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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의 공의로운 심판 |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메시아와 다가오는 하늘나라를 위한 회개를 선포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요한은 감옥에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과 그분의 복음을 듣습니다. 요한은 죽음을 앞두고 구약의 보복하시며 복수하시는 하느님, 죄인을 징벌하시어 의인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복음은 요한을 심란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심지어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 가르치십니다. 구약의 율법적 정의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탈출21,24)의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 입니다. 물론 구약에도 보복하지 말라는 말씀,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레위19, 18; 잠언20,22. 25,21-22; 집회28,1. 5.)이 있지만, 실제로 이 말씀에 근거한 율법이 실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율법적 정의는 죄악에 대한 동태복수법을 인정하면서 그로인한 복수의 악순환을 경계하는 수준이고, 결코 인간이 율법의 실행을 통해 죄악 그 자체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될 수 없다는 한계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래서 구약의 예언자들은 율법적 정의의 한계를 초월하여 죄악으로부터 해방과 구원을 가져다 줄 하느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희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은 곧 하늘나라의 주권과 통치를 뜻합니다. 하늘나라의 심판과 주권과 통치는 바로 은총의 다스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과 자비의 은총 아래 살게 하십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복음으로 곧 예수님의 십자가 성혈로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사회의 도덕적 명령으로 선을 실천하여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그저 무상으로 받을 뿐입니다. |
동천 성 바오로성당 주임 조한영(야고보) 신부 수원주보 제1243호 (2007년 12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