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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hijjhā(盜心)
10불선業道(kamma-patha)에서 의업으로는 abhijjhā가 나타납니다.
abhijjhā는 abhi-jhāyati에서 유래된 여성명사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분석됩니다.
abhi : 잘/지나침(over, 勝/過)
jhāyati : 1. 禪(드러내다/보이다, To show),
2. 燃燒(불타다/불나다, To be burning,to burn,to consume; to waste away)
'지나치게 드러내 보이다.' 혹은 '지나치게 불타다.'라는 의미로 추정되고
경문의 용례에서는 '타인의 자산이나 재물을 내 것이었으면' 하는 盜心(도둑놈 심보)의 의미입니다.
연결되는 법들은 기본적으로 (無明/癡에서 유래된) 貪이고 이와 관련된 법들이
감각적 욕망으로 번역하는 慾, 그리고 渴愛로 나타납니다.
최악의 경우가 盜, 邪淫입니다.
abhijjhā ([意行 ← 盜心: 도둑놈 심보 ← 貪]) : abhijjhālū kāmesu tibbasārāgā
→ 盜: adinnādāyī
이와 짝이 되는 법이 domanassa / vihesā(불쾌), 혹은 byāpāda(惡意/心)이고
그 의미는 '타인의 목숨이 끊어지길'하는 저주와 관련된 의미이고
최악의 경우가 殺입니다.
殺이나, 盜, 邪淫 등은 戒에 의해서 禁止되고,
6근 團束으로 도둑 심보와 싫어하는 마음(abhijjhādomanassā)은 제어하고서,
실제적으로 실참 수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4념처는 도둑 심보와 싫어하는 마음(abhijjhādomanassā)을 벗어나고서(vineyya) 수행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수행(正念)이 잘 진행되면
5장애(혹은 5하분결)에 속하는 abhijjhā(盜心)와 byāpāda(惡意/心) 등을 제거하고서
바른 삼매인 正定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하 참고 자료입니다.
cattāri dhammapadāni -- anabhijjhā dhammapadaṃ, abyāpādo dhammapadaṃ,
sammāsati dhammapadaṃ, sammāsamādhi dhammapadaṃ.
네 가지 법의 부분(dhammapada) -
욕심 없음으로 [성취되는] 법의 부분, 악의 없음으로 [성취되는] 법의 부분,
바른 마음챙김으로 [성취되는] 법의 부분, 바른 삼매로 [성취되는] 법의 부분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 cf.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307)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307) '버리면서(vineyya)'에 대한 설명은 「대념처경」 (D22)에 해당하는 주석서 등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① 반대되는 것으로 대체하여 버림(tadaṅga-vinaya, 의도적인 단속이나 위빳사나를 닦음으로 인해서 생기는 일시적인 버림)과 ② 억압에 의한 버림(vikkhambhanavinaya, 禪의 증득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버림)으로 버리면서”(SA.iii.180)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마음챙기는 공부를 하기 전에 먼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으로 대표되는 장애들을 다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챙기는 공부를 하면서 이들을 버려나가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so yaṃ taṃ abhijjhādomanassānaṃ pahānaṃ
taṃ paññāya disvā sādhukaṃ ajjhupekkhitā hoti.
그는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린 것을 통찰지로써 보고 안으로 평온하게 된다.
* cf.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kāye kāyānupassino viharatha ātāpino sampajānā
ekodibhūtā vippasannacittā samāhitā ekaggacittā,
kāyassa yathābhūtaṃ ñāṇāya;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시오.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하나에 몰입되고, 마음은 맑고, 삼매에 들고, 마음이 하나에 집중되어
몸을 있는 그대로 알기 위해서 머무시오.
evameva kho, bhikkhave, idhekacco paṇḍito byatto kusalo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tassa kāye kāyānupassino viharato
cittaṃ samādhiyati, upakkilesā pahīyanti. so taṃ nimittaṃ uggaṇhāti.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현명하고 슬기롭고 능숙한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그가 이처럼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 때
마음은 삼매에 들고 오염원들은 제거된다. 그는 표상을 취한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ṇo anaññasaraṇo,
dhammadīpo dhammasaraṇo anaññasaraṇo.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歸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
법을 섬으로 삼고[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
tattha ye te sattā dubbaṇṇā, te vaṇṇavante satte abhijjhāyantā paresaṃ dāresu cārittaṃ āpajjiṃsu.
그러자 추한 용모를 가진 중생들은 용모가 준수한 중생들을 선망하게 되었고
남들의 아내를 범하게 되었다.
“taṃ kiṃ maññatha, sāḷhā, atthi lobho”ti? “evaṃ, bhante”.
“abhijjhāti kho ahaṃ, sāḷhā, etamatthaṃ vadāmi.
살하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탐욕이 있는가? 있습니다, 존자시여.
살하들이여, 나는 강한 욕망이(* abhijjhā - ti) 바로 탐욕의 뜻(*/결과 atthaṃ)이라고 말한다.
“taṃ kiṃ maññatha, sāḷhā, atthi doso”ti? “evaṃ, bhante”.
“byāpādoti kho ahaṃ, sāḷhā, etamatthaṃ vadāmi.
살하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냄이 있는가? 있습니다, 존자시여.
살하들이여, 나는 악의가 바로 성냄의 뜻(*/결과 atthaṃ)이라고 말한다.
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
마음을 어지럽히는 욕심과 불쾌함도 그러하나니
abhijjhābyāpādo 감각적 욕망과 악의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sa kho so, gahapati, ariyasāvako abhijjhāvisamalobh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abhijjhāvisamalobhaṃ cittassa upakkilesaṃ pajahati.
byāpādo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byāpādaṃ cittassa upakkilesaṃ pajahati.
thinamiddhaṃ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thinamiddhaṃ cittassa upakkilesaṃ pajahati.
uddhaccakukkuccaṃ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uddhaccakukkuccaṃ cittassa upakkilesaṃ pajahati.
vicikicchā cittassa upakkilesoti, iti viditvā vicikicchaṃ cittassa upakkilesaṃ pajahati.
장자여,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욕심스러움이라는 강력한 탐욕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고서 탐욕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한다.
'악의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고서 악의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한다.
'해태와 혼침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고서 해태와 혼침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한다.
'들뜸과 후회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고서 들뜸과 후회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한다.
'의심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고서 의심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한다.
205) '욕심스러움이라는 강력한 탐욕'으로 옮긴 원어는 abhijjhā-visama-lobha인데 주석서에서 “욕심스러움이라 불리는(abhijjhā-saṅkhāta) 강력한 탐욕(visama-lobha)”(AA.iii.98)으로 풀이하고 있으며, 복주서에서는 visama-lobha를 강력한 탐욕(balava-lobha)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ayaṃ vuccati, gahapati, ariyasāvako mahāpañño puthupañño āpātadaso paññāsampanno .
ayaṃ vuccati, gahapati, paññāsampadā.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큰 통찰지를 가졌다, 광활한 통찰지를 가졌다, 분명한 시계(視界)를 가졌다,
통찰지를 구족했다고 하나니, 이를 일러 통찰지를 구족함이라 한다.
so abhijjhaṃ loke pahāya ... pe ...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evamevaṃ kho, bhikkhave, yato ariyasāvakassa virajaṃ vītamalaṃ dhammacakkhuṃ uppajjati ,
saha dassanuppādā, bhikkhave, ariyasāvakassa tīṇi saṃyojanāni pahīyanti —
sakkāyadiṭṭhi, vicikicchā, sīlabbataparāmāso.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에게 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570)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견(見)이 생김과 더불어 성스러운 제자는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有身見]와, 의심과,
계율과 서계에 대한 집착[戒禁取]의 세 가지 족쇄들571)을 제거한다.
570) “법의 눈이란 사성제의 법을 파악하는 예류도의 눈이 생긴다는 뜻이다.” (AA.ii.356)
571) 세 가지 족쇄를 비롯한 열 가지 족쇄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족쇄 경」(A4:131)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athāparaṃ dvīhi dhammehi niyyāti abhijjhāya ca byāpādena ca.
그 다음에 그는 탐욕과 악의의 두 가지 법들로부터 벗어난다.
so abhijjhaṃ loke pahāya vigatābhijjhena cetasā viharati,
abhijjhāya cittaṃ parisodheti.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무릅니다.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byāpādapadosaṃ pahāya abyāpannacitto viharati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byāpādapadosā cittaṃ parisodheti.
악의의 오점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무릅니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여 악의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abhijjhā akusalaṃ, byāpādo akusalaṃ, micchādiṭṭhi akusalaṃ
lobho akusalamūlaṃ, doso akusalamūlaṃ, moho akusalamūlaṃ
dasa akusalakammapathā 十不善業道
bhavanto kho pāṇātipātī adinnādāyī kāmesumicchācārī musāvādī pisuṇavācā
pharusavācā samphappalāpī abhijjhālū byāpannacittā micchādiṭṭhī.
존자들은 참으로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중상모략을 하고, 욕설을 하고, 잡담을 하고, 탐욕을 가지고, 악의에 찬 마음을 가지고,
삿된 견해를 가졌습니다.
abhijjhā kāyagantho, byāpādo kāyagantho, sīlabbataparāmāso kāyagantho,
idaṃsaccābhiniveso kāyagantho — ime kho, bhikkhave, cattāro ganthā.
imesaṃ kho, bhikkhave, catunnaṃ ganthānaṃ abhiññāya pariññāya parikkhayāya
pahānāya ... pe ... ayaṃ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bhāvetabbo”ti.
간탐의 몸의 매듭, 악의의 몸의 매듭,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의 몸의 매듭,
이것만이 진리라고 천착하는 몸의 매듭이다.156)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매듭이 있다.”
156) “'몸의 매듭(kāya-gantha)'이란 정신적인 몸(nāma-kāya)의 매듭이니 매듭짓고 얽어매는 오염원(ganthana-ghaṭana-kilesa)을 말한다.”(SA.ii.137)
“매듭짓고 얽어매는 오염원(ganthana-ghaṭana-kilesa)이란 원인(hetu)을 결과(phala)에 얽어매고 업의 회전(kamma-vaṭṭa)을 과보의 회전(vipāka-vaṭṭa)에 얽어매어서 괴로움에 묶어버리는 것이라고 알려진 것(dukkha-ppabandha-saññita)을 뜻한다.”(SAT.iii.121)
네 번째인 '이것만이 진리라고 천착하는 몸의 매듭'은 idam-sacca-abhinivesa kāya gantha를 옮긴 것이다.
…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무릅니다.
yāni cimāni, bhante, bhagavatā pañc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desitāni,
nāhaṃ, bhante, tesaṃ kiñci attani appahīnaṃ samanupassāmī”ti.
존자시여, 세존께서 설하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 가운데
어떤 것도 제게서 버려지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