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부산 국제시장 평양갈비 / (아래) 해운대소문난암소갈비. / 박정배 제공
부산 갈비 문화를 이끄는 두 축 중 하나는 국제시장이다. 시장에는 1952년부터 '암소갈비 전문'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릴 정도였다. 국제시장 안쪽 신창동 3가 주변에는 쇠갈비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네댓 모여있다. 1950년대 후반에 개업해 지금도 영업하고 있는 '평양 갈비'는 석쇠에 간장을 기본으로 한 소갈비를 구워 판다.
국제시장과 더불어 부산의 갈비 문화를 쌍끌이하는 지역은 해운대다. 1975년 당시 부산의 쇠고기 소비량은 서울(1인당 3.22㎏)보다 많은 3.38㎏으로 전국 최고였다(1976년 3월 13일자 경향신문).
'해운대소문난암소갈비'는 1964년 지금 자리에서 창업했다. 간장을 기본으로 했지만 생갈비처럼 보일 정도로 살짝만 간한다. 다이아몬드 커팅 유행도 이 집이 주도했다. 갈비집을 창업하기 전 동래 요정에서 일본인들에게 칼집 내는 것을 배운 창업자의 기술이 깃든 조리법이다. 하루 정도 숙성시킨 갈비를 숯불에 전골 불고기 불판처럼 생긴 오목한 철판을 얹고 굽는 것도 이 집만의 특징이다.
해운대소문난암소갈비집 (051)746-0003, 평양숯불갈비 (051)246-6955
수원 : 소금으로 간한 왕갈비
수원왕갈비. / 박정배 제공
수원 싸전 거리에 있던 해장국집 '화춘옥'은 1950년대 중반부터 갈비를 숯불에 구워 팔았다. 화춘옥에서 시작된 수원식 갈비는 길이 12㎝ 정도로 크게 썬 왕갈비를 소금으로 기본 간을 해 굽는다.
1924년 이용기가 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옛날 갈비 고명은 간장을 쓰지 않고 소금을 기본 양념으로' 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수원 갈비와 흡사하다. 화춘옥 주변에 갈비집이 한둘씩 생겨나면서 1960~70년대 싸전 거리의 갈비집들은 거리를 형성한다.
1970년대 말이 되자 수원에도 불어온 도심지 재개발 덕에 싸전에 있던 갈비집들은 수원지방법원 주변으로 이동하게 된다. 1980년대가 되자 자가용을 가진 '마이카'족이 등장한다. 수원 근처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 민속촌 등에서 여가를 보낸 사람들은 수원을 찾아 수원 갈비를 먹고 돌아갔다. 수원 갈비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본수원갈비 (031)211-8434, 가보정갈비 (031)238-3883
서울 : 1980년대 '가든'의 탄생
1929년 9월 27일자 '별건곤' 기사에 따르면 '3년 전(1927년경) 전동 대구탕집에서 갈비를 구워 팔기 시작한 뒤로 여러 식당이 생겨 사진판에 박은 것처럼 의례이 대구탕·백숙연계·군갈비를 팔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1946~1950년 소위 '해방 공간'에 발행된 신문에는 고급 요릿집에서 파는 갈비탕과 갈비구이, 갈비찜 같은 갈비 메뉴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1953년 창업한 '연남서식당'은 서민적 갈비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집이다. 갈비 기름과 심줄을 제거해 간장으로 간한 양념갈비를 판다. 창업 때부터 서서 갈비를 먹는 방식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본격적 가든형 갈비 문화는 1981년 강남 논현동에 문을 연 '삼원가든'에서 시작된다. 삼원가든의 성공은 1년 만에 강남에 갈비 가든 시대를 연다. 삼원가든 창업주는 강남 땅부자들의 공한지를 싸게 빌려 가든을 지었다. 초기에 서울의 대형 갈비집에서는 수원의 갈비 기술자를 많이 고용했지만 간장을 많이 쓴 서울의 먹거리 방식이 결합해 달달한 간장 양념을 사용했다. 갈비를 양쪽으로 갈라내는 양갈비에 다이아몬드 형태로 칼집을 낸 갈비가 만들어졌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마블링이 가득한 고급 쇠고기가 등장하자 생갈비 문화가 본격화한다.
연남서식당(연남서서갈비) (02)716-2520
포천 : 이동갈비
양념에 재운 포천 이동갈비.
갈비뼈를 반으로 쪼갠‘쪽갈비’가 특징이다. / 박정배 제공
경기도 포천 이동의 갈비는 양쪽으로 포를 떠서 가운데를 썬 쪽갈비다. 포천 이동갈비 탄생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설은 미군 부대에서 버린 갈비를 주워 포를 떠서 먹으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설은 1950년 9·28 수복 이후 군부대가 많던 포천에 장교를 상대로 갈비를 팔던 집이 생겨나면서라는 것이다.
이동갈비란 간판이 등장한 것은 1963년 일이고, 1976년 이동에 포장도로가 생기면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원조이동김미자할머니집 (031)532-4459
대구 : 경북 갈비 문화의 중심
대구 동인동 찜갈비./조선일보 DB
안동·영주·자인·산내·봉계·경주·언양 같은 유명한 경북의 한우 단지가 대구를 중심으로 모여있다.
경상도 사람들은 유독 졸깃하고 탄력감이 넘치는 갈빗살을 최고 부위로 친다. 동인동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찜갈비 골목이 있다. 1968년 '실비갈비집'에서 시작된 이 독특한 갈비 문화는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양재기에 고춧가루와 마늘을 듬뿍 넣은 찜갈비는 대중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대구 계산동·동산동이 있는 대신네거리 주변은 대구 섬유 산업의 핵인 '실가게'가 몰려있던 곳이었다. 이곳에 1950년대 말부터 고깃집들이 들어서 번성했다. 1961년 대구에 처음 갈비구이를 선보인 '진갈비'와 1970년대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생갈비 명가들이 자리를 잡고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다.
부창생갈비 (053)255-0968, 국일생갈비 (053)254-5115
영주 : 생갈비만 파는 갈빗살 골목
영주 시내에는 갈빗살 골목이 있다. 다른 부위는 팔지도 먹지도 않는다. 양념갈비는 먹지 않는다. 오로지 생갈비만을 짝으로 걸어놓고 주문과 동시에 갈빗살만을 발라내 구워준다. 1990년대 초반 본격화한 생갈비 시대와 더불어 생겨나 번성하고 있는 신생 음식 문화다.
축산식육식당 (054)631-1437, 영신숯불회관 (054) 634-4589
안동 : 즉석에서 버무리는 안동 갈비
안동의 외식 갈비 문화는 1970년대 초반 '구서울갈비'가 마늘 양념한 갈비를 팔면서 시작된다. 안동식 갈비는 대구와 달리 양념을 미리 재워놓지 않고 다진 마늘, 간장 등을 즉석에서 버무려 내는 것이 특징이다.
대구의 안동식 갈비는 마늘과 참기름을 주로 사용하고 하루 정도 재워 놓는 것이 안동의 갈비와 조금 다르다.
구서울갈비 (054)857-5981, 동우한우갈비 (054)858-7977
함양 안의·거창 원동 : 갈비찜&갈비탕
경남 거창 원동마을 갈비탕 / 박정배 제공
경남 함양 안의마을과 거창 원동마을은 내륙 갈비 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오래된 갈비 문화의 두 축인 갈비찜과 갈비탕만을 판다.
갈비탕에 두꺼운 본갈비(1~3번), 부드러운 꽃갈비(4~8번), 졸깃한 참갈비(9~13번) 부위를 한 점씩 넣어 갈비 전 부위를 맛볼 수 있게 한 것도 특징이다. 찜과 탕의 양념이 대구로 갈수록 강해진다.
대전식당(거창 원동) (055)942-1818, 옛날금호식당(함양 안의) (055)964-8041
해남·담양·광주 : 떡갈비
광주 송정떡갈비. / 박정배 제공
조선 중기부터 떡갈비 문화가 시작됐다는 이야기 등 많은 설이 있지만 근거는 없다. 1980년대 향토 음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부정확하다. 1967년 독일 대통령 뤼프케 부부가 방문했을 때 육영수 여사가 이들을 위해 전라도식 갈비구이를 내놓았다는 기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해남 '천일식당'에서 1960년대부터 만들기 시작한 떡갈비는 갈비를 심줄을 제거해서 양념을 섞어 구웠다. 광주광역시 송정리에서는 돼지갈빗살을 기본으로 소고기를 다져 섞어 구워 낸 갈비를 판다.
송정떡갈비 1호점(광주) (062)944-1439, 천일식당(해남) (061)535-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