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8백여 북미주 한인 교회들의 ‘제6차 한인세계선교대회’가 7월 28일부터(현지시각) 8월 1일까지 미국 시카고 휘튼대학에서 개최되었다. 둘째 날인 7월 30일에는 한신대 채수일 교수가 ‘미시오 데이, 그 이후의 선교’라는 제하의 특강을 진행했다고 한다. 크리스천투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채교수는 1952년 독일 빌링겐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의 세계선교와 복음화대회(CWME)에서 ‘미시오 데이’의 개념이 등장한 이후 백인 유럽 중심주의적 선교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대회 이전에는 선교의 주체가 유럽 선교사들이었고 교회가 주체였던 시기였던 반면, 대회 이후에는 복음의 사회 구원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된 것이라고 한다. 신학적 정의에 따르면, 미시오 데이(Missio Dei)는 미시오 크리스티(Missio Christi)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미시오 크리스티는 ‘그리스도의 선교’라는 뜻으로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충실하게 전하는 것인 반면, 미시오 데이는 ‘하나님의 선교’라는 뜻으로 교리와 관계없이 사회 구제, 환경·생명운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나름대로 정의한 선교 개념에 따라 보수(미시오 크리스티)와 진보(미시오 데이)로 나뉜 현 기독교계에 대해 채교수는 “이제는 교회가 진보와 보수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규모에 의해 대형교회와 소형대회로 나뉘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를 담아낼 수 있는 신학 언어와 담론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후 “선교를 ‘영혼구원’이라고 말하는 복음주의적 입장과 ‘사회구제’를 말하는 자유주의적 입장이 1970년대 이후 서로 수렴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강의를 마쳤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현 교회시대는 순수한 복음전파를 통한 혼의 구원을 추구하는 순수한 복음주의가 거의 자취를 감춰버린 대배교의 시대이다. 일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그 명맥이 간신히 이어져 가고 있을 뿐,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참된 신약교회를 찾아보기란 매우 힘들어졌다. 이런 교회시대를 가리켜 ‘배교한 라오디케아 교회시대’라고 한다.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가 사도행전 2장 이후에 전개된 교회시대에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일곱 유형의 교회들을 예표한다는 성경의 해석에 따라, 그중 맨 나중에, 즉 교회시대의 맨 끝에 등장하는 라오디케아 교회가 현재의 배교한 교회들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라오디케아 교회시대의 교회들은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3:16), 돈 많은 대형교회들의 등장(17절), 인간의 권리와 목소리가 득세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실 수 없는 지역교회(20절)를 그 특징으로 한다. 현 시대의 교회들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현재의 교회들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서 복음주의를 자처하는 죽은 복음주의적 입장과 무신론 자유주의적 입장이 교회 내에서 상호 수렴하여 혼합된 매우 미지근한 신앙을 보이고 있으며, 교회들의 막대한 부 축적으로 대형교회와 소형교회의 양극화 현상이 매우 두드러져 있다. 그래서 이들의 “선교”란, 복음을 내세우되 복음은 전하지 않고, 대신 사회 구제 활동을 전면에 부각시켜서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정의해버리는 일이다. 이것이 복음주의와 자유주의가 수렴된 오늘날의 “선교” 행태이며, 교회가 축적한 거대한 부가 그 일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회 구제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선교로 알고 있는 그들이 모르는 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딱 한 번 보여졌으며(요 3:16), 그 이후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죄인들의 머리 위에 진노가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요 16:9).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하나님의 사랑은 사회 구제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못 박히셨던 그 갈보리 십자가를 가리킬 때 전달되는 것인데,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들에 의해서 변질되고 오도되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죄인들이 끼니는 때울지언정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들이 수많은 선교사들을 해외로 파송하더라도 혼들이 구원받는 열매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 ‘선교사들’이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몰라 복음을 전할 줄 모르기 때문이며, 참된 복음이 아닌 미시오 데이의 사회복음을 가지고서 오지로, 타국으로 파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성경적인 선교 개념도 없이 선교사를 하고 있는 것인데, 한 마디로 그들의 선교(mission)는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다. 그들의 선교로는 성경적인 ‘선교’가 불가능한 것이다.
무신론 자유주의의 한신대 채수일 교수는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를 담아낼 수 있는 신학 언어와 담론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했지만 어떠한 성경적인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했다. 채교수 본인은 자신이 내린 결론을 통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제시하려고 한 것이나, 그의 결론은 현 시대의 교회들이 왜 복음과 무관한 변질된 신앙인지에 관해 간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영적 세계에서 선과 악의 중립지대는 있을 수 없다. 자유주의적 입장과 수렴된 복음주의적 입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마귀의 편에 선 것이며, 복음의 광채를 가리는 마귀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라오디케아 교회시대 교회들의 신앙이요 행보인데, 주님은 배교의 끝을 달리는 그들을 향해서 『내가 사랑하는 자마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계 3:19)고 말씀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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