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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무류(有敎無類)
가르침은 있으나 종류에 대한 차별은 없다는 뜻으로,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有 : 있을 유(月/2)
敎 : 가르칠 교(攵/7)
無 : 없을 무(灬/8)
類 : 무리 류(頁/10)
출전 :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이 말은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다는 공자의 말이다. 논어(論語)의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말이다. 호향(互鄕)이란 곳은 풍기가 문란하고 천한 직업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어느 날 그곳에 사는 한 아이가 공자를 만나러 왔기 때문에 제자들이 돌려 보내려고 했으나 공자는 그 아이를 맞아 그가 묻는 말에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제자들이 공자의 이러한 태도을 보고 의아해 하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깨끗한 마음으로 찾아오면 그 마음만을 받아들이면 됐지 그 사람의 과거와 행동까지 따질 것이 있느냐.' 공자는 제자들의 차별의식을 안타까워 했다.
공자는 실제로 그에게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최소한도의 예의만 지키면 신분의 고하, 재산의 많고 적음과 나이의 고하를 묻지 않고 받아 들였는데 신분과 계급의 차별이 엄격했던 3천년 전에 공자의 이러한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신선할 정도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공자는 뛰어난 교육학자이자 사상가로서 많은 제자들이 따랐고 당시에는 물론 현재까지도 성현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우리 주변의 일부 지역에서는 자녀에게 '비싼 아파트 평수의 크기에 따라 친구와 어울리라'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특정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함께 공부할 수 없도록 해달라는 요구나 서로 간의 통행조차도 막는 곳이 있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장애학생 시설을 혐오시설로 여겨 자기 지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극렬한 시위를 한다거나 새터민, 다문화 학생에 대한 정서적 차별, 성적우수자와 그렇지 못한 학생의 차별적 대우 등 교육계 곳곳에서도 알게 모르게 교육적 불평등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곤 한다.
교육이란 자신의 덕과 지식을 쌓고 배려하고 어울리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학교와 교사의 할 일은 무엇보다 학생에 대한 고른 사랑이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일수록 더욱 보살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가르치는 대가로 비록 한 묶음의 말린 고기(乾肉)밖에 가져오지 않는다 해도 나는 어떠한 사람에게나 차별 없이 교육을 했다'고 말한 수천 년 전 공자의 사도(師道) 실천은 그래서 더욱 울림이 크다.
오늘날 '가르치고 배움에 계층과 계급, 잘 살고 못사는 구분이 없다'는 '유교무류(有敎無類)'의 말을 되새겨 우리 모두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을 다잡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유교무류(有敎無類)
이 말을 한자 없이 언뜻 들으면 유교(儒敎)에 잘못이 없다거나 유교가 가장 뛰어나다는 뜻으로 알기 쉽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가르치는 데(有敎)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無類)는 공자(孔子)의 말이다.
공자는 최고의 스승으로 꼽히는 만큼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인(仁)을 실천하기 위한 교육에 빈부나 귀천, 노소를 불문하고 가르침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예의만 차리면 가르쳤던 속수지례(束脩之禮)란 말이 전한다. 가난해도 열 조각의 말린 고기만 있으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논어(論語)에는 곳곳에 공자의 교육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가르침이 있을 뿐 대상에 빈부귀천의 차이는 없다(子曰 有敎無類)'는 구절은 위령공(衛靈公)편에 실려 있다.
이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해석이 있는 중 남북조(南北朝) 시대 양(梁)나라의 경학자 황간(皇侃)의 주(註)를 많이 따른다.
사람에게 귀천이 따르지만 재주에 따라 가르쳐야 한다며 '가르치면 선하게 되니, 차별은 없는 것(敎之則善 本無類也)’이라 봤다.
송(宋)나라의 유학자 주희(朱熹)는 사람의 본성이 다 선하니 구분 없이 가르친다면 본래의 선을 회복한다고 해석한다.
공자가 가르침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는 예는 여러 제자를 보고 알 수 있다. 수제자 안회(顔回)는 단사표음(簞食瓢飮)이란 말이 전하듯 끼니를 걱정할 정도였으나 자공(子貢)과 염유(冉有)는 부유한데다가 재산도 많이 모았다.
현명한 안회에 비해 우직한 자고(子羔)도 있었고, 덕행을 칭찬한 중궁(仲弓)이 있었는가 하면 자로(子路) 같은 불량배 출신도 껴안았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더 문제가 안 되는 듯 안회의 아버지 안로(顔路)도 제자가 된 적이 있다. 태어난 노(魯)나라 뿐 아니라 각국을 주유하다 보니 여러 나라 출신이 다양하게 제자로 들어왔다.
사람이 날 때부터 능력에 차별이 없을 리 없지만 공자는 스승이 제자의 개성을 파악하여 옳게 지도한다면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신분과 계급의 차이가 엄격했을 시기였을 텐데 공자의 이런 가르침은 오늘날 더욱 돋보인다.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부유층은 사교육으로 어릴 때부터 앞서 나간다.
개천에서 용 나온다는 이야기는 사시(司試)가 폐지된 뒤로는 지역까지도 높이 성이 쳐져 옛이야기가 됐다. 차별이 없는 교육은 옛 책 속에만 있다.
유교무류(有敎無類)
가르칠 때 사람을 가리지 말라.
근대는 민족국가의 시대다. 나라마다 자기 민족의 융성을 추구했고, 이를 위해 산업화에 힘썼다. 민족 융성과 산업화를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그에 걸맞은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었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른바 국민 교육을 실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국민 교육은 민주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결코 아니었음에도 결론적으로는 주인 노릇을 할 시민을 기르는 구실을 해왔다.
오늘날 교육은 모든 시민의 권리가 되었지만, 인류의 문명사를 돌아보면 교육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가 결코 아니었다.
처음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는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도 배움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하물며 왕이나 황제가 전제(專制)하며 통치했던 곳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인류의 문명사는 어쩌면 배울 권리, 배우는 사람의 범위가 확장되어 온 역사였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왕에서 귀족 또는 성직자로, 귀족 또는 성직자에서 민중으로.
동아시아 역사에서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배울 수 있다고 선언하고 실행한 최초의 인물은 공자(孔子)다. 그 자신 몰락한 귀족의 사생아나 다름이 없었던 공자는 어려서부터 당시 지식이 집약되어 있던 예악(禮樂)을 배우는 데 힘썼다.
공자는 예악의 붕괴를 탄식했지만, 그 붕괴가 공자처럼 기득권에서 밀려나 있던 존재에게는 도리어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한낱 노예나 다름이 없던 민중도 배워서 역량을 발휘해 신분을 세탁할, 이른바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논어 술이(述而)편에, '말린 고기 한 묶음 이상을 들고 스스로 찾아온 자라면, 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고 한 공자의 말이 나온다.
가난하고 미천한 자라도 배우려는 뜻을 품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자라면, 누구나 가르쳤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유교무류(有敎無類) 곧 '가르칠 때 사람을 가리지 말라'고 말했다. 오늘날 교육을 돈벌이로 여기는 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유교무류(有敎無類)
공자는 인류 최초의 사학 창시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자를 따르는 제자가 3000명 정도였으니 어떻게 그토록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는 바로 공자의 교육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사람은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교육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공자는 강조한다.
유교무류(有敎無類)
가르침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공자가 공평한 가르침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호향(互鄕)이라는 마을에서 한 소년이 공자를 찾아왔다. 그 곳은 천민들이 천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살고 있는지라 풍기가 문란한 곳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제자들이 소년을 돌려 보내려고 했으나 이를 본 공자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묻는 말에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고 있었다.
제자들이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자 공자가 '사람들이 깨끗한 마음으로 찾아오면 그 마음만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 사람의 과거와 행동까지 따질 것이 있느냐'면서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차별의식을 두지 말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공자는 공부하려는 사람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있으면 신분, 연령, 지위, 재산 등에 관계없이 열린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공자에게 구름처럼 몰려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은 제자들의 면면을 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자공과 염유는 부자였지만 안회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맹의자는 신분이 높았지만 자로는 신분이 낮았다. 나이도 천차만별이어서 안로는 공자보다 53세나 적어 최연소 제자가 되었다. 출신지역도 공자의 고향인 노(魯)나라 뿐만 아니라 자하는 위(衛)나라, 자장은 진(陳)나라 출신이었다.
공자는 이 같은 사회적인 차별은 교육에 걸림돌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다만 제자들이 학문적으로 얼마나 성장하고 인격적으로 성숙되느냐를 가지고 평가하려고 했다. 그래서 제자들의 수준에 따라 맞춤식 교육을 제공하였기에 많은 제자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
최근에 일어난 기적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일은 무엇일까. 아마도 오바마의 기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탄생은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자리매김 해주고 있다.
미국은 기회의 나라임을 입증하기에 충분해서 그렇다. 기적의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분석과 설명이 있다. 오바마가 능력과 인품을 갖추었고 상대방 후보인 매케인이 고령이라는 점도 큰 행운이었다.
특히 최고의 일등공신은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다. 그러나 오바마 기적의 원초적인 근원지는 어디일까.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오바마는 하바드대학을 졸업했다. 만약 그가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면 오늘의 기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교육은 인종과 신분의 벽을 뛰어 기적을 만들어 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세계 13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높은 교육열을 꼽는다. 한국처럼 아침에 호텔이 공부하는 모임들로 호황을 누리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전국의 유명강사를 초빙하여 공부하는 모임이 늘어나고 있다. 공부의 열풍이 계속되는 한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다.
요즈음 만나는 사람마다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 IMF의 쓰라린 경험이 있어 더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경험은 우리에게 지혜를 공급해 준다.
많은 전문가들이 '만약 IMF외환위기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경제는 너무나 심각한 상황을 겪고 있을 것이다'고 진단한다. 이미 우리는 소중한 체험을 가지고 있다.
공자가 강조한 유교무류(有敎無類)의 자세는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주는 것임과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배우는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다.
가르침을 주는 모든 사람도 스승으로 예우하는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심지어 불황조차도 훌륭한 스승으로 여기는 열린 마음이 요구된다.
유교무류(有敎無類)
가르침은 있으나 종류에 대한 차별은 없다.
子曰: 有敎면 無類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침은 있으나 종류에 대한 차별은 없다."
(衛靈公 38)
공자에게는 약 3천 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 중에는 오늘날 장관에 해당하는 대부(大夫)도 있었지만, 평민과 천민도 있었다.
예컨대 자공(子貢)과 염유(冉有)는 대단한 권세와 부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안회(顏回)는 매우 가난한 사람이었다. 또한 자로(子路)는 공자보다 9세 연하였지만, 안회의 아버지인 안로(顏路)는 공자보다 6살이 많았다.
이처럼 제자들의 스펙트럼이 넓었던 사람이 바로 공자이다. 이렇게 다양한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공자의 교육철학은 과연 무엇일까? 공자의 교육관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화가 있다.
공자 당시 호향(互鄕)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은 예로부터 악한 풍속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도 모두 악한 습관에 찌들어 사는 곳이었다. 그래서 당시 그곳 사람들과는 전혀 상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호향에 사는 한 소년이 공자를 찾아왔다. 공자는 그 소년을 흔쾌히 맞아 주었다. 그러자 제자들은 크게 동요했다. 왜냐하면 그 곳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는 것이 당시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이런 의문을 공자가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몸을 깨끗하게 하여 나오면 그 청결함을 인정하고 과거에 했던 일에 대해 집착해서는 안 된다." (술이 28)
이 말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배우러 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정성을 보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자가 과거의 잘못을 모두 용납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그 진실한 마음을 보고 가르친다는 뜻이다.
즉 현재의 일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지 과거의 잘못으로 개선의 가능성마저 구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이 있다고 해서 그를 악한 사람으로 낙인찍어 그의 미래를 모두 부정하고 무시한다면, 이 세상에 무시당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겠는가?
공자의 교육관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한 구절 더 있다.
공자는 제자를 받아들이는 기준에 대해 "속수(束脩)의 예(禮)를 실행한 자로부터 그 이상은 내가 일찍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술이 7)고 말했다.
속수란 육포 10장을 말하는데, 공자 당시 스승이나 어른에게 인사를 드릴 때 들고 가는 가장 약소한 예물이었다. 공자의 교육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따라서 공자는 기본적인 예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가르침을 주었다. 즉 가르침은 예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예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자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성공담은 전 세계에 미국이 기회의 나라임을 입증해 주었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교육의 위대함을 볼 수 있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어머니의 재혼과 하와이와 인도네시아 등을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 그리고 흑인으로서의 열등감과 약물 중독 등. 이런 개인적인 고난을 지켜준 것은 다름 아닌 교육이었다. 만약 제대로 된 교육이 없었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훌륭한 인격과 재능을 갖추는 것이다. 따라서 빈부와 귀천에 따라 차등을 두어서는 안 된다. '유교무류'는 바로 이러한 평등한 교육기회를 강조하는 공자의 교육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다.
▶️ 有(있을 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有자는 '있다, '존재하다',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有자는 又(또 우)자와 月(육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月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다. 有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손으로 고기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가 고기(肉)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有자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져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有(유)는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미(迷)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②존재하다 ③가지다, 소지하다 ④독차지하다 ⑤많다, 넉넉하다 ⑥친하게 지내다 ⑦알다 ⑧소유(所有) ⑨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⑩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⑪어조사 ⑫혹, 또 ⑬어떤 ⑭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우환을 당하지 아니함 또는 뒷걱정이 없다는 뜻의 말을 유비무환(有備無患),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뜻으로 변명할 말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구무언(有口無言),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한 모양이나 흐지부지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유야무야(有耶無耶),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일컫는 말을 유상무상(有象無象),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명무실(有名無實), 머리는 있어도 꼬리가 없다는 뜻으로 일이 흐지부지 끝나 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두무미(有頭無尾), 다리가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박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서주(有脚書廚), 만물은 조물주가 만드는 것이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일컫는 말을 유생불생(有生不生), 다리가 있는 양춘이라는 뜻으로 널리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양춘(有脚陽春),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라는 뜻으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유지경성(有志竟成),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시작할 때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변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시유종(有始有終), 무슨 일이든 운수가 있어야 됨을 이르는 말을 유수존언(有數存焉),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있으나 마나 함을 이르는 말을 유불여무(有不如無), 말하면 실지로 행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함 또는 각별히 말을 내 세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유언실행(有言實行), 끝을 잘 맺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결과가 좋음을 이르는 말을 유종지미(有終之美), 입은 있으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정이 거북하거나 따분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유구불언(有口不言), 행동이나 사물에 처음과 끝이 분명함 또는 앞뒤의 조리가 맞음을 일컫는 말을 유두유미(有頭有尾),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융통함을 이르는 말을 유무상통(有無相通), 장차 큰 일을 할 수 있는 재능 또는 그 사람을 일컫는 말을 유위지재(有爲之才), 끝까지 일을 잘 처리하여 일의 결과가 훌륭함을 이르는 말을 유종완미(有終完美),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대로 있지 않고 인연에 의하여 변해 가는 것이라는 말로 세상사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유위전변(有爲轉變), 가기에 잎을 더한다는 뜻으로 이야기에 꼬리와 지느러미를 달아서 일부러 과장함을 이르는 말을 유지첨엽(有枝添葉),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교무류(有敎無類) 등에 쓰인다.
▶️ 敎(가르칠 교)는 ❶회의문자로 教(교)의 본자(本字)로 爻(효; 배움)와 부수 글자 攵(회초리)의 합자(合字)이다. 회초리로 쳐서 가르쳐 배우게 함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敎자는 '가르치다'나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敎자는 爻(효 효)자와 子(아들 자)자,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한자에서 爻자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하나는 '배우다'이다. 學(배울 학)자가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단순한 모양자로 쓰이는 경우이다. 希(바랄 희)자가 그러하다. 여기에 쓰인 爻자는 '배움'이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敎자는 이렇게 '배우다'라는 뜻을 가진 爻자에 子자와 攵자를 결합한 것으로 '아이가(子) 공부를(爻) 하도록 하다(攵)'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敎자는 회초리를 들어 아이를 가르친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이것을 '가르침'이라 했다. 그래서 글자의 구성으로만 본다면 改(고칠 개)자와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敎자에는 爻자가 있으니 이것은 공부와 관련된 글자이다. 그래서 敎(교)는 (1)종교(宗敎) (2)삼문(三門) 즉 교(敎), 율(律), 선(禪) 중(中)의 하나. 이 교는 경론(經論)으로써 신앙(信仰)의 근본을 삼음 등의 뜻으로 ①가르치다 ②본받다 ③가르침 ④~로 하여금 ~하게 함 ⑤교령(敎令: 임금의 명령) ⑥종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인도할 도(導), 가르칠 훈(訓), 가르칠 회(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닦을 수(修), 배울 학(學), 익힐 련/연(練), 익힐 습(習)이다. 용례로는 학술이나 기예를 가르침을 교수(敎授), 가르치어 지능을 가지게 하는 일을 교육(敎育), 학술이나 기예를 가르치는 사람을 교사(敎師), 학교에서 가르치는 데 쓰는 책을 교과서(敎科書), 학교 교사 가운데, 오로지 수업에만 쓰이는 방을 교실(敎室), 가르치고 깨우침, 타이름, 훈계함을 교훈(敎訓), 가르쳐 기름을 교양(敎養), 가르치고 배우는 데 쓰이는 재료를 교재(敎材), 가르치는 과목을 교과(敎科), 종교 단체의 모임을 교회(敎會), 가르쳐 착한 길로 인도함을 교화(敎化), 종교 상의 이치나 원리를 교리(敎理),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그 무리를 교도(敎徒), 가르쳐서 익히게 함을 교습(敎習), 교재로 쓰는 책을 교재(敎本), 종교를 믿는 사람을 교인(敎人), 경전 바깥의 특별한 전승이라는 뜻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전한다는 말을 교외별전(敎外別傳),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시켜 준다는 뜻으로 사람에게 가르쳐 주거나 스승에게 배우거나 모두 자신의 학업을 증진시킴 또는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서로 자신의 공부를 진보 시킨다는 말을 교학상장(敎學相長), 자식에게 땔나무 캐오는 법을 가르치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근본적인 처방에 힘씀을 이르는 말을 교자채신(敎子採薪), 신부의 교육은 시집 왔을 때에 바로 하라는 교부초래(敎婦初來), 나의 자식과 남의 자식을 바꾸어 교육한다는 뜻으로 부자父子 사이엔 잘못을 꾸짖기 어렵다는 뜻의 말을 역자교지(易子敎之), 말이 없는 가운데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노자의 무위자연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을 불언지교(不言之敎) 등에 쓰인다.
▶️ 無(없을 무)는 ❶회의문자로 커다란 수풀(부수를 제외한 글자)에 불(火)이 나서 다 타 없어진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없다를 뜻한다. 유무(有無)의 無(무)는 없다를 나타내는 옛 글자이다. 먼 옛날엔 有(유)와 無(무)를 又(우)와 亡(망)과 같이 썼다. 음(音)이 같은 舞(무)와 결합하여 복잡한 글자 모양으로 쓰였다가 쓰기 쉽게 한 것이 지금의 無(무)가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無자는 '없다'나 '아니다', '~하지 않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無자는 火(불 화)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無자를 보면 양팔에 깃털을 들고 춤추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무당이나 제사장이 춤추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춤추다'가 본래의 의미였다. 후에 無자가 '없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 되면서 후에 여기에 舛(어그러질 천)자를 더한 舞자가 '춤추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無(무)는 일반적으로 존재(存在)하는 것, 곧 유(有)를 부정(否定)하는 말로 (1)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공허(空虛)한 것. 내용이 없는 것 (2)단견(斷見) (3)일정한 것이 없는 것. 곧 특정한 존재의 결여(缺如). 유(有)의 부정. 여하(如何)한 유(有)도 아닌 것. 존재 일반의 결여. 곧 일체 유(有)의 부정. 유(有)와 대립하는 상대적인 뜻에서의 무(無)가 아니고 유무(有無)의 대립을 끊고, 오히려 유(有) 그 자체도 성립시키고 있는 듯한 근원적, 절대적, 창조적인 것 (4)중국 철학 용어 특히 도가(道家)의 근본적 개념. 노자(老子)에 있어서는 도(道)를 뜻하며, 존재론적 시원(始原)인 동시에 규범적 근원임.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실재이므로 무(無)라 이름. 도(道)를 체득한 자로서의 성인(聖人)은 무지(無智)이며 무위(無爲)라고 하는 것임 (5)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서 없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없다 ②아니다(=非) ③아니하다(=不) ④말다, 금지하다 ⑤~하지 않다 ⑥따지지 아니하다 ⑦~아니 하겠느냐? ⑧무시하다, 업신여기다 ⑨~에 관계없이 ⑩~를 막론하고 ⑪~하든 간에 ⑫비록, 비록 ~하더라도 ⑬차라리 ⑭발어사(發語辭) ⑮허무(虛無) ⑯주검을 덮는 덮개 ⑰무려(無慮), 대강(大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공(空), 빌 허(虛)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있을 유(有)이다. 용례로는 그 위에 더할 수 없이 높고 좋음을 무상(無上), 하는 일에 막힘이 없이 순탄함을 무애(無㝵), 아무 일도 없음을 무사(無事), 다시 없음 또는 둘도 없음을 무이(無二), 사람이 없음을 무인(無人), 임자가 없음을 무주(無主), 일정한 지위나 직위가 없음을 무위(無位), 다른 까닭이 아니거나 없음을 무타(無他), 쉬는 날이 없음을 무휴(無休),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이 거저임을 무상(無償), 힘이 없음을 무력(無力), 이름이 없음을 무명(無名), 한 빛깔로 무늬가 없는 물건을 무지(無地),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음을 무자(無子), 형상이나 형체가 없음을 무형(無形),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하는 것이 없음을 무념(無念), 부끄러움이 없음을 무치(無恥),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음을 무리(無理),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는 외로운 처지를 이르는 말을 무원고립(無援孤立), 끝이 없고 다함이 없음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무궁무진(無窮無盡), 능통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무소불능(無所不能), 못 할 일이 없음 또는 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무소불위(無所不爲), 무엇이든지 환히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무불통지(無不通知), 인공을 가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또는 그런 이상적인 경기를 일컫는 말을 무위자연(無爲自然), 일체의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 일체의 상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무념무상(無念無想), 아버지도 임금도 없다는 뜻으로 어버이도 임금도 모르는 난신적자 곧 행동이 막된 사람을 이르는 말을 무부무군(無父無君), 하는 일 없이 헛되이 먹기만 함 또는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무위도식(無爲徒食), 매우 무지하고 우악스러움을 일컫는 말을 무지막지(無知莫知), 자기에게 관계가 있건 없건 무슨 일이고 함부로 나서서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무불간섭(無不干涉), 성인의 덕이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유능한 인재를 얻어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짐을 이르는 말을 무위이치(無爲而治), 몹시 고집을 부려 어찌할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무가내하(無可奈何), 아무 소용이 없는 물건이나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무용지물(無用之物) 등에 쓰인다.
▶️ 類(무리 류/유, 치우칠 뢰/뇌)는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类(류)는 간자(簡字)이다. 米(미)와 犬(견)과 頁(혈)의 합자(合字)이다. 頁(혈)은 사람의 얼굴, 米(미)는 쌀알, 자잘함, 頪(뢰)는 사람의 얼굴이 닮아서 분별하지 못함, 類(류)는 비슷한 개(犬)가 모여 있다, 비슷한 것들이 모이는 일, 양이 떼짓는 것을 群(군)이라고 하듯이 개가 떼짓는 것은 類(류)라고 한다. 나중에 개에 국한하지 않고 사물이 닮음을 나타낸다. 또는 뜻을 나타내는 머리 혈(頁; 머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类(류)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類자는 '무리'나 '비슷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類자는 頪(엇비슷할 뢰)자와 犬(개 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頪자는 '엇비슷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類자는 이렇게 '엇비슷하다'는 뜻을 가진 頪자에 犬자를 결합한 것으로 '비슷한 개들이 모여 있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類자는 '비슷한 것들끼리 모여 있다'는 의미에서 '무리'나 '비슷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類(류, 뢰)는 ①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②동아리(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서 한패를 이룬 무리) ③제사(祭祀)의 이름 ④대개(大槪: 대부분) ⑤같다 ⑥비슷하다 ⑦비슷한 것끼리 나누다 ⑧좋다 그리고 ⓐ치우치다(뢰) ⓑ편벽되다(생각 따위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속(屬), 무리 휘(彙), 무리 도(徒), 떼 부(部), 붙을 부(附), 무리 대(隊), 무리 훈(暈), 무리 조(曹), 무리 등(等), 무리 군(群), 무리 중(衆), 무리 배(輩)이다. 용례로는 서로 비슷함을 유사(類似), 같은 사례나 비슷한 전례를 유례(類例), 공통의 성질이나 특징이 있는 것끼리 묶은 하나의 틀을 유형(類型), 피부나 근육이 아물어 붙음을 유합(類合), 미루어 짐작함을 유추(類推), 물건을 부문에 따라 나눈 갈래를 종류(種類), 글자로 기록한 문서를 서류(書類),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이르는 말을 인류(人類), 종류를 따라서 나눔을 분류(分類), 가용성이며 단맛이 있는 탄수화물을 당류(糖類), 기름 종류를 유류(油類), 술의 종류를 주류(酒類), 같은 무리보다 뛰어남을 출류(出類), 서로 구별되는 특성에 따라 갈린 종류를 부류(部類), 여러 가지 종류를 각류(各類), 같은 종류를 동류(同類), 비길 데 없음이나 짝이 없음을 무류(無類), 뛰어나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부류를 범류(凡類), 사물은 같은 무리끼리 따르고 같은 사람은 서로 찾아 모인다는 말을 유유상종(類類相從), 비슷한 것들은 수만 가지가 있어도 같지는 않다는 말을 유만부동(類萬不同),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교무류(有敎無類), 개나 말 따위란 뜻으로 낮고 천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을 견마지류(犬馬之類)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