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로마서를 근거로 드시는 분이 계시다면 로마서는 율법과 믿음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행함, 행위는 율법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율법을 행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고만 말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믿고 계시는 분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바라바가 누구인가요? 혹시 주님의 십자가 우편의 강도 이름이 바라바라면 그 성경적 근거를 대 주세요. 십자가 우편의 강도는 예수님이 죄를 사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실 것을 믿으니 십자가에 더이상 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고 자신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그가 십자가에 달려 아무 '행동'을 못한 것이 행위가 없는 거라고 주장하신다면 주님도 십자가에 달린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거겠군요.
바라바는 풀려난 사람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습니다. 이건 제가 잘못쓴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강도는 행한 일때문에 십자가에 달리는것이 합당하다고 말한것이고, 예수님한테 나를 기억해달라고 했을때, 예수님은 그에게 낙원에 있으리라 한것입니다. 그 강도가 한일은 예수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일밖에 없었는데, 어디 열매맺을 시간이 있습니까? 리틀님 말대로 하면 예수님이 그렇게 말 안하셨겠죠 "니가 행위가 부족해 불못에 있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셨겠죠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 때는 보혜사 성령님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가셔야만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십니다. 그렇다면, 그 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계명을 지키는 열매를 맺는 것이 구원을 받는 길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구원을 받는 길일까요? 자기자신의 죄인됨과 무능력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이 구원을 받는 길이었습니다.
그 강도가 자신은 십자가에 달린 채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고백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예수님이 모든 걸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난 그것만 믿고 아무렇게나 살거나 심지어 배교해도 절대 지옥안가 이런 사람들 같으면 같은 상황에서 애초에 하지 못할 고백입니다. 그것이 일종의 열매입니다. 이해가 되시는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으신 것은 동의하면서 함께 매달린 강도가 받았던 고통은 생각 못하거나 폄하하는 걸 많이 봅니다. 그리고 죄의 문제는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인데 왜 그 강도는 끝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을까요? 아직 주님이 실제로 부활하시기 전이라서 그랬을까요?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사람을 죽인 강도가 주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자신의 죄 문제는 주님이 다 해결했으니까 자신은 사형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도 되는 건가요?
구원의 조건에 행위가 포함된다면 우린 다 이교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몸에 상처를 내든지 헌금을 많이 하든지 굿을 하던지 행위를 많이 해야 구원을 받을 테니까요..구원은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뒤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았다면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새로운 삶의 양식이 이루어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말도 엉터리이며 구원받은 사람이 합당한 행위가 없다는 말도 엉터리 입니다. 진짜 구원 받았다면 선한 행위가 반드시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죄를 미워하시되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구원하시려고 대신 피를 흘리셨고 믿는자를 품으심으로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은 예수님의 의를 보시고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실때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한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보시는 것입니다
참된 성도는 이러한 은혜를 알기에 죄를 마음껏 지어도 되겠다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죄에 넘어지는 일이 있고 세상을 쫒아 가다 성령의 인도하심에서 멀어지면 아버지의 오래참으심 끝에 징계가 있는 것을 알고 다시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이 성도이며 돌이키지 못할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몸을 사탄에게 내어주어
죽이실지라도 그 영은 살리기 위함이라 고린도전서에 기록하셨습니다 영원한 구원을 믿는다고 죄를 마음껏 지어도 된다 말하는양 왜곡하고 허상을 만들어 공격을 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구원에 관한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물었을 때 아버지의 일은 보내신자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의를 우리가 믿을때 그분의 의로 우리를 보시겟다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더러운 옷을 보지 않고 보혈로 씻기워진 예수님의 옷을 보겟다 하셨습니다 아무리 자랑할 만한 옷을 가져와도 잔치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인이 준비한
예복을 입어야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도 외에 자신의 의를 주장한다면 잔치집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청함은 받았으나 택함은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은 아버지에 대한 바른 인식입니다 매를 들어 징계하시거나 몸을 죽이실지언정 구원하신 혼을 다시 사단에게 내어주어 지옥에 보내시는 아버지가 아니시라는 인식입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은 종에게 화를 내신 것은 몇배로 이익을 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주인을 오해하여 주고서 다시 찾아가는 주인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일하지 않고 받은 구원에 대해 말씀 하시며 성도의 성화에 있어서는 달음박질 하는 경주와 같이 심판날에 상받기 위해서
부지런히 달리라고 권면하십니다 바울은 신비를 본 자신이 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다면 과연 그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 알기에 그 자체가 화 인 것이라 화가 있을 것이라 하셧고 쓰임받지 못하는 상태가 어떠한 지경에 이른 건지 알기에 사도로서 직분을 잃는 버림이 되지 않으려 성령을 쫒아 믿음의 경주를 기쁘게 해나갔던 것입니다 행위 구원론자들의 주장을 보면 마치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게 되는 것을 지옥에 가는 양 단어를 왜곡하고 확대 해석하며 모두 지옥에 끼워 맞추려 애를 쓰는 모습을 봅니다 자신이 볼때 자신의 의는 버림? 이 되지 않게 몸부림치고 있으니 그 의를 자랑하려하는 마음이 밑바닥에 내재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구원에 다른 어떠한 것도 포함시키려 하는 것을 가증히 여기십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에서 다른 복음 전한 이를 방관한 베드로를 심하게 책망합니다 십자가 보혈의 공로 이외에 인간에게서 비롯하는 그 무엇도 구원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천사라 할지라도 할례(율법)이나 행위 즉 인간에게서 비롯하는 의로 구원을 완성하려 한다면 저주가 있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의와 다릅니다 그것은 섞일 수가 없으며 혼합된 술에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위 구원에 취해 혼미해진 교회와 신학이 눈이 어두워져 열처녀의 비유마저도 신부로 해석하는 시대입니다 성경이 처녀라고 하는데
신부라고 하고 신랑이 혼인 잔치를 하고 돌아오는데 열명의 신부가 기다리는 기이한 해석을 하며 기필코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하는 영적인 교만의 상태에서 계속 돌이키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에 행위를 포함시키는 것은 예수님의 다 이루신 영원 단번 속죄를 마치 반복해서 흘려야 했던 짐승의 피로 모욕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 불신앙인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을 확신하는 참신앙인과 마음껏 죄를 지어도 된다며 방종하는 영을 같이 묶어서 공격하는 비겁한 태도만이라도 버리기를 당부합니다
첫댓글 구원의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100% 이뤄집니다. 믿게되면 성령의 열매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당신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뭔가 행위가 있어야 구원이 이뤄진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는지요?????
그렇게 따지면 우편 강도는 행함이 없으니 구원을 못받았겠네요
바라바가 누구인가요? 혹시 주님의 십자가 우편의 강도 이름이 바라바라면 그 성경적 근거를 대 주세요. 십자가 우편의 강도는 예수님이 죄를 사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실 것을 믿으니 십자가에 더이상 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고 자신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그가 십자가에 달려 아무 '행동'을 못한 것이 행위가 없는 거라고 주장하신다면 주님도 십자가에 달린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거겠군요.
바라바는 풀려난 사람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습니다. 이건 제가 잘못쓴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강도는 행한 일때문에 십자가에 달리는것이 합당하다고 말한것이고, 예수님한테 나를 기억해달라고 했을때, 예수님은 그에게 낙원에 있으리라 한것입니다. 그 강도가 한일은 예수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일밖에 없었는데, 어디 열매맺을 시간이 있습니까? 리틀님 말대로 하면 예수님이 그렇게 말 안하셨겠죠 "니가 행위가 부족해 불못에 있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셨겠죠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 때는 보혜사 성령님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가셔야만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십니다. 그렇다면, 그 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계명을 지키는 열매를 맺는 것이 구원을 받는 길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구원을 받는 길일까요? 자기자신의 죄인됨과 무능력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이 구원을 받는 길이었습니다.
그 강도가 자신은 십자가에 달린 채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고백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예수님이 모든 걸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난 그것만 믿고 아무렇게나 살거나 심지어 배교해도 절대 지옥안가 이런 사람들 같으면 같은 상황에서 애초에 하지 못할 고백입니다. 그것이 일종의 열매입니다. 이해가 되시는지요?
죄인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지마는 진정한 믿음은 결국 행함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열매냐 아니냐 하는 논쟁보다는 결국엔 막다른 상황에서 그 사람이 어떤 행위를 보이느냐에 그 사람의 믿음이 진짜냐 아니면 말뿐이냐 하는 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으신 것은 동의하면서 함께 매달린 강도가 받았던 고통은 생각 못하거나 폄하하는 걸 많이 봅니다. 그리고 죄의 문제는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인데 왜 그 강도는 끝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을까요? 아직 주님이 실제로 부활하시기 전이라서 그랬을까요?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사람을 죽인 강도가 주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자신의 죄 문제는 주님이 다 해결했으니까 자신은 사형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도 되는 건가요?
행함이라 하는것은 몸으로 신앙생활하는것 ..신앙이 생활화가 된것 구별된자 ...이런성도는 첫째부활에 참여하여 천년왕국통치때에 열고을 스무고을 분봉왕으로서 천년동안 다스립니다...분봉왕이될려면 당연히 행함없이 성령의열매없이 순교자적인 삶이 없이 될수없습니다...그래서 두가지 구원중에 첫번째 구원(휴거) 받을려면 자격을 갖추어야됩니다...
나머지는 천년왕국 백성으로 들어가던지 마지막 백보좌 대심판때까지 낙원에 머물러야되고 마지막 백보좌 대심판때에는 둘째부활 낙원에 머물던 신자들부활 음부에 머물던불신자들 부활해서 심판을 받고 천국과 지옥으로 나눕니다..
그때는 둘째구원 생명책에 기록된자들.. 마음으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한자들도 구원받고 천국갑니다..
세상에서 지은죄는 반듯이 회개해야되지만 마지막 백보좌 대심판때에 구원과는상관없습니다..
죄는 세상에 사는동안 축복이나 저주에 관련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도 복이넘치는자는 조심해야됩니다..아예구원과 상관없는 불신자에 속하거나 사생아 일수있습니다...아니면 마지막 대심판때 불가운데서 심판받습니다..그불가운데는 지옥가서 맞는불보다 더고통스러운 불입니다...
오해하시는군요, 근간 화제가 되었던 주변의 회원분들 중, 어떤 누구도 "행함이 없는 믿음이 구원에 이르게한다"고 말한 분은 없습니다. 샬롬~
구원의 조건에 행위가 포함된다면 우린 다 이교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몸에 상처를 내든지 헌금을 많이 하든지 굿을 하던지 행위를 많이 해야 구원을 받을 테니까요..구원은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뒤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았다면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새로운 삶의 양식이 이루어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말도 엉터리이며 구원받은 사람이 합당한 행위가 없다는 말도 엉터리 입니다. 진짜 구원 받았다면 선한 행위가 반드시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샬롬~
구원에 대하여 쓸데없는 질문이나 대답들로 가장 중요한 구원에 대하여 흔들리게 하는 것은 아주 심각한 독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이들이 반론하는 이들에 대해 가장 심하게 왜곡하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지어도 구원받으니까 마음껏 죄를 지어도 된다라고 생각한다며 상대편의 주장을 왜곡한 상태에서 공격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정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하고 죄를 범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구원받은 상태가 아닙니다
구원의 전제 조건은 회개입니다
자신의 죄의 더러움을 보고 참담함을 느낌으로 진정으로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씻음받은 사람이 어찌 죄를 마음껏 지으려 한다는 말입니까?
영원한 구원에 대한 믿음은 죄에대한 진행계획에 있지않고 아버지에 대한 바른 인식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리가 있으신 말씀입니다^^
죄를 미워하시되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구원하시려고 대신 피를 흘리셨고 믿는자를 품으심으로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은 예수님의 의를 보시고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실때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한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보시는 것입니다
참된 성도는 이러한 은혜를 알기에 죄를 마음껏 지어도 되겠다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죄에 넘어지는 일이 있고 세상을 쫒아 가다 성령의 인도하심에서 멀어지면 아버지의 오래참으심 끝에 징계가 있는 것을 알고 다시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이 성도이며
돌이키지 못할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몸을 사탄에게 내어주어
죽이실지라도 그 영은 살리기 위함이라 고린도전서에 기록하셨습니다
영원한 구원을 믿는다고 죄를 마음껏 지어도 된다 말하는양 왜곡하고 허상을 만들어 공격을 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구원에 관한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물었을 때 아버지의 일은 보내신자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의를 우리가 믿을때 그분의 의로 우리를 보시겟다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더러운 옷을 보지 않고 보혈로 씻기워진 예수님의 옷을 보겟다 하셨습니다
아무리 자랑할 만한 옷을 가져와도 잔치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인이 준비한
예복을 입어야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도 외에 자신의 의를 주장한다면 잔치집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청함은 받았으나 택함은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은 아버지에 대한 바른 인식입니다 매를 들어 징계하시거나 몸을 죽이실지언정 구원하신 혼을 다시 사단에게 내어주어 지옥에 보내시는 아버지가 아니시라는 인식입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은 종에게 화를 내신 것은 몇배로 이익을 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주인을 오해하여 주고서 다시 찾아가는 주인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일하지 않고 받은 구원에 대해 말씀 하시며 성도의 성화에 있어서는 달음박질 하는 경주와 같이 심판날에 상받기 위해서
부지런히 달리라고 권면하십니다
바울은 신비를 본 자신이 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다면 과연 그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 알기에 그 자체가 화 인 것이라 화가 있을 것이라 하셧고 쓰임받지 못하는 상태가 어떠한 지경에 이른 건지 알기에 사도로서 직분을 잃는 버림이 되지 않으려 성령을 쫒아 믿음의 경주를 기쁘게 해나갔던 것입니다
행위 구원론자들의 주장을 보면 마치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게 되는 것을 지옥에 가는 양
단어를 왜곡하고 확대 해석하며 모두 지옥에 끼워 맞추려 애를 쓰는 모습을 봅니다
자신이 볼때 자신의 의는 버림? 이 되지 않게 몸부림치고 있으니 그 의를 자랑하려하는 마음이 밑바닥에 내재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구원에 다른 어떠한 것도 포함시키려 하는 것을 가증히 여기십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에서 다른 복음 전한 이를 방관한 베드로를 심하게 책망합니다
십자가 보혈의 공로 이외에 인간에게서 비롯하는 그 무엇도 구원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천사라 할지라도 할례(율법)이나 행위 즉 인간에게서 비롯하는 의로 구원을 완성하려 한다면 저주가 있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의와 다릅니다
그것은 섞일 수가 없으며 혼합된 술에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위 구원에 취해 혼미해진 교회와 신학이 눈이 어두워져 열처녀의 비유마저도 신부로 해석하는 시대입니다
성경이 처녀라고 하는데
신부라고 하고 신랑이 혼인 잔치를 하고 돌아오는데 열명의 신부가 기다리는 기이한 해석을 하며 기필코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하는 영적인 교만의 상태에서 계속 돌이키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에 행위를 포함시키는 것은 예수님의 다 이루신 영원 단번 속죄를 마치 반복해서 흘려야 했던 짐승의 피로 모욕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 불신앙인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을 확신하는 참신앙인과 마음껏 죄를 지어도 된다며 방종하는 영을 같이 묶어서 공격하는 비겁한 태도만이라도 버리기를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