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X세대 아이콘’ 27세로 생 마감
1994년 4월8일,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미국 록그룹 ‘너바나’의 보컬리스트 커트 코베인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머리에 총상을 입은 코베인 곁에는 권총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코베인은 시신이 발견되기 사흘 전인 4월5일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렬한 목소리와 대중적 카리스마를 지닌 코베인의 죽음은 엘비스 프레슬리나 존 레넌의 죽음 못잖은 충격을 안겼다. 코베인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한 시대를 대변한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코베인은 X세대를 표상하는 팝스타이다. X세대는 베이비붐 이후 1965~80년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냉전 종식과 베를린장벽 붕괴는 이들 세대를 설명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X세대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본격적으로 접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하지만 그늘도 짙었다. 80년대 말부터 미국은 불황으로 일자리 부족에 시달렸다. 가정은 빚이 늘었고 이혼율이 높아졌다. 이런 사회적 환경에서 당시 20대이던 X세대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했다. 불안한 미래는 이들 세대를 우울함과 반항에 빠지게 만들었다. 코베인은 이런 X세대의 삶을 노래했다.
코베인이 속한 너바나는 X세대의 지지를 업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누렸다. 91년 발매한 ‘네버마인드’가 큰 인기를 끌며 너바나는 팝음악의 흐름을 주도했다. 너바나를 규정하는 ‘그런지 록’은 팝음악의 주류가 됐다.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염세적인 가사가 특징인 그런지 록은 당시 X세대의 우울과 반항을 대변했다. 그런지 록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감을 주로 표현해 젊은층의 공감을 샀다. 코베인은 무대에서나 무대 밖에서나 티셔츠 차림을 즐겼다. 이런 코베인 스타일은 젊은층에서 크게 유행했다.
어린 시절 코베인은 종종 친구들에게 ‘27클럽’ 멤버가 되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27클럽은 69~71년에 요절한 4명의 팝 뮤지션을 일컫는다. 롤링스톤스 멤버 브라이언 존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모두 27살에 생을 마감했다. 가난하고 우울한 성장기를 보낸 코베인은 이들의 음악을 흠모했다고 한다. 코베인도 결국 27살에 자신의 손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27클럽의 일원이 됐다. 경향신문 서영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