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근법의 원리와 적용을 보여준다.
*백팔사 이야기를 올려야 하는데, 지난 주 일요일에 추위 탓을 하면서 절집을 찾아가지 않아서
자료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림 이야기(자료가 너무 많아서)를 대신하여 올립니다
이번 주 일요일은 절집을 찾아갈 작정입니다. 그림 공부도 재미가 있습니다.
원근법에서 이미지로
르네상스 때까지 화가는 기술자였다. 구두 수선공, 대장쟁이 등등, 배운 기술을 밑천 삼아 사는, 노동 일꾼의 신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출생 가문을 보면 아주 천한 신분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오늘의 예술가에게 기대하는, 새로운 사상이나, 창조를 위한 고뇌, 천재성 등을 기대하지 않았다.
중세 이후의 그림은 기독교의 원칙에 바탕을 두었다. 교리의 원칙을 드러내기 위해서 추상적으로(상징, 은유, 암시) 기록하는 것이었다.(이콘이라고 한다.) 그림의 대상 선정은 내용의 중요성과 의미(예로서 십자가에 메달림의 의미 등) 등에 두었다. 즉 그림이란 내용을 암시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어떻게 그리는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神性 즉 신의 영광, 신의 광휘 등은 형상으로 나타낼 수 없다. 의미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표현했다. 보기로서 물고기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든지.)
원근법이 나타났고, 화가들이 원근법을 적용하면서 이제는 ‘그리기’에도 관심을 가졌다.
(*세상을 종교적으로만 보다가, 과학이 발달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졌기 때문이다. 신 중심의 세계관이 자연이라는 존재를 의식하였다는 뜻이다.)
원근법은 기본적으로 수학적 비례에 기반을 두었다. 수학적으로 계산이 가능하였다. 손재주에서 머리로 계산해야 하는, 조금은 지적인 작업이 되었다. 과거에 단축법으로 그리기는 하였으나 수학적 법칙에 따르는 것은 몰랐다. 원근법은 눈과 마음을 분리시키므로(예전에는 눈에 보이는데로 그렸지 논리적으로 숫자로 따지지 않았다.) ‘시각의 이성화’를 가져왔다.(이성화란 수학적으로 계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너무 수학적인 계산을 하다보니 오히려 실물과 그림의 모양 사이에 차이가 나타났다.
(*그림 그리기 방법으로 수학적 계산을 함으로 자기들도 단순히 노동자가 아니라, 머리를 써야하는 지식인이라고 하였다. 신분상승을 위한 방법이었으므로 더욱 노력을 기울였다.)
*현대는 다시 마음의 눈이라는 ‘이미지 미학’이 나타나면서 고정된 시점에서 벗어나서, 이미지가 스스로 생성하고 소멸하는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현대미술은 점점 수학적 계산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철저히 계산하여 실물과 닮도록 그리는 것은 과거의 방법이다. 지금은 닮게 그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둔다.
(*이미지 형성 이론은 그림 이야기(5)를 보시면 설명이 있습니다.)
**소실점을 만들어서, 원근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그렸더니, 실제 눈으로 보이는 모양과 다른 모양의 그림이 되었다.
(*손재주가 아니고 머리로 생각한다든지, 이성적이라는 말은 단순한 기술자에서 교양을 갖춘 시민계급으로 승격을 의미하기 때문에 화가들이 원근법으로 수학적 계산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수학적 계산이란 머리를 쓰는 일이므로, 시민계급이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화가들이 교양인이(시민계급) 되는 것이 희망사항이었다.)
첫댓글 기독교 사상의 변화를 보면
5세기의 아우구스투스는 신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은총 구원론) 이 말에는 인간의 영혼-정신과 신의 은총이 바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상임으로, 자연의 존재가 없습니다. 10세기 경이 되면 인간의 바깥에 자연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자연도 신의 창조물인데, 신학에서 설명을 해야 했습니다. 이때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가져와서, 자연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신학에 그리스 철학을 가져온 것입니다.(스콜라 철학-오늘의 과학이론과는 다릅니다. 이때는 철학은 신학의 시녀였습니다. 관심이 계시는 분은 공부해 보십시오. 토마스 아퀴나서의 신학대전이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논리학)이 들어오면서 자연을 인식하는 방법이 과학적이라는 논리학(이성)을 이용합니다. 원근법이 나타나는 배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