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 앞에 선 매창은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철부지 여자의 모습이었다. 떼를 쓰기도 하고, 수줍게 심중의 말을 내놓았다가 금세 거둬들이고, 겁 없이 큰 용기를 내기도 했다. 유희경이 부안에 머무는 동안 매창은 객점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시로 적었다. 마음이 다 하지 못한 말, 몸이 다 바치지 못한 연정은 시에서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렸다.
“제가 무척 따르는 언니가 하나 있는데 같이 만나러 가지 않을래요?” 가서 안부도 묻고, 당신 얼굴도 보여주고 싶어요. 매창이 말하는 언니는 애월이라는 선배 기생이었다. 곰소 바닷가에서 염전을 하는데 언니라고 부르기엔 나이가 많았다. 마흔이 넘었으니 엄마뻘이다.
“언니! 인사해요. 매창이가 오늘은 서방님과 함께 왔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술이라도 받아놓을 것을 먹을 게 하나도 없을 때 찾아오면 어쩌라는 말이냐고 애월은 죽는소리를 했다. 마흔두 살이라고 했지만 얼굴이 주름으로 뒤덮여 쉰 살도 더 돼 보였다. “신역이 고된가 보네. 언니 얼굴이 좀 빠진 것 같아요.”
“낙이 없어서 그런지 해가 바뀌는 대로 금방금방 늙는다. 어디 정붙일 데가 없으니 늙어서 빨리 저세상으로 가고 싶은가 보다. 자식이라도 있으면 애 키우는 고생이라도 낙으로 생각할 텐데.” 애월은 좋든 나쁘든 인생에 고갱이가 없었다. 자식도, 정 줄 남자도 없이 혼자 늙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남은 생을 줄여가고 있었다.
유희경은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그 까닭을 알고 있었다. 그가 없는 매창의 삶이 저러할 것임을 미리 본 것이다. 매창은 그와 나들이하는 것만 즐거운지 종달새처럼 재잘재잘 옛날에 애월과 같이 관기 노릇 할 때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그날 밤 유희경은 밤새도록 앓았다. 옆에 누워 있던 매창을 안으려고 끌어당기는데 애월의 뻣뻣한 몸이었다. 소금밭에서 가래로 소금을 밀고 있는 여인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데 얼굴이 매창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진땀을 흘리면서 잠에서 깼다. 유희경은 아침밥을 먹자마자 편지를 써서 통인에게 들려 보냈다.
"매창아! 애이불비(哀而不悲), 애이불상(哀而不傷). 너를 위해 고작 이 말밖에 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해다오. 잠시 슬퍼하되 비탄에 빠져 너를 상하게 하지는 말라. 이 세상에 그보다 더 나를 아프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다시 찾을 그 날까지 네 자신을 따사로이 보살펴야 한다. 나무가 듣든, 바람이 듣든, 그냥 허공에 흩어져버리든 나는 자꾸 무슨 말인가를 해서 마음이 단단히 뭉치는 걸 피해 보려고 애쓴다. 돌멩이처럼 가슴 한구석에 맺힌 너를 향한 이 갈망이 원망의 칼이 되어 나를 찌르고, 세상을 찌르고, 급기야는 너를 찌르게 되니 말이다.
너에게 갈 것이라고 수없이 되뇌며 홀로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지도, 시를 짓지도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만 내다보고 있다. 회화나무에서 진초록 이파리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저 잎들도 곧 땅에 떨어져 이내 썩을 것이다. 흙과 바람과 비가 합심해서 나뭇잎을 썩히고 그 거름으로 내년에 다시 잎을 피워 올리겠지. 내 너를 위해 흙이 되고 비가 되고 바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나는 잠시 네 위에 내려앉았다 호르르 날아가 버릴 종달새가 아닌가 싶다.
나 때문에 너무 마음 태우지 마라. 종달새가 제아무리 고운 노래로 네 곁에 머문다 해도 한 식경도 채우지 못할 객일 뿐이다. 새는 자기가 한때 앉아서 노래 불렀던 나무가 어떤 것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릴 것이다. 계절이 네게 푸른 잎을 피웠듯이 종달새를 불러들였고, 새는 떠나고 너는 잎을 떨어뜨릴 것이다. 이 어리석은 말들, 이 부질없는 넋두리 앞에서 나는 애가 끊어지는 것만 같구나. 지금 이 순간 새처럼 네게로 날아가 햇볕처럼, 바람처럼 너를 만지지도 않고, 안지도 않고 그저 네 거문고 소리나 듣다 돌아오고 싶다."
유희경의 편지를 손에 쥐고 매창은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깊은 마음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유희경에 대한 감사와 연민의 눈물이었다. 왜 이 사람을 이렇게밖에 만날 수 없는가 하는 한탄이었다. 그의 말대로 ‘애이불비’였다. 서러움도 그녀의 사랑만큼이나 진했다. 마음의 안과 밖이 모두 슬픔 하나로 뭉친 순결한 슬픔이었다. 앵두나무 아래에서 이미 읽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떨어진 붉은 꽃송이들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보다 방으로 돌아와 답장을 썼다.
깜깜하다. 세상은 색깔을 잃었다. 매창은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믐달이 비스듬히 그녀를 비추었다. 그녀는 까끌까끌한 숨을 길게 뱉어내며 허균과의 마지막 만남을 생각했다. 벌써 두 해나 지난 일이었다. 해시가 다 된 늦은 밤이었다. 허균이 거문고로 장한가를 타는 매창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매창아!” 매창은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이 스스로 지은 매창이라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손을 잡지 않아도 품에 안지 않아도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다리삼아 상대에게 건너갈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유희경을 사랑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매창아! 부르는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 그가 느끼는 것, 그가 말하려는 것. 설사 알지 못한다 해도 안다고 느껴졌다. 그것 또한 옛날 일이다. 이제 유희경의 각진 얼굴은 기억 속에서조차 희미하게 뭉개졌다. 허균의 본래 목소리에는 그런 짓눌림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예, 매창 여기 있습니다. 어인 일로 그리 비장한 목소리로 저를 부르십니까?” 허균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매창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얼굴에서도 평소의 호방하고 활달한 기운이 거두어져 있었다. 그 답지 않은 모습이다.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잠시 일어나 보거라.” 매창은 허균을 잠자코 마주 보다가 조심조심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아끼는 홍화색 비단 치마가 바스락거렸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방 안을 한 바퀴 걸어 보거라.” 매창은 허균이 이르는 대로 그 자리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느리게 떼며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오른팔을 들어 보거라. 그리고 나를 향해 뻗어 보거라.” 매창은 오른팔을 들어 그를 향해 쭉 뻗었다. “내 쪽으로 걸어오너라.” 매창이 오른발을 내디디려 할 때 허균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나를 마주보고 걸어오너라. 나한테서 눈을 떼서는 안된다.” 허균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매창은 허균과 눈을 맞춘 채 그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바로 눈앞의 허균이 강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멀었다. 강물에 치맛자락을 적시며 징검다리를 디디듯 걸음을 떼 놓았다. “잠깐만, 거기 서서 나를 바라보렴.” 허균을 바라보는 매창의 눈길이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깊어졌다. “됐다. 이제 됐다. 이리 와서 앉거라.” 매창은 말없이 그의 곁에 앉았다. “놀랐느냐? 내 그리 한번 해보고 싶었다. 내가 너를 내 앞에서 그리 움직이게 한 이유를 너는 알리라 믿는다.
바로 내 눈앞에서 나를 위해 이리 오고 저리 가는 너의 몸을, 너의 몸짓을 보고 싶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몸을 움직이는 너를 한 번은 보고 싶었다. 고맙다. 너의 몸을 갖지 못한 것을 더 이상 한스러워하지 않으마. 고맙고 기쁘다. 이리 마음이 좋구나.” “송구하옵니다. 제가 드릴 거라곤…… 대감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무슨 소리냐? 네 깊은 속은 내가 다 안다. 너에게 뭘 구하고자 그리 한 일이 아니다. 너로 인해 많이 웃고 많이 기뻤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매창을 걱정하는 허균에게 투정처럼 내뱉은 말이 그대로 자신의 삶이 되었다. “속담에 이르기를 기생이 늙으면 삼공일여(三空一餘)라 하였습니다. 삼공은 세 가지가 인생에서 없어진다는 뜻이지요. 재산이 비고 육체가 비고 명성이 비는 것입니다. 남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 이온데 그건 바로 이야기랍니다. 숱한 사연에 둘러싸여 빈 몸으로 늙어가는 신세, 그게 기생의 일생이지요.”
마루기둥에 기대어 앉아있던 매창은 스르르 마룻바닥으로 몸을 눕혔다. 집을 나와 숨이 붙어 있는 동안 바깥세상을 맘껏 돌아다니고자 했으나 하루해를 넘기지 못했다. 말할 때도 숨 쉴 때도 기침은 멎지 않았고 객혈이 쏟아졌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핏자국이 점점이 남아 있다. 평생 그녀의 몸과 마음을 뜨겁게 달궜던 피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붉고 생생하던 피가 얼마나 어둡고 갑갑한 색으로 변했는지 보라는 듯이.
세 가지가 검어서 고왔던 여인 매창은 어둠에 한 덩어리의 어둠을 보태며 이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흑단 같은 머리도, 머루알 같던 검은 눈동자도, 까마귀 깃털 같은 눈썹도 어둠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침침한 달빛에 그녀의 얼굴이 희게 빛났다. 지병으로 창백해진 얼굴이 마지막으로 한번 환히 빛났다. 한때는 이슬에 젖은 매화를 닮았던 얼굴에 쇳조각처럼 차갑고 결연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배에서 올라오던 숨이 가슴에서 나오다가 차츰 위로 올라와 목에서 밭은 숨이 나왔다. 귓가에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마지막으로 눈을 감을 때 딱 한 장면만 나타난단다. 살과 뼈를 바쳤던 일 하나만 잠깐 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진단다. 나는 요란하고 팍팍한 인생을 살아서 세상 떠날 때는 고요했으면 좋겠구나. 안개가 변산 앞바다를 삼키듯 그렇게 죽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만 사람의 비난과 눈총도 다 뒤에 남긴 채, 단 한 사람의 곡진한 마음 하나 가슴에 담고 안개처럼 떠났을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금슬이 유별났다.
그녀는 이승에서 건질 한 장면을 불러들이고자 애썼다. 단 한 사람의 얼굴을 돌처럼 단단히 몸 안에 끌어안고자 했다. 많이 아파했고 많이 그리워했던 사람. 많이 웃고 많이 울게 했던 한 사람. 그런데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굵은 붓으로 종이 위에 한 일자를 쓸 때처럼 검은 길이 눈앞에 지나갔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그녀의 인생에는 마지막으로 거둘 한 장면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남은 길이 지워졌다. 여기가 끝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가슴팍을 쇳덩이가 짓누르고 있었다. “매창아, 매창아. 내가 왔다. 그만 눈을 떠라. 너를 만나러 내가 왔다.” 심장이 바스라질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한마디 대답만이라도 하고 싶었다. 눈앞이 까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둠이었다. 애타게 부르던 목소리는 사라졌다. 넓적한 검은색 돌이 수만 권의 책처럼 차곡차곡 쌓인 채석강이 멀리 보였다.
“나는 당신이 속한 세상에서 당신을 훔쳐 오고 싶어요. 당신 손을 꼭 잡고 우리를 갈라놓지 않는 세상으로 달아날 거예요. 그곳에서 당신과 나,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인간으로 살고 싶어요. 당신은 나의 전부이고, 나는 당신의 전부인 그런 세상을 단 한 번이라도 살고 싶어요. 오래가 아니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좋아요. 분명 어딘가에 우리 둘만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거예요. 그곳을 찾아주세요. 당신은 나를 위해 그래야만 해요. 꼭 그렇게 해주시어요.”
그리움과 기다림 속에는 불이 없다. 그래서 이 모든 말들을 다 합쳐도 육체를 불 태울 수 없다. 격정이 사라지니 이제야 평안해졌다. 그녀가 평생 얻고자 한 것이었다.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배꽃이 펄펄 날리는 날 죽고 싶어요.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죽던 날은 배꽃이 진 자리에 매달린 작은 열매가 몸을 부풀리기 시작하는 하지 언저리였다. -최옥정<매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