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이 들어서는 날은 홀로 살기를 원했던 내 작은 원이 이루어진 날이다. 산골에 터를 장만한 것도 외따로 집을 지은 것도 그 까닭은 여럿이 아닌 홀로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마무리 작업을 끝낸 일꾼들이 도구를 챙겨 떠나던 날, 한 아름 군불을 지핀 방에 홀로 누운 나는 그곳에 독립과 자유를 불러 들였다. 간섭과 경쟁을 털어내고 이제 내 인생을 내식대로 살아보겠노라고 그들에게 고했다. 인생의 참 멋은 어차피 저마다 자기식대로 사는 개성적 삶에 있는 것이 아닐는지.
삼한사온을 잊은 추위가 연일 혹독하더니 아랫집 우물에서 끌어들인 수도가 얼어붙었다. 펌프를 수리하고 꼭지를 녹였는데도 물줄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은 아마 땅 속 수도관까지 깊이 얼은 모양이다. 땅을 다 파헤칠 수는 없는 것이니 날이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랫집 물을 물통에 길어 쓰는 수고를 하다보니 물 고마운 생각이 절실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펑펑 쓰던 물이었는데 한 바가지씩 쓸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든다. 흔하던 것이 귀해지니 곤란과 함께 반성이 온다. 있을 때 아낄 줄 알아야 하고 계실 때 잘 모셔야 할 것이다.
5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작년 봄에도 신종 과수와 약용수가 될 묘목을 몇 그루 사다 심었다. 살구와 자두를 결합한 새 품종 플루오트와 중국 황제에게 진상됐던 씨 없는 흑색의 단감 무핵흑대시와 초대형 단감 태추를 심었다. 잎에 무늬가 있어 관상을 겸한 약용수인 당오갈피와 오미자, 구기자를 심었고 꾸지뽕나무 산수유 헛개나무를 심었다. 서울에서 택배로 붙여온 묘목들인지라 몸살이 심했던지 몇 종의 나무들은 달이 바뀌어도 움이 트지 않는다. 특히 내가 기대했던 흑색의 단감 무핵흑대시가 물을 빨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한 팔 간격으로 흑대시 두 그루와 태추 한 그루를 심었다. 여타 다른 수종들은 잎을 떨치고 가지를 펼치는데 유독 이 세 그루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종묘회사에 연락하여 보충수를 보내 달라 했는데 흑대시는 품종이 귀하여 한정 판매를 했었고 분양 마감이 되어 재고가 없다고 한다. 흑자색 열매의 색상이 신비롭고 씨가 없어 먹기가 좋은 무핵흑대시는 고전에 금전운과 행운을 불러준다는 기록이 있는 행운의 감나무이다. 어떻게든 살려 보겠다는 마음으로 그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매일이다시피 그들 곁에 앉아 싹눈을 살피고 줄기의 물기를 헤아렸다. 지표가 마르면 이따금 물도 주고 바람이 세면 솜이불처럼 마른 풀로 멀칭도 해주면서 싹을 내 주기를 기원했다. 가지를 쓰다듬고 줄기를 매만지면서 제발 죽지만 말아달라고 그들의 영혼에게 부탁도 했다. 살아 목숨을 가진 모든 것들은 다들 영혼을 가지고 있다 했다. 그들의 영혼 곁으로 내 혼을 보내어 힘을 보태주고 싶기도 했던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하더니 묘목을 심은 지 두 달이 되는 5월 중순, 가물거리던 흑대시가 드디어 싹을 내밀기 시작했다. 꼭지눈에서 솜털 같은 가지를 펼치더니 두 째 세 째 눈도 연달아 문을 연다. 한 나무가 움직이니 옆의 흑대시도 꿈틀한다. 두 그루 흑대시가 따스운 5월의 날씨에 생명의 문을 활짝 열고 드디어 이 땅에 뿌리를 박은 것이다. 그 나무의 영혼들도 이제 그 나무들과 함께 이 땅을 지키고 있을 것이고 그 나무들이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그들 곁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대형 단감 태추는 기다린 보람도 없이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작년 가을 이시카와 다쿠지가 쓴 기무라 아키노리의 ‘기적의 사과’를 읽었다. 2006년 12월 일본 NHK의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에 소개된 기무라 씨의 기적의 사과는 이례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단 한 번만이라도 기무라 씨의 사과를 먹어보고 싶어요’ ‘기무라 씨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요’ 와 같은 사연이 담긴 7백여 통의 편지가 방송국으로 배달됐다. 온 라인 판매에서 3분 만에 품절이 되는 사과, 이를 재료로 만든 수프를 먹으려면 1년간 기다려야 하는 ‘기적의 사과’는 2년간 보관하여도 썩지 않는 것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기무라 아키노리는 이 책에서 이렇게 소개되었다.
1949년 아오모리 현 이와키마치에서 대대로 사과 재배를 하는 농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히로사키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히타치 계열의 제조회사에 취직하지만 1년 반 만에 귀향하여 1978년부터 사과재배를 시작한다. 생명농법의 창시자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을 읽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농법’을 사과재배에 실천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도전이었다.
도전의 대가는 혹독했다. 밤낮으로 들끓는 해충과 씨름하고 누렇게 말라 죽어가는 사과나무를 돌보아야 했다. 농약과 비료를 거부한 지 6년 째, 그는 병충해와 영양부족으로 점점 죽어가는 사과나무를 붙들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힘들게 해서 미안합니다. 꽃을 안 피워도 열매를 안 맺어도 좋으니 제발 죽지만 말아 주세요.’라고 사과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말을 건넸다. 뿌리까지 못 쓰게 되어 이내 말라 죽을 것 같은 나무들 앞에서 사실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사과나무에게 애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난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 죽음을 결심하고 올라간 산중에서 그는 사과나무의 환영을 본다. 산중에는 그 누구도 농약 한 방울 뿌리지 않았지만 나뭇잎들은 우거져 있었다. 그 비밀이 나무 밑의 보드라운 흙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기무라 씨의 길고 긴 고난은 마침내 보상을 받는다. ‘나무만 보고 흙은 보지 못했다.’는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어 흙을 자연의 상태로 만드는 것에 전념하고 자연 속에 맡겨 키움으로 마침내 그의 도전은 완성된다.
다만 한 가지 불가사의한 일이 있다. ‘말라 죽지만 말아 달라’며 나무를 잡고 애원했던 나무들은 대부분 살아났는데 말하는 자기의 모습을 주위 농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말을 삼가 했던 남의 밭이나 도로 경계에 접해 있던 나무들은 도미노를 쓰러뜨린 것처럼 줄을 세워 전멸했다. 대자연의 생명력은 눈에 보이는 부분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도 깊이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기무라 씨의 애원 속에서 되살아난 사과나무를 보고 작년 봄 무핵흑대시 감나무에게 쏟은 정성을 되뇌어 본다. 결국 흑대시는 살았지만 그 보다는 더 굵고 실했던 태추는 살아남지 못하였던 것은 경계선상에 심어 졌던 기무라 씨의 사과나무처럼 흑대시만 정성껏 돌보고 태추는 보지 않았음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살아 있는 생명은 다 존귀한 것이다. 기무라 씨의 영혼을 쏟는 자연농법의 농사에 관심이 간다. 언 땅이 녹고 산방에 봄이 오면 내 작은 농장의 나무들도 이제 그런 농법으로 보살펴 주어야겠다. 제 식구 같은 나무들이 별 탈 없이 잘 자라주면 홀로 있는 사람에겐 그 이상의 즐거움도 없을 것 같다.
초암/권두경
첫댓글 잘 계시는 것같아 즐겁습니다. 꿈은 이루어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겨울의 잔등 위에 이미 봄은 전을 펼쳤나 봅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도시에서의 잔무가 있어 일이 자꾸 미루어지고 있습니다.
마음만 바빠 허둥대고 있는 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