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모더니즘과 관계 전도
서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기를 아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사도 바울의 전략적 사고이다 (롬13:11). 그는 변화 되어가는 시대 속에 불변하는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시대적 정신을 이해 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 결과 바울은 각 족속과 그들의 문화적 특수성에 적합한 방법을 통해 복음의 씨앗을 심고 전도의 열매를 거둔 선교의 모본을 보여주었다.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자세는 오늘날의 복음 전달자들에게 요구되는 지혜이다. 각 시기마다의 시대적 정신을 올바로 인식하고 시대가 던지는 도전과 유혹을 극복하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상징화 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전도자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시대의 잘못된 정신과 현상의 흐름을 본받지 않고 비판적 사고로 분별할 줄 아는 것 역시 복음 전달자의 시대적 사명이다 (롬12:2).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를 알고 분별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은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지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세상 사는 지혜를 얻고자 이 시대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 전달자들이 이 시대를 알고 분별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는 이 시대 속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을 이루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마28:19-20). 그러므로 우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에서 발생 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복음을 성공적으로 전파했던 사도들과 같이 복음 전달의 목적을 위해 그들의 전략을 전승해야만 하는 것이다. 스텐리 그렌즈 (Stanley J Grenz) 는 우리의 시대적 비판이 반드시 복음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사람들의 가슴에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이끌어 내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Grenz 1996:174). 바로 이것이 우리가 왜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해야 하는가의 이유이다.
그러므로 본 장에서는 기독교 복음 전도가 직면한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현상에 비추어 논의해 봄으로 복음 전파가 직면한 시대적 사조가 무엇인지를 분별해 보고, 이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기독교적 비판과 복음 전도적 대응을 살펴 봄으로 효과적인 복음 전도의 방향은 무엇인지를 진단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에 대한 복음적 비판과 대응으로서의 관계 전도의 필요성에 대해 살펴보게 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에 대한 이해와 복음 전달론적 대응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란 무엇인가를 논의하고자 하는 노력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가는 아직도 확실하게 정의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재의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 환경으로써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점차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빗 보쉬 (David J. Bosch)는 그의 저서 변화하고 있는 선교에서 현재 세계역사가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며 이의 등장은 모더니즘 체계에 심각한 도전을 던지고 있다고 밝힌다 (Bosch 2000:521).
사회 저변적 현상으로써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은 시간적인 면에서 모더니즘 다음에 오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은 쉽게 단절시킬 수 없는 관계 속에 있음을 또한 목도하게 된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논리적 발전이며 계승인 동시에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이며 의식적 단절” 이다 (김욱동 1990: 24).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과 과학, 그리고 인본주의로 특징지어지는 모더니즘으로부터 무엇을 발전시켰으며 어떠한 단절적 반작용을 낳았는가?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의 복음 전도가 주시해야 할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적 양상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오늘날 기독교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보여주는 현상들에 대해 어떤 비판적 자세와 분별을 가져야 하는가? 또한 이 시대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가? 이상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먼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적 양들을 살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어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과 시대적 현상에 부응하는 복음 전도의 방향성을 생각해 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적 양상
기독교 복음 전도가 주시해야 할 포스트모더니즘의 양상은 기본적으로 인식론적 “탈정전화”, 혹은 “탈중심화”라는 현상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김욱동 1990: 432). 이 현상은 포스트모더니즘을 규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관점으로써 전통과 중심적 사상으로부터 벗어난 전통과의 단절로 상징되는 다원주의적 사고의 대명사가 되었다. 따라서 인식론적 탈정전화의 현상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깊은 쟁점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탈정전화로 표현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특징들을 갖는가?
다원주의
앞서 거론한 그 핵심적 관점이 말해 주듯 기독교 복음 전도가 주시해야 할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다원주의이다. 다원주의의 출현은 문화라는 전체적 구조를 지탱했던 사상적 체계에 대한 불신, 즉 ‘거대 담론’ 이라는 근대적 문화의 토대에 대한 불신과 해체에 기인한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통일된 개념과 사상이 받아 드려지지 않는 다원화된 인식론적 접근으로 대처 되었다. 레슬리 뉴비긴 (Lesslie Newbigin)은 이와 같은 다원주의의 제공자로 세속화를 지목한다. 세속화란 공식적으로 승인된 신념 혹은 행위의 유형의 상실로 빚어지는 혼돈이다 (Newbigin 1998:15). 다원주의 사회 속에 존재한는 다양한 세계관은 공존과 더불어 혼란을 야기시키는 가운데 각 문화와 종교, 그리고 삶의 방식의 지속적 수용을 허락한다. 그런 이유로 신국원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은 다원성 자체가 공인되고 절대적으로 신봉되는 것을 환영하는 데 있다”라고 본다 (신국원 1999:112).
상대주의
다원주의적 사고가 가져다준 포스트모던 시대의 현상은 그러므로 상대주의라는 또 다른 특징을 낳는다. 모던의 통일된 절대적 개념이 해체 되었기 때문이다. 상대주의는 진리가 이성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각 개인과 그가 속한 공동체에 의해 진리가 정의됨을 지향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가 존재함을 부정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이와 같은 상대주의적 특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석적 사고에 영향을 준다. 김의환은 포스트모더니즘은 “텍스트와 객관적 의미 사이에 해석학적 구분을 짓는다”라고 말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적 해석에 있어서 의미를 아는 주체는 텍스트가 아닌 그것을 접하는 해석자에게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김의환 1996:295). 그렇기 때문에 진리에 대한 해석은 텍스트의 저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접하는 해석자와 해석자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텍스트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그리고 해석자가 갖고자 하는 의지적 의미 부여 정도에 따라 텍스트는 규명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텍스트의 최종적 의미 해석은 수용자에게 있음을 알린다. 그 결과 상대주의는 텍스트를 절대화 시키려 하지 않는 가운데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다른 누구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이라고 인정한다. 사실과 가치간의 불분명한 경계와 주관적 가치 결정의 상대성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따라서 텍스트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며 수용자의 심층적 세계관에 기반을 둔 해석의 탈정전화가 자유롭게 표출되는 것이다.
가치의 변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적 패러다임의 변화는 근본적 가치 변화의 특성을 가져다 주었음을 주시해야 한다. 다원화된 사고 구조는 진리에 대한 상대적 해석을 낳았고, 주관적 의미의 해석은 절대적이며 권력적인 가치 체계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가치들을 창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포스트모던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들이란 감수성, 정서, 따뜻함, 인간성에 대한 균형과 강조이다. 과거 모더니즘이 지향했던 자연과 과학을 지배했던 인간의 기계적 면모가 아닌 인간의 진정한 관심과 필요를 촉구하는 인간의 모성애적인 면모로의 가치 변화인 것이다 (김영한 1996:15-16). 이는 인간 자아에 대한 새로운 탐구이다. 가치 판단의 주체와 상대주의의 주관적 세계 중심에는 자아가 놓여있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근본적인 가치의 변화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인간의 기능적 차원이 아닌 감성적, 정서적, 윤리적인 인간의 인격적 차원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추구하는 특징은 인간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갈망과 재발견으로 이는 인간의 인간됨, 즉 인간의 인격적 차원에 대한 재고와 균형에 초점을 두고자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치의 발견과 강조는 인간의 내면적 정신에 관심을 갖게 하며 이는 인간의 가치 판단의 기준이 지배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닌 인간 인격의 선함을 회복하고자 하는 윤리적이며 종교적인 차원임을 발견하게 해 준다.
종교의 새로운 요청
앞서 거론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세 번째 특징은 이제 다루고자 할 또 다른 중요한 포스트모던적 양상으로 인도해 준다.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종교에 대한 새로운 요청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종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변화는 종교 다원주의가 가져다 준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이다. 다원주의는 절대적인 종교를 거부하는 대신 공존하는 종교의 균형을 찬성한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같이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빗 헷셀그레이브 (David J. Hesselgrave)는 종교 다원주의가 보이는 방식이란 “상대방의 믿음과 관습 체계에 적응해 나가되, 각각 조화를 이루거나 활동을 허용하는 영역을 제한하는 식”이라고 관찰한다 (Hesselgrave 1999:294). 이와 같은 다원주의적 종교관의 수용은 모더니즘이 배격했던 종교에 대한 거부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종교적인 전체성으로 나아가게 한다. 따라서 니체가 주장했던 종교의 죽음은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는 잃어나지 않는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기독교를 비롯한 전통 종교가 격는 신자들의 감소 현상은 제도적 특면에서의 나약성 때문이지 결코 종교자체가 무기력하기 때문이 아님을 이에 빗대어 관찰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종교 다원주의가 지니는 반기독교적인 요소들을 간과해서는 않될 것이다.
다원주의적 종교관이 보여주는 그들의 자세는 그리핀 (David R. Griffin)이 주장하는 다음의 두 가지 영역에서 더욱 뚜렷해 진다. 먼저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리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그림이다. 그리핀은 포스트모더니즘은 신을 강요하는 신이 아닌 설득하는 신으로 본다고 설명한다 (Griffin 2002:81). 이와 같은 신관의 배경은 신이 전능자라고 할지라도 피조물에게 영향을 미치는 영역에서는 무제한 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은 무로부터 피조물들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그들을 설득하여 영향을 미친다” (Griffin 2002:149). 따라서 신이 피조물에게 영향을 끼치는 설득의 방법은 결국 피조물의 삶의 현실을 만들어 나가는 결정권은 피조물 스스로에게 있음을 말 해 준다. 바로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려나가는 인격적인 창조에 관여하는 신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리핀이 주장하는 또 다른 영역은 다원주의적 종교관이 보여주는 죽음 이후의 삶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다 (Griffin 2002:85). 포스트모던 세계관은 인간의 영혼이 물질적인 육체로부터 구별된다고 보고 인간 삶의 여정이 육체의 죽음과 함께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관을 선택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삶이 죽음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생각으로 인해 신비와 그 체험에 더욱 자연스럽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상호 공생의 개념
기독교 복음 전도와 관련하여 필자가 논하고자 하는 마지막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태동된 상호 공생의 개념이다 (이현모 2001:435). 이는 과거 인간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모더니즘의 불행한 결과로부터 이탈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기인 한다. 상호 공생의 새로운 개념은 인간과 자연을 ‘주체 대 객체’의 구조, 즉 계몽주의에 의한 인류와 자연의 갈등으로 보았던 이분법적 사고에서 이탈하여 함께 상호 관계적인 공존의 개념으로 변화하게 됨을 말 해 준다. 보쉬는 포스트모던 패러다임의 등장을 관찰하며 오늘날 공생의 회복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계몽주의의 도구적인 이성은 교통적인 이성으로 보충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Bosch 2000:540).
이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관찰하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관계적 사고의 개념이 인간 대 인간의 상호 관계적 관점으로 발전되어 간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는 인간 대 자연의 관계에서 실패한 모더니즘이 보여준 결과를 인간 대 인간의 공존의 관계적 개념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노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더니티의 개인 중심적 사고가 오늘날 포스트모더니티의 타자 중심적 사고로 대체 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탙중심적이며 타자중심적인 인격적 관계 사고의 변화를 가져왔다. 때문에 모더니즘적인 자기 중심적 사고가 아닌 상호간의 관계적이며 공동체적인 실제를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는 원한다.
지금까지 필자는 기독교가 복음 전달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주시해야 할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적 양상들을 몇 가지 관찰해 보았다. 우리는 좋든 싫든 새로운 포스트모던 문화의 영향을 받는 분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일을 바로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시대 정신을 분별하되 물들지 않고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을 이루어야 할 복음 사역자들로서 시대의 사조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이를 역이용함으로 복음 전달을 위한 하나의 큰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복음 전달론적 대응
모든 역사의 흐름을 통해 증명 되었듯이 인류의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 뿐이다. 모던 시대의 끝과 포스트모던 시대의 시작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현상들을 남기고 있지만 예수를 선포하고 선교의 임무를 다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변함 없는 복음을 현세상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이제 필자는 지금까지 관찰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들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연구를 하려 한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연구의 내용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가 보여주는 양상 속에서의 기독교 복음 전달에 관한 것이다. 특히 상대적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복음이 가장 적절하게 전달 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으며 그 방법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울러 본 장에서 다루게 될 복음 전달에 관한 연구는 제5장에서 다루게 될 관계 전도의 문화 인류학적 관점 연구를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문화 속의 복음
지금의 기독교 선교가 접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황은 다원주의에 따른 다양화된 문화의 공존 현상이다. 어느 누구든지 각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화권 안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이제는 단수적 개념으로서 ‘문화(culturel)’라고 말하지 않고 복수적 개념으로서의 ‘문화들(culturels)’ 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이는 어떤 하나의 주된 문화가 다른 열등한 지역으로 전파되는 획일적인 문화 발달이 아닌 각 사회는 각자의 고유 문화를 갖고 있으며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 속에서 가정하고 사고하며 가치를 느끼고 살아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문화적 다원주의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며 각각의 문화들은 이 시대 패러다임을 자신의 문화 속으로 맞아드린다.
이와 같은 문화의 다양성, 문화의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것은 기독교 선교의 복음 전달에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 전달에 있어 문화를 다루어야 할 기본적 필요의 출발점은 하나님께서는 인간들과 접촉하시기 위해, 그것이 구원이든 교제이든, 인간의 문화를 사용하신다는 관점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찰스 크래프트 (Charles H. Kraft)는 “하나님은 문화를 초월해 계시지만 문화를 통해 역사하신다” 고 말한다 (Kraft 2005:203). 하나님께서는 분명 인간 문화 밖에 존재하시는 초월자이시지만 하나님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인간의 문화와 문화적 환경을 선택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상호 관계를 맺고 자신을 나타내시기 위해 인간의 문화를 선택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문화적으로 제약을 받으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오히려 복음이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받아드려 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간 문화라는 제약 속으로 스스로를 제한시키실 것을 선택하셨음을 의미 한다 (Kraft 2006:209).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 속에서의 복음 전달은 인간의 문화를 선택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계시 되었던 그 원형의 재시도가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문화 속의 복음 전달은 다음의 세 가지를 염두해 두어야 한다.
첫째, 문화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메시지와 그리스도의 복음이 문화의 틀 속에서 사람들에게 이해되어져야 하는 해석학적 의미에 대한 연구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폴 히버트 (Paul G. Hiebert)의 지적과 같이 기독교 복음 사역자에게 주어진 임무 중 하나는 성경의 메시지가 “특별한 문화와 역사적인 구성체 안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Hibert 1996:26). 이와 같은 노력은 문화의 형식의 틀 속에서 초문화적인 하나님을 어떻게 전달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미와 방법을 찾도록 도와준다. 그렇다면 다원주의적 문화 속에서의 효과적인 복음 전달법은 무엇인가? 이는 적절한 문화 형식의 선택을 통해 나타난다. 문화 형식이란, 문화적 내부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들 만의 의사 소통 방식이다. 문화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문화 형식을 통해 그들의 느낌과 가치 등을 공유하고 전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크래프트는 복음을 전달함에 있어서 “적절한 채널 (일련의 형식들)을 선택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Kraft 2006:216). 복음 전달을 위해 선택되는 문화의 형식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그러나 비록 수단으로써의 문화 형식이라 할지라도 복음을 그 대상자에게 적절하게 전달하길 원한다면 그들이 사용하는 문화 형식의 채택은 효과적인 복음 전달을 위해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문화와 역사적인 구성체 안에서 복음이 어떻게 전달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그 해답은 문화 형식을 사용한 복음이 내부자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수용될 수 있게 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적 문화의 형식을 잘 분별하여 이를 역이용하는 전략적 지혜가 필요하다.
둘째, 따라서 복음이 문화라는 옷을 입고 전달되기 위해서는 문화가 포함하는 다양한 문화의 형식들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은 문화의 다양한 표현들을 통해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Shaw & Van Engen 2007:115). 크래프트는 문화 형식이란 형식, 기능, 의미 용례 등을 포함하는 물질적인 것, 혹은 비물질적인 것이라고 정의한다. 물질적이라 함은 “집, 의복, 자동차, 사람 등”을 말하며, 비물질적이라 함은 “의식, 결혼 관습, 가족 구조, 단어들, 노래, 춤 등”을 말한다 (Kraft 2006:137). 이와 같은 문화 형식들은 대부분 인간의 개인적 기본 욕구와 연관 되어 있다. 또한 다양한 문화 형식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과정 속에서 문화의 유형을 변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바로 이점이 복음 전달자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복음 전달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만족시켜 줄 문화의 형식을 따라 전달될 필요가 있으며 문화의 새로운 변화의 모습과 상호작용 하는 가운데 변화 적절한 방법으로 전달되어져야 한다.
셋째, 그렇다면 복음 전달의 다양한 표현들은 어떻게 선택되어야 하는가? 바로 문화가 소유한 세계관의 이해를 통해 가능하다. 각 문화는 자신의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인 세계관을 소유하고 있다고 본다. 히버트는 세계관이란 일련의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삶의 질서를 잡기 위해 실재의 본질을 만드는 틀 이자 근본적으로 인식적이고 감성적이며 평가 가능한 가정이라고 정의한다 (Hibert 2008:25-26). 다시말해 어떤 문화의 믿음과 행동 이면에 있는 실재에 대한 가정이 세계관인 것이다. 복음 전달자가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히버트의 정의가 말해 주듯 세계관 속에는 사람들의 경험과 가정, 그리고 논리들이 그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문화 형식의 형성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관은 문화 형식의 사용을 좌우하는 기능과 의미 규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 과정 속에서 세계관은 실재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의 기초로서의 문화 형식들을 만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 형식의 선택과 실행의 현실적 배경이 되는 문화 속 사람들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는 복음 전달을 위해 적절히 선택되어져야 할 문화 형식 결정에 핵심적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이에 더해 복음 전달자가 복음 수용자들의 세계관을 연구해야 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그들의 회심이 행위와 믿음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그들의 세계관의 차원에서도 이루어지게 하기 위함 임을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Hibert 2008:69). 즉 진정한 회심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세계관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장벽을 넘어 전달되는 깊은 차원의 복음 전달은 수용자들의 세계관을 이해함으로 출발된다. 그리고 회심은 문화의 형식을 통한 복음의 전달 과정을 거쳐 그들의 세계관에 변화를 일으킬 때 비로소 완성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전달은 세계관의 충돌을 이해하고 세계관의 변화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다원화된 문화 속에서 복음이 올바로 해석되고 사람들의 세계관에 적합하게 수용되게 하는 것은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비전이자 임무이다. 각자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는 제2의 사사시대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를 향해 문화와 함께 역사하신 하나님의 복음 전달의 방법을 우리는 다시금 일으켜야 한다.
복음의 번역성
다원주의 사회 속에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우리들이 이해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복음이 문화 속에서 번역 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연구이다. 이 문제는 앞서 다룬 문화 속의 복음이라는 주제로부터 흐르는 좀 더 구체화된 복음 전달의 상황화 작업이다. 복음의 번역성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라민 사네 (Lamin Sanneh)의 설명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는 그의 저서 Disciples of All Nations 에서 “기독교는 번역된 종교”라고 단언한다. 그의 주장은 하나님의 진리를 독점하거나 혹은 독점할 만큼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문화는 없다는 이론에 바탕을 둔다 (Sanneh 2008:25). 그가 주장하는 이론은 첫째,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실 때 인간의 문화를 통해 계시하시며 따라서 둘째, 모든 문화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위해 사용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라 할찌라도 하나님의 문화 선택을 통한 진리 계시의 방법을 초월할 수 없고, 그러므로 기독교는 문화의 틀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수용한 번역된 기독교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사네의 주장을 뒷받침 해 주는 성경적 기초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분의 활동이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당시의 문화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방법이었다. 불완전하고 제약적인 인간의 문화를 인간에게 보이시기 위한 성육신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Kraft 2006;208).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아람어와 아람어권에서 활동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도와 경배에 사용되지 않은 헬라어를 통해 신약이 저술 되게 하셨다는 사실 역시 기독교는 번역의 과정을 통해 문화적으로 받아 드려질 수 있는 형식으로 전달되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Sanneh 2008: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경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것을 허락하시며, 뿐만 아니라 코란과는 달리 다른 언어로 번역된 성경의 권위가 번역의 과정을 통해 상실되지 않게 하셨다는 점도 강조된다. 복음의 번역성에 대한 이 두 가지의 성경적 기초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들은 항상 문화적 상황들 속에서 발생되었음을 다시 한 번 뒷받침 해준다. 또한 동시에 하나님의 역사가 문화의 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진리는 다양한 상황과 문화적 환경 속에서 각 문화에 맞게 번역 되어야 함을 지적한다. 이는 모든 민족이 구원 받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 속에 처한 문화를 향해 복음의 번역성을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사실들이 기억 되어야 한다. 첫째, 복음의 이해와 복음의 보편성은 복음의 다양성을 인정할 때 더욱 강화 된다는 점이다 (Walls 2006:46). 한 문화가 이해하는 복음에 대한 이해는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며 복음이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전파되는 과정을 통해 발생하는 타문화와의 상호작용이 복음의 이해를 증대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문화가 다양하게 이해하는 복음에 대한 이해를 우리가 다 함께 수용할 때 거기에 더 깊은 복음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다른 문화권을 통해 번역되어야 하는 것이며 또한 지속 되어야 하는 것이다. 동시에 여기서의 번역이란 단순한 원어민의 언어적 번역뿐만 아니라 복음을 이해 함에 있어 사용될 수 있는 그들의 문화적 은유와 상징들을 사용한 번역 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앞서 거론한 그들의 세계관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복음의 전달을 다시금 강조해 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적절한 연구는 제5장에서 다루어 질 것이다.
둘째, 문화가 중립적인 것 만큼(Kraft 2005:93) 복음도 어느 특정 문화에 예속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해하는 복음 만이 옳바른 복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자문화중심주의 (ethnocentrism)에 빠지게 하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크래프트는 자문화중심주의를 단일문화주의의 산물이라고 본다. 단일문화주의란, “단일문화적인 사람들이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적(세계관) 관점을 통해 실재 (다른 사람들의 것을 포함하는)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Kraft 2005:157). 따라서 이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문화의 관점에 빠져 있음으로 다른 사람들, 혹은 다른 문화의 관점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이 속한 문화의 관점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이는 곧 성경에 대한 이해와 분석의 권리가 자신에게만 있고 상대적으로 다른 이에게는 없음을 주장하는 오류가 된다. 이와 같은 태도가 바로 서구 선교사들의 경험에서 온 실수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선교 역사의 주된 흐름에 대한 재고를 통해 반성되어야 할 사안이다.
셋째, 복음을 문화의 특성에 맞게 번역함에 있어서 주의하게 되는 혼합주의(syncretism)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레슬리 뉴비긴은 성경을 번역 함에 있어 가장 배격해야할 것은 혼합주의라고 보고 혼합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복음의 번역성을 방해 한다고 지적 한다. 복음을 특정 문화의 상황에 맞게 전달하기 위한 번역의 과정 가운데 발생하는 혼합주의에 대한 문제와 이의 두려움은 복음이 우리 문화 속에서 번역 되었듯이 그들의 문화 속에서도 번역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막는다는 것이다.
혼합주의를 극복한 성경적 예는 요한복음 4장에 기록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된다. 이 사건을 해석한 다니엘 쇼우(R. Daniel Shaw)와 찰스 밴 앵겐 (Charles E. Van Engen)은 예수님의 여인과의 대화 가운데 복음이 여인의 문화에 이해될 수 있도록 번역 되었음에 주목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번역되는 과정 가운데 예수님은 여인의 사마리아적 유대주의가 이해 할 수 있는 신학적 상황, 즉 “이단주의적 주장”을 활용하심으로 여인에게 “바리새인들의 해석과는 정면으로 대치하는 새로운 해석을 줄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Shaw & Van Engen 2007:69). 예수님은 이단적 접근과 신학적 범주를 위반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여인의 세계관에서 이해될 수 있는 번역된 복음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한의 이 증거는 복음을 번역 함에 있어 발생하는 위기적인 요소가 있음을 긍정한다. 그러나 복음 전달자들이 복음을 그들의 문화적 상황에 맞추어 전달해 나가는 과정 가운데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또한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긍정한다. 그러므로 문화의 상황에서 복음의 번역은 혼합주의의 두려움을 극복할 때 적절한 복음의 번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보편적인 진리, 보편적인 의미, 그리고 보편적인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포스트모던의 다원화된 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다. 비록 사고 방식과 문화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계시하신 보편적인 진리와 가치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한 바에 따라 하나님은 상대적이며 제한적인 인간의 문화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삼으셨다는 또 하나의 진리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전달자는 보편적인 진리를 문화적인 번역을 통해 전달해 나가는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 이에 더해 단일문화적인 세계관과 우월주의적 절대의식을 내려놓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가 죄의 결과라는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이 세대의 다양한 문화 형식을 복음의 접촉 점으로, 하나님의 다리로 사용할 줄 아는 창의적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텍스트가 아닌 텍스트 속의 하나님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 보여주는 상대주의는 앞서 거론한 데로 텍스트와 텍스트의 해석에 관련된 새로운 현상을 낳았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주체가 텍스트가 아닌 텍스트를 접하는 해석자에게 있다는 상대주의는 이미 텍스트에 대한 부정적 접근, 즉 텍스트의 원래적 의미를 알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결여된 접근법 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적 텍스트 해석 법은 텍스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원래적 의미, 즉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심층 차원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를 역으로 관찰해 보면 저자의 원래적 의미를 상실할 경우 텍스트는 죽은 것이 되며, 따라서 해석자는 진리의 차원에서의 그 어떤 의미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텍스트와 텍스트의 원래적 의미의 재발견과 해석적 주체에게 텍스트의 진의를 이해 가능한 방법으로 바르게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를 향한 복음 전달의 대응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 복음 전달자에게 있어 성경, 곧 텍스트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리고 문화 속의 복음 수용자들에게 텍스트가 살아 있는 진리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가?
필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다니엘 쇼우와 밴 앵겐이 주장하는 “신실성의 이슈”로 풀어나갈 수 있다. 그들은 텍스트와 수용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는가에 따라 텍스트의 중요성과 텍스트가 주어진 저자의 원래적 의미가 살아난다고 해석한다 (Shaw & Van Engen 2007:74). 수용자들이 텍스트만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드리도록 텍스트 중심의 전달법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텍스트의 원래적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가 의도하는 바를 따라 복음이 전달되도록 할 것인가의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신실성의 이슈를 좀 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다. 텍스트에 담겨진 텍스트와 수용자의 관계를 설명하는 신실성이란, “단순히 책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근본적으로 신실성은 생명을 주시는 절대자(the One)와의 관계를 회복함을 통해 삶의 변화를 포함한다” (Shaw & Van Engen 2007:75). 그렇다면 복음 전달자에게 있어 텍스트의 의미는 분명해 진다. 복음 전달자가 텍스트를 사용함에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대상은 텍스트로써의 말씀 그 자체가 아닌 텍스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원래의 의미, 곧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 문화의 환경에 따라 번역되어야 할 텍스트로써의 성경은 각 문화 속에서도 절대적 진리로 전달되어져야 할 하나님 계시에 그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텍스트는 하나님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지 텍스트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단으로써의 텍스트는 말씀으로써의 텍스트가 복음 전달을 위한 의사소통의 통로, 즉 하나님과 수용자 간의 관계의 변화를 일으키는 다리로 사용 될 때 그 정체성을 갖게 된다. 텍스트가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를 위한 의사소통의 다리로서 사용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성경을 주신 원래적 의미를 잃치 않게 될 것이다.
텍스트의 절대성을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세대를 복음화 하기 위해선 텍스트가 아닌 텍스트 속의 하나님을 전해야 한다. 문화적으로 번역되어야 할 제한적인 텍스트가 아닌, 그 어느 문화 속에서도 진리로 살아 있는 초월적인 하나님과 그의 성품에 촛점을 맞춘 전달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우리들에겐 말씀을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다리로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텍스트가 존재하는 원래적 의미를 유지시켜줄 관계 지향적인 복음 전달 법이 선택되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 사회 속에서의 관계 전도
그리스도의 대위임령(마28:16-20)을 삶의 내적 법칙으로 해석한 요하네스 니센 (Johannes Nissen)은 대위임령의 핵심은 장소가 아닌 삶과 실천을 통한 제자삼기의 임무라고 해석한다 (Nissen 2005:35). 대위임령의 초점은 떠나는 데 있지 않고 어디에 있든지 이를 삶의 법칙으로 받아드리는 자들의 일상을 통해 이루어야 할 명령이기 때문이다. 복음 전달자들은 그들이 일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문화적 상황 속에서 복음을 전달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필자가 살펴본 포스트모던 사회 속에서의 복음 전달이 지니는 과제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은 무엇으로 상징되는가? 다원화 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일상을 하나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이 허락되는가? 더 나아가 모든 문화 속에 동일하게 존재하는 문화적 일상의 기반은 무엇인가?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은 바로 관계(relationships)라는 것을 통해 풀어갈 수 있다. 관계의 의미를 관찰한 오스카 톰슨 (W. Oscar Thompson)은 관계는 “선로”와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 관계의 선로를 통해 굴러간다고 본다 (Thompson 1995:11). 관계야 말로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인간의 삶을 영위하게 해 준 그 기반이라 하겠다.
기독교의 역사 역시 관계라는 선로 위에 움직여 왔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교회 역시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 위에 존재하는 선교적 공동체이다 (Bright 1994:30). 보다 근본적으로 신앙은 관계이다. 그러므로 언약적 관계 가운데 있는 교회가 행하는 복음 선포에 있어서도 관계의 중요성은 같은 맥락을 갖는다. 특히, 복음 전달에 있어서 관계가 차지하는 역할은 매우 크다. 왜냐하면 선교학적으로, 문화 인류학적으로 복음 전달은 관계에 대한 이해를 다루기 때문이다. 즉, 복음 전달은 해석학적 문제들이나, 혹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다루어지는 번역의 이슈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과 각 사람 간에 맺어지는 적절한 관계에 대한 것”이다 (Shaw & Van Engen 2007:34). 또한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는 사람들 간의 수평적 관계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관계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그러므로 관계는 복음 전달의 가장 큰 핵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수단이요 복음 전도의 핵심적 방법으로써의 관계를 활용한 복음 전달을 연구하고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
필자는 이제 포스트모던 사회 속의 관계 전도에 대해 생각해 봄으로 본 장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이제 다루고자 하는 관계 전도의 개론적 고찰은 본 논문이 연구하고자 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선교 전략으로써의 관계 전도에 대한 청사진이 될 것이며 기본적 방향 제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본 장에서 연구된 바에 따라 관계 전도란 무엇인가를 먼저 정의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정의에 따라 관계 전도의 성격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 생각해 볼 것이다.
관계 전도란 무엇인가? 관계 전도란, 사회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인간 유대 관계망과 수용자의 다양한 문화 형식을 다리로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하는 선교적 행위이다. 이와 같은 관계 전도의 정의는 각 사람의 사회적인 네트웍 내에 이미 형성된 인간 관계의 활용과, 문화 속의 수신자들이 의사 소통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문화 형식을 불신자들과의 접촉 점으로 사용하는 개념이 포함된다. 따라서 관계 전도의 개념 속에는 다음의 두 가지 범주가 제시될 수 있다. 첫째, 인간 관계망을 통한 관계 전도이며, 둘째, 문화 형식을 통한 관계 전도이다. 이제 이 두 가지 관계 전도에 대해 간략히 생각해 보자.
인간 관계망을 통한 관계 전도
도날드 맥가브란 (Donald A. McGavran)은 “기독교 신앙은 친척에서 친척, 가까운 친구에서 가까운 친구에게로 가장 잘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신앙의 확장은 일반적으로 관계의 노선을 따라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McGavran 1987:567, 569). 인간 관계망을 통한 신앙의 흐름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회와 문화 속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유대 관계, 즉 혈연, 우정, 공동체 관계 등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을 입증한다. 관계를 통한 전도는 다원화된 사회 구조, 즉 모자이크와 같은 다양한 사회계층으로 이루어진 인간 사회의 구조적 상황 속에서 더욱 활발하며 창의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전략이다 (McGavran 1993: 19-20). 이는 인격적이며 공동체적인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한 전도 접근법이다.
관계망을 통한 복음 전달은 이미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도를 전달하시기 위해 사용하셨던 방식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과의 언약적, 선포적 관계의 공동체로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확인시키심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수직적 관계를 세우셨다. 관계망을 통한 복음 전달의 구약적 활용은 신약 속의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 활동을 통해 더욱 구체화 되었다. 베드로를 부르시는 과정(눅5:1-11),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요4:3-26), 부자 관원과의 만남(요3:1-15) 등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사도행전과 서신서에 나타난 바울의 접근법 역시 인간 관계망을 활용한 복음 전달이었음을 관찰하게 한다. 성경적 관점에서의 관계 전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연구는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필요한 전도는 이론적 테크닉이 아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고 인간의 인격적 관계가 세워준 선로를 따라 교통과 교감이 오고 갈 수 있는 살아 있는 유대 관계를 통한 전도이다. 예수님의 복음 전도가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가장 효과적인 복음 전달은 인격적인 관계를 통한 이야기식, 즉 내러티브적인 복음 서술을 통해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관계에 기초한 복음 전달은 감정과 의지와 인격에 침투하는 전인적 전달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만족시켜줄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 복음이 인간 관계의 다리를 통해 전달되는 방식과 활용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좋은 소식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우수한 전략이다” (McGavran 1987:567). 따라서 사회 속의 자연스러운 인간 네트웍을 통한 관계 전도의 성경적, 그리고 전략적 측면을 옳바로 이해하고 한 사람 뒤에 존재하는 인간 관계망 그룹에 집중함으로 이를 적극 활용하는 창조적인 복음 전도 전략을 펼쳐야 한다.
문화 형식을 통한 관계 전도
관계 전도의 또 다른 범주는 문화 형식을 다리로 활용한 전도 방법이다. 앞서 “문화 속의 복음”에서 연구된 바와 같이 문화 형식이란 내부자들 간의 의사 소통 방식이며 내부자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충족과 직관된 기능이다. 이와 같은 문화 형식은 복음 전달을 위한 매우 효과적인 매체 역할, 즉 접촉 점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문화 형식 자체가 메시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화 형식을 통한 관계 전도의 가능성은 단순한 인간의 문화 형식을 사용함을 통해 초문화적인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달 할 수 있다는 복음의 번역성에 기초한다. 이는 마치 이미 형성된 자연스러운 인간 유대 관계 망을 통해 복음을 전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써, 문화 속의 사람들 가운데 의사 소통 방식으로 이미 존재하는 문화 형식을 선택하여 복음을 소통하고, 그 결과 수용자의 세계관 변화에 초점을 둔 깊은 차원에서의 복음 전달 법이다.
문화 형식을 통한 관계 전도 역시 앞서 연구한 바와 같이 성경적이며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 매우 효과적인 전도이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관계는 항상 문화적이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는 당시대의 인간이 활용하는 다양한 문화적 유형 속의 형식들을 통해 전달 되었다. 인간의 언어, 나무, 노래, 음식, 의복, 의식, 그리고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물질적, 비물질적인 형식을 초월하여 전달 되었다. 만일 복음 전달자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대상 문화의 컨텍스트와 문화 형식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있다면 복음 전달자는 문화 속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갖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스트모던 문화를 향해 대항문화적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복음 전달을 위한 다리로써의 적절한 포스트모던 문화 형식을 활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 위해 문화적 형식을 선택하신 것 같이 우리도 복음 전달을 위해 문화의 다양한 형식들을 활용해야 하신다. 하나님께서 문화 속에 허락하신 인간 삶의 소통 방식을 우리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문화가 죄의 결과라는 정죄적 관점에서 벗어나 문화가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다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긍정적 관점으로 더욱 나아가게 되길 원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를 수용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문화 형식의 현대적 이슈들을 선택하여 그 선로를 따라 복음이 사람들의 세계관에 도전을 줄 수 있게 되기를 또한 희망한다. 그 결과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그리스도인으로의 축복된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될 것을 기대해야 한다.
요약
포스트모더니즘을 향한 복음 전달론적 관계 전도는 성경이 우리들에게 제시하는 전도의 모델을 충실히, 그리고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향한 선교전략으로써의 관계 전도란 모자이크적인 다양한 사회 계층 속의 인간 유대망을 활용한 전도이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가 사용하는 의사소통적 문화 형식을 활용한 전도이다. 이상의 관계 전도 전략은 문화 속의 복음이라는 대주제를 인식하는 가운데 복음이 모든 문화 속에 받아드려 지도록 세계관적 수용을 위한 복음의 번역 과정을 거친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들에게 계시하신 원래의 목적인 구원의 복음을 살아 있는 인간 관계를 통해 인격적으로, 문화적으로 전달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인용 문헌 (REFERENCES CITED)
한글 서적
김성욱
2001 “문화인류학의 동향과 제 이론들”, 선교를 위한 문화인류학. 서울: 도서출판 이레서원.
김영한
1996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서울: 숭실대학교출판부.
김욱동
1990 포스트모더니즘의 이해. 서울: 문학과 지성사.
김의환
1996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서울: 숭실대학교출판부.
김철수
2008 기독교 선교 문화인류학. Pasadena: 풀러선교대학원.
이종도
2001 “신학적인 관점에서 본 문화인류학”, 선교를 위한 문화인류학. 서울: 도서출판 이레서원.
임윤택
2008 Thinking Missiologically. Pasadena: 풀러선교대학원.
문상철
2001 “종교적 상징의 분석과 세계관 연구”, 선교를 위한 문화인류학. 서울: 도서출판 이레서원.
번역 서적
Bavinck, J. H.
1980 선교학개론 (An Introduction to the Science of Missions). 전호진 역, 서울: 성광문화사.
Blauw, Johannes
1988 교회의 선교적 본질 (The Missionary Nature of the Church). 전재옥, 전호진, 송용조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Bosch, David
2000 변화하고 있는 선교 (Transforming Mission). 김병길, 장훈태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Bright, John
1994 하나님의 나라 (The Kingdom of God). 김의환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Clinton, Richard and Paul Leavenworth
2006 평생사역을 꿈꾸는 리더. 임종원 역, 서울: 도서출판 진흥.
Clinton, Robert
1993 영적 지도자 만들기 (The Making of a Leader). 이순정 역, 서울: 베다니출판사.
Glasser, Arthur F.
2006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 (Announcing the Kingdom). 임윤택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Griffin, David R.
2002 포스트모던 하나님 포스트모던 기독교 (God and Religion in the Postmodern World). 강성도 역, 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Hedlund, Roger E.
1990 성경적 선교신학 (Biblical Theology of Mission). 송용조 역, 서울: 고려서원.
Hesselgrave, David J.
1999 선교 커뮤니케이션론 (Communicating Christ Cross-Culturally). 강승삼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Hiebert, Paul G.
1996 선교와 문화인류학 (Anthropological Insights for Missionaries). 김동화, 이종도, 이현모, 정흥호 역, 서울: 죠이선교회출판부.
1997 선교현장의 문화이해 (Anthropological Reflections on Missiological Issues). 김영동, 안영권 역, 서울: 죠이선교회출판부.
Hybels, Bill
1997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들 (Becoming a Contagious Christian). 한기웅 역, 서울: 두란노.
Kaiser, Walter C.
2005 구약성경과 선교 (Mission in the Old Testament). 임윤택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Kraft, Charles H.
2001 기독교 켜뮤니케이션론 (Communication Theory for Christian Witness). 박영호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5 기독교문화인류학 (Anthropology for Christian Witness). 안영권, 이대헌,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6 기독교와 문화 (Christianity in Culture). 임윤택, 김석환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Lingenfelter, Sherwood G. and Marvin K. Mayers
2005 문화적 갈등과 사역 (Ministering Cross-Culturally). 왕태종 역, 서울: 죠이선교회.
McGavran, Donald A.
1987 교회성장이해 (Understanding Church Growth). 전재옥, 이효한, 김종일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하나님의 선교 전략 (The Bridges of God). 이광순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Newbigin, Lesslie
1998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The Gospel in a Pluralist Society). 홍병룡 역, 서울: IVP.
Nissen, Johannes
2005 신약성경과 선교 (New Testament and Mission). 최동규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Schaeffer, Francis A.
2003 프란시스 쉐퍼 읽기 (Read Francis A. Schaeffer). 성인경 역, 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Shaw, Daniel R & Van Engen, Charles E.
2007 기독교복음전달론 (Communicating God’s Word in a Complex World: God Truth or Hocus Pocus?). 이대헌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Stott, John R. W.
1981 현대기독교 선교 (Christian Mission in the Modern World). 김명혁 역, 서울: 성광문화사.
Thompson, W. Oscar
1995 관계 중심 전도 (Concentric Circles of Concern). 주상지 역, 서울: 나침판사.
Van Engen, Charles
2004 미래의 선교신학 (Mission on the Way). 박영환 역, 서울: 도서출판바울.
2007 선교의 성경적 기초 (Biblical Foundations of Mission). Pasadena: 풀러선교대학원.
Wagner, C. Peter
1997 교회개척 이렇게 하라 (Church Planting for a Greater Harvest). 서로사랑 편집부 역, 서울: 서로사랑.
Winter, Ralph D. and Steven C. Hawthorne
2000 미션 퍼스팩티브 (Mission Perspectives). 정옥배 역, 경시도 고양시: 도서출판 예수전도단.
외국어 서적
Anderson, Gerald H., Robert T. Coote, Norman A. Horner, and James M. Phillips
1994 Mission Legacies: Biographical Studies of Leaders of the Modern Missionary Movement. Maryknoll: Orbis Books..
Grenz, J. Stanley
1996 A Primer on Postmodernism. Grand Rapid: Eerdmans Publishing Co.
Hesselgrave, David J.
1980 Planting Churches Cross-Culturally.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Hiebert, G. Paul
1999 Missiological Implications of Epistemological Shifts.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8 Transforming Worldview. Grand Rapids: Baker Academic.
Lingenfelter, Sherwood G.
2008 Leading Cross-Culturally. Grand Rapids: Baker Academic.
Livingstone, Greg
1993 Planting Churches in Muslim Citie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Miles, Delos
1981 Church Growth: A Mighty River. Nashvill: Broadman Press.
Patterson, George
1999 The Spontaneous Multiplication of Church: Perspectives on the World Christian Movement. Ralph D. Winter and Steven C. Hawthrone ed. Pasadena: William Carey Library.
Sanneh, Lamin
1989 Translating the Message. Maryknoll: Orbis Books
2003 Whose Religion is Christianity?.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8 Disciples of All Nations. New Haven: Oxford University Press.
Tippett, Alan
1987 Introduction to Missiology. Pasadena: William Carey Library.
Wagner, C. Peter
1979 Our Kind of People. Atlanta: John Knox Press.
Walls, Andrew F.
1996 The Missionary Movement in Christian History. Maryknoll: Orbis Books.
Winter, Ralph D.
1991 “Editorial” Mission Frontiers Vol. 4/5. Grand Rapids: Baker Academic.
Zodhiates, Spiros
1992 The Complete Word Study New Testament. Chattanooga: AMG International,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