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문제와 관련한 정부의 결론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종합보고서의 결과를 존중하되, 일본 측이 국제사회에 약속했던 오염수 배출과 관련한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일본이 오염수 방류 계획을 밝힌 직후인 2021년 이후 진행해온 자체 검토의 결론이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과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일본의 방류 계획은 방사성 물질의 총 농도가 해양 배출기준을 충족하며, 삼중수소의 경우는 더 낮은 수준의 목표치를 달성함으로써 IAEA 등 국제기준에 부합한다”며 “우리 해역에 미치는 영향은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왼쪽 세 번째)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의 종합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결론의 전제로 “도쿄전력이 밝힌 처리계획이 약속한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유 원장은 특히 오염수 처리 시설의 핵심 설비로 꼽히는 대핵종제거설비(ALPS)와 관련 “ALPS의 ‘크로스플로우 필터’에서 고장이 여러 번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며 “(일본이)점검 주기를 단축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권고 사항을 도출했다”고 말했다.
또 ALPS로 처리된 오염수를 검사할 때 5개 핵종을 추가로 측정해야 한다는 점과 오염수 방출 이후 방사선영향평가를 재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일본측에 요청하기로 했다.
방 실장 역시 “이날 발표는 도쿄전력의 처리계획이 계획대로 준수됐다는 전제하에서 검토된 것”이라며 “향후 일본이 최종적인 방류 계획을 어떤 내용으로 확정하는지 확인하고 그 계획의 적절성과 이행 가능성 등을 확인해야 최종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수입 금지 조치와 관련해서도 "수입 규제는 지속할 수 있고, 환경적인 요인이 완전히 다 복원되고 그것을 증명할 것은 상대(일본)측이 증명해야 한다"며 안전성에 대해 설득하고 증명해야 하는 책임이 전적으로 일본에 있음을 강조했다.
유국희 원자력 안전위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원안위에서 작성한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계획에 대한 검토보고서 중 오염수 방류 후 방사능 영향 예측치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기류와 관련 일본의 뉴스 네트워크(JNN)는 “한국 정부는 5월에 전문가 시찰단을 파견했지만, 국내의 뿌리 깊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다시 시찰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오염수 방류 이후 추가 시찰단 파견이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오염수 방류가 약속대로 지켜지는지는 인접국인 한국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실제 방류 이후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구체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의 약속 이행을 강하게 요구하는 한편 오염수 방류 결정 자체에 대해서도 뚜렷한 ‘찬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지난 2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오염수 저장탱크를 설명하고 있다.
방 실장은 “이날은 일본이 제시한 계획의 적절성을 검증한 것일 뿐”이라며 “최종 방류 계획을 파악하고 오염수 처리계획의 변동이 있으면 추가적 검토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의 추가 질문에도 “일본의 최종 계획을 본 후 입장을 표명하겠다”고만 했다.
IAEA 보고서 발표 후 “IAEA의 결론을 존중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던 대통령실과 외교부도 이날 한국 정부의 자체 검토보고서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았다.
외교 소식통은 이러한 신중한 입장의 배경과 관련 “일본에게 인접국이자 국내적 반대가 강한 한국을 설득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을 설득하기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선결 과제에 가깝다”며 “특히 다음주 정상ㆍ장관급 외교 일정을 활용해 일본이 오염수와 관련한 외교 총력전을 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정부의 입장은 정돈된 단일 라인으로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지난 4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전달하고 있다.
실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지난 4일 IAEA 보고서를 전달 받은 뒤 “과학적 근거에 따라 높은 투명성을 갖고 국내외에 정중하게 설명해 나가고자 한다”며 한국 등 주변국에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 등에 대해 직접 설득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또 오염수 방류에 적극적인 입장을 밝혀온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방일 일정 직후 곧장 방한해 한국의 주요 인사들을 만난다.
일본은 물론 IAEA 역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로시 사무총장의 방한 직후엔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1~12일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기시다 총리와 별도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있다.
13~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관련 외교장관 회의에선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과의 회담도 조율 중이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고, 대만에선 1월 총통 선거를 앞두고 있다"며 "오염수 방류에 대해 극단적인 반대 입장을 보이는 중국과 달리 일본의 입장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과 대만의 여론이 오염수 반대로 쏠리게 될 경우 정치·외교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 때문에라도 일본은 다음주 외교 일정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시키는 데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실제 외교부에서도 일본이 오염수 문제를 주요 의제로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6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IAEA와 한국 정부의 보고서 발표는 적절한 시기가 됐기 때문에 나왔을 뿐, 보고서 발표와 고위급 회담 일정은 연계되지 않았고 이와 연관된 일정도 정해지지 않았다"며 한국이 먼저 오염수 논의를 주도할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배경에 대해 정부 핵심 인사는 이날 통화에서 “주변국에 오염수 문제를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주체는 명백히 일본"이라며 "한국은 한ㆍ일, 한ㆍ미ㆍ일 협력, 지역 협력 강화 등을 핵심 의제로 내세우며 ‘오염수 문제는 여러 의제 중 하나’란 입장을 유지하는 게 결과적으로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외교전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