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제 탔던 그 우아직을 타고 이 알혼섬을 탐방한다
아침 샤워 후 바라본 창으로 하늘이 가득 들어온다
머리 물기를 털어내고 있는 모습을 사진작가 후배가 도촬
근데 멋지다(히히 하늘만.)
아침형 인간이 아닌 내가
해 뜨는 장면을 보기위해 5시 좀 넘어 일어나
숙소 주변을 누비고 다녔다는 사실.
저 소라모양의 하얀 구조물은
오늘 아침 자세히 보니
흡연실이다
이렇게 멋진 흡연실 만들어 놓으면
금연할 마음 없어지겠다
이 척박한 곳에 수영장을 만든걸 보니
여긴 고급호텔입니다 라고
으시대는 느낌이다.
"왜 여행지에서의 일출 장면은 더 설레이는 걸까?"
요것도 누군가 논문을 써서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
새벽바람이 무척 차가웠는데
잠옷바지에(보는 사람 아무도 없었음)
점퍼하나 걸치고 막 돌아다녔더니 기분좋게 몸이 뎁혀진다.
조식 장소가 이 정도면 아침메뉴 단 1가지로도
아주 맛나게 먹을 것 같다.
초지와 바이칼호만 보이는 단순한 풍광이 이렇게 좋을 수가.
풍광에도 미니멀리즘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오늘 하루 우릴 태우고 다닐 '우아직'이 도착해 있다
어제의 흔들림과 흙먼지를 떠올리니
마치 이 '우아직'이 우릴 잡으러 와 있는 기분이 든다.
우악스럽게 날 낚아채갈 것 같다.
우아하게 타고 싶은데.
우락스러워서 우아직일까
우아하게 타라고 우아직일까
아재개그 한번 날려봅니다
우아직 기사님 이름은 '이반'
톨스토이의 작품속에 등장 할 것만 같은 이름이다.
전 주에 방송된 세계테마기행에서 익힌 인사말좀 써본다고
스바시바였나? 시바스바였나 하고 조심스럽다가
에라 모르겠다 스바시바 해보자
했더니 기사도 스바시바
아, 맞나보네
그 후론 내릴 때마다 스바시바
이젠 우리말 가르치기 돌입
"이반, 스바시바는 감사합니다"
하는 거에요 알았죠?
스바시바 감사합니다
처음엔 웃으며 발음도 꽤 정확히 하더니
하루종일 운전하고 난 저녁무렵에는
발음도 이상해지고 잘 따라하지도 않는다
왜 아니겠는가
하루종일 터덜길, 언덕길, 바퀴자국 깊게 패인 숲길을
그렇게 달리고
점심엔 생선수프까지 끓여 상차려주느라
귀찮아지고 힘들었을 테지.
처음 도착지는
소비에트 시절 강제 수용소가 있었다는 빼씨얀카 부두.
지금은 이렇게 흔적만 있다
부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얼룩져 있었을까
섬으로의 유배는 동서양 모두 같구나.
어린 단종의 유배지인 청룡포도 생각난다
지금은 이렇게 낭만적인 풍경을 만들어준다.
성큼성큼 걸어들어가 보고 싶은 맑은 물
흔적만으로도 이렇게 멋진 풍경을 만들어주다니
저 비죽지죽 남아있는 나무기둥 위를
징검다리처럼 톡톡 튀면서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끔씩 물에 빠지더라도....
알혼섬 최북단인 하보이언덕에 오를 때는
트래킹 시간을 1시간이나 주었다
여유있게 걸어 섬 끝까지 가보는 시간이
어찌나 좋았는지
이런 황량한 초지를 걷는 게 왜이리 좋은지
말로 설명이 안된다
그냥 좋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도
하늘과 닿은 언덕도
이 언덕에서도
사진작가 후배는 또 점프를 시킨다.
뭐 이제 언제든지 뛸 자세가 되어있다.
나는 짐 벗어던지고 뛰어도 힘들던데
온갖 짐들 다 들고 뛰어오르신 선배님들
아주 대단하십니다.
가방에 물병까지 들고 뛰시는데 어찌 저런 자연스러움이.
내공의 힘일게야.
섬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하늘과 만난 호수를 볼 수 있었다
이 하보이언덕 끝에서야
짙푸른 바이칼호의 진정한 빛깔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 바로 이 빛깔이야
그동안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며 보았던 수많은 지붕 색들이
왜 짙푸른빛인가 했더니
바로 이 바이칼 호수 물빛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섬 곳곳에 묶여있는 샤머니즘의 흔적들
느슨해진 끈을 나도 천천히 다시 묶어준다
누군가의 소망이 더 단단한 믿음이 되길 바라면서.
트레킹을 마치고 주차했던 곳으로 내려 가니
기사님들이 벌써 점심을 차려 놓으셨다
바이칼의 물고기 오믈을 이용한 수프와 빵 야채 등등
우린 생선국은 안 받을게요
편식 심한 초등생들이 먹기싫은 음식 받지 않으려
식판을 뒤로 빼는 것처럼
노땡큐를 외치니
이 맛난 걸 왜 안먹지 하는 표정의 몽골인 현지가이드.
컵라면을 꺼내니 열심히 뜨거운 물이랑 빵 등을 갖다준다.
일행들이 의자를 좁혀주는데 편히 앉으시라 사양하고
우린 아예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컵라면에 간식, 커피까지 마시니
아주 예쁜 그림 속의 피크닉을 한 것 같다
체크무늬 패브릭은 없었지만 제법 피크닉기분 난다
여긴 알혼섬 아니던가
소박함이 더 어울리지
점심식사 후 우린 비온 후에 생긴 깊은 바퀴자국이 패인 채로 보존(?)된
숲길을 아슬아슬하게 달려 이곳저곳 달린다
바퀴가 저 깊은 곳에 빠지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기울어진 앞차가 꼭 옆으로 넘어질 듯 위태롭다
덜컹덜컹 기우뚱우뚱
뿌우연 먼지
임산부나 노약자는 이 우아직을 절대 타지 말것을 권유합니다
극기체험을 하면서도 호수의 정경앞에서는 좋아라
극과극을 달립니다
이번엔 사랑의 바위라고 하는데
드론을 띄워 상공에서 보면 하트모양으로 보일 것도 같다
우리가 평지에서 보기엔
골반뼈를 엑스레이 사진으로 보는 듯한 모습이다.
호수의 짙푸른 빛 내려다 보고 싶어
자꾸만 바위 위로 올라가니 밑에서 선배님이 부르신다
"여기좀 봐봐"
찰칵찰칵
앗!
그런데 선배님이 나를 찍어주시는 모습을
또다른 선배님이 찰칵찰칵
사진의 각도까지도 목숨걸고 작업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회원의 장엄함이 느껴지게 한다.
알혼섬 어디에나 흔하게 있는 샤먼기둥들
모두의 소망들이 다 이루어지길
조심조심
좋은사진 건지겠다고
조금만 더, 조금 위로 하고 외치다가 사고납니다.
틈틈히 물도 마시며 구경할게요
바이칼 물 그동안 얼마나 마셨는지
우리 때문에 바이칼 수위가 좀 낮아지지 않았을까.
바이칼호는 넓이는 세계 최대가 아닌데
깊이가 세계 최고라고 한다.
그래서 세계 담수율의 20프로를 차지한다고 하니
그 깊이를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하루종일 우아직에 흔들리며
탔다 내렸다를 반복하니
이제 슬슬 풍광도 흥미가 떨어진다
얼른 숙소에 가 먼지도 씻어내고 쉬었으면 좋겠다
가이드는 마지막 장소는 기가 센 곳이기 때문에 꼭 봐야한다며
우릴 달래듯이 데려간다
부르한 바위가 내려다보이는 샤먼기둥들이 늘어선 곳
우리도 또 오늘하루 잘 지냈음에 감사하며
기둥에 묶인 끈을 빌어 잠시 기도를 해본다
이 곳 사람들은 집을 나설 때 노끈이 필수품일 듯 하다.
우리와 비슷한 장승도 많이 서 있다
이제 우리의 숙소로 또 먼지내며 달려간다
숙소문을 열어보니 한증막이다
한낮의 열기가 얇은 지붕위로 고스란히 내려쌓였나보다
밖을 산책할 기운도 없어
얼른 샤워하고 문 앞에서 잠시 책을 읽으며
방안의 열기가 사그라지길 기다렸다
밖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 앉아 책읽기 좋다
룸메이트가 책읽고 있는 날 위해
커피를 내어준다
문을 빼꼼열고
모기 때문에 현관문을 활짝 열수가 없다
문앞에서 종교이식이라도 하듯
들고 있던 옷이라도 휘휘 내저어 모기를 쫓아내고 문을 연다
때아닌 커피호사를 누린다
음 이맛이야!
옆방 선배님들도 문앞으로 나오신다
방안의 의자를 총 동원해서 들고 나왔다
" 나~~ 저 정자까지 내일 새벽에 꼭 올라가보고 싶어요'"
"으응?? 저길 내일 올라간다고?"
"네, 저길 안 올라가고 이 섬을 떠나면 너무 후회될것 같아요."
후배가
"그럼 저도 같이 갈게요"
선배님들도
"그러자 그럼 우리도 같이 가자"
와우!
내일 새벽 5시에 출발해 봅시다
이 섬을 떠나는 시간이 9시로 정해졌으니 여유있다
알람을 4시 40분에 맞추어놓고 설레이는 맘으로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