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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특집 ─ 시의 공간 : 경기 서북부
가까운 변방邊方과 시적 유랑의 초석礎石들
──경기 서북부-강화, 김포, 고양, 파주를 중심으로
유종인
뭍에서 보면 강화江華섬 가는 길목에 김포金浦가 넉장거리로 자라목을 빼고 맞는다. 그렇게 여유로운 국면이 아닐 수도 있다. 넉장거리가 웬말이냐고 나비눈을 뜰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막무가내의 사내가 벌이는 몸태질을 떠올려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쪽의 기운이 완연하다. 김포는 넉넉한 완충의 지세이며 뭍과 바다의 점이지대漸移地帶로써 잃은 것들에게 회복의 넉넉함을 충만한 것들에게 나눔의 여백으로 갈마들어 있는 땅이다. 거처의 땅이면서 유로流路의 지형을 겸한다.
어렸을 적 제사에 쓰이던 숭늉빛깔의 김포약주藥酒의 기억은 그 지역의 특유한 인문적인 정서의 맛으로 돌올하다. 그때 김포를 다녀간 적이 없지만 이미 그 김포약주에서 그 지역의 인심과 속내와 문화의 저간이 배어있는 분위기를 이미 선취했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억측을 넘어서는 그 지역 고장 술이란 없다. 더 뽐내거나 더 치장하려는 맛이 있다면 그대로 그 고장 술에서 잔 맛이 남는 경우다. 김포는 그렇게 음전하면서도 약동하는 여운이 깊고 좁은 여울의 거칠은 물살이 있는 듯 하면서도 너른 평야의 넉넉한 고요를 두루 가졌다. 어느 한 편을 선점하지 않는 가운데, 김포는 그 넉넉한 오지랖으로 원래 포구의 뱃길이 번성한 곳이면서 우리나라 원조의 하늘길을 거느린 곳이기도 하다. 하늘길 뱃길에 더하여 뭍길이 당연히 합해짐으로 김포는 활기의 맥脈을 거느린 여유롭고 늡늡한 땅이다.
수도권 서울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서울과는 완연히 다른 여러 겹의 문화의 유속流速을 가졌다. 그래서 김포는 윤똑똑이처럼 굴지 않으면서도 짐짓 모르는 바가 없이 두루 걸친 다양한 결속의 냅뜰성이 있다. 그러니 이 땅에서는 거지들도 사통팔달의 길눈으로 쉬 거지가 되기가 오히려 벅차지 않았을까 싶다. 산다는 것이 여러 길들의 가능성 앞에서 더욱 활기찰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다. 그 땅의 오래된 지기地氣와 쉬 거세되지 않은 분위기만으로 그 땅의 미적이들에게 또 다른 심성을 깃들게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천혜라 할 수 있으니, 그 땅의 지렁이나 하루살이도 뭔가 다른 맥을 거느리지 않았을까. 자부심은 어느 비루하고 척박한 땅에도 더해질 수 있는 것이려니와 누구에게나 그 고향이 갖는 위무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대를 골목 끝 어둠속으로 보내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의롭지 못한 만큼을 걷다가
기쁘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울다가
슬프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취하여
흔들거리며 가는 김포행 막차에는
손님이 없습니다
멀리 비행장 수은등만이
벌판 바람을 몰고와
이렇게 얘기합니다
먼 훗날 아직도
그대 진정 사람이 그리웁거든
어둠 속 벌판을 달리는
김포행 막차의 운전수 양반
흔들리는 뒷모습을 생각하라고
──박철, 「김포행 막차」 전문
한 시대의 지역이 갖는 여러 풍경의 속내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 특정한 고장의 정체된 분위기라 해도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시공간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박철에게 있어 김포는 ‘흔들거리며’ 가는 김포행 막차의 버스이지만 적막감 그 이상으로 각인돼 있다. 그것은 한 시대의 가차운 변방을 살아야 하는 존재의 ‘의롭지 못한’ 자책과 ‘기쁘지 아니 한 시간’ 과 ‘슬프지 아니 한 시간’을 외돌토리로서 살아야 하는 견딤이기 때문이다. 그 황량하고 광막한 시간의 변방에 놓인 자에게 김포행 막차는, ‘손님이 없습니다’라고 일길一喝하는 듯하다. 결국 존재에는 손님이란 있을 수 없고, 쓸쓸한 주인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행세가 아니라 행위의 당연함에서 물러설 수 없는 삶의 요건을 드러낸다. 그러한 존재에 대한 정의는, ‘김포행 막차의 운전수 양반/ 흔들리는 뒷모습을 생각’ 해보면 너무나 숙연하게 되비칠 수밖에 없다. 상처와 견딤, 아픔과 승화가 도식적인 존재의 성찰을 이끌어내는 보편의 땅은 결국 그 하늘 아래 사람을 익힌다. 알아서 익히는 바가 있고 고통에 성숙된 익힘이 있으며,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는 소소한 견성見性의 익힘이 아울러 거기 배인다.
이런 존재의 쓸쓸한 분위기를 내면적인 차원에서 들여다볼 때의 김포는 고향의 적막감과 모성이 묘하게 아울러 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김포가 하나의 고장에서 도시로의 탈각을 보여줌으로써 문명적 심화의 전환점, 그 변곡점變曲點에 놓여있음을 드러낸다.
김포평야에 아파트들이 잘 자라고 있다
논과 밭을 일군다는 일은
가능한 한 땅에 수평을 잡는 일
바다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수평에서의 삶
수천 년 걸쳐 만들어진 농토에
수직의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농촌을 모방하는 도시의 문명
엘리베이터와 계단 통로, 그 수직의 골목
잊었는가 바벨탑
보라 한 건물을 쌓아 올린 언어의 벽돌
만리장성, 파리 크라상, 던킨 도너츠
차이코프스키, 노바다야끼……
기와불사 하듯 세계 도처에서 쌓아 올리고 있는
이진법 언어로 이룩된
컴퓨터 데스크탑
이제 농촌이 도시를 베끼리라
아파트 논이 생겨
엘리베이터 타고 고층 논을 오르내리게 되리라
바다가 층층이 나누어지리라
그렇게 수평이 수직을 다 모방하게 되는 날
온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탑이 되고 말리라
김포평야 물 괸 논에 아파트 그림자 빼곡하다
──함민복, 「김포평야」 전문
농촌이었던, 그리하여 서울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객관적으로 시市의 요건에 합당하면서도 왠지 읍邑의 뉘앙스가 더 친숙한 김포에도 어쩔 수 없이 도시화는 진행되었다. 하늘길과 뱃길을 두루 갖추었으되 그 화려한 외적 치장이나 수사修辭와는 멀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건 아마도 하늘길을 열 수 있는 늡늡한 들판과 뱃길을 열 수 있는 항포구의 지형, 그리고 수도권에서 제일 가까운 평야平野를 거느렸기 때문이다. 함민복에게 그만큼 김포라는 의미는 여느 지방 소도시의 여유로운 도시화의 기운보다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수천 년 걸쳐 만들어진 농토에/ 수직의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는 현실의 자각이야말로 문명의 반성 없는 확장의 무서움에 대한 끔찍한 고발이 아닐 수 없다. 수평의 자연적 활성活性을 망가뜨리는 수직의 경직성硬直性의 폐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 마지노선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자각은 오히려 존재의 위기처럼도 보인다. “이제 농촌이 도시를 베끼리라”라는 절망에 찬 진술은, 항차 김포라는 지역에만 한정된 경고가 아니라 전 한반도 아니 전全지구적 도시화의 국면에 대한 우려가 깔린 것이다. 평야에는 평야의 초록들만 살게 할 수가 없을까, 하는 아주 소박한 자연에 대한 옹호가 그의 인간주의이자 숨탄것들에 여백의 원형공간을 주고 싶은 간원懇願일 수도 있겠다.
마니산摩尼山은 한반도의 배꼽이라는 말이 전한다. 마니산 꼭대기에서 제주 한라산 백록담까지와 북쪽으로 백두산 천지까지의 거리가 같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나 짜맞춰놓은 듯 아득한 선대先代의 의취意趣가 있어 보인다. 때마침 그 정상에 하늘님께 제를 올리는 천제단이 있다는 사실도 예사롭지가 않다. 각종 대회의 성화聖火가 이곳에서 채화되기도 한다. 북쪽과도 아주 가깝다. 예전에는 북측의 대남선전방송의 확성기 소리가 아침잠을 깨우기도 했을 터이다. 시대를 훌쩍 거슬러 올라가면 팔만대장경이 호국의 대승적 경지에서 새겨진 곳이기도 하다. 외적의 침임 때 몽진蒙塵의 거처가 된 섬이기도 하고, 숱한 조선조의 왕과 왕족들이 유배를 와 유명을 달리한 비운의 땅이기도 하다.
머묾과 옮겨짐이 가장 빈번한 섬이었다. 지금은 연육교가 여럿이라 뭍의 정취가 더 완연하지만 이 섬과 뭍을 가르는 강과 바다의 갈마듦은 또한 어떤 존재의 경계, 그 경계의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무얼 하러 여기 왔는가.
서해는
적요한 바다의 가슴에 한강과 임진강을 품는데
나 무얼 더 찾으려고 예 왔는가.
이쪽 섬에 도래한 철새같이
내 반 평생의 절반은 따뜻한 하늘이 그리워 울었고
저쪽 뭍에 웅크린 산줄기같이
내 반평생의 절반은 응달 양달에 순종하였다
(……중략……)
왜소나무 울울한 야산 한 자락 깍아 일구는 밭뙈기
어린 자식들은 언제 커서 여기서 저무는 해에 안길 것인가.
질긴 쑥 뿌리는 캐도 캐도 돋아나 둔덕을 덮는다
내 육신이 기거하는 집은 고독하구나.
염하를 건너가면 아침은 내게 밀물이되어 세상에 넘치라 하고
염하를 건너오면 저녁은 내게 썰물이 되어 세상에 좀 모자라라
──하종오, 「염하鹽河에서」 부분
염하는 강화와 김포를 연결하는 강화대교 아래 강물과 바닷물이 합수된 곳이라 한다. 달리 부르면 바다도 아니고 강도 아닌 곳이며, 바다이면서 강이기도 한 일종의 점이지대인 셈이다. 이런 해안 지리적인 인식보다 앞서는 것은, 한 시인에게 존재의 거처를 옮기는 행위는 단순히 이사의 향방이 아니라, 존재의 지향이 바뀌는 입지의 성격이 강하다. 강을 건넌다는 것과 바다를 건넌다는 것, 이 둘은 예로부터 존재의 변경變更/邊境에 해당하는 일종의 결단일 수도 있다. 하종오에게 강을 버리고 바다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존재의 다양한 층위를 경험하는 신산스러운 확장의 의미도 겸한다. “밀물이 되어 세상에 넘치”는 존재의 외적 성취도 있지만, “썰물이 되어 세상에 좀 모자라라” 는 존재의 내적 깊이에 대한 응시도 버릴 수 없는 화두인 셈이다. 생활의 그림자와 존재의 불안이 뭍에서의 노을과 바닷가 썰물진 뻘에 드리운 번들거리는 노을을 분명 달리 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존재의 변경이 있는 곳으로서의 강화江華는 이 시인에게 뿐만 아니라 다시 함민복에게도 분명 다른 감성의 지형을 요구했을 터였다.
바다로 내린 마니산 자락에 포구로 가는 길이 있네
길이 끝나는 산모퉁이에 상여보다 작은 곳집이 있고
바다로 가려면 그 길을 지나야 하네
사람들은 제방을 쌓고 그 너머를 바다라고 부르네
가끔 제방이 터지기도 하네
달맞이꽃 피어나는 제방길을 사이에 두고
산 사람은 배를 타고 바다로 가고
죽은 사람은 상여를 타고 산으로 가네
밀물과 썰물을 타고 오가는 망둥이여
육지도 바다도 아닌 뻘밭의 세월이여
두 개의 포구가 있는 길이여
──함민복, 「동막리 바다로 가는 길」 전문
시인은 떠돈다. 그 떠돎은 일종의 모색의 기운이 완연하다. 모색이 아닌 떠돎은 여행도 되지 못한다. 예전 작은 동막교회 밑에 세들어 살던 시인의 거처에서 내려다보면 동막리 뻘과 밀물 든 앞바다의 출렁이는 고요가 살았다. 그 바다는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자연스러운 풍경의 화두를 건넨다. “산 사람은 배를 타고 바다로 가고/ 죽은 사람은 상여를 타고 산으로 가”는 생사生死의 엇갈림을 선연하게 엿보기에 더욱 그렇다. 그것은 “상여보다 작은 곳집”을 지나온 세월의 풍경이자 깨달음에 속한다. “육지도 바다도 아닌 뻘밭의 세월”을 떠돎에 바쳤던 시인의 행려가 결국 드넓은 시간의 바다에 임박한 삶의 화두를 생生으로 육화해내고자 하는 행보에 다름 아니다. 절박함은 늘 바다가 한순간도 놓치지 않은 시적 기운이 아니었던가. 자칫 방심하면 생사가 한 호흡으로 갈리는 출렁거리는 물의 대지가 곧 바다다. 그렇듯 한 삶은 “두개의 포구가 있는 길”처럼 다기多岐의 시절, 그 갈래를 품어왔던 것이다.
강화는, 여러 얼굴을 가진 뭍인 섬이다. 거기엔 여러 표정의 역사적 우여곡절들이 쉽게 지울 수 없는 인상과 속내를 배어놓았다. 그 역사적 지층은 현재적 삶의 분위기를 다양한 층위에서 엿보고 또 당대의 삶으로 우려내 살 수 있는 기운으로 왕성하다. 그래서인가, 강화 가는 버스는 예사롭지 않다. 왠지 몇 겹의 시간을, 몇 개의 고장을 능히 하나로 아울러 살고 있는 곳으로 데려가는 몇 안 되는 가차운 변방으로 종요롭다. 어쩌면 거슬러 백운白雲 이규보 선생의 기운이 이들 후배 시인의 시적 역량에 돌올한 것도 후살이 하듯 강화에 끼쳐든 인연과 멀지 않다.
「다시 쓰는 택리지」에서 신정일은 고양高陽을 이렇게 쓰고 있다.
고양시 일산지역은 예전 서울과 개성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한다. 경의선이 1905년 개통되었으나 이 지역 토박이들은 그 덕을 보지 못했다. 장안에서 실리와 속셈이 재바르기로 소문난 개성과 서울 상인들 때문이었다. 그 때 항간에 떠돈 말이 ‘실속 없는 일산 사람들’이었고, 일산 사람들은 두 도시 사람들로부터 받은 시달림으로 인해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을 보면 “저놈을 개성으로 보낼까 서울로 보낼까”라고 지청구를 늘어놓듯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일산은 그런 조국분단과 신도시 개발로 인해 자족적인 친환경도시로써의 면모를 나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서울 수도권과의 지역적 친연성 때문에 토박이 시인들보다는 이주해 온 시인들의 제2, 제3의 거처로서의 면모가 더 확연한 편이다.
대보름 뒷날 택배가 왔다
나물과 부럼과 과일이
부산에서 일산까지 건너왔다
찰밥은 먹었느냐 삐뚤삐뚤한 글씨와 함께
찰밥에 빈속 채우고
찌그러진 사과 한 알 깎는데
사과, 찌그러진 쪽으로 씨앗이 없다
씨앗이 사과를 부풀게 하였구나
씨앗을 먹이기 위해서 사과는
한쪽으로 기우뚱 몸이 무거웠겠구나
씨앗을 놓친 달이 기운다
기운 달이 대보름
젖을 물린다
부산에서 일산까지
택배로 건너온 달,
환하게 기운 쪽에서 울컥
찡한 시장기가 치민다
──손택수, 「대보름, 환하게 기운 쪽」 전문
환하게, 한쪽에서 오랜 정주定住의 삶을 옮겨온 사람에게 일산一山은 아직도 “씨앗을 먹이기 위해서” “한쪽으로 기우뚱 몸이 무거운” 사과나 달의 이미지로 전환된다. 부산이라는 모성母性은 일산이라는 슬하膝下를 먹이는 한쪽으로 기운 달이 된다. 불평등과 편파의 기울음이 아니라 먹이고 먹여 살리는 생명의 기울임인 것이다. 시인이 들여다보는 부산과 일산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탯줄을 갖게 된다. 타관他關이 아닌 본향本鄕의 일맥一脈이 피돌기를 하는 순간인 것이다. 낯설음은 잦아들고 먼 데와 가차운 데가 유랑의 낯섦을 접는 한 초석礎石을 주변 어딘가에 슬그머니 그림자처럼 놓게 되는 순간이다. 그러자 곧 유랑의 친숙함은 정주定住의 새로움, 그 싱그러운 관심을 사방으로 열게 된다. 차고 기우는 달, 그 달을 이젠 부산에서 일산으로가 아니라, 일산에서 부산으로 되돌려주고 되갚아주는 넉넉함의 여유가 싹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떠돎과 유랑의식은 자기 혼자만의 몫은 아닌 모양이다. 시인에게 일산은 누군가 정주를 위한 제2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파견派遣의 현장으로 신산스런 밥벌이의 곤혹스런 땅이기도 하다.
손바닥이 끈적하다, 공사장을 떠돌다
내 사는 화정 인근까지 파견을 온 동창 녀석
쇠심 박은 다리를 절뚝절뚝 파이프관과 관을 잇고 조이며
허공을 기어오르는 비계공이 되었다
쇠파이프를 거미줄 삼아 살다 보니
몸속에도 쇠거미줄이 생겼다고
멋쩍게 웃는 녀석
그의 포획물은 결국 그 자신이었단 말인가
제 몸에 갇힌 거미, 네가 노래하는 하늘엔
내딛는 곳마다 발목 지뢰가 묻혀 있어서
언제 터질지 모른다고
발판을 거듭 더듬거리는 시늉을 하더니
딛고 선 땅도 허공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었을까
건네온 악수가 풀리지 않는다
공사장 근처 끈적한 쇠파이프들,
장마 내내 입에 쳤던 거미줄이
우글우글하다
──손택수, 「강철 거미」 전문
허공에 길을 내는 공사현장의 비계공飛階工이 허방을 딛지 않으려 긴장해야 하는 곳은 일산의 ‘화정花井’이다. 옛말로 꽃우물이라는 지역이다. 격세지감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이곳에서 “쇠심 박은 다리를 절뚝절뚝 파이프관과 관을 잇고 조이”는 허공의 “강철 거미”로 생계를 잇는 현장이다. 꽃우물이라는 시대와 동떨어진 지역에서 문명의 강퍅함을 온몸으로 부딪혀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일산은 아직도 안온한 거처의 뉘앙스보다는 강철 꽃잎처럼 떠돌다 가야하는 꽃우물 없는 꽃우물 동네일 수도 있겠다.
일산종합시장
고양체육관
체이스컬트
농협
틈투성이다
틈 사이로 여러 갈래
가느다란 골목길
가시버시 세 쌍이
아이 하나 데리고
노래 부르며 올라간다
노래 아직
내게 들리지 않고
짐작은
아리랑,
하늘은 반지 같은
흰 초승달 끼어
세밑
아직
멀었다.
──김지하, 「세밑」 전문
여기 또 한 사람의 떠돎의 자리를 옮겨 앉힌 시인이 있다. 김지하는 다른 「일산 시첩 5」에서 “밤낮/ 굿치는 소리 들린다”라고 했다. 그에게 무병巫病에 가까운 신들림의 시혼이 갈급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도당굿으로 유명한 일산지역의 굿마당은 해마다 그 재현을 위한 관내의 행사가 정발산鼎鉢山에서 치러진 적이 있다. 굿이란 무엇인가. 죽음과 삶이 한데의 노래를 부르는 신명神命의 몸짓이며 우리네 삶의 간원懇願들이 두루 펼쳐져 그 응어리진 속내를 삭여내는 해원解寃의 한마당인 셈이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굿이란, 아니 김지하에게 굿이란, “내게 아직 들리지 않”는 “틈투성이들”을 “아리랑”같은 것으로 메워주는 신명의 이심전심인 것이다. 혼자만 아는 내면의 독백이 아니라, 혼자 알아도 여럿이 들썩이며 흥이 돋고 슬픔이 번지며 기쁨을 되갚아주며 원한과 분노가 저절로 삭아빠지는 허방, 그 긍정의 틈을 두루 열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 하나 데리고/ 노래 부르며 올라간다”라는 간명한 묘사를 그냥 예사롭게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 된다. 저들의 노래가 부럽기까지 한 그 대목에서 아직도 떠도는 자의 흘러간 노래가 필요가 것은 아니지만, 시인에게 허방의 틈이 아닌 신명神命의 공명을 트여올 수 있는 계제가 그리울 수도 있다. 그리하여 외형적인 시기로써의 “세밑”만이 아니라 뭔가 몸과 맘이 다수굿이 혹은 치밀듯이 열어내는 그득한 노래의 틈, 아니 틈의 노래를 궁구窮究하려는 눈빛이 초승달처럼 일산 어느 허방엔들 걸리지 않겠는가.
이 길 저 길 좁은 길을 거쳐
사람이 자주 타고 내리는 버스를 타고 가며
남원추어탕 집도 지나고
파주옥 앞도 지나고
전주비빔밥 집도 지나고
스캔들양주 간판과
희망맥주 앞을 지났다
고등학교 앞에서는 탱글탱글한 학생들이
기분 좋게 담뿍 타는 걸 보고 잠깐 졸았다
어느새 버스는 뉴욕제과를 지나서
파리양장점 앞에서
천국부동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천국을 빼고는
이미 내가 다 여행 삼아 다녀본 곳인데
완행버스를 타고 가며
남원, 파주, 전주, 파리, 뉴욕을
다시 한 번 다녀온 것만 같다
고등학교도 다시 다녀오고
스캔들도 다시 일으켜보고
희망을 시원한 맥주처럼 마시고 온 것 같다
──공광규, 「완행버스를 탔다」 부분
파주는 멀다, 그러나 일산에서는 이웃동네다. 서울에서 파주가 부산보다 멀기야 하겠는가, 아니 대전보다 멀지도 않다. 그런데도 파주는 북쪽으로 당겨져서 어딘가 멀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소회일 것이다. 완행버스를 탔던 시인은 파주가 아니라 ‘파주옥’ 앞을 지난다. 아니 걸어서가 아니라 버스 차창으로 스치며 지났을 것이다. 그래도 파주옥을 있게 한 것이 파주坡州다. 가보지 않았지만 벽제에 가면 용미리 미륵석불彌勒石佛이 있다 한다. 전하는 말은 가뭇없고 실제는 눈앞에서 오롯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전하는 말, 전하는 시에 기대어 파주는 여전히 오연하며 또 추억이 현재형으로 갈마들어 있는 곳 같기도 하다. 경기도 북서부의 최북단에 자리한 파주는 어딘가 외돌토리 같지만 그 어느 다른 고장과도 어깨를 나란히 해도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은 친근함도 든다. 남북경제협력의 출입문 역할은 물론 민통선 지역의 역사적 환경적 가치를 두루 품고 있는 곳이다. 기분 좋게 “스캔들도 다시 일으켜보고/ 희망을 시원한 맥주처럼 마시고 온 것 같”은 곳으로 파주를 다시 떠올려봐도 되지 않을까. 그것은 단순한 기대지평이 아니라 시詩가 품어야 할 선험적인 인식의 한 아우라가 아닐까 싶다.
우황 든 소는 캄캄한 밤
하얗게 지새며 우엉우엉 운다
이 세상을 아픈 생으로 살아
어둠조차 가눌 힘이 없는 밤
그 울음소리의 소 곁으로 다가가
우황 주머니처럼 매달리어 있는 아버지
죽음에게 들킬 것 훤히 알고도
골수까지 사무친 막부림당한 삶
되새김질하며 우엉우엉 우는 소
저처럼 절벽울음 우는 사람 있다
우황 들게 가슴 치는 사람 있다
코뚜레 꿰고 멍에 씌워 채찍 들고서
막무가내 뜻을 이루려는 자가 많을수록
우황 덩어리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 많다
우황 주머니 가슴에 없는 사람
우엉우엉 우는 소리 귀담지 못한다
이 세상 소리내어 우엉우엉 울지 못한다
──최창균, 「소 3」 전문
최창균은 파주에서 소를 키우는 시인이다. 이것이 그의 근황에 과문寡聞한 나에게 현재형인지 과거형인지 아직 가늠할 길이 없다. 다만 그가 소를 키웠거나 키우고 있을 개연성만은 충분하다. 그는 생업으로 소를 키웠고 그 소를 통해 파주라는 지역을 살았고, 살고 있다.
파주에서 소를 키운다? 라는 사실은 내게 하나의 과거형이나 현재형을 떠나서 하나의 의문, 실존적인 현장성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결코 낭만적 사육이나 전업농의 축산이라는 측면보다는 시인의 운명적인 생활의 여건을 특정하는 대상으로 육박해오기 때문이다. 우황牛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소의 쓸개에 병적으로 뭉쳐져 생긴 응결물이다. 그러다보니 그건 증상이지 특장이 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우황이 사람에게는 또 다른 병증에 효과를 발휘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병으로 병을 고치고 다스리는 셈이니 그 묘함은 지극한 슬픔으로 돌올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소의 병든 쓸개의 특이한 효험에만 주목하면 이 시는 별것이 아닌 게 된다. 시인은, “골수까지 사무친 막부림당한 삶/ 되새김질하며 우엉우엉 우는 소”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결코 소라는 대상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로 번져간다. 그런 “절벽울음” 뒤에야 우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고통의 되새김질로부터 소는 우황을 만들지만, 사람에게는 그런 고통의 되새김질이 결코 정화된 의식을 쉽사리 일으켜내지는 못하는가 보다. 그것은 그대로 고통, 그 자체로 머물러 삶을 어지럽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런 우황든 소를 통해 시인은, 인간 보편의 욕망에 대해 깨닫게 된다. “막무가내 뜻을 이루려는 자가 많을수록/ 우황 덩어리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 많다” 욕망에 좌절당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막무가내”라는 부사어가 가지는 어떤 모종의 힘을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막무가내는 우리가 경기 북서부의 네 고장을 두루 살펴보는 가운데, 욕망과 시대에 좌절한 혹은 불안해하고 낯설어하는 가운데 유랑을 접고 정주定住의 초석을 놓고자 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화두처럼 놓은 말인 듯 싶다. 막무가내는 부정적으로 쓰일 때 인위人爲의 부자연스러움이고, 긍정적으로 쓰일 때 막무가내는 순정한 도전성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어느 편이냐는 그걸 읽어내고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를 성찰하는 하나의 가늠자 말로 적확하지 않을까 싶다.
파주에서 고양(일산)은 한강 이북이고 김포와 강화는 한강 이남의 삼이웃 같다. 아니 더 멀리서 보면 한강을 혹은 바다를 마주하거나 에둘러 놓고 서해의 말을 주고받는 듯도 하다. 그 안에 시인이 깃든 사람이 머물고 떠나며 고장의 맛과 멋을, 죽음과 삶이 갈마든 정취와 깊이를 읽어 노래하는 것이리라. 어느 편이냐 하면, 모두의 편이다. 그러나 홀로 있는 밝혀지지 않은 것들의 편도 당연하다. 그걸 더 오롯하게 살펴 읽어낼 마음의 눈길은 머물면서도 떠돌고 떠돌면서도 지극히 머물러 깊어지지 않겠는가.
유종인 / 1996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수수밭 전별기』가 있고, 산문집 『염전』 『산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