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워가 끝날때쯤의 해가 완전히 넘어간 이른 저녘. 칠흑같은 어둠이 아파트 단지를 물들이고 귀뚜라미 소리만이 은은히 들려온다. 그리고 빨갛고 자그마한 불똥이 어느 아파트 윗층에서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후..」
짙은 회색빛 담배가 공해로 물들어 달조차 가린 검은 하늘위로 회색빛 은하수를 그리며 사라진다. 그리고 그는 아파트 복도 난간에 뒤돌아 기댄다. 복도천장 노랑빛 램프위로 여러 잡벌레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램프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선건지 집게 손가락만한 사마귀 하나가 그중 흔한 나방한마리를 덮석 잡고는 먹기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와의 다툼으로 아파트 복도로 나와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와 그의 아내가 결혼한지 이젠 1주년이 다되어가고 있었고, 그들은 여느 신혼부부와 다를것없이 신혼의 부푼꿈에 들떠 아늑한 전세집 아파트방을 구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이야긴 그들이 싸우지 않을때나 일이다. 자주 일어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내와의 갈등과 논쟁이 심해질때가 종종있다. 하지만 그들의 싸움방식은 남들과는 조금 독특했는데, 그 독특함이 어떻게 남들이 보기에는 좋아보일 수 도 있으나 막상 당사자 남편인 그는 아내의 행동에 걱정이되었다.
그들이 싸움이 시작될때, 점차 둘간의 언성과 짜증이 높아가는것을 느끼면 아내가 모든 이야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그리고 폭식에 들어간다. 말그대로 폭식이라면 좋겠지만 어느때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할때도 있었다.
그 심하다는 정도라는것이 싸움을 피해버린 아내가 겉으로는 아무런 티없이 사늘한 표정으로 남편인 그를 한번 노려보고는 무섭게 냉장고 문을 열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꺼내서 먹는것이다. 그 먹는 다는 행동이 무언가 요리해서 먹는다거나 이런것이 아니라 그냥 꺼내놓자마자 아무런 식기도 사용하지 않은체 마치 걸신들린 사람마냥 그자리에 주저앉아 손으로 잡아 먹는다는것이었다. 대체로 그럴때는 아내는 과일이나 미리 만들어놓은 반찬등 조합에 맛지 않는 음식들을 재주좋게 한번에 입안에 넣고 먹어버리는데 그것을 몇번 본 그가 질리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그래서 아내가 먼져 물러서고 난 후에 남편은 말없이 아내가 보이지 않는곳으로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리고 몇시간후 화가 다풀린 아내가 말없이 현관을 열면 마치 무슨일이 있었냐는듯이 그들에겐 다시 평화가 되돌아왔다.
「들어와. 아무래도 이번에는 내가 좀 심했던거 같아..」
입주위에 빵가루가 끈적하게 마른 각종 양념과 소스위에 붙어있는것이 보인다. 하지만 차분한 보브단발에 맑고 커다랗고 검은 눈동자는 긴장이 풀어진탓에 눈꼬리가내려가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사랑스럽지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담배를 버리고 말없이 현관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부엌을 살펴보았다. 부엌은 말끔히 정리되어있었다.
「아무리 자기 스트레스푸는 방법이라고 해도 너무 그러지마 그러다 탈나면 어쩔려고..」
그는 테이블위 티슈를 한짱 꺼내어 아내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어느새 그녀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진다. 이래서 남들이 신혼은 좋다고 하는것 같다.
「걱정마. 나 먹는건 많이 먹어도 괜찮으니깐 자봐~ 여지껏 그렇게 살아왔지만 군살하나 없
는걸~」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마치 무대위 댄서처럼 한바퀴 몸을 돌리자 분홍 딸기무늬가 그려진 원피스식 네글리제의 치마자락이 펄럭였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의 몸매는 정말 군살하나 없이 날씬했고 그런 그녀를 보던 남편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그녀를 덮석 안아올렸다.
「그래? 그럼 어디 정말 그말이 맞는지 한번 확인해볼까?」
「어머 왜이래 자기~ 이러지마 이러지말라니깐 꺄르르륵~」
따르르릉.. 따르르릉..
「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자기야!』
회사에서 근무중인 그의 사무실 전화로 익숙한 목소리의 여성이 들뜬듯 그를 불렀다. 그러자 지루한 업무속에 딱딱한 표정이었던 그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진다.
『자기 놀라지 말고 들어야되~ 나 임신 2개월이래~!』
「뭐!? 그게 정말이야?」
그는 벌떡일어나 외쳤지만 이내 자신이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단걸 알아차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나지막히 그녀와의 통화를 계속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직장 상사의 헛기침에 일찍들어간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끝맺음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 밖에는 없었다.
그는 하루종일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케잌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갈것이다. 그리고는 행복에 겨워하며 하루하루 아무 일없는 그들의 생활에 감사하겠지.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얼마가지 못했다.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야!!?」
남성의 언성이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그에 대꾸하는 여성의 목소리도 점차 날카롭게 변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을것 같아 보였던 것이 왠일인지 쉽게 끝을 맺지 못하고 붉은 화염처럼 번져나갔다.
「됐어!! 관둬 관두라고!! 당신 맘대로해!! 나가!! 나가!!!!!」
여성의 극한 소프라노톤의 고함이 그의 귀를 난도질한다. 결국 그는 다시 아파트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임신한 아내에게 자신이 굴었던 점을 깊게 후회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감정에도 불화가 생기는 것도 문제지만 아이에게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그녀의 습관을 기억해냈다. 폭식증. 그는 의사는 아니었지만 결코 그것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제빠르게 현관문을 열어 젖히고는 아내를 말리기위해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다.
「헉..!!」
그순간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웠던 아내가 활짝 열린 냉장고문 앞에 주저앉아 생고기를 먹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자신이 들어온것은 안중에도 없는것인지 그녀는 마치 굶주린 야수처럼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를 물어뜯고 있었다.
「이거놔!!!」
날카로운 목소리가 섬득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아내와 미래의 아이를 위해 필사적으로 그녀를 말렸다. 그러나 아내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 맑고 귀여웠던 눈동자는 마치 피에 굶주린 이리처럼 핏기가 바짝 선채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악!!」
남편은 비명을 질렀다. 아내가 그의 팔을 문것이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그는 자신의 아내도 뭐고 볼것도없이 그녀를 그만 내리치고 말았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뭐가 어떻게 된거야..? 어쩌다가..?」
그가 처음 그녀의 행동을 보았을때는 그래도 그나마 괜찮다고 싶었는데 그가 자리를 피해왔던 동안 어느새 그녀의 폭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던 것이다. 그것이 결코 남편과의 싸움에서만 벌어졌던 일이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가 무슨일에서이든 스트레스를 받을때마다 그녀는 그렇게 폭식으로써 그녀자신을 다스려 왔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이젠 그녀자신도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것이다.
그는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는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털썩주저앉아 아까 아내가 물어뜯은 자신의 팔을 보았다. 살점이 뜯겨나가있었는데 허연 뼈가 얼핏보이는게 통증보단 두려움이 밀려왔다.
「유산입니다.」
그와 그녀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모든것이 그녀의 탓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남편역시 깊은 한숨만을 내쉬었다. 담배역시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거실 소파에 앉아 골초마냥 자욱한 연기가 온 집안을 매꿨다.
「저기 있잖아.. 우리..」
하루종일 침실에서 침울함에 지쳐있던 아내가 침실문을 열고 나오는 인기척에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그는 너무 지쳤다. 더이상 그는 무엇을 해야할지 혼동스러웠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냉장고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체념한듯 그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그만두자..」
퀭한 눈동자가 정차없이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찾다 말고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미 지칠때로 지쳐보이는 그는 너무 힘이 없어보였다. 그래 그 남자는 말그대로 지금 힘이 없을것이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어건 정말 아닌거 같아.. 나 정말 진심으로 생각..」
푹!!
그순간 남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아내의 헝클어진 머리가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복부 깊숙히 박힌 식칼한자루가 어두운 부엌으로부터 들어온 거실불빛에 은은히 빛나는것을 볼 수 있었다.
남자의 입에 물렸던 담배가 힘없이 낙하하여 차가운 하얀 타일깔린 부엌바닥에 곤두박질치곤 서서히 그 불꽃 식어가기 시작했다.
「계십니까!!! 아무도 않계십니까!!?」
두명의 순경은 결국 경비원의 도움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몇발자국 들어놓기도 전에 그들의 발아래 무언가 끈적함을 느끼며 집안으로 한발 한발 들어섰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칠흑같은 어둠이 내리앉은 집안에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겨나왔고 환한 태양의 엷은 빛줄기 흥건히 피가 고인 집안 바닥을 훝고 뻗어나가 집안 구석에서 쭈구리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저.. 계..계십니까?」
순경 한명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위해 조심스럽게 그 누군가를 불렀다. 그리고 그것은 들썩이던 어깨의 들썩임을 멈추고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헉..!!」
그리고 두명의 순경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헝크러질 대로 헝클어진 머리에 피로 범벅이된 얼굴. 이미 죽어버려 광기만 존재하는 눈동자를 갖고 있는 그녀의 양손에는 사람의 팔하나가 들려있었다.
그리고는 태양빛에 잠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랑곳하지않고 닭고기 뜯듯 팔의 살점을 뜯어 우적우적 씹기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로는 처참히 사람의 손에 뜯겨나간 시체의 살점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
음.. 이번편은 길었는데 왠지 너무 뻔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첫댓글 사마귀암컷...은... 상대방을 먹는 습성을 가졌다....그걸표현하신듯^^^^;?
재밌어요.. (꼬는거 아니고) 곤충관련 단편모음집 만들어도 될거같네요..
계속되는 곤충 시리즈 너무 재미있어요...
『나는너에게』 오타지적 감사합니다 제가 아직 한글이 서툴러서^^; 앞으로 잘부탁드립니다. 『마리엔』 맞아요 사마귀의 암컷은 수컷과의 교미후 수컷을 먹지요 뭐 그래도 제글이 허접해서 대충짜마추기식 ^^; 『Deathrasher』감사합니다 ^^ 『Dotori』ㅎㅎㅎ Deathrasher님 따라하신건가요 순간 보고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