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가질 않는 곳으로
삼월 셋째 일요일은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어제는 진동 방면으로 가는 70번대 버스를 탔고 오늘은 구산으로 가는 60번대 농어촌버스를 탈 생각이다. 주말이면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저도 비치로드나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원전항 벌바위 둘레길은 내 선택지에서 빼고 옥계 해안을 걸을 참이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가질 않는 호젓한 길을 걷고 싶어서였다.
마산역 광장으로 오르다가 즉석에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마산역 노점’ 전문은 이렇다. “어디서 길렀을까 누구 손에 따왔을까 / 흙 묻은 푸성귀에 못난이 열매채소 / 마산역 광장 가는 길 주말 장터 열린다 // 칡뿌리 한약재와 송기떡 손두부에 / 소시민 먹거리는 뭐든지 다 있다오 / 소싯적 떠올린 풍물 그 시절이 그립다” 주말마다 아침엔 반짝 시장이 펼쳐져 손님을 맞이했다.
나는 난포에서 옥계로 가는 해안선을 트레킹하려고 원전항으로 가는 62번 버스를 탔다. 어시장과 댓거리를 지나면서 원전항 낚시꾼과 벌바위 둘레길 산행객이 더러 합류했다. 나는 그들과 다른 나 홀로 누빌 수 있는 해안을 찾아가는 걸음이었다. 현동교차로에서 덕동 공영버스 차고지를 지나니 구산면 수정이었다. 거기서 백령고개를 넘으니 내포에서 반동이고 로봇랜드가 나왔다.
70년대 지정된 5호선 국도는 마산 기점으로 대구 경북 내륙을 관통해 휴전선 너머로 미수복 지역인 평북 중강진에 이르는 한반도에서 최장 노선이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 기점을 마산에서 거제로 연장해 현재 구산면 로봇랜드까지는 개통하고 원전항에서 거제 장목 황포 사이 해상 구간은 미개통이다. 거제 기점 연초면 소재지 죽토리가 나의 교직 마지막 근무지라 사정을 잘 안다.
반동삼거리에서 로봇랜드 앞을 거쳐 난포에서 내렸다. 난포는 난중일기에 이순신이 옥포해전의 최초 승전에 이어 합포해전을 연승으로 이끌고 병사들과 잠시 휴식을 취한 포구로 나온다. 당시 기록에는 쪽빛 남(藍)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남루할 남(襤)으로 바뀌었던 것을 광복 후 지역 인사들이 알 난(卵)으로 바꾸었다. 구산 해안의 지형 지세가 거북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해서다.
난포에서 혼자 내려 포구 앞을 지나니 진해만 바깥에서 거제로 이어진 해상은 아침 햇살에 윤슬로 반짝였다. 소규모 조선소 앞에서 좁은 골목길을 지나 마을과 제법 떨어진 갯가로 나갔다. 포구 건너편은 아까 버스가 둘러 갔을 심리와 원전항으로 가는 해안선이었다. 수심이 깊지 않을 바다에는 홍합 양식장의 부표가 점점이 떠 있고 어로 작업을 하는 배들도 간간이 스쳐 지났다.
한 어가에서 창고처럼 쓰는 건물을 지나면서 양지바른 자리에 웃자란 쑥이 보였으나 그냥 스쳤다. 마을과 제법 떨어진 해안에는 홍합 양식에 쓰였을 부표들이 건져져 쌓여 있었다. 해안선이 뾰족하게 융기해 거북목처럼 생긴 갯바위는 내가 가끔 찾을 때면 쉬어가는 곳이라 배낭을 벗고 앉았다. 바다 바깥은 거가대교가 아스라하고 거제 장목 황포와 하청의 칠천도가 에워싸 있었다.
바다 풍경을 사진에 담아 몇몇 지기들에 날려 보내고 점심때가 일러도 배낭 속의 도시락을 꺼내 비웠다. 이후 봉화산으로 오르는 산등선 등산로를 따라 임도에 이르니 붉게 핀 진달래가 절정이었다. 야산에 자라는 복숭아도 연분홍 꽃이 피기 시작해 무릉도원을 이루려고 했다. 여러 수종의 나무가 어울려 자라는 숲에는 두릅나무도 섞여 있었는데 우듬지에선 뭉툭한 움이 터 나왔다.
정상에 천주교 마산교구 교육관이 위치한 봉화산은 등정하지 않고 임도를 따라 옥계로 나아갔다. 옥계는 합포만 바깥에서 규모가 제법 큰 어촌으로 포구에는 조업을 나가지 않은 어선이 여러 척 보였다. 방파제에는 외지에서 온 낚시꾼들이 더러 보였다. 마을 회관 앞에는 시내에서 들어와 방향을 돌려놓고 출발을 앞둔 버스에 올랐더니 기사는 운행 시각이 되었는지 시동을 걸었다. 23.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