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층(斷層)
외옹치(빗새)
바람이 출발을 재촉하는 갑판에 올랐어. 떠난다는 것은 뒤를 지우는 일이야. 뒷바람에 자리를 넘겨주고 달
아나는 바람처럼. 관문을 통과한다는 군. 그래서 그렇게 천천히 온 것일테지.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는 일이
란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나봐. 힘들다고 했지. 내 안에서 맴돌던 그 말이 네게서 나올까봐 나 많
이 괴로웠어. 어느 선까지가 사랑인지 몰랐 듯 지금 힘들다는게 어느 정도까지를 의미하는지 사실 잘 모르
겠어. 그래서 더 곤혹스러워. 관문은 오랬동안 열리지 않는군.
항구와 바다.
둘을 이어주는 관문이 두 개라는 것 아니. 두 개의 관문 사이에 지금 떠 있어. 바다와 항구의 수위를 조절하
고 있는 거야. 배가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항구의 수위를 버리고 바다의 수위에 맞춰야 해. 앞 뒤 두 개
의 관문이 그 역할을 하는거지. 완충지대라고 하는거야.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테고. 너를 놓아
주기로 했어. 우리 둘 오랫동안 서로 자기속으로만 침잠하지는 않았는지. 문득 그래. 그렇게 층이 만들어진
거고 지금은 층이 너무 심하게 어그러져 있어. 놓아줄게. 조금만 더 유예시간을 가진 후에. 내 수위에 적응
된 니가 세상의 수위에 맞출 수 있는 시간 말야. 관문이 열리고 있어. 느린 속도로. 배를 떠나보내는 일이
마음 한자락을 떼내기라도 하는 듯, 천천히...
***
바람이 이는 강변에 섭니다.
누군가는 층이 진 결에 몸을 맡기고
누군가는 뛰고 또 뛰어 결의 사선을 비킵니다.
관계란 것은 그렇게 바람 반대편에 몸을 뉘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관문이 바다와 항구 사이를 연결해 주듯
빗새님과의 사이를 연결해주는 무엇인가는 있는 듯 합니다.
너무 빨리 무엇인가가 결정되어 버리는
조급한 세상에서, 그래도 한 템포, 여유라는 것, 혹은 서로를
향한 이해라는 것,
바다의 깊이와 항구의 깊이, 그 둘 사이를 매개해 줄 수 있는,
그런 관문은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하여,
너는 또 나는 층 지워진 서로를 서로 감싸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금성에서 온 누구도 있고 화성에서 온 누구도 있 듯,
서로 층 진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그 것,
층의, 단층의, 혹은 관문의 다른 이름 일지도...
빗새, 라는 닉네임이 빗새님을 공유하는 어긋난 관문,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댓글 언젠가 빗새 시인님께 외옹치의 빗새님 이야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먼 길을 왕림해주셨군요. 빗새라는 닉네임을 공유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인연을 쌓으신 분일텐데 멋진 글까지 남겨주셔서 오늘 아침 외옹치님이 남겨주신 글에 오래도록 머물어 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빗새님이 또 한분 계셨군요. 좋은 시 즐감하고 갑니다. 앞으로도 님의 작품을 자주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