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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말안하면뻘짓,말하면노답)
충청남도 중동부에 위치한 시. 동으로는 세종특별자치시, 동남으로는 대전광역시와 계룡시, 서로는 청양군, 남으로는 논산시와 부여군, 북으로는 천안시와 아산시, 예산군에 접한다.
면적이 충청남도 1위인 지역이다. 충청남도에서 분리독립한 지자체에게 땅을 연속으로 빼앗겼음에도 이 기록은 변치 않고 남아있다.
이미 마한 시기부터 고조선계 집단이 있었던 걸로 확인되며 이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청당동 일대에 소재했던 목지국을 비롯한 다른 경기충청전라 내륙부와 마찬가지 흐름이다. 지금이야 백제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매김되었지만 적어도 개로왕 시기 이전까지의 한성백제에겐 목지국과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직접 지배 지역으로 편제해야 할 다른 마한 주류 집단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 공주 일대는 삼국시대에 들어서 백제 문주왕 때 처음 백제의 수도인 웅진성이 되면서 백제의 핵심지로 떠오른다.
고려시대에는 동남쪽의 별개의 군현이었던 대전광역시 동북부의 비풍군(比豊郡)이 회덕현(懷德縣)으로 격하돼 공주의 속현으로 편입되었으며 여타 대전 일대의 현들인 유성현(儒城縣), 덕진현(德津縣), 진잠현(鎭岑縣) 또한 공주의 속현이 된다.
1931년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이 결정된 직후 공주면이 공주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공주읍 공주시로 승격되었다.
1995년 1월 행정구역 개편 때 공주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2012년 7월 1일 장기면 일부, 의당면 일부, 반포면 일부 지역이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되었다.
곰나루(고마 나루)에 얽힌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옛적 이곳에 살던 남자가 산(공주에있는 연미산)에 오르다가 한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보고 첫눈에 반해 며칠 밤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어느날 남자는 여자가 귀한 고기를 매일 얻어오는 것이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어디서 얻어오는 것인지 확인하고자 몰래 여자를 뒤쫒아 갔는데, 여자는 곰의 모습으로 변해 산짐승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암컷 곰은 인간 남자가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것을 알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남자를 동굴에 가두고 남편 삼았다.
이후 암컷 곰은 인간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여럿 낳았다. 하루는 암컷 곰이 남자를 가둔 굴을 실수로 바위로 막아 놓지 않았는데,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남자가 도망가자 암곰은 매우 슬퍼하며 아이들을 끌어안고 금강 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한다. 훗날 이 전설에 따라 그곳은 '곰나루',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라 했으니 오늘날 공주의 기원이다.
지명 유래에 따라 공주시의 마스코트도 곰을 쓰고 있다.
전근대에 공주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평지가 없는 대신 강변 수심이 깊어 도강하는 나루터로서 적합했으며, 이 나루터를 활용해 금강 수운의 최대 교두보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공산성이 있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듯 산으로 둘러싸인 고을이기에 조선시대까지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군림이 가능했다. 허나 철도와 교각 건축기술이 발달하고 강을 통한 수운이 없어지면서 두 장점 모두 쓸모없게 된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로 대전, 천안, 청주 등 주변 도시들이 급성장하고,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까지 출범하면서 도시의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는 충청권 도시들 중에서도 많이 빛바랜 수준으로 물러났다.
세종특별자치시 문제 때문에 연기군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사실 이 문제는 공주시 주민으로서는 충청남도청을 다른 곳으로 뺏겨버린 탓에 다른 행정수도로서의 기능이 온다는 소식으로 일개 도시에서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었다.
현재는 세종특별자치시로 편입되어 장군면이 된 옛 장기면은 1970년대 후반 유신체제 시절 행정수도 후보지로 선정했던 곳이기도 하다.
세종특별자치시는 공주시민들로서는 마냥 웃을 수 있는 이득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출범 이후 인접 도시 중 인구가 제일 적은 공주시의 경우는 더욱 타격이 커서 상생 위기라는 기사도 나왔고, 통합 떡밥도 나왔으며, 도지사까지 개입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바로 옆 세종시에는 새 아파트, 새 시설이 즐비하고 도시의 평균연령이 전국에서 가장 낮기 때문에 기존에 공주에 사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유입인구가 적은 관계로 인구 감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계속된 인구감소 속에서도 2021년 5월, 도내 시군간 인구격차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충남도가 대전·세종과 접한 지역을 개발한다는 방침을 세워 공주시 송선동과 동현동에 신도시를 개발하고 이와 연계하여 공공기관 유치활동도 들어갔다.
우선 젊은층이 먹고 살 만한 마땅한 직장도 없는 관계로 당장 공주대학교나 공주교대를 졸업해도 공주시에서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는 게 아닌 이상 공주에 남아서 직장 갖고 일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이다. 상권도 처참하며 기반시설이 부족하고, 심지어 대형마트도 없기 때문에 젊은층 입장에서는 굳이 공주에 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2023년 1월 인구수 102,460명
철도는 호남고속철도 공주역이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이어서 철도를 이용하려면 사실상 논산이나, 천안, 조치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다.
대신 도로교통이 발달했다.논산천안고속도로, 서산영덕고속도로, 서천공주고속도로가 지나고, 국도 역시 천안, 대전, 세종, 예산, 청양, 부여 등 충남권 각지로 연결되기 때문에 도로망이 매우 훌륭하다.
농업과 양잠‧낙농‧양돈 등의 농업이 성하다. 밤이 특산물이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정안면의 정안 밤이 등록되어 있다. 다만 많은 유적지가 있음에도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해 관광쪽으로는 큰 수익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게다가 장기면이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으로 편입되면서 지역에 얼마 안 되는 큰 공장 중 하나였던 남양유업 공주공장까지 함께 세종시로 편입되어버려서 안 그래도 안 좋은 공주시의 재정상황에 엎친 데 덮친 격인 상황이다.
유구읍에 웅진식품, 코웨이, 도레이 첨단소재(구 웅진케미칼), 계룡면에는 CJ제일제당 등 대규모 공장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코웨이는 아예 공주에 본사를 두고 있다.
유구읍이 고향이었던 웅진그룹 창립자인 윤석금 회장의 영향이 컸다.
애터미가 경찰서 뒤에 본사를 세웠다. 생각보다 규모가 되며, 덕분에 공주시 지방세 납부 1위다.
공주시 상권은 전적으로 공주대학교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공주대학교 대학로는 타 지역의 다른 대학 대학로에 비하여 높은 물가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저렴한 대학로를 생각하고 가면 큰코 다칠 수 있다.
농담 삼아서 공주에서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세 군데가 있는데 그게 바로 사진관, 미용실, 병원이라고 한다. 우선 사진관의 경우 강북 기준으로 단 2군데이며, 학교 후문 근처가 아닌 다른 사진관의 경우 임용고시를 치는 사범대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임용고시 응시용으로 원서 사진을 찍고, 임용고시 원서를 넣고 보니 교육청에서 원서 사진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연락이 올 정도로 일처리가 미숙하다.
공주시의 주된 부가가치 창출은 단연 '원룸업'에서 이루어진다.
강북의 공주대학교를 중심으로는 수많은 원룸과 여러 상권이 발달해 있으며, 강남의 공주교육대학교를 중심으로도 수많은 원룸이 자리하고 있다.
두 대학교의 재학생이 공주대는 1만여 명이고 공주교대는 2천여 명으로 1인당 하루에 쓰는 금액을 최소 1만 원씩만 잡아도 일일 최소 1억 원의 돈이 공주시에 풀리는 것이다. 방학을 고려한다면 1년 동안 이 두 대학교로 하여금 공주에 풀리는 돈은 최소한 120억 원 정도인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만큼 공주시의 경제적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반증이 된다.
전국 시단위 지역 중 대형마트가 없는 2개 시 중 하나다. 그나마 이름 있는 유통업체는 전국 모든 지역에서 운영하는 농협 하나로마트가 유일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문화유산이 3곳이나 있다는 것으로 공주의 관광자원을 설명할 수 있다.
1. 백제역사유적지구 - 공산성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옛 송산리 고분군)
2.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 마곡사
이 외에도 백제의 여러 유적지가 있고, 시설로는 국립공주박물관, 휴양지로는 계룡산국립공원 등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의 말에 의하면, '괜찮은 유적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적발굴과 관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문화적 관광도시로 발전하지 못한 도시' 라고 했다. 발로 한 발굴로 유명한 무령왕릉과 현재도 발굴이 진행 중인 공산성, 시가지에서 참 멀리도 떨어져 있는 변두리의 국립공주박물관 등, 유적지 관리 실태를 보면 맞는 말이지만 공주시에 거주하는 사람이 듣기에는 참 씁쓸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공주는 위례성 함락 후 피난 온 일종의 임시수도 였으며 그 기간도 60년 남짓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흔히들 신라의 고도인 경주시와, 백제의 고도인 공주/부여를 비교하면서 공주를 깎아내리지만 애초에 급이 다른 게 경주는 천 년 동안 수도 역할을 했었다.
인구가 10만명 정도인 도시 치고는 매우 교육열이 높은 교육 도시이다. 전국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가 3곳이나 있다.
또한 두 곳의 국립대학이 있으며, 대전세종충남권역 교육대학인 공주교육대학교와 사범대학으로 유명한 공주대학교가 공주에 있다. 이 같은 특징 때문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특수학교, 고등교육기관 등 우리나라에서 모든 유형의 국립학교를 다 갖춘 단 둘 뿐인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나는 청주시)
또한 공주고는 천안북일고나 대전고만큼은 아니지만 충청팜의 야구 명문으로 손꼽히며 박찬호, 안승민, 조동찬, 조동화, 오재필, 김광림, 신경식, 김경문 등의 프로야구 선수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극장은 메가박스 공주점이 유일하다. 공주대학교 후문 앞에 롯데시네마가 있었으나 단 몇개월 만에 문을 닫은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병원급으로는 공공병원이자 종합병원인 공주의료원(299병상)이 유일한 정도로 의료기관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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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주 넘 이뻐,,,,, 좋았어!!!
피탕먹고가!!!!!!!
공주 동해원 맛있던데
오 공주에도 한옥마을이 있구나
김피탕!!
김피탕 존맛,, 진짜 본문처럼 젊은이들 일할 곳이 없어서 다들 대전이나 타지로 빠지더라고ㅋㅋ 공주시 직장 걱정 없으면 함 살아보고 싶긴함
난 공주사람이라 글 읽고 진짜 공감되는게 너무 많다.
간단한 여행으로는 좋지겠지만 살기에는 최악에 도시
자원 없는 것도 최악인데 공주사람들 텃세부려서 공주 왔다가 떠나는 외지인 한두명 본거 아님
공주 여행 갔을때 진짜 좋았는데..김피탕을 못먹어봤네...
김피탕 아직도 원조 못머거봄 ㅠㅠ 그 더참맛인가?? 거기 국밥두 마싯던데 냄새 하나도 안나고 굿
직장 문제 없으면 살긴 좋아 조용하고 없는 거 빼곤 뭐.. 대충 있을 건 다 있고... 없어도 옆에 세종 대전 가까워서 ㄱㅊ
일 자리 없는 건.. 뭐 지방들 다 똑같다고 생각함... 토박이 아니면 장사 망한다는 소리 심심찮게 들림 ㅎ 이 가게 사장이 저 가게 사장이고 그런듯
학겨다닐때 다가봤넼ㅋㅋ 까치집도 가주라 여시들..
피탕김탕도 유명하지만..
북경탕수육 먹어주라....
김피탕 먹으려고 공주 놀러갔었는데 날씨도 좋아서 더 잼났어
피탕김탕 말고 북경탕수육 가세욥!
사진에 나온 곳 다 어딘지 알고싶다! 공주 여행 갔었는데 못 간 곳이 너무 많네 ㅠㅠ
코오롱 정수기 본사가 공주길래 뭐지싶었는데 회장 고향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