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청392.hwp
18장
(1) 원문
大道廢有仁義. 慧智出有大僞. 六親不和有孝慈, 國家昏亂有忠臣.
대도폐유인의, 혜지출유대위. 육친불화유효자, 국가혼란유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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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廢) : 폐하다. 그만두다. 부서지다. 사라지다.
위(僞) : 거짓. 속이다.
육친(六親) : 부모(父母), 형제(兄弟), 처자(妻子) 혹은 부부(夫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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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
큰 도가 사라지니 어짐과 정의가 있게 되고, 지혜가 생겨나니 큰 거짓이 있게 된다. 육친이 화목하지 않을 때 효도와 자애가 있게 되고, 국가가 혼란스러울 때 충신이 있게 된다.
(3) 해설
죽간본과 백서본에서는 통행본 18장이 17장에 붙어서 나온다. 통행본을 만든 사람이 도덕경 전체를 81장으로 만들기 위해 17장과 18장의 두 장(章)으로 분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17장에서는 통치자를 태상(太上), 상(上), 중(中), 하(下)의 네 가지 등급으로 나눈다. 태상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스스로 공을 세우고 일을 완수하도록(功成事遂) 간섭의 말을 거의 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린다.(悠兮 其貴言) 그리고 백성들이 공을 이루고 일을 완수하고 나서 자신들이 스스로 그렇게 했다고 말하면(百姓皆謂我自然) 당연하게 여기면서 기뻐한다. 거기에 비해 상(上)의 통치자는 백성들과 친근하며 그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親而譽之) 그는 백성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며, 명예욕을 벗어나지 못한다. 중(中)의 통치자는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을 두려워하도록 만든다.(畏之) 그는 백성들에 대한 믿음이 더욱 부족하며, 권력욕으로 백성들을 지배한다. 하(下)의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멸시를 당한다.(侮之) 그는 백성들을 불신하며, 그것을 아는 백성들은 그를 아예 통치자로 인정하지도 않고 무시한다. 18장에서 노자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17장에서 말한 두 번째(上) 등급의 통치를 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이다. 이 점이 노자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이 점이 밝혀져야 평화시대를 만들 수 있는 노자의 해법이 다른 제자백가들, 특히 공자의 해법보다 근원적인 것인지가 밝혀지기 때문이다. 하상공은 18장의 제목을 속박(俗薄, 세상의 풍속이 천박해진 결과와 그 원인)으로 붙였다. 속박은 ‘세상의 풍속이 천박해진다’는 의미이다. 그는 노자가 이 장에서 말하고자 한 것을 ‘속박의 결과와 그 원인’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풍속이 천박해진 원인은 대도(大道)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의와 지혜가 나타나고 효자와 충신이 나타난다. 역으로 말하면, 세상에 효자와 충신이 나타났다는 것은 인의를 필요로 할 만큼 세상의 풍속이 천박해졌다는 것이다.
세상이 천박해져 어지러워지면 인의(仁義)를 발휘해서라도 가정에서는 효자(孝慈)를 국가에서는 충성(忠誠)을 강조하여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공자는 그래서 효자와 충성의 바탕을 이루는 인(仁)과 의(義)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도덕성 회복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자는 이런 해결책이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인의가 커지면 거짓도 함께 커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거짓이 함께 커지는가? 인의(仁義)로 어지러운 세상을 막기 위해서는 인의의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하고, 인의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것은 낮게 평가하게 된다. 이 두 가지를 실행하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인의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사용해야만 하는데, 언어는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한계가 있는 언어로 인과 의의 의미를 한정하게 되면, 그 한정 안에 들어가지 못한 부분이 제외되거나 다른 의미가 그 속에 들어갈 수가 있다. 이것을 인식론적 난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의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가치는 낮게 평가된다. 가치평가에 있어 인위적인 서열이 만들어지게 되면 사람들은 그 서열에 따라 행위하게 되며 그 서열이 높은 사람처럼 보이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래야 그 사회에서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평가고사를 치르는데, 평가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공부하는 가치전도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본말(本末)이 뒤집혀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을 가치론적 난점이라고 한다.
인식론적 난점과 가치론적 난점을 안고 해결책을 찾는 해법들은 대도(大道)에 비해 소도(小道)라 할 수 있다. 노자는 18장 첫 번째 문장에서 “큰 도가 사라지니 어짐과 정의가 있게 되었다”(大道廢有仁義)고 하였다. 이때의 큰 도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이다, 이것에 비해 인간이 언어를 통해 한계를 지어서 정한 인의(仁義) 의 도는 노자가 보기에 작은 도이다. 그런데 지혜롭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제시한 해법이 작은 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특히 그런 해법을 제시한 사람을 교주처럼 떠받드는 후계자들은 그런 해법을 절대시하면서 문제를 더욱 키운다. 그런 해법을 제시한 사람은 언어의 한계와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겸손하게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일 수 있지만 그 학파나 종파의 조직이 커지면서 우상화가 이루어지고 인식에 있어 전지(全知)한 존재인 절대자로 받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혼탁해지는 세상을 구하고자 해법을 제시한 성인들은 대다수 자신이 우상화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학파나 종파의 교주가 우상화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자는 원천적으로 이러한 우상화를 막기 위해서 학파를 만들지도 않았고 제자들을 양성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도가사상을 바탕으로 한 도교(道敎)가 만들어져 노자가 우상화되는 일이 발생되었다.
노자는 18장 두 번째 문장에서 “지혜가 나오면 큰 거짓이 있게 된다”(慧智出有大僞)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언어로 표현된 작은 도의 해법을 제시하는 지혜이다. 이 지혜에는 작은 도에서 나온 이러한 해법이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검토를 해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해법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첫 번째 큰 거짓이다. 그리고 작은 도에서 나온 해법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해법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두 번째의 큰 거짓이다. 어느 쪽의 거짓이든지 그것은 모두 언어로 표현되며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들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러한 지혜를 지닌 자들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에서는 언어로 만들어진 여론을 조작하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열어가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짓에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자는 18장 세 번째와 네 번째 문장에서 “육친이 화목하지 않을 때 효도와 자애가 있게 되고, 국가가 혼란스러울 때 충신이 있게 된다(六親不和有孝慈, 國家昏亂有忠臣)고 말한다. 이것은 역사와 현실사회가 증명하고 있다. 효도와 충성은 강조되어왔지만 현실적으로는 불효와 불충이 증가하고 있고, 죄를 강제적으로 제재하는 법도 크게 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죄도 함께 증가해 전화도 함부로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불안이 증가하고 있다. 병을 고치는 지혜인 의료기술이 늘어 수명이 연장되어 왔지만 병도 함께 증가되어 성인병과 유행병 등이 우리의 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삶의 지혜로 과학기술이 발달되어 왔지만 환경과 인성파괴 문제가 발생되면서 행복지수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이 모든 원인이 큰 도가 사라진 데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노자의 관점에서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은 사라진 큰 도를 되살리는 일이다. 다음 19장은 큰 도를 되살리는 방법이 언급되고 있다.
<18장 요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