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현대문학, 2006.08.11 출간

용의자x의 헌신이라는 책을 생일선물로 선물 받았고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기에 이렇게 서평을 쓰게 되었다. 용의자x의 헌신은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달리 범인을 미리 알려주고 시작한다. 첫 부분에 이렇게 범인이 알려지는 것을 보고 점점 뒷내용의 전개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졌고, 그런 구성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책을 다 읽어보니 용의자x의 헌신은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와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와라는 두 천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내용의 중심 줄거리는 이 두 천재의 추리대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그만큼 독자들이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은 "범인은 누구인가?" 가 아니라 이시가미가 치밀하게 만들어놓은 놀랄만한 트릭들과 그것을 파헤쳐내고 진실을 밝히려하는 유가와의 두뇌싸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테마는 역시 이시가미의 눈물겨운 헌신이다. 이시가미는 사랑하는 아내도, 친구도 하나 없이 오로지 수학에만 매달려온 외로운 남자다. 수학만을 사랑했지만 어느 날 자신의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삶의 의욕을 잃은 이시가미는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때마침 옆집으로 이사 온 하나오카 모녀에 의해 삶에 있어 새로운 한줄기 빛을 발견하게 되고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변변찮은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 보지도 못하지만 그는 매일을 야스코가 일하는 도시락 가게 '벤덴데이'에 도시락을 사러 다니면서 혼자만의 사랑을 키워가게 된다.
그러던 중 사건이 터진다. 야스코의 전 남편인 도미가시 신지가 찾아와 야스코에게서 돈을 요구한다. 하나오카 모녀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그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야스코에게 이시가미는 완전 범죄를 보장하고 나선다.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이 희생해서라도 그녀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굳은 각오로 말이다.
얼마 후 도미가시 신지로 추정되는 시체가 발견되고 경찰은 전 부인인 야스코를 의심하게 되지만 이시가미가 쳐놓은 덫에 걸려 수사는 혼전을 빚는다. 그러던 중에 형사 구사나기의 친구이자 천재 물리학자인 유가와 마나부가 사건에 개입하게 되고, 사건에 대해 의구심을 느낀 유가와는 진실을 밝히려 한다.
여기서 사실 유가와는 처음에는 사건에 호기심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은 형사가 아니니 협력하지 않겠다고 밝힌다. 그러나 자신의 대학동창이자 라이벌이라고 인정하고 있던 이시가미가 사건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진실을 밝히고자하는 순수한 열망으로 경찰과는 따로 사건을 파고들게 된다. 범인을 밝혀내는 다른 일반 추리소설과는 달리 사건의 알리바이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또 그 알리바이들을 파헤쳐 나가는 두 천재의 두뇌싸움을 읽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소설이 끝나갈 무렵 결국 유가와는 진실에 다다르게 되고 이시가미는 최후의 수단으로 자수를 택한다. 그렇게 이시가미와 유가와와의 두뇌싸움은 접전을 펼치지만 결국은 애초부터 유가와의 개입을 염두 해두지 못했던 이시가미의 패배로 끝나게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유가와는 이시가미의 자수에 석연찮음을 느끼고 자신이 밝혀낸 모든 진실을 하나오카 야스코에게 털어놓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야스코에게 선택을 맡긴다.
용의자x의 헌신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시가미가 어떻게 사건을 은폐하려했느냐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야스코를 향한 이시가미의 수상쩍은 행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품 내내 철저하게 방관자의 입장에서 글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시가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결말을 읽기 전까지 예상할 수가 없다. 그리고 작품의 후반부에 들어서 이시가미의 수상쩍은 행동들에 대한 해답이 밝혀지는 순간, 독자들은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지는 기분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제목만 봐도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데다 책의 띠지까지 읽으면 주요 내용이 어떻겠구나 하는 것이 감이 확 온다는 점이다. 아마도 추리소설의 특성상 아무 정보도 없이 읽었더라면 더 큰 충격과 애절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읽으면서 갈수록 이시가미의 사랑을 응원하게 되었다. 처음엔 매력이라고는 하나 없어 보이는 이시가미의 모습에 그다지 호감을 갖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제발 그가 잡히지 않기를, 또 유가와가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읽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읽으면서 문득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 헌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길진 않지만 21년이란 인생을 살아오면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해 본적이 있고, 지금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과연 그 사람을 위해서 이시가미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에는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이시가미의 사랑은 대단했고 그의 헌신은 내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랑의 가장 위대한 형태란 무엇일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아마도 그것은 헌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또한 이 소설을 통해 사랑의 가장 위대한 모습은 헌신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백야행이나 비밀, 아내를 사랑한 여자 등등 그의 작품들을 더 접해보는 것이 올해 나의 목표들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