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 본 예천
지난 달 29일 이른 아침 올 가을 첫 나들이에 나섰다. 먼저 유성IC로 들어가 호남선 회덕분기점에서 고속도로 상행선으로 들어갔다. 청원분기점에서 상주고속도로로 다시 들어갔다. 경북 예천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진 것이다.
가을 안개가 벗어지며 푸른 소나무에 앉은 왜가리 떼가 무슨 흰 꽃이라도 핀 것처럼 하얗게 그 모습을 드러내자 일행의 탄성을 자아냈다. 피발령 터널을 지나자 햇살이 온 누리에 곱게 퍼지며 저 멀리 산봉우리와 황금가을들녘이 그 모습을 선명하게 보이자 일행은 다시 한 번 더 탄성!
경상북도 상주군계에 진입한지 잠시 후 첫 휴게소-화서에 들어갔다. 휴게소에는‘교통사고 사망자 중 15%가 과속운전’‘고속도로휴게소 음주운전 집중단속’‘고속도로 카드 2010년 3월31일부터 사용중지’란 현수막이 각각 펄럭이고‘명실 상주곶감 직판장’이 추석맞이화장을 하고 고객 맞고 있었다. 상주 곶감은 해맞이 곶감으로 당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9시 조금 지나 남상주IC를 통과 3白(쌀과 누에 곶감)의 고장 상주에 들어서며 처음 도착한 곳은 임진왜란 당시 영호남에서 왜병과의 전투에서 용맹을 떨친 정기룡 장군의 사당- 충의사가 있는 유적지. 백일홍나무 꽃과 단풍이 제법 많이 떨어진 유적지에는 지도교사의 인솔 아래 유적지탐방 현장 학습하는 초등학생들의 발랄한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웃한 사벌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곳을 거쳐 520km 낙동강본류가 시작된다는 지점에 세워진 칠백리표지석 앞에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표지석 길 건너에 있는 경상북도 북부지역 천주교의 요람으로 지은 지 110년이 된 퇴강성당을 찾아보았다. 성당 마당을 청소하던 나이 드신 자매는 감나무에서 지금 막 떨어진 홍시 여러 개를 주어주며 유명한 상주곶감 만드는 감이라며 맛이나 보라고 했다.
낙동강 다리를 건너 낙동강과 금천 내성천 등 세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예천군이 손꼽아 내세우는 풍양의 ‘삼강주막’을 찾았다. 푸르고 높은 하늘 가을햇살이 봄 햇살처럼 노랗게 퍼지는 풍양면 삼강리 넓은 들 한가운데에 삼강주막 초가 한 채가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주막방 안에서 막걸리 한잔씩 나눈 초로의 두 남자가 몸소 주안상을 들고 나오고 주막 앞마당 여러 곳에 차려진 술상에서는 정다운 남녀의 담소하는 모습이 온기를 전해왔다. 주막 뒤에는 수령 450여 년의 노거수 호야나무 두 그루가 아름다운 수형에 건강을 자랑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농촌청년들이 장성하면 돌을 들어 올리는 힘을 보고 품값을 정했다는‘들돌’이 옛 날을 품고 앉아 찾아오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주막은 그리워지는 추억에 배고픈 옛날 어부와 농민들이 즐겨 찾아오는 명소로 자리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더구나 이 날은 추석을 앞두고 용궁시장에서 5일장 -대목장이 서는 날. 푸짐할 시골 대목장을 찾아가는 길에 용궁면 금남리 황금 들녘 한가운데 서있는 천연기념물 제400호 황목근(팽나무)을 찾아보았다. 몇 년 전 찾았을 때에 비해 주변을 많이 정비하고 가꾸어 쉬기도 편했으며 자목들은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복잡할 대목시장 점심시간을 비켜 양념 돼지불고기와 오징어불고기 등으로 유명한 시장 안‘단골식당’을 찾았지만 복잡하긴 여전히 손님 만원. 그러나 주문하면 비교적 빨리 나오는 음식들. 주문받는 식당 사람들은 이방 저방 바삐 오가며 주방에 대고‘돼지 하나 추가! ’‘오징어 2인분!’이라 소리치기에 정신없었다.
다음 찾은 곳은 산이 강물을 막아 만들어낸 육지 속의 섬과 같은 특이한 지형으로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을 자랑하는 용궁면 대온리와 함석리 일원 천혜의 자연 경관-回龍浦. 회룡포 백사장에 이르는 진입로 양변에는 청아한 재래종 코스모스와 비단 코스모스 백일홍이 만개해 찾아오는 이들을 가을 바람에 하늘거리며 맞고 있었다.
회룡포에서 나와 저수지내 자연적인 섬과 수령 100년 정도의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쉼터로 각광을 받고 있는 개포면 가곡리로‘가오실공원’을 찾아 그 아름다움에 박수를 보냈다. 아쉬운 것은 몇 해 전 군에서 3억여 원을 들여 공원 조성공사를 다시 할 때 뿌리를 다친 노거수 버드나무 몇 그루가 제명을 다 하지 못하고 고사목으로 서있다고 마을 할아버지가 들려준 사연. 공원 바로 이웃한‘이사리 쉼터’에는 몸체에 기묘하게 구멍이 뻥뻥 뚫린 느티나무가 무슨 목각처럼 눈길을 끌고 있었다.
공원에서 나와 개포면 내성천 경진교를 건너 퇴계 이황의 종손 우암 이열도가 1563년 호명면 백송리에 건립한 정자 仙夢臺에서 주변의 넓은 백사장과 소나무 울창한 경관을 즐겼다. 호안 공사 중인 선몽대에서 나와 천연기념물 예천 金塘實 송림을 거쳐 일대가 문화재와 상수원보호구역인 명승 제51호로 이름난 정자-草澗亭 원림을 찾았다. 초간정은 조선 선조 15년(1585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초간 권문해 선생이 세운 정자가 소실되자 그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현손이 용문면 죽림리에 다시 세운 정자.
기우는 가을 해. 서둘러 소백산 용문산 일주문 앞에 도착하니 오후 5시10분. 고색창연한 용문사 대장전안의 윤장대와 목불좌상과 대추나무로 만들었다는 목불탱을 보며 우리나라 불교예술의 훌륭함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며 음력 3월3일과 9월9일에만 돌린다는 대장전 좌우에 서있는 불경을 저장한 목제 윤장대를 보는 행운을 얻은 날이었다.
용문산 계곡에 일어나는 찬바람을 타고 귀가 길 고속도로에 들어서며 저 멀리 아름답게 물들던 가을저녁노을이 드리우는 어둠 속에 서서히 사라져 가면서 나들이도 저물어갔다. (2009. 10. 7. )
첫댓글 글을 읽노라니 나의 마음도 가을의 산하를 달리며 추석맞이 준비에 바쁜 사람들의 생활을 둘러 보는 것같은 여유로움을 느끼게 되는군 예천이라는 곳 기억해 두었다가 그 부근을 지날 때 한번 들려보고싶군
팽나무 이야기가 나오니 참으로 반갑군. 어릴적 팽나무를 오르내리며 팽으로 딱총 놀이 하던 그때 그 시절이 마냥 그리워...마음 속으로나마 옛 친구들의 안녕을 빌어 본다네...
정겨운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상상해보면서 잘 읽었네.
천규 덕분에 관광 한번 제대로 한 것 같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재주가 역시 뛰어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