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역시 나는 막걸리에 약해. 막걸리 때문인 것 같다. 그것만 먹은 것은 아니지만. 하루 종일 부대끼다가 이제야 회복이 되었다. 그럴 만도 하다. 막걸리도 막걸리지만, 마신 시간을 생각해 보아도...... 저녁 6시부터 시작해서 새벽 4시 반까지 마셨으니 거의 12시간을 마신 것이 아닌가? 내가 도로 술꾼이 되었나? 엊저녁 일만 가지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올 여름 들어 네 번째 마신 것이다. 올 여름은 여느 여름과 다르다.
첫 번째 자리는 삼례에서 있었다. 7월 말 경이다. ‘삼례 풍천 장어’. 장어 구이 2인분을 시켰다. 반은 소금 구이, 반은 양념으로 주문했는데, 종업원이 몽땅 양념으로 가져왔다. 그랬다가 나중에, 반은 소금 구이로 바꾸어주었다.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지, 그것을 다 먹지 못했다. 남은 것은 포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가져오지는 않았다. 의외로 2차를 하게 되었다. 삼례는 어둑어둑해지기만 하면 길거리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학교 앞은 좀 낫지만 우리는 거기로 가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을 만나서 좋을 것이 없으므로. ‘시장 통닭’. 유명한 곳이다. 거기에서 맥주를 마셨다. 마른 안주를 시켜놓고. 일어난 시간은 아마 10시였을 것이다. 주인이 문 닫는 시간이 되었다고 알려준 때였으니까.
삼례는 술 먹을 곳이 못된다. 그래서 두 번째 자리는 전주 도청 앞에다 만들었다. ‘온 더 블랙’ 스테이크집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고기를 담는 그릇이 (달구어진) 검은 돌이어서 상호를 그렇게 지은 것 같다. 어쩌다가 카르멘 이야기가 나왔다.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놓아기르는 새”. “사랑을 하면 어째서 괴로워지는가?” “사랑을 하면 상대를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약간 걸어서 도청 앞의 술집 밀접 지역으로 갔다. 환락가라고 부를 만하다. 여기에 나왔다고 하면, 엄청나게 큰 재미를 보지 않아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아니 내가 여기에서도 죄를 짓지 않는다면 다른 어디에서도 죄를 짓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분위기이다. 수제 맥주집에서 2차를 하고 이자카야 ‘그라운드 9’이라는 곳에서 3차를 했다. 역시 수제 맥주를 먹었다. 새벽 2시까지. 나는 엄청나게 큰 재미를 보는 데에서 성공했나? 죄를 짓는 데에서 성공했나?
세 번째 자리는 군산에서 있었다. 생선 횟집에서 1차를 했다. 일인당 5만원짜리를 시켰다. 3인분을 시켰으니 돈이 상당히 많이 나왔을텐데, 제일 가난한 사람이 냈다. 20만원 이상이 나왔을텐데...... 누구는 쏘주를 먹고 누구는 폭탄주를 먹었다. 군산에도 전주의 도청앞 같은 그런 거리가 있더라. 역시 수제맥주로 2차를 하고 콩나물 국밥집에서 3차를 하였다. 호텔에 들어간 것은 새벽 2, 3시 경이었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 한 적이 없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말을 많이 하였다. 지금은 부끄럽게 느껴진다. 다음 날 우리는 군산 구경을 하였다. 동학사, 일본 부자가 살았다는 일제 시대의 가옥, 군산 세관 등 근대문화유산, 그리고 근대역사박물관 등등.
그러다가 엊저녁의 네 번째 자리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가 간 막걸리집은 한옥마을에 있는 ‘천년누리봄’. 2만 7천원짜리 기본상을 시켰다. 2차는 ‘소금인형’. 주인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준다. 주인이 노래를 마친 후 내가 용기를 내어 무대에 올랐다. ‘긴 머리 소녀’를 불렀으며, 그 전에 ‘나는 행복한 사람’을 불렀다. 정말로 나는 행복한 사람 같았다. “자다가 일어나서도 당신을 생각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이 코스는 도청 앞의 코스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환락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쾌락(pleasure)이 아닌 것이다. 쾌락이 아니면 무엇인가? 기쁨(delight)이라고나 할까?
3차는 그 옆의 ‘야간비행’. 이곳은 이번에 처음 간 곳이다. 나는 이곳이 좋다. 몹시 좋다. 흑맥주를 시켰으며 안주는 시키지 않았는데, 주인이 안주꺼리를 무료로 주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곳 분위기이다. 스피커가 엄청나게 좋다. 선곡도 그에 못지 않다. LP판도 많더라. 우리 가요도 틀어주고 옛날 팝송도 틀어주지만 대부분이 내가 알 듯 모를 듯한 곡들이다. 째즈도 틀어주고 보사노바도 틀어주는데, 그것들은 또 너무 어렵지 않은 것들이다. 새벽 1시쯤 되었을까? 이야기에 열중하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역자 모양으로 된 빠가 설치되어있는데, 거기에 세 명의 남자들이 띄엄띄엄 앉아있었다. 전부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새벽 2시쯤 되었을까?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들어와서 빠에 앉았다. 한 자리를 띠우고 앉았다. 동시에 들어왔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인 듯하였다. 잠시 뒤에 여자가 남자한테 말을 걸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살펴보았다. 남자가 대답을 하였고 두 사람은 몇 마디를 더 나누었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이곳에서 새벽 4시가 넘게 앉아있었다니...... 아무리 관광지라고 하여도 그 시간, 거리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야간비행’에서 들었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가 떠올랐다. 그 비정한 쇳소리..... 하나도 아름답지 않고 아무 재미도 없는 멜로디...... 킬러는 전자오락을 하듯 망원렌즈가 붙은 저격용 소총으로 사람을 죽이고, 유유히 샤워를 한 후, 이 시간 아무도 없는 이 거리로 나온다. 나는 조만간 ‘야간비행’을 찾아, 이번에는 홀로 빠에 앉아 흑맥주를 마실 것이다. 나는 이번 여름 비밀 연구를 하나 수행하고 있다.
첫댓글 이 더위에 술집 순례라니..그것도 새벽녘까지..조교수님 아직도 청춘이십니다~
댓글 달며 살짝 입에 침이 고이니 이 무슨 조화인가?.. ㅎㅎ
술꾼 맞네~ 보통 최소 새벽 2시 까지 마시네 ! 누구처럼 2중 허리를 가졌나봐 ? ㅎㅎㅎ 요새 막걸리 알콜 도수를 높인 것들이 꽤 나왔어 9도 혹은 11도 그거 보다 더 높은 것도 있다는데 그럼 막걸리에 정말 약한건가 확실히 알수 있겠지. 근데 보통 익숙한 술 보다 자주 안먹는 술에 약한 것 같아. 군대 있을 때 막걸리 참 많이 마셨는데... 알철모에 막걸리 반말이 들어갔던 생각이 나네 ^^
전날의 행적을 낱낱이(?)기억하신 걸 보니 술은 안 드시고 안주만 드신 것은 아닌지?
허허허!
"夜間飛行"을 하지 마시고 "夜間非行"을 하셨으면 더 재미 있었을텐데...
이런. 행간들은 안 읽으시고 글자들만 읽으시니. 끌끌...... ㅋㅋ...... 내려와준다던 약속은 방학이 끝나도록 지켜지지 않고 벌써 찬바람이 불기시작하는 구나. ㅎㅎ
ㅠㅠㅠ
아, '내려와준다던 약속' 운운? 그래. 미안. 기훈이만 빼고. 덕분에 1박 2일 즐거웠어. ㅎㅎ
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