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목)은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 축일입니다.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와 기적의 메달 성모님께 드리는 9일기도를 내일 11월 19일부터 올려드릴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1830년 프랑스 파리 뤼 드 박에 오신 성모님
기적의 메달
역사적 배경
1830년을 시작으로 성모님은 유례없이 자주 인류를 찾아오셨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유럽에서 집중적으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그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일견해봄으로써 얻게 될 것이다. 1830년, 즉 성모님께서 프랑스 파리의 가타리나 라브레 수녀에게 발현하셨던 때를 일컬어 독일의 루돌프 그라버 주교는 “그때부터 기술 위주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그 시대를 '기술혁명의 시대'라고 한다. 그 세기는 인류역사에서 유일한 그런 세기일 것이다. 커다란 변혁이 일어났으며 그 변혁이 어디까지 진행될지 짐작하기 어려운 세기”라고 했다.
더욱이 “지금은 악한 시대이다. 프랑스에는 곧 무서운 일이 닥칠 것이다. 왕실이 넘어질 것이며 전 세계는 무서운 재난을 당할 것이다”는 그때 성모님의 예언처럼 당시의 프랑스는 심각한 위기와 불안의 시대였다.
1789년 7월 14일, 국민병에 의해 바스티유 감옥이 점령되면서 시작된 이른바 프랑스 대혁명은 절대군주제의 몰락을 가져왔으며, 그때까지 국가 내의 국가 구실을 하던 교회 역시도 축소와 박해의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1799년 11월 9일 젊은 장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쿠데타를 일으켜 “프랑스 황제”를 자칭하면서 1815년 귀양 중에 죽기까지 군림한다. 그를 이어 루이 18세(1815-1824년 재위), 샤를르 10세(1824-1830년 재위)에 의해 왕정이 복고되지만 정치적 안정은 요원한 채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으로 정치는 물론 경제, 사회 등 국가의 전반적인 체제가 무너지면서 프랑스의 존립이 위험에 처했었다. 또한 1871년 제3공화국 시기에 프랑스는 프러시아에 의해 침략당하고 이에 대항한 파리 코뮌들은 “피의 주간”으로 일컬어지는 그해 3월 22-28일 동안 삼만 명 이상이 죽음을 당하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쳐야 했다.
뿐만 아니라 산업혁명으로 유물론사관, 노동자 계층의 탄생, 칼 마르크스에 의한 사회주의 공산당의 출현 등으로 인해 유럽 전역은 혼란과 격동의 시기, 자유, 평등, 박애의 미명 하에 신성모독이 극에 달했던 시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따라서 1830년을 시작으로 성모님은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를 향한 천상적 평화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시작하셨을 뿐 아니라 이른바 “마리아의 시대”를 여셨다.
첫 번째 발현
1830년 7월 18일, 프랑스 파리의 뤼 드 박에 있는 카리타스 수녀회의 창립자인 성 빈센트 아 바오로의 축일(7월 19일) 전날인 이날 밤이었다. 당시 수련자였던 가타리나 라브레 수녀는 “라브레 수녀님, 성당으로 어서 가 보셔요. 복되신 동정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라는 아름다운 소리에 잠을 깨었다.
깨어보니 흰옷을 입은 4, 5세가량의 소년이 서 있었다. 소년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타리나는 당황하였으나 소년은 “걱정마셔요. 지금은 밤 11시 30분이고 사람들은 다 잠들어 있어요. 어서 가요. 내가 수녀님과 함께 가겠어요.” 라고 말했다 .
가타리나는 소년을 따라 성당으로 갔다. 그러자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성당 문은 소년이 손을 대자마자 열렸으며, 놀랍게도 성당 안은 ‘마치 자정미사라도 드리려고 준비한 듯’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소년은 그녀를 감실 앞 난간으로 인도했다. 그녀가 무릎을 꿇자 소년이 “여기 복되신 동정녀께서 계십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때 어디선가 명주자락이 끌리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눈부신 광채로 싸인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동정녀께서 제대 앞에 나타나셨다. 성모님은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오더니 수녀원에 미사 드리러 오는 신학교 교장 신부님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의자 위에 앉으셨다. 성모님은 상아빛 부인복 위에 푸른 망토를 걸치셨고 머리에는 흰 베일을 쓰고 계셨다. 가타리나는 앞으로 걸어나가 합장한 두 손을 성모님의 무릎 위에 얹었다. 그녀는 “일생에 최대로 행복하며 형용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했다.
“나의 딸아, 하느님께서는 네가 한 가지 사명을 맡기를 원하신다. 그 일을 하려면 너는 많은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은총을 받을 것이다. 지금은 악한 시대이다. 프랑스에는 곧 무서운 일이 닥쳐올 것이다. 왕실이 넘어질 것이며 전 세계는 무서운 재난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믿고 열심히 청하는 사람에게는 큰 사람, 작은 사람 할 것 없이 풍부한 은총을 부어 주겠다. … 많은 박해가 있을 것이며 십자가는 업신여김을 받아 땅에 세차게 내던져질 것이고 피가 사방에 넘쳐흐를 것이다. 그리고 대주교도 죽음을 당할 것이다.”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눈은 항상 네게 머물러 있으며 네게 많은 은총을 내려 주겠다. 그리고 청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은총을 내려 주겠다. 기도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아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성모님은 날아가는 구름처럼 사라지셨다. 그녀는 얼마 동안 무릎을 꿇은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소년도 그때까지 그녀와 함께 있다가 다시 그녀를 인도해 주고는 사라졌다. 그녀가 침실에 돌아왔을 때 기둥시계가 새벽 2시를 알렸다.
성모님의 발현 직후 파리에서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성모님께서 이미 예언하신 대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십자가는 모욕을 당하고 수도원과 교회는 사람들의 무리로 들끓었다. 뤼 드 박에 있는 수녀원 본원도 포화로 진동하고 폭도들에게 포위되었다. 하지만 성모님의 약속은 헛되지 않아 가타리나 수녀가 속해 있는 수녀원과 그 건물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두 번째 발현
1830년 11월 27일 토요일이었다. 그날 오후 5시 30분에 가타리나 수녀는 묵상을 하기 위해 다른 수녀들과 함께 수녀원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명주자락이 스치는 듯한 소리를 어렴풋하게 들었다. 순간 제대 위에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다. 성모님은 커다란 지구의 위에서 뱀을 밟고 서 계셨으며, 또한 손으로는 십자가가 꽂힌 작은 지구의를 들고 계셨다. 성모님은 그것을 하느님께 바치기나 하듯이 높이 쳐들었다. 손가락에 끼어 있는 보석에서는 여러 가락의 광선이 흘러나와 큰 지구의 위를 비추었다. 눈을 아래로 향하신 성모님은 가타리나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보는 이 지구의는 세계를 상징한다. 나는 세계를 위하여, 또 이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이 광선은 내게 청하는 사람들에게 내려 주는 은총을 의미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은총을 받지 못하는데 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양손을 펴면서 팔을 아래로 넓게 펼치셨는데 손에 들고 있던 지구의는 사라졌다. 그리고 성모님의 주위에는 타원형의 테두리가 형성되었다. 거기에는 불꽃처럼 반짝이는 금빛 글씨로 “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들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라고 씌어 있었다. 그때 성모님은 명령조로 말씀하셨다. “이런 모양으로 메달을 만들어라. 이 메달을 착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큰 은총을 받을 것이다. 특히 목에 걸고 다니면 좋다.”
갑자기 모습이 바뀌면서 뒷면이 보였는데 거기에는 커다란 M자 위에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 아래에는 막대기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 밑에는 두 개의 심장, 곧 가시관으로 둘러싸인 주님의 심장과 창에 찔린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이 있었다. 그리고 열두 개의 빛나는 별들이 이 모든 것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세 번째 발현
1830년 12월말 경에 성모님은 세 번째로 발현하셨다. 가타리나 수녀는 성모님을 뵙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열렬히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날 밤 성모님은 전과 같이 “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라는 글자로 둘러싸여 모습을 드러내셨다. 이번에도 메달을 만들라고 다시 말씀하셨다.
발현 이후
성모님께서 명하셨지만 메달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을 거쳐야 했다. 드디어 1832년 6월 30일 최초의 메달이 만들어져 그로부터 놀랄 만한 속도로 보급되어졌다.
한편 1871년 파리에서는 다시 혁명이 일어났고 성모님께서 처음에 발현하셨을 때 예언하신 일들이 그대로 일어났다. 거리는 피로 물들었고 많은 사제들이 죽음을 당했으며 파리의 교구장인 뒤부아 주교는 비참하게 살해되었다. 이 혁명을 겪는 동안 부상당한 많은 군인들이 카리타스 수녀회에서 경영하는 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그때 가타리나 수녀는 문지기 수녀로서 그들 군인들에게 이 메달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은혜를 체험하게 되어 메달의 정식 이름은 “무염시태의 메달”이었으나 오히려 “기적의 메달”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첫댓글 “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