는 지출을 무지막지하게 해대면서 빚까지 져놨기 때문이었죠. 결국 재정 삭감, 생산비용 감축 지시, 기업의 빚 등등 모든 게 개별 기업들로 하여금 원재료를 사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는 그들의 구매자들에게 생산품을 공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의미했죠.
이런 종합된 파탄은 당 내 경제 기구의 긴장을 높이고 있었습니다. 공장의 당관료들과 공장 관리자들은 사건, 사고, 계획 미달의 책임을 서로에게 지우려고 했습니다. 특히 사고가 장난 아니었는데 1천 시간 당 사고 건수가 1935년의 88건에서 1936년에는 142건으로 늘어났습니다. 모스크바의 관련 위원회에서 최고비철금속산업부 관료는 이건 교육 잘 시키면 해결될 문제다 라고 했지만 기업체의 관리자들은 그냥 재판으로 책임자를 보내버리는 것으로 편하게 대응했죠.
노동자들은 "이게 다 당신네 행정관들 때문이야!"라고 하면서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스타하노프 운동가들은 그들이 공장 관리자들이나 지역 당 조직들로부터 지원을 똑바로 못 받는다고 불평했고 일반 노동자들은 부족한 임금에 불평했죠. 두 그룹은 모두 생활 조건, 산업 안전의 상태에 대해 불평했고 공장 조직이 이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으려 한다고 불평했습니다. 평소라면, 이런 불평불만을 한 노동자들은 다른 곳이든 감옥이든 저승이든 어디로든 보내버리면 되었지만 이제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프라브다가 당통제위원회의 명령, 즉 노동자들이 불평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관료주의적 작태에 대한 비판을 싣고 전국에 돌려버리자 일선 노동자들의 불평은 두 배로 늘었습니다. 아직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공장 관리자들과 지역당 조직간의 갈등은 이제 공장 바깥으로 기어나오고 있었습니다.
1936년까지 주 공산당의 파벌들은 이런 갈등에 하나하나 개입할 수 있었고, 그들 손아귀 밖으로 사태가 확장되는 것을 그럭저럭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앙에서 생선성, 생산량에 대한 요구를 더 빡세게 해오고 경제적 위기가 점차 심해지자, 자신들의 "파벌"이 견고한 하나의 단일체로서 유지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1936년 가을까지는 파벌이 그들의 "성공"에 대해 모스크바에 자랑을 늘어놓았지만 슬슬 균열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동부 철강 기업체의 세다셰프는 엔카테페에게 "엄청난 성공 (중략) 효율의 세계 신기록 (중략) 체계적인 초과달성"을 골자로 한 보고서를 보냈고 생산 영역이 막대한 확장을 하고 있다고 보냈습니다. 당통제위원회의 지부는 곧바로 사고와 실패, 기만, 과장으로 얼룩진 실상을 알리는 보고서를 모스크바로 보냈지요. 이런 실패들이 하나하나씩 까발려질 때마다 서로 간의 불신도 늘어만 갔습니다. 예를 들어, 페름의 철도 담당자이자 주 공산당의 일원인 샤흐길댠은 계획의 수송량 목표 성취에 대해 항상 고의적으로 정보를 조작하여 보내왔는데, 이는 생산을 맡은 담당자들의 불만을 초래했습니다. 비록 같은 파벌이었지만 몇몇이 샤흐길댠에 적대감을 표시했죠. 경제의 상호연결성 때문에, 한 명의 실패와 기만은 다른 파벌 구성원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는 잘 하고 있고 저 놈들이 문제에여!"라고 말했죠. 즉 이런 상황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물 먹일 수 있는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적 위기가 모스크바의 주의를 덜 끌고 어느 정도 관리 가능할 때는 자기들끼리 일단 모아서 협의하고 쳐낼놈 정하고 살릴놈 정하고 얼쑤 할 수 있었지만, 모스크바가 매의 눈을 부릅 뜨고 있는 상황에서 계획 미달과 다른 실패들이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늘자 파벌 내부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신뢰의 상실은 이제 하나를 꼬리자르기 할 때 쟤가 나까지 물귀신으로 물고늘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낳았습니다.
일단 이들은 중앙의 정부 부처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면피하려고 합니다. 인민위원회가 문제다. 예산 깎고 우리 일들 방해하지 않았냐. 엔카테페가 일을 안 한다 등등... 오르조니키제의 보조였던 퍄타코프가 특히 공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중부우랄(Middle Urals입니다...) 화학-구리 콤비나트의 관리자인 자리코프(이름에서 ㄹ가 다른 자음이었으면 그의 직장과 조금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흰소리를 해봅니다.)는 "재정의 명백한 결핍을 초래하는 것으로 퍄타코프는 간단히 지역의 건설사업들을 약화시켰습니다. 올해 시작부터 건설은 대혼란이었습니다." 사실 엔카테페는 1930년 대 내내 나르콤핀과 고스플란의 예산 삭감과 싸워왔지만 소브나르콤에서 삭감이 결정되자 그걸 수행할 수밖에 없던 위치였죠.
사실 퍄타코프를 갈궜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퍄타코프의 좌익반대파 가담 전력을 걸고 넘어져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데 있었습니다. 1936년 9월, 퍄타코프는 오르조니키제에게 이런 불평의 편지를 씁니다. "당조직에서 저는 제 업무의 효율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대단한 신중함, 의심의 그림자 속에서 환대 받았습니다." 만약 엔카테페 내부에서 반혁명 조직과 좌익반대파의 사보타주가 있다고 어떻게든 설득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을 피해자로 묘사하면서 이번 위기도 면피할 수 있었을테지요.
퍄타코프에 대한 공격은 지역 내에서 "첩자들의 협조자"를 사냥하는 일련의 체포로 이어집니다. 기존의 경험은 모스크바가 적당히 번제물 몇 명만 받으면 노기를 거두고 만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뀔 것이라고 예상한 근거도 별로 없었지요. 1936년 여름, 실제로 중앙 지도자들은 반혁명 스파이 활동이 엄청나게 크다 이런 걸 별로 상상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 내부와 정부 기관들 사이의 갈등이 점차 커지고 상호 비난과 기소가 계속 이어지자, 키로프 암살 이후 인민의 적을 찾겠다던 중앙은 깜짝 놀라게 됩니다. 지역에서 상호 비난을 해대던 레토릭이 "트로츠키주의자" "인민의 적" "부하린주의자" "지노비예프주의자" "외국 스파이" 이런 것이었고, 중앙이 감찰을 해보자 이런 사례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결과물들은 감찰 자체를 강화시켜주게 되었습니다.
첫댓글 내 꿈은 생존자!
~살아남아라! 관료들~
이제 자신들의 목에 스스로 줄을 걸고 있는 모습이 보여지는군요. 스스로 스스로..
"소련이 너무 후진적이고 계획 세울때 너무 욕심부렸고 중간 관료들이 너무 삥땅을 치고 책임회피에 능합니다. 어쩌죠?" "그걸 못 막은 너도 포함해서 모두 죽어라, 스탈린 동지께서 너희들의 반역죄를 가려 주실 것이다!"
아마이한 띄어쓰기군요 중 부우랄 이어야 작품의 기조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거늘. 벌써 초심을 잃다니 쯧쯧~
요는 그거네요. 모든걸 정치로 환원해버린 오류랄까나... 지역의 관료들은 이야기 초반에 나오듯이 자기들의 정치적 결속으로 스탈린의 집권에 기여하고 그를 통해 정치적으로 지위를 보장받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런 부분을 무시할 수 없었던 스탈린은 그들의 지위나 영향력에 손대는 것을 자제했는데, 결과적으로 "실제 그 지위에 걸맞은 책임 = 으로서의 산업상의 성과" 가 이뤄지지 못하니, 서서히 그들의 정치적 정당성이 스스로 갈려나가는 결과가 되었고, 그 와중에 또한 서서히 통제력과 장악력을 늘려간 중앙은 완전한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게 되고 이것이 우리가 아는 스탈린의 절대체제로 이어지는 것이랄까나...
여기에 밑의 댓글과 관련된 보론을 하나 달자면, 결국 지방과 중앙을 일단 중립적으로 볼 때(물론 나 개인이 어느편인지야 설명이 必要韓紙? ㅋㅋ~) 결국 중앙책임이냐 지방책임이냐 라는 떠넘기기갈등인 면이 있고, 스포가 되겠지만 결과적으로 지방이 모든 책임을 떠 맡은 것이 된다고 보면 될거 같거든요. 그 책임떠넘기기 갈등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도 재밌는 부분이 될 거 같습니다.
사실 이 거대한 우랄의 경우는 "선량한 중앙이 사악하고 태만한 지방에 맞서 정의의 싸움을 하는" 것 처럼 느껴지는 지라...-- 이 또한 살짝 아마이한게 아닐런지 싶기도...
정치는 그런게 아니라는 것을 스탈린 동지께서 그의 인생을 바쳐 보여주셨는지라!
@앙겔루스 노부스 사실 원문의 논조에 더해서 제 개인의 사감이 좀 들어간지라 ㅌㅌ
@첝 이런 말법적인 아마이함이라니!
@앙겔루스 노부스 원래 번역자들이 번역자의 말 같은 거 남길 때 "원문의 뜻이 잘못 전해진 건 모두 온전히 내 책임이다" 하지 않소? ㅋㅋ~
@첝 그래서 독자제현의 질정을 바란다 라고도 하죠. 나의 질정을 받아랏!
@첝 웃다가 울면 똥꾸멍에 털난다지만 이미 털이 나 있으니 쫄지 않고 진지먹어보자면, 사견이나 사감의 부분은 구분해주는게 좋다고 봅니다. 학술적 사실을 전할때, 그런 부분에 유의하지 않으면 프로파간다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앙겔루스 노부스 구분 하려곤 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는 상황에서 저자의 논조를 조금 제 색깔로 색칠한 셈이라 그게 명쾌하게 하기가 쉽지 않은..
@첝 쉽지 않죠. 그래서 좋은 필자가 된다는게 어려운걸테고. 염두에 둬야 장차 목표달성을 할 수 있을 것이리라!
@첝 쪽지보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다만,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은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상당부분, 아니 거의 전적으로 지방수뇌부의 자충에 자충을 거듭하는 행보들인데, 그 부분이 그만큼 절대적이었는지 하는 부분이네요. 사실 항상 그렇지만 중앙이 잘못을 안할리는 또 없는 것인지라... 그렇기에 몇가지 교차적으로 봐야할 부분이 있다, 라는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사실 읽으면서도 그 부분에 대해 의문을 안 가진 것은 아닌데, 속시원한 답을 해주는 부분은 없더군요
@첝 읽는 내내 그 부분이 좀 불편했거든요. 그런 부분이 보완되지 않는다면 이건 제가 좋아하는 식의 표현은 아니지만 "수정주의를 위한 수정주의" 가 될 우려가 없지 않다고 봅니다. 아예 주제를 산업화 초기 쏘련 지방수뇌부의 타락상, 같은 식으로 한정했다면야 상관이 없지만... 장차 이를 교차검증할 문건을 발굴해주시리라 믿소! 동무! 목표에 미달하면 무엇이 기다리는지 이 글을 번역했다면 다 알겠지?!
@앙겔루스 노부스 으아니 차!
@첝 반쯤 농담처럼 했지만, 사실 이게 학술주제를 파고드는 방식중 하나라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물론 중요한건 "반쯤 농담" 이라는 것이죠. 반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겠지? 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