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지식인에 태극은 우주의 섭리 자연의 조화 사계절을 통한 인간의 번성 등 주역에 나온이야기 전부를 압축하여 그림으로 표현 한것이 태극입니다 이 태극을 만든 사람은 중국삼황오제 시절 태호 복희(이 사람이 동이족) 는 우리 나라 사람이였습니다 즉 태극은 우리 고유의 상징입니다 이라고 나와있네요..
태극이 도교에서 만들어 진것이 아닙니다. 노자나 공자 이전에 이미 중국에는 노자 공자 이런 사람들이 공부하고 있었던 철학이 있었어요. 공자도 말하길 자기는 이미 있는 것, 옛 성현들의 지식를 가르치는 것이지 자신이 새로 만든것을 가르치는게 아니라고 했고, 노자도 자신의 사상이 동방에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음양이라는 개념과 무극 태극 황극이라는 모든 개념의 시발점은 태호복희가 하도를 발견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부터 수와 음양 오행, 지지와 천간의 개념들이 문무왕과 공자 순으로 이어지죠. 태호복희는 환단고기에서 5대 환웅의 막내아들로 나옵니다. 태극은 우리의 것이 맞습니다.
지나족이 왜 서북공정 동북공정질을 하고 민족분열을 막을려고 안간힘을 쓰는지와 이로인해 지금 우리내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고 은폐되었는지 아시면 놀라실겁니다.세계 고인돌 반이상이 한반도에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분이 얼마나 될까요?약 40프로와 과거 우리땅이었던 만주지역까지 합치면 70프로 정도 되는걸로 아는데 왜 이렇게 높은 수치가 나오는지 의구심을 한번 가져보신분들 계신가요?관련 다큐 찾아보시거나 한번 잘 생각해보시면 어느정도 답을 찾으실수 있을거에요.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글인데요. 다시 올려봅니다. 문제는 중국의 태극 문양에 대한 확실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김원모교수의 논문은 읽어보았고 기타 태극기에 대한 여러 보고서도 보았습니다. 결론은 우리나라의 태극 문양은 5-6세기까지 올라가는데 중국에서 그보다 오래된 태극문양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태극 문양은 우리나라가 더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더 오래된 태극 문양 유물이 발견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미처 모르는 유물도 있을 수도 있고 해서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고대의 태극 문양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모두 드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켈트 문명(영국 등)에서 태극 무늬가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우리 나라에서 만든 것같은 착각이 드는 것도 있습니다. 연대도 더 이릅니다. 연합 김태식 기자 등은 태극 문양이 도교의 영향이라고 추정하지만 적어도 중국에서 분명한 유물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우리 고유의 문양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가령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은 절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이것은 유교와 도교와는 관련없는 우리 고유의 문양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5세 태우의 환웅의 아들인 태호복희씨는 그 당시 삼신상제님으로 부터 하도를 계시받습니다. 이것은 인류문명의 뿌리이자 한민족문화의 상징인 태극팔괘(복희팔괘)를 그었습니다. 5600년 전에 받아낸 하도河圖는 우주의 상생원리가 담겨있고 그속엔 음양으로 돌아가는 태극의 이치가 들어있습니다. 이후 4300년 전엔 우임금이 치수사업중 낙서洛書를 받아내려 인간역사의 상극의 이치를 그렸는데 고대 황실에서 하도와 낙서를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겨 보관하던 장소라하여 도서관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오늘날 도서관의 유래입니다.
태호복희씨는 일찍이 천하天河(송화강) 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그려진 무늬에서 하늘과 땅의 생명의 율동성이 담긴것을 그림그렸는데 하도 河圖입니다. 배달국 5세 태우의 환웅천황의 막내아들로서 우사라는 관직을 맡았던 분입니다. 그분은 인류의 최초의 성씨로 풍(風)씨 인데 , 후대에 대가 끊어져서 풍씨는 사라지고 풍골, 풍채등 체신의 이름에만 남게 되었습니다. 풍은 우리의 신명문화, 풍류신도(風流神道)를 상징하기에 복희씨는 우리 신바람문화의 대 시조이기도 합니다.
중국에 태극 문양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가 원나라시대이며.. 원나라 시대에는 고려양이라고 해서 고려풍 즉 고려풍습을 따라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몽골도 태극문양을 쓰게 되었고요.. 또 장삼봉이 무당파를 창설하게 되는데 이 장삼봉이 고려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택견과 같은 태극권을 창시한 사람.. 원나라시대에 고려인의 위상은 지배계층의 위상으로 다루가치도 지낸 유적이 발견되었고 기황후는 고려인으로 황후에 오르게 되고.. 고려복식 고려풍습을 따르게 됩니다. 또 원나라에서 해방하려던 중국의 홍건적들은 고려인들에 환심을 사기 위해서 주원장을 비롯한 홍건적들은 고려에 스스로 중국의 지방왕임을 자처하고 조공을
첫댓글 지식인에 태극은 우주의 섭리 자연의 조화 사계절을 통한 인간의 번성 등 주역에 나온이야기 전부를 압축하여 그림으로 표현 한것이 태극입니다 이 태극을 만든 사람은 중국삼황오제 시절 태호 복희(이 사람이 동이족) 는 우리 나라 사람이였습니다 즉 태극은 우리 고유의 상징입니다 이라고 나와있네요..
팔괘만 복희씨가 만들었지 않나요? 복희씨가 태극을 만들었다는 증거자료좀 볼수있을까요? 찾고있는 자료중 하나라서요... 이태그과 삼태극은 중국보다 우리나라가 300여년 앞서 사용한것으로 압니다만....
동이에 왜구가 포함된다는 말은 처음 듣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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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이 도교에서 만들어 진것이 아닙니다. 노자나 공자 이전에 이미 중국에는 노자 공자 이런 사람들이 공부하고 있었던 철학이 있었어요. 공자도 말하길 자기는 이미 있는 것, 옛 성현들의 지식를 가르치는 것이지 자신이 새로 만든것을 가르치는게 아니라고 했고, 노자도 자신의 사상이 동방에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원래 중국땅은 우리 본토의 영토였습니다.
한민족의 배달, 시원문화가 환국의 종주국가 이죠.
태극의 태극문양, 하도낙서, 등
모두 우리 시원문화로부터 비롯됩니다.
배달,환국은 환단고기에서만 나오는 나라 아님????
고풍청룡검색님 환국은 삼국사기에서도 나오네요.^^
중국입니다.
음양이라는 개념과 무극 태극 황극이라는 모든 개념의 시발점은 태호복희가 하도를 발견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부터 수와 음양 오행, 지지와 천간의 개념들이 문무왕과 공자 순으로 이어지죠. 태호복희는 환단고기에서 5대 환웅의 막내아들로 나옵니다. 태극은 우리의 것이 맞습니다.
태극의 기원이 복희씨라는 자료좀 볼수있을까요? 팔괘만 만들지 않았나요?
네 맞아요 ㅎ 그런데 그 태극의 음양개념을 낳게 된 모태가된다는 의미이죠.
팔괘는 그 이면에 사상과 양의에 해당하는 태극을 담고 있지요.^^ 태극사상의 모태가 그래서 태호복희가 되는 것이죠.
제가 아는바에 의하면...괘하고 이태극과 삼태극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괘만 복희씨가 만들었지 이태극과 삼태극은 우리민족이 쥐나족보다 300여년 앞서 사용했습니다.
지나족이 왜 서북공정 동북공정질을 하고 민족분열을 막을려고 안간힘을 쓰는지와 이로인해 지금 우리내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고 은폐되었는지 아시면 놀라실겁니다.세계 고인돌 반이상이 한반도에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분이 얼마나 될까요?약 40프로와 과거 우리땅이었던 만주지역까지 합치면 70프로 정도 되는걸로 아는데 왜 이렇게 높은 수치가 나오는지 의구심을 한번 가져보신분들 계신가요?관련 다큐 찾아보시거나 한번 잘 생각해보시면 어느정도 답을 찾으실수 있을거에요.
중국(한족들)의 본래 영토는 지금의 중국 남부 지역에서만 기반을 잡고 터를 잡고 살았고 북부 지역은 동이족(우리 민족과 말갈, 거란)들이 살아 왔던 지역 입니다. 고대 우리 민족은 지금의 중국 북부 지역과 한반도를 거쳐서 살아왔습니다.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글인데요. 다시 올려봅니다. 문제는 중국의 태극 문양에 대한 확실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김원모교수의 논문은 읽어보았고 기타 태극기에 대한 여러 보고서도 보았습니다. 결론은 우리나라의 태극 문양은 5-6세기까지 올라가는데 중국에서 그보다 오래된 태극문양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태극 문양은 우리나라가 더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더 오래된 태극 문양 유물이 발견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미처 모르는 유물도 있을 수도 있고 해서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고대의 태극 문양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모두 드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켈트 문명(영국 등)에서 태극 무늬가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우리 나라에서 만든 것같은 착각이 드는 것도 있습니다. 연대도 더 이릅니다. 연합 김태식 기자 등은 태극 문양이 도교의 영향이라고 추정하지만 적어도 중국에서 분명한 유물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우리 고유의 문양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가령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은 절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이것은 유교와 도교와는 관련없는 우리 고유의 문양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5세 태우의 환웅의 아들인 태호복희씨는 그 당시 삼신상제님으로 부터 하도를 계시받습니다. 이것은 인류문명의 뿌리이자 한민족문화의 상징인 태극팔괘(복희팔괘)를 그었습니다. 5600년 전에 받아낸 하도河圖는 우주의 상생원리가 담겨있고 그속엔 음양으로 돌아가는 태극의 이치가 들어있습니다. 이후 4300년 전엔 우임금이 치수사업중 낙서洛書를 받아내려 인간역사의 상극의 이치를 그렸는데 고대 황실에서 하도와 낙서를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겨 보관하던 장소라하여 도서관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오늘날 도서관의 유래입니다.
태호복희씨는 일찍이 천하天河(송화강) 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그려진 무늬에서 하늘과 땅의 생명의 율동성이 담긴것을 그림그렸는데 하도 河圖입니다. 배달국 5세 태우의 환웅천황의 막내아들로서 우사라는 관직을 맡았던 분입니다. 그분은 인류의 최초의 성씨로 풍(風)씨 인데 , 후대에 대가 끊어져서 풍씨는 사라지고 풍골, 풍채등 체신의 이름에만 남게 되었습니다. 풍은 우리의 신명문화, 풍류신도(風流神道)를 상징하기에 복희씨는 우리 신바람문화의 대 시조이기도 합니다.
중국에 태극 문양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가 원나라시대이며.. 원나라 시대에는 고려양이라고 해서 고려풍 즉 고려풍습을 따라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몽골도 태극문양을 쓰게 되었고요..
또 장삼봉이 무당파를 창설하게 되는데 이 장삼봉이 고려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택견과 같은 태극권을 창시한 사람..
원나라시대에 고려인의 위상은 지배계층의 위상으로 다루가치도 지낸 유적이 발견되었고 기황후는 고려인으로 황후에 오르게 되고..
고려복식 고려풍습을 따르게 됩니다.
또 원나라에서 해방하려던 중국의 홍건적들은 고려인들에 환심을 사기 위해서 주원장을 비롯한 홍건적들은 고려에 스스로 중국의 지방왕임을 자처하고 조공을
보냈습니다.
또 당시에 홍건적들은 고려군을 가장 두려워 했고요..
홍건적 60만 대군이 고려군 기마병력2천에 맥을 못춥니다..
중국에서 한국과 비슷한 문화는 대부분 원나라시기에 고려양이 한참이던 시기에 들어간 문화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