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통일 전망대에서 바라본 이북땅
(해파랑길 제1편)
루수/김상화
이름도 아름다운 해파랑길이란다. 그 아름다운 이름만큼 그 길도 신비로움이 가득하다고 한다. 해피가족은 해파랑길을 걷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떠난다. 고성 8경이라 일컫는 통일전망대부터 트레킹을 시작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분단의 아픔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곳을 가려면 주소 성명 주민등록번호를 제출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보름 전에 인적사항을 제출했다.
모처럼 최전방을 구경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우리는 세계 수출 10위권에 있고 국민소득(GNI)이 1인당 3만 불이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선진국의 문턱에 서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잘사는 나라다. 우리는 오늘 통일전망대에서
유일하게 3대 독재로 인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이북 땅을 한 귀퉁이나마 잠시 보고 올 것이다. 어찌하다 두 동가리가 난 이 나라의 아픈
상처를 보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파랑길은 본 산악회의 본부장이며 사진작가로도 유명한 장선덕 작가께서 선정했다. 필자는 40년
전에 파주에 있는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구경한 적이 있다. 그곳에 가서 대형 망원경으로 이북 땅을 바라보았다. 그때 농부들이 밭에서 일하는 장면과
남한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효과의 집을 지어놓은 것도 보았다. 그 장면을 본 필자는 가슴을 예리한 칼로 도려내는 듯 아팠다. 그런 기억을
안고 오늘은 가보지 못한 미지의 고성 통일전망대를 가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두 곳에 전망대가 있다. 필자는 오늘 처음 가보는 곳이라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곳에 가서도 이북 땅을 바라보면 전과같이 가슴이 아플까?
달리던 버스는 고성지구 율곡부대가 있는 통일전망대
길로 들어섰다. 검문소에서 헌병들이 버스를 세워 미리 제출한 인적사항을 보고서 한 사람 한 사람 호명을 하며 철저하게 인원파악을 한다. 그러곤
200m 정도 갔을 때다. 또 버스를 세우더니 미남으로 생긴 분이 올라와 씩씩하게 거수경례를 한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하더니 저는 이곳에 여러분들과 함께 오신 박재강 회장을 형님같이 모시는 8군단장 이진성 중장입니다. 하며 공손히 인사를 한다. 중장이란 별이 세
개를 달고 다니는 최고의 군 수뇌부의 한 사람이다. 장군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 사비로 간식 하라고 건빵을 사서 준다. 박재강 고문 덕분에
8군단장의 따듯한 영접을 받았다. 졸병으로 군 생활을 하던 과거를 회상하며 건빵을 입에 넣고 아즈 작 씹어 봤다. 그때의 건빵 맛이 아니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국가 위상이 올라가고 보니 군에 보급하는 건빵도 향기로운 맛을 낸다고 할까,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었다. 보통이
아니다. 참 자랑스럽다. 이 하나를 보아도 어깨가 으쓱해진다. 이진성 장군 고맙습니다. 지면으로나마 인사드립니다.
통일 전망대로
들어섰다. 여기는 고성의 8경이라 일컫는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한 곳이다. 여기서 이북 땅의 일부를 볼 수 있다. 고성군 현내면 저진리 소재
DMZ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해발 70m 고지의 통일전망대는 금강산의 구선봉과 해금강이 지척에 보이고, 맑은 날에는 신선대, 옥녀봉, 채화봉,
일출봉, 집선봉 등 천하절경 금강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휴전선 철책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 초소는 전쟁의 아픔과 남북분단의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발아래에는 동해북부선 철도 길을 잇는 공사장면과 2004년 12월 개통된 동해선 남북연결 도로로 금강산 육로관광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통일이 멀지 않았음을 꿈꾸게 된다.
언덕길을 올라가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고성지역
전투 충혼탑이다. 강원도 고성은 동해안 최북단에 있으며 대한민국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다. 더불어 최근에는 새로운 안보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고성군이 대표적인 안보 관광지로 부각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통일전망대가 아닌가 싶다. 이
통일전망대의 상징이 이곳 충혼탑이다. 이 충혼탑은 6.25전쟁 이후 고성지역에서 조국과 겨레를 수호하기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이분들의 충정과 거룩한 뜻을 기리고자 육군 제5861부대와 고성군이 함께 건립한 추모탑이 서 있다. 이 충혼탑은 관람객들에게는 조국
통일의 의지와 나라 사랑의 마음을 키울 수 있는 신성한 학습장이며, 외국인들에게는 대한민국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이를 극복한
대한민국의 상무. 호국 정신을 이해하게 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한편 고성군 건봉사에는 6.25전쟁 당시 순직자 1,064명과 사단 창설 이후
순직자 194명의 추모를 위해 위패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잠시 후 전망대로 올라갔다. 거리상으로 500m 정도 되는 곳에 왕릉만
한 섬이 하나 보인다. 본 산악회 고문이신 이원갑 목사님께서 저 섬의 오른쪽은 이북이고 왼쪽은 이남이라고 한다. 금강산이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서 어서 오라고 반갑다며 손짓하고 있다. 바라다보이는 아름다운 저곳이 그리운 금강산이란 말인가! 겨울엔 개골산이라 했는데 기암괴석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저런 별명이 붙었을까?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만 이곳에 와서 가슴에 담고 간다. 금강산은 태백산 북부에 위치한 명산으로 강원도 고성군과
그리고 통천군 일부에 있다. 오래전부터 금강산은 백두산과 함께 통일 한국의 2대 명산으로 꼽아왔다. 성스러운 산의 으뜸인 백두산을 성자(聖子)라
불렀고 기이한 산의 으뜸인 금강산은 재자(才子)라 했다. 욕심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가 구경을 하고 싶다. 그러나 남북이 갈려 오고 가지 못하는
형국이니 어찌하겠는가! 1만 2천 개의 웅장한 봉우리를 가진 금강산은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해 봄은 "금강산", 여름은 "봉래산", 가을은
"풍악산", 겨울은 "개골산"이라고 불렀다.
이 지역은 남과 북, 두 개의 고성이 되었다. 남쪽 664.55㎢, 북쪽
858.65㎢, 이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이후 1953년 7월 27일 휴전선과 함께 남북으로 분단된 고성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國家)이다. 분단도(道), 분단 군(郡)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휴전 당시 고성 인구 대부분은 이북 5도 출신 피난민이었다.
1980년까지도 인구의 77%가 실향민이었다. 고성통일 전망대에서 북 고성까지 거리는 3.8km이다. 고성의 아픔은 현실이지만 통일 또한 멀지
않게 느껴진다. 눈 앞에 펼쳐진 금강산이 통일의 염원을 더욱 간절하게 만들며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하나 됨을 오늘도 꿈꾼다.
현대그룹에서 야심 차게 시작한 금강산 관광사업은 1998년 11월 18일 금강호가 첫 출항 하면서 본격적인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다. 필자가 오늘 와서 본 것은 전망대가 있는 이곳을 통해 금강산으로 가는 도로를 잘 포장해 놓은 것을 확인했다. 현대그룹은 한국 최초의
호텔식 테마 여객선 설봉호를 이용한 해로(海路) 관광이 가능해진 것이다. 2002년 11월 북한은 금강산 지역을 금강산관광 지구라는
특별행정구역으로 명명하였다. 2003년 2월 14일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하는 육로 길이 열리면서 관광객 수는 더욱 증가했다.
2005년도에는 금강산 관광객 수가 100만 명을 넘었고, 2008년은 7월 말까지 200만 명을 눈앞에 두었다. 하지만 2008년 7월 11일
남한 관광객 박광자 씨를 피격 사망 사건으로 북한 관광은 중단되었다.
이상갑 회장과 전망대에 올랐다. 항상 밝은 표정을 내뿜어 그
표정을 보는 사람도 환한 얼굴로 변화시키는 회장이다. 함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손을 뻗으면 달듯 한 아름다운 금강산을 감상하고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351고지 전투 전적비도 보았다. 국군 제5, 11, 15, 수도사단 용사들과 북한군 제6, 7, 19사단은 월비산, 208고지,
351고지를 뺏고 뺏기기를 반복하였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인하여 피아(彼我) 전투가 종식되었다. 이 비는 휴전되기까지 동해안의
요충지인 351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참전한 장병들의 전공을 기리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후대에 그 위혼을 전하고자 1957년 7월 15일 제3군단에서 현내면 대진리에 건립 관리하여 오던 중 통일전망대가 설치되어 1988년 12월
26일 그날의 격전지가 직접 바라다보이는 이곳에 이전하였다. 옆에는 성모님께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 보이고 또 그 옆에는 부처님을
모셔놓았다. 수십 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의 아름다움도 감명 깊게 보았다. 그러나 성모님께 인사도 하지 못하고 오는 아쉬움을 남긴다.
통일전망대의 관광은 여기서 마치고 자연의 신비를 맛보며 해파랑길을 걸을 것이다. 잠시 쉼을 하면서 통일전망대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많은 사람이 관광 와서 남북 대치상황을 피부로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무리 없이 통일되어 남북한 국민이 모두 잘사는 나라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해파랑길 제1편은 여기서 마무리한다. 제2편에서는 김일성 별장 등 많은 볼거리를 쓸 것이다
2019년 02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