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선 과거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돈이 대량으로 살포되는 경우가 많았다.
‘눈먼 돈’이 그나마 줄어들기 시작한 건 2003년 대선 자금 수사 이후였다.
당시 검찰 수사에선 2002년 대선 직전 이회창 후보 측에서 ‘차떼기’ 등의 방식으로 823억 원의 불법 선거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차떼기 당’이란 오명을 얻었고 국민들에게 사죄하며 당사를 팔고 천막당사로 옮겨야 했다.
민주당에서도 불법 대선자금 113억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노무현 측근들이 구속되거나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정치자금법이 개정돼 기업이 법적으로 정당에 기부할 수 있는 길이 막혔고 후원금은 개인만 낼 수 있게 됐다.
한마디로 검찰이 이끈 정치개혁이었다.
당시 수사팀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 등이 있었다.
2012년에는 한나라당 고승덕 전 의원이 2008년 당시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으로부터 300만 원이 든 돈봉투를 받은 사실을 폭로해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돈봉투를 받은 사람은 고 전 의원뿐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객관적 증거가 부족했다. 돈을 받은 인사들이 스스로 자백할 리도 없는 만큼 어려운 수사였다.
검찰은 박 전 의장과 전당대회 캠프 상황실장으로 돈봉투 전달에 관여한 김효재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조사한 뒤 재판에 넘겼다.
두 사람 모두 현직에 있어 정권 외압도 적지 않았지만 수사를 관철시킨 것이다.
그 대신 박 전 의장이 고령인 데다 3부 요인이고, 의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 기소했다.
결국 박 전 의장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김 전 수석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확정받았다.
이듬해 여야는 정당법을 고쳐 전당대회 때 관광버스 비용이나 식사비를 중앙당에서 제공하게 했다. 정치적 현실에 맞게 법을 바꾼 것이다.
당시 여권은 ‘관행’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두 사람을 엄호했고 결국 모두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로부터 11년 만에 다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불거졌다.
유사 사건이 재연된 것은 당시 제도 개선이 미진했거나 방향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어쩌면 ‘솜방망이’ 처벌 때문일 수도 있다.
이번 사건도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김영철)가 이정근의 녹음파일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수면 위로 드러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사자들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녹음파일에 드러난 내용을 보면 이들의 억울함을 그대로 믿기는 쉽지 않다.
감시가 느슨해지면 위정자들은 경각심을 잃고 일탈하게 마련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이를 감시할 검찰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지금도 음지에선 진화된 방식으로 불법 자금이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
자체 개혁을 못 하는 건 정치권이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여야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개혁 방안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곪은 상처는 완전히 도려내야 새살이 돋는다.
황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