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추천해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애용하는 비디오가게 몇곤에서는 없어서 아쉽게 생각하곤 했었지요.
어떤 영화이기에 그리도 추천을 해주셨을까 싶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감상평을 읽게되었습니다.
뛰어난 글이었습니다. 깊고도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고 따뜻한 감성으로 소화하신 후 멋진 해설을 펼쳐주셨더군요.
이 글도 클래식이라는 사이트의 이용자 감상평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글쓴이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작품: 성난황소(Rasing Bull) 한국어판명:분노의 주먹
감독: 마틴 스콜세즈
주연: 로버트 드니로,조 페시
제작: 1980년 미국 흑백스탠다드
이 영화는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작품이다.
먼저 이 영화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전에 같은 복싱영화 두편을 말하고자 한다.
1956년도작 폴뉴먼 주연의 "상처뿐인 영광"과 80년대의 히어로 실베스타 스탤론의 "록키"이다.
헐리우드에 있어서 50년대는 한마디로 배우의 시대였다.말론브란도,몽고메리 클리프트,진켈리,
프레드아스테어,제임스딘,록허드슨,율브린너,찰톤헤스톤,윌리엄홀덴,폴뉴먼등 기라성같은 남배우와
제니퍼존스,에바가드너,엘리자베스테일러,오드리헵번,그레이스켈리,마를린몬로,리타헤이우드,데보라카,
킴노박,레슬리캐론,에바마리세인트등 우리가 아는 은막의 화려한 여배우들이 일대 풍미한 시대이다.
지금도 이들의 전설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만 당시 영화를 본다는것은 곧 이 배우들을 보러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50년대의 미국영화에서 이들 스타들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상처뿐인 영광"도 예외는 아니어서 폴 뉴먼이 과연 전설적인 미들급 참피온복서 록키 그라치아노를 어떻게 연기할까 하는 호기심과 스타에 대한 애정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과거 테레비젼에서 자주 방영되었던 영화이고 나도 학창시절(8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이 흑백영화를 매우 즐겁고 진지하게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여러 좌절과 방황을 겪게 되나 결국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참피온에 오르던 폴뉴먼의 모습에
어린 내가 흥분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세련되고 잘 짜여진 각본과 대중의 우상인 스타배우 뉴먼이 얻어낸 흥행작이었던 영화이다.
동시에 나의 이 학창시절때는 학교 단체관람으로 "록키"(2편임)를 보았던 때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거의 20년이 지난 새 복싱영화 "록키"를 폴뉴먼의 "상처뿐인 영광"과 동시대에 볼수 있다는 것은 매우 행운이 아닐수 없다. 과연 영화가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왁자지껄하는 컴컴한 극장안에서 숨죽이며 보았던 스탤론의 "록키"는
과연 대단했고 시종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력적인 링의 대결의 연속이었다.
화려한 칼라가 눈에 부시도록 휘황찬란했고 우람한 스탤론의 근육과 용솟음치는 링에서의 격전,
아무리 고난에 찬 난관이라도 결국 이겨내고 마침내 승리의 환호성을 올리는 주인공,
찬란한 블라스밴드의 사운드가 흐르는 가운데 "아드리안!"을 외치는 마지막 스탤론의 승리자의 모습등은
나에게 있어서 감동의 물결,그 자체였다.
상영이 끝난후 내린 나의 결론은 이 이상의 복싱영화는 나올수 없고,
동시에 영화가 진보했다는 명쾌한 해답이었다.
그리고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어느덧 밀레니엄 2000년을 맞이하는 90년대의 끝자락 어느 한해,
한 친구집의 한쪽 모퉁이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우연히 한편의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바로 "성난 황소"이다.
이 영화를 보고 한동안 나는 충격과 전율에 휩싸이지 않을수 없었다.과연 어떤 충격일까.
우선 이 영화 "성난황소"는 50년대 미들급 세계참피온을 지낸 제이크 라모타의 전기를 영화화 한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숨김없이 고백한 라모타역에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했고 동생역에 조페시가 나왔다.
사실 나는 스콜세즈 감독의 여러 작품을 이 영화를 보기전에 이미 본 적이 있다.
"코미디의 왕","택시드라이버","비열한거리","좋은 친구들"을 보았는데,
평론가들이 극찬하던 스콜세즈감독의 이런 작품들을 보고 난 나의 소감은 한마디로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영화전체에 흐르는 독특한 감독의 일관된 시각이 돋보이는 면이 있고 "택시드라이버"나
"비열한거리"에서처럼 사회비판적인 측면이 눈길을 끈건 사실이다
또 독특한 카메라이동이나 사물의 본질을 잡아내는 예리한 연출력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소감은 한마디로 그래서 어쨌냐는 것이다.
"택시드라이버"나 "비열한 거리"가 도시의 어두운 뒷모습을 고발했다 치더라도 영화장면자체가 너무 어둡고 자극적이어서 보는 나에게는 또하나의 고통으로 다가선 것이다.
또 마피아세계의 허망함을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 "좋은 친구들"에서의 유려한 화면전개도 결국 깡패영화
아니냐는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줄것 같지 않아 보였다.
스콜세즈는 과연 이런 영화들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영화보는것 자체가 당황스럽고 힘들게 본다면 감독은 자신의 의도 내지는 철학을
제대로 관객에게 전달하지 못한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즉 아무리 현란한 카메라워크와 기술이 넘쳐난다 하더라도 보고나면 뭔가 허전한 구석이 느껴지던 많은 영화를 보았을때의 느낌과 비슷한 감정을 마티의 영화를 보고 다시 느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입견을 조금은 품고 마티의 또다른 영화 "성난 황소"를 보게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가 끝나고 나의 이러한 의구심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왜인가.
한마디로 나는 이 영화 "성난 황소"에서 감독 마틴스콜세즈의 의도한 바를 너무도 명확히 알수 있었고
또 이 작품으로 말미암아 마티의 다른 작품들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지금도 나는 마틴 스콜세즈의 다른 작품을 보기전에 반드시
이 영화 "성난 황소"를 먼저 보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제이크 라모타.영광과 굴욕의 뒤엉킨 굴레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상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인물.
그의 주먹은 무쇠같았고 돌진하는 모습이 마치 성난 황소같았던 링의 기린아.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 슈가레이 로빈슨을 유일하게 무릎꿇렸던 후퇴를 모르는 최고의 인파이터.
그래서 명성과 인기는 하늘을 찌를듯 하다. 마티는 흑백화면 곳곳에 불을 뿜는
성난 황소의 결전들을 생생하게 펼쳐놓고 있다.정말 드니로의 연기는 압권이다.
한번 보시기 바란다.
이러한 영광의 라모타 겉모습에 가리워진 커튼을 살짝 열고 숨겨진 그의 이면을 한번 들어가보자.
나지막한 흐느낌이 들려온다.아주 갸냘픈 신음소리같기도 하다.그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제이크
라모타,바로 자신이다.강철같은 이 사내가 어떻게 이런 연약한 모습을 보인 걸까.
뉴욕 뒷골목에서 성장한 라모타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한다는 것을 몸에 익힌 이다. 그 어느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고 어느누구도 믿지 않았으며 오직 자신,자신의 두 주먹만을 믿었고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그 자에 가차없이 주먹을 날렸다.
아내와 매니저인 동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도를 했다고 의심하여 가차없이 아내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한점 혈육인 동생에게도 무자비하게 폭력을 가했다.
마치 냉혹한 링의 승부의 세계를 사생활에서도 어김없이 적용한 결과인 것이다.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제이크의 세계는 그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것이다.
결국 타이틀을 뺏기고 아내에게서도 이혼당하고 동생과는 절교당하고,
설상가상 은퇴후 벌어논 돈으로 운영하던 나이트클럽에 미성년자불법고용으로 감방에까지 가게 된다.
철저히 몰락한 것이다. 이는 분명한 자업자득의 결과이다.
화려한 세계참피온에서 이제는 초라한 범법자의 신세로 전락한 라모타.
철장안에서의 그의 모습을 보자.
"바보.... 바보....바보.... 왜?.... 왜?....왜 그랬어?.... 이 바보자식아....
짐승이라고?.... 내가 짐승이라고?.....아냐....난 짐승이 아냐....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해?
.... 왜?....왜!...............",
어두운 감방안에서 차디찬 벽에 머리를 찧고 자학적인 주먹질을 해대며
오열하는 제이크 라모타의 모습을 보고,
아무리 제이크가 후안무도한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가슴속 깊이 애처로운 마음이 들지 않을수 없다.
바로 이 장면을 통해 나는 감독 마티의,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금세 알아챌수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일장연설이라 하더라도 바로 이러한 한 장면을 통한 감동을 넘어설 수 없다.
바로 마티는 제이크 라모타의 일생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자신의 철학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관객에게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능력은 대가의 예술가가 아니면 표현하기 힘든 것이다.
이 영화 "성난 황소"의 밑바닥에 깔린 감독의 원숙한 인간관을 알아챈다면
그의 여타 작품들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볼수 있게 된다."택시드라이버"나 "비열한 거리","좋은 친구들"들도
감독의 시선으로 다시 볼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 시선을 휴머니즘의 또다른 형태라고 부르고 싶다. 인간에 대한 애착을 부르짖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보고 스스로 느끼는,커다란 범주의 휴머니즘 말이다.
이건 아무 감독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마틴 스콜세즈 같은 거장만이 감히 해낼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는 막바지로 치닫는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삼류극장의 삼류배우로 전락한 라모타.
그래도 대기실에서 몇자 안되는 대본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라모타를 흑백카메라는 조용히 보여준다.
나갈 시간이 됐다는 신호에 뚱뚱해져 볼록 튀어나온 배를 헌 양복속으로 가까스로 추스리며 거울 앞에서 한번 크게 심호흡한다. "오케이,챔프,나가자!나가서 옛 실력을 보여주자!"
긴장한 몸을 풀기위해 이리저리 쉐도우복싱을 한번 해보는 라모타.어퍼훅,위빙,더빙.....
낮고 거친 목소리가 들려온다."우우우우우.....난 최고다! 난 최고다! 난 최고다!...... 우우우우우..... 난 최고다! 난 최고다! 난 최고다!". 화면이 꺼지고 자막이 오른다.
<바리세인들은 다시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불러 이르기를
진실만을 말하시오.
그 자는 죄인이오.
그는 대답했다.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 나는 모르오.
내가 아는건 다만 난 앞 못보는 이였지만
지금은 볼 수 있다는 거요. - 신약성서 요한복음
선생 헤이즈.P.마누기언을 추억하며.
사랑과 결의를 - 마티.>
어찌보면 제이크 라모타 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는 이해할수 없는 존재인지 모른다.
나 자신만 하더라도 술값으로 몇만원 호기지게 내놓구선
천원짜리 물건살땐 비싸다고 몇백원 깎으려고 흥정하는 이중성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제이크 라모타의 일생을 비판할 지격이 있는지 의심이 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마틴 스콜세즈감독은 이 모든 것을 사랑과 이해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영웅 라모타와 사회의 악 라모타, 링의 승리자 라모타와 가정과 사회의 폭력자 라모타,
영예의 순간의 라모타와,굴욕과 실패의 라모타 모두가 인간의 모습으로 한데 어우러져
마치 장엄한 교향곡같이 울려퍼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감독은 제이크 라모타를 통해
굴곡많은 인생의 의미와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내가 충격을 받은건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록키"나 "상처뿐인 영광"에서는 볼수 없었던 인생의 다양한 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 이 영화 "성난황소"가 실제 인간의 삶이 록키처럼 승리와 영광의 피날레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재삼 확인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복싱영화는 인생과 철학을 말할수 없다는 나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뜨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참으로 마틴 스콜세즈감독은 고마운 사람이다.
이밖에 이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으로 음악을 들수 있다.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간주곡이 오프닝과 피날레에 쓰이면서 더욱 시적인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또한 중반 요소요소에 삽입된 배경음악도 견딜수없게 매력적이다.
한번 보시면 동감하시리라 믿는다.물론 로버트 드니로의 전설적인 연기와 조페시의 호연도 빼놓을수 없다.
이 영화 "성난 황소"는 80년에 나온 근작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만인의 공통적인 공감에 의하여
영화사 불후의 고전으로 불리워지는 추세인것 같다.
고전이 옛날 것이어야만 하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또 고전의근거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나는 잘 모른다.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 "성난 황소"를 보고,
왜 "록키"가 현재 고전으로 불리워질수 없는지를 어렴풋이 알수도 있을것 같다.
짧은 내 생각으로는 명확히 말씀드릴수는 없다
다만 살아가면서 인생이 과연 무엇인가 하고 가끔 넋두리를 할때
이 영화 "성난 황소"가 언뜻 떠오른다는 말 한마디로 가름코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