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이 있노라며 여기저기 여행을 핑계로 ‘싸돌아다니는’ 당신이라면 잘 알 것이다. ‘생애 최고의 밥상’이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에서 호사스럽게 차려진 식사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최고의 밥상이 되란 법은 없다는 얘기다. 만약 당신이 시한부 인생이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근사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면? 여행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세계 최고의 음식을 즐기는 것으로도 사람들이 부러워서 안달 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런 레스토랑을 <맨즈헬스>가 엄선했다. 이제 짐 싸는 일만 남았다. 적당히 배가 고픈 상태가 좋겠다.
세인트 존ST. John (영국 런던)
영국 최고의 음식점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세인트 존. 이곳의 셰프 퍼거스 헨더슨Fergus Henderson이 요리한 ‘로스트 본 매로우Roast Bone Marrow’라면 먹다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귀신이 돼도 때깔 참 고와질 거다. 이는 깔끔한 하얀 식탁 위에 차려지는 골수구이. 커다란 숟가락으로 소스를 듬뿍 떠서 바삭하게 구운 식빵 위에 골고루 발라주고 바닷소금을 흩뿌려주면 간단하면서도 품격이 절절 넘쳐흐르는 요리가 된다. 이곳의 메뉴는 오직 ‘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영국 음식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아직도 영국 음식이 형편없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해 얼굴 더 안쪽으로 꾹꾹 밀어넣으려는 듯하다. 특히 식재료에 있어서만큼은 일말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 훌륭한 식당이다. 사랑과 정성으로 기른 ‘행복했던’ 동물로부터 얻은 식재료만을 사용하는 것이 세인트 존만의 특징이다. 이런 정신으로 헨더슨은 요리사들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 예전에 일하던 경비아저씨까지도 바삭한 돼지 꼬리와 건초에 쌓인 햄 그리고 적당하게 구운 새 요리의 맛을 잊지 않고 기꺼이 다시 찾아올 정도다.
엘불리elBulli (스페인 지로나)
세상에서, 아니 우주에서 예약이 가장 어려운 식당은 바로 이곳일 거다. 엘불리는 창의성의 극치에 도달하기 위한 유쾌하고 짜릿한 여행이자 모험과 도전이며, 무엇보다 음식 맛이 기가 막힌 곳이다. 페란Ferran과 알버트 아드리아Albert Adria 형제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팀은 음식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다. 스페인의 코스타 브라바Costa Brava 해안 후미진 구석에 자리 잡은 이 놀라울 정도로 자유분방한 느낌의 레스토랑이 없어지는 일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좋든 싫든 일단 이 식당을 예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조건 해놓고 봐야 한다. “음식 맛이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 “신나는 경험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대답은 ‘물론 그렇다’가 될 것이다.
퍼 세이Per Se (미국 뉴욕)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뽀얀 식탁보가 깔린 식탁에서 코스별로 제공되는 식사를 맘껏 즐길 수 있었던 생애 최고의 경험은 프렌치 론드리에서였다고. 그리고 토머스 켈러Thomas Keller가 운영하는 퍼 세이에서의 식사 또한 이에 못지않은 근사한 경험이라고 말이다. 이곳의 일품요리를 모두 맛보는 것보다 더 황홀한 경험은 없을 것이다. 최고의 재료와 창의적인 조리법 그리고 이 시대가 가장 존경하는 요리사의 흔적이 모두 들어간 최고의 결합체인 일품요리 말이다. ‘어떻게 켈러가 서로 다른 장소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는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둘 중 한 곳을 선택하라. 이틀 정도 단식을 하고 물만 마시면 위장의 용량이 커질 것이다. 그런 다음 그들이 제공하는 최고의 서비스를 즐겨라. 음식이면 음식, 서비스면 서비스,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완벽함 그 자체니깐.
신 후앗 이팅 하우스Sin Huat Eating House (싱가포르)
겉으로 보기에는 다소 지저분해 보인다. 서비스도 그다지 칭찬받을 만한 수준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맥주를 병째 갖다준다. (종종 얼음이 가득 든 컵을 별도로 주기도 한다.) 그리고 테이블들은 싱가포르의 유명한 홍등가인 겔랑Geylang가의 초입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크랩 비 훈Crab Bee Hoon’은 음식 외에 다른 것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게 만든다. 이는 스리랑카에서 공수한 거대한 게에 매콤한(신비하기까지 한) 소스와 국수를 곁들인 요리. 조금 비위생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고둥이나 대구찜, 새우, 가리비 등도 모두 한 번씩은 먹어볼 만한 요리들이다.
르 버나딘Le Bernardin (미국 뉴욕)
세계 최고의 생선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격식을 갖춘 서비스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랑하면서도 가격도 합리적인 레스토랑이다. 이곳의 일품요리는 상대적으로 절제된 미학을 추구하고 장식적 요소는 철저히 배제한 음식들이다. 그들이 제공하는 요리라면 언제든 흥미진진할 것이다. 기대해도 실망시키지 않는 그들이다.
살루미Salumi (미국 시애틀)
테이블 두어 개를 두고 샌드위치를 파는 부부가 경영하는 조그만 구멍가게 같은 식당이다. 이들이 유명한 요리사 마리오 바탈리Mario Batali의 부모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협소하기는 하다. 훈제요리와 기름에 살짝 볶은 다음 천천히 익힌 요리 그리고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콤한 특별 요리 등을 즐길 수 있다. 사실 바탈리 가족이 만든 음식이라면 어떤 것이든 양손으로 받아들고 볼 일이다.
카츠 델리카트슨Katz s Delicatessen (미국 뉴욕)
약 1세기 전 루스 앤 도터스는 먹을거리를 파는 행상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최고 수준의 동유럽 전통 청어와 훈제 벨리 록스(Belly Lox, 소금에 절인 연어) 그리고 철갑상어 등의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까지 왔다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카츠 델리카트슨에 들러 제대로 된 파스트라미(Pastrami, 훈제된 소의 가슴살)는 어떤 맛인지 음미해보는 것도 괜찮다. <맨즈헬스>가 ‘강추’한다.
에특세바리Etxebarri (스페인 악스페)
빅토르 아르구인조니츠Victor Arguinzoniz는 기발한 재료들을 집에서 직접 만든 숯으로 구워낸다. 어린 장어나 임페리얼 벨루가 캐비아Imperial Beluga Caviar, 굴 등의 해산물을 숯불에 구워낸다는 말이다. 어떤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지 않는가. 이론적으로 이런 재료들은 숯불에서 많은 양을 구워내기가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재료 하나하나를 위아래로 옮겨가며 구울 수 있는 도르래 덕분에 가능해졌다. 물론 그가 손수 제작한 작품이다. 이곳에서 한 끼라도 식사를 한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있는 꺼리를 만드는 셈이다.
수키야바시 지로Sukiyabashi Jiro (일본 도쿄)
지구상에서 가장 맛있는 스시라고나 할까? 80세가 넘은 지로 오노Jiro Ono는 평생 동안 옛날 방식 그대로 에도 스타일의 스시를 만들어온 스시의 달인이다. 스시에 오르는 생선과 밥은 정확한 온도를 유지한 채 손님에게 제공되고 김 또한 최상의 품질을 고집한다. 오노의 스시를 맛본다면 다른 곳에서 먹는 어떤 스시도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핫 도그스Hot Doug’s (미국 시카고)
사람들에게 ‘시카고 레드 핫Chicago Red Hot’이 뉴욕 핫도그보다 맛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미국 요리학계의 두 가지 위대한 혁신을 탄생시킨 근원지이기도 하다. ‘푸아그라 도그Foie Gras Dog’와 주말에만 맛볼 수 있는 오리 기름에 튀긴 프렌치프라이가 그것이다. 맛있는 음식은 반드시 비쌀 필요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음식들이다.
오클라호마 조스 바비큐Oklahoma Joe’s Barbecue (미국 캔자스)
최고의 바비큐를 만드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저마다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가슴고기(특히 숯불에 탄 끝부분)와 풀드 포크(Pulled Pork, 낮은 열로 장시간 익히는 바비큐 방법) 그리고 갈비 바비큐는 캔자스시티의 까다로운 입맛마저도 만족시킬 수 있는 품질을 자랑한다. 캔자스시티 최고의 바비큐, 이것이 곧 세계 최고의 바비큐라고 말할 수 있다.
을지면옥(대한민국 서울 을지로)
허름한 간판과 오래된 입구를 바꾸면 아마 을지면옥의 매력은 반감될 것이다. 이곳의 간판 메뉴는 역시 냉면. 을지면옥만의 밍밍한 맛에 중독되어도 <맨즈헬스>는 책임 못 진다. 물냉면 위에 팍팍 뿌려지는 고춧가루와 얼음 한 개 없이도 가슴속까지 시원한 육수는 이곳의 맛을 잊을 수 없게 만든다. 냉면 하나는 정말 우리나라 최고다. 아, 그리고 편육을 주문했다면 새우젓 말고 을지면옥만의 간장에 한번 찍어 먹어보라. 그 맛이 또한 ‘죽여준다’.
대추나무집(대한민국 경상남도 통영)
실비집이다. 당연히 술을 시켜야 한다. ‘술 한 병이 왜 이리 비싸?’ 하는 생각이 당연히 들지만 추가비용 없이 딸려나오는 안주를 보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간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신선함의 끝을 보여주는 해산물을 마음껏 먹으며 여유롭게 통영의 경치와 공기까지 즐길 수 있다. 꼭 먹어야 할 메뉴? 바로 ‘유곽(개조개를 다져 양념해 구운 음식)’이다. 그야말로 ‘안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다.
첫댓글 기회가되면 꼭갈게용^^
좋은정보 ㄳ
스크랩 해가요! 정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