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
기우(杞憂)는 본디 ‘기(杞)나라* 사람의 근심’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는 ‘쓸데없이 오지랖 넓은 걱정’ 혹은 ‘아무 쓸모가 없는 걱정’을 일컫는 개념으로 통용된다. 그러므로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일)을 지나칠 만큼 두려워하거나 걱정’을 의미한다. 기우를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다. 원래는 ‘기(杞)나라 사람의 걱정’을 뜻하는 기인지우(杞人之憂)로 표기하다가 두 글자를 줄여서 ‘기우’라고 쓰고 있다. 출전(出典)에 수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관련 내용에 따라 이 성어에 대한 유래와 실체를 살필 참이다.
기우에 대한 사연을 담고 있는 출전은 ⟪열자(列子)⟫의 ⟨천서편(天瑞篇)⟩이다. 유사어로 배중사영(杯中蛇影), 노파심(老婆心), 기인우천(杞人憂天), 의심암귀(疑心暗鬼) 등이 있다. 유래(由來)는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기나라에 평소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태를 의미했던 데서 비롯되었다. 한편 출전에서 전하고 있는 기우와 관련된 내용을 간추려 정리하는 것으로 그 실체와 조우한다.
출전에서 기우와 관련된 고사(故事)에 등장하는 인물은 둘이다. 먼저 세상 온갖 것이 걱정거리라고 생각해 병적인 모습을 보이는 근심 쟁이 친구이다. 다음은 그런 친구가 걱정이 되어 고민을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해결사 같은 친구이다. 그런데 이들 둘 사이에 주고받는 말은 학승(學僧)처럼 덜 여문 걱정 많은 친구와 고승(高僧) 같은 해결사 친구 사이에 고차원적인 경(經)을 문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걱정 많은 근심 쟁이 친구의 가볍지 않은 증상이다.
/ ...... / (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憂天地崩墜 : 우천지붕추) / 몸을 의지할 곳이 사라지게 될 것이 걱정되어(身亡所寄 : 신망소기) / 침식(寢食)을 제대로 못하는 이가 있었다(廢寢食者 : 폐침식자) / ....... /
이에 해결사 친구가 말했다. “하늘엔 공기(氣)가 가득 쌓여 어디 한 군데도 빈곳이 없다네. 그런데 자네는 몸을 움직이며 호흡하면서 하루하루를 하늘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무너져 떨어질 근심을 하는가. 잘못된 생각일세.”라고 일깨우며 이해시켰다. 그러자 근심 쟁이 친구가 또 이렇게 물었다.
/ ..... / (진정) 하늘이 기(氣)가 쌓인 것이라고 한다면(天果積氣 : 천과적기) / 해와 달과 별은 당연히 떨어지지 않겠는가(日月星宿不當墜邪 : 일월성수부당추사)* / ....... /
이에 해결사 친구가 이런 취지로 답했다. “일월성신(日月星辰)도 기(氣)가 쌓인 가운데서 빛을 내고 있는 것이라네. 그러므로 그것이 추락하는 과정에서 설혹 맞을지라도 부상당할 가능은 없다네.”라고 설명했다. 이에 근심 쟁이 친구가 또 다른 질문을 했다.
/ ...... / 땅이 무너지면 어찌해야 할까(奈地壞何 : 내지괴하) / ...... /
이에 대한 해결사 친구의 답변이다. “본디 땅이란 흙덩이가 쌓인 것이라네. 그런 때문에 어디를 막론하고 빈 곳은 없지. 자네가 매일매일 여기저기 다니며 걷고 밟으며 뛰면서 온갖 필요한 일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어이해서 무너진다는 생각을 하는가.”라고 자세히 알려주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가득했던 친구를 걱정하며 하나하나 이해시켜 걱정거리를 깨끗이 해결해 주었다. 그 해결사 친구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그는 걱정의 터널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는 기쁨을 누렸다고 한다. 이처럼 쓸데없는 걱정으로 가득한 기(杞)나라 사람으로 인해서 ‘기우’라는 성어가 비롯되었던 것이다.
문명의 발달에 비례하여 위험 요소는 다양해지게 마련이고 많아지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세상과 담을 쌓고 고립무원의 상태로 고립은 불가능하다. 이 같은 이유에서 다양한 위험 요소들을 완전하게 비껴가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맞닥뜨리지 않은 여러 가지 위험에 대해 시시콜콜 걱정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기우’에 지나지 않는 지나친 처사로 백해무익할 따름이다.
오래된 아픈 경험 때문에 ‘기우’에 가까운 지나친 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고속버스가 강바닥으로 추락하는 사고(1982년 8월 6일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인근의 제2금강교에서 추락했던 ‘한진고속버스’ 사고)로 두 아들과 우리 내외 등 가족 넷이 몽땅 병원 신세를 졌던 아픈 경험이 있다. 그 때 나는 경추(頸椎) 불완전 탈골이라는 중상을 입어 꼬박 여섯 달 동안 병원에 입원했던 때문에 여태까지 끔찍한 정신적 상처(psychological trauma)가 남아있다. 그로 인해 지금도 나들이를 떠날 때는 이용할 교통수단이나 거리에 관계없이 잔뜩 움츠러든다. 그리고 별의별 생각을 다하다가도 쓸데없는 ‘기우’라고 생각되어 잊어버리려 애를 쓰는 경우가 이따금 발생해 우울해 지기도 한다. 그래도 매일 밖으로 나가야 하고 일을 봐야하며 누군가와 만나야 하는 현실에서 언제쯤이면 악몽 같았던 트라우마와 완벽하게 결별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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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杞)나라 : 여기서 “기(杞)”나라는 하남성(河南省)에 존재했던 나라로 기원전 445년에 초(楚)나라에 멸망했다. 따라서 산동성(山東省)에 자리 했다가 기원전 690년 제양공(齊襄公)에 의해 멸망된 “기(紀)”나라와는 전혀 다른 나라이므로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 수(宿) : 보통의 경우 “잘 숙”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별 수” 즉 “수”로 읽어야 한다.
당신이 기다린 고도는, (사)한국수필가연대 100인대표수필선, 제29집, 한강, 2025년 12월 5일
(2024년 6월 23일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