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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놀이’ 구경 - 무주 안성면 두문마을
2015년 8월 14일, 금요일, 임시공휴일.
불꽃축제라고 요즘 식으로 ‘축제’라는 말을 붙인 것은 좀 안타깝다.
그냥 마을사람들이 부르듯이 ‘낙화(落火)놀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을.
두문마을은 ‘말그리’ 또는 ‘말거리’라고 했단다.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지명을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좋은 뜻으로 붙이자는 취지에서
‘글(학문)이 말통에 담아야 할만큼 흘러넘치는 동네’ 즉 ‘말글[斗文]’로 바꾸었다.
그 말이 전혀 엉뚱하지만은 않은 것이 동네 한 쪽에 흥감재(興感齋)라는 서당이 있다.
마을 안에 서당이 있을 만큼 학문을 숭상한 동네였다.
마을의 총 영역은 진안 부귀면의 가치[노래재]마을 정도로 약 30만평 쯤 되어 보인다.
5백년 넘은 당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의 중심이다. 중심구역에 1백 세대 쯤의 가호가 있다.
마을은 남쪽을 향해 크게 가파르지 않은 경사를 이루며 덕유산을 바라보고 발달해 있고,
길 건너 북쪽에는 양잠업을 비교적 크게 했던 농가인 듯한 잠실이 빨갛게 녹슨 양철지붕을 하고 퇴락해 있다.
그 집 앞의 논이 옛 뽕밭이었을까?
그 위로 그리 크다고는 할 수 없는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 가에서 오늘의 낙화놀이는 이루어질 예정이다.
비교적 이른 시각에 마을에 도착한 까닭에 아직 늦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나른하게 한다.
입장료를 내고 받은 두 종류의 쿠폰은 마을 안에서 뭘 사먹거나 체험행사에 참여할 때 쓸 수 있단다.
길가 도랑에서 사람들이 모터를 설치하고 있기에 물을 쓸 일이 있나보다 했더니
‘물벼락 길’에 물을 끌어댈 목적이었다.
검은 고무호스에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내어 수많은 가는 물줄기가 공중에 여러 개의 아치를 그리며
방문객이 마을 안길을 통과할 때 작은 시원함을 주고 있었다.
이런 소소한 장난도 이 뜨거운 늦여름의 신선한 환대라고 할까.
마을 중심부에는 함부로 쌓은 흙더미에 고구마를 심은 곳이 있는데 그 위에 수많은 솟대를 세워 놓았다.
그런가 하면, 비교적 근대화된 벽돌건물을 부수지 않고 그냥 두었으되 겉에다 흰 칠을 한 위에
벽화를 그려 마치 동화속의 어디처럼 연출한 곳도 있다. 그 앞마당이 ‘두문카페’다.
감자구이, 옥수수 구이와 커피 등을 마을 부인들이 만들어 팔고 있다.
부인들에게 여기가 혹시 옛 마을회관이냐 물으니 그렇지는 않고 어떤 개인이 살던 집이라 한다.
이 카페에서 우선 첫 쿠폰 사용개시.
마을 안을 한 바퀴 돌아본다.
청솔대를 베어다가 밭과 밭 사잇길 가에 주욱 꽂아 담장처럼 만든 것도 신선하다.
마을 전체에 전깃줄을 둘러 수많은 작은 색전구를 종이컵에 감춘 설비가 보였다.
밤에는 여기에다 전기를 넣어 밝히게 될 모양이다.
얼른 눈에 띄는 것은, 빈집도 꽤 있지만 주민들이 나름대로 가꾸고 치우고 하여 경관을 크게 해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살림이 비교적 부유한 마을이라는 느낌과 함께 오래된 돌담과 축대가 잘 보존되고 있는 점이다.
새로 지은 집들도 돌담만은 지키고 있었다.
검게 변한 돌들이 마을의 역사가 5백년 쯤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호두나무가 시냇가마다 심어져 있어 필자의 고향마을을 연상케 한다.
상주 은척면, 이안면은 호두나무가 지천이었다.
한 시냇가에 흥감재, 이 마을의 서당이 있었다. 정면 네 칸 측면 한 칸으로 그리 크지 않으나,
이만한 서당이 마을에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여름 강당으로 썼을 마루의 바닥 목재는 세월을 이고 있었고 군데군데 갈아끼운 보와 서까래가
마을사람들의 서당사랑을 알게 한다.
사실 이 마을에 낙화놀이를 정착시킨 것은 이 서당의 학동들이었다 한다.
심심파적으로 바로 앞 냇가의 나무와 건너편 나무 사이에 새끼줄을 치고 그 새끼줄에
수많은 불을 달아 물에 비친 불똥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즐긴 것이 그 유래라고.
여섯 시에 당산제가 있을 거라고 이장이 스피커를 울려 방송한다.
이미 손님은 수백 명 수준으로 모여들어 있다.
사흘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이만한 이벤트를 찾기도 힘든 일이다.
민속을 즐기는 사람들은 나이든 세대인 줄만 알았더니 어린이를 데린 젊은 가족도 많은 데 놀란다. 경상도 사투리도 들리고 이곳 말씨도 들리고….
무주는 경북 김천과 접경하고 있어 나제통문만 통과하면 말씨가 거의 경상도 억양이다.
하기야 예전 대가야(大伽倻)의 강역이 진안·완주에까지 이르렀다 하니 한 나라였다.
이 마을 당산제가 인상적인 것은 마을 원로 다섯 분이 관과 제복을 제대로 차려입고 집전하는 데
있다. 없어진 지 오래인 당산제를 되살리는 것조차 번거로워 하는 세태를 거슬러
옛 관복을 입기까지 하는 것은 전통지키기의 대단한 마인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제례의 순서를 안내하는 말은 요즘의 우리말로 풀어서 쓰고 있으되
그 태도만은 대단히 경건하다.
공동체 활동을 누가 주술(呪術)이라고 했는가.
자연과 환경에 대한 경외,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함께 잘 살자는 약속을 해마다 확인하는 의식에 왜 감히 토를 다는가.
원로들의 집전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이 돼지 입에 돈을 물리고 술을 올리고 절을 하며
저마다의 행복을 기원하는 축을 올리고 음복을 나누면서 끝난다.
당산제가 끝나갈 무렵에 안성면 풍물패가 와서 지신을 밟았다.
이 패의 상쇠는 여성이다. 이 역시 요즘의 세태일까.
한판 걸판지게 놀아 줄 것을 기대했으나 당산나무 앞 공터는 최근에 새로 지은 노인공동주거시설이 들어서 있어 공간이 턱없이 모자란다.
놀이패가 넓은 곳으로 가자며 줄줄이 빠져 나간다. 이것은 다소 아쉬움을 남기는 처사였다.
노인시설을 여기다 지은 것은 그리 찬성할 일은 못 돼 보인다.
( ↑ 동네 아이 둘이 풍물 소리에 맞춰 춤을. )
축제용 시설을 조성하려는 듯한 식당 부지는 아직 바닥을 다지지 못하고 있는데
우선 그 위에 천막을 치고 탁자와 의자를 깔아 야외 식당으로 쓰고 있다.
이곳에서 아는 얼굴을 여럿 만난다.
우리 마을축제 사무국의 최 국장과 이 팀장, 마을만들기의 임 팀장 가족,
진안고원길의 정 국장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지사마을 감자삼굿을 열심히 찍던 전북사진가협회의 정 선생,
유기농식품 전문매장을 경영하던 박 선생 가족, 박 아무개 국회의원, 무주군수….
여기서 또 한 번 쿠폰을 써서 전과 주먹밥을 사 먹었다.
마을의 부인들이 대활약 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 황정수 무주군수. )
일곱 시부터는 마을 위 저수지로 축제장소가 옮겨질 것임을 이장이 또 알린다.
이미 1천명 가까이 관객이 모였다. 대단한 흥행이다.
저수지 자체가 낙화놀이의 무대다.
이미 저수지 위 공중에는 줄이 쳐져 있어 지금이라도 불을 달 준비가 되어 있다.
작년에 다른 곳에서 보았을 때와 세팅이 다소 다른 점은,
X자 모양으로 엇갈리게 두 줄이 쳐져 있다는 것. 즉, 작년보다 규모를 배로 키웠다는 뜻이겠다.
아직은 일곱 시여서 불을 달기에 적절하지 못한 시각이다. 우선 노래 공연으로 시작한다.
공연의 첫 부분은 아마추어 사회자의 ‘서툰’ 사회와 무명 노래패들의 7080 노래들로 시작하여
그럭저럭 들을 만했으나, 뒷부분에서는 태평무를 시작으로 팝페라 가수 부부의 발표회를 방불케 하는 내용으로 다소 지루하게 긴 시간을 계속한 것이 흠이었다.
이집트의 벨리댄스와 이탈리아 가곡 등은 낙화놀이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공연시간도 1시간 반으로 지나치게 길었다.
여덟 시에 예정이던 낙화놀이는 무려 40분이나 늦게 시작되었다.
본 행사를 앞두고 으레 하는 요인들의 인사말도 과감히 생략되었다.
기다림에 지친 관중의 야유 때문이다.
이미 어두워진 저수지 둑에는 세 겹 네 겹으로 관객이 둘러서서 입추의 여지조차 없다.
불티를 뿌리는 낙화봉(洛花棒)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우선, 쑥을 베어 말린 것을 비벼서 쑥뜸 재료처럼 긴 원추형으로 뭉쳐 놓는다.
②뽕나무를 태워 만든 숯을 빻아 고운 가루로 만든다. ③천일염을 잘게 빻아 둔다.
④한지를 적당한 크기(길이 30㎝, 폭 10㎝ 정도)로 잘라 수 백 장 준비한다.
한지를 펴놓고 그 위에 세 가지 재료를 길게 늘어놓고 김밥이나 담배를 말 듯이 말아
꽈배기 꼬듯이 단단히 꼬아 놓는다.
이것이 낙화봉인데 여기에 불을 붙이면 숯과 소금과 쑥이 점차 타들어 가면서 톡톡 불티가 튀는 것이다.
흑색화약이 발견된 후 그를 이용한 폭발과 추진력으로 공중 높이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보다는 원시적(?)이지만 확실히 다르다.
황망히 여러 발(發)을 쏘며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여러 색으로 터지는 일본의 하나비(花火; 꽃불)와도 다르다.
느리고도 은근한 맛이 있는 ‘조선 선비의 놀이’의 전형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낙화봉 수백 개를 물 위에 쳐놓은 줄에 적당한 간격으로 걸어 늘어뜨려 놓고
천천히 타는 모습을 보며 즐기는 것이 낙화놀이다.
물 위에서 하는 이유는, 직접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늘어뜨려진 수백 개의 낙화봉에서 튀는 불티들은 그것만으로도 장관인데
물위에 비치는 모습은 그 깊이를 배로 늘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관중의 탄성은 불을 달 때부터 시작하지만, 불규칙하게 터지는 불덩어리의 폭발이나,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으로 쏟아지는 불티가 난분분 흘러내릴 때에 최고조에 달한다.
대회장 일대는 쑥 타는 향기에 휩싸인다.
화약의 매캐한 악취였더라면 아무리 비주얼이 그럴 듯했다 하더라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럴 때 잔잔한 음악과 함께 풍류의 세계로 이끌어 들어가는 멋진 시(시조)라도 한 편
낭독했다면 얼마나 더 운치 있었을까.
지나치게 긴 사전 공연과 함께 이 장면의 기획에는 분명 모자람과 아쉬움이 느껴졌다.
또, 이날 두문마을의 저수지는 수련계열 식물의 잎이 물 표면을 뒤덮고 있어
상하대칭의 불티의 장관을 볼 수 없었던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아홉 시 조금 넘은 시각에 약 30분간의 전통놀이 쇼는 마지막 불티를 물위에 떨어뜨리면서 마쳤다.
마을주민 몇 명과 나눈 대화로 이 행사가 이미 9년째 계속하고 있는 것이며,
그 전통성으로 지방문화재로 등록되려 하고 있다는 것,
올 행사에는 농어촌공사가 일부 도와주어 약 5천만원의 예산으로 이틀 동안 벌이는 것이라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곧 무주 반딧불 축제가 시작된다.
그 기간 동안에 또 한다고 한다.
반딧불 축제는 벌써 올해로 19회째를 맞는데, 엿새 동안 벌인다.
올해는 특이한 것이 본 행사 외에 무주군내 마을 열네 군데(두문마을을 포함)에서
동시에 축제를 벌인다.
‘마을로 가는 축제’라 이름 붙인 것이 우리 진안군 마을축제를 벤치마킹한 것으로도 보인다.
뽕나무 숯을 만들고 쑥을 베어 낙화봉으로 만드는 데까지 주민들의 노고,
예상보다 훨씬 많이 찾은 관객(올해 2천명 추산)을 맞이하는 일이나 음식 준비, 주차관리 등
커다란 행사를 벌써 9년째 해 왔다는 것이 이 조용한 산골마을에서 가능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유한회사 형태로 마을기업을 만들어 운영해오고 있다 한다.
이런 류의 정통파 놀이문화가 많이 발굴되고 알려져
가볍고 천박한 ‘국적불명 한류’가 아닌 제 모습의 한류문화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최태영)
첫댓글 사진 좋습니다.
그 날 밤 운치가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