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11월 15일 정부와 각계에 보낸 주장과 성명서는 다음과 같다.
한글 학회의 주장
1. 한국의 나라글자는 한글이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는 한글만 쓰기로 해야 한다.
한자(漢字)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하여 한글을 만든 지 5세기 이상이 지났건만 우리들은 아직 한자의 구속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한자의 해독은 우리들이 익히 아는 바이며, 한자를 쓰고 있는 국민(중국, 일본)은 누구나 다 느끼고 있는 일이다.
한자를 쓰지 말아야만 교육의 효과가 빠를 것이고, 일상 글자 생활이 더 원활하게 될 것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말과 글은 생각하는 데 쓰는 연장이다. 한글은 한자에 견주어 천만 배가 낫다. 우리의 주장은, 못한 것을 버리고 나온 것을 써서 국가 민족에게 민주주의적 이익을 주자는 것이다. 그런 데도 아직 한자 쓰기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음은 통탄할 일이다.
우리들은 한국 문화의 앞으로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하여 우리의 글자 생활은 오로지 한글로만 해야 할 것임을 주장한다. 한자의 제한 사용을 주장하는 것은 한글 전용의 최대의 적이다.
2. 문화의 촉진은 글자 생활의 기계화에 있으며, 글자 생활의 기계화는 한글만을 씀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근대 국가의 사회 구조는 극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이 그 특색이다. 따라서, 글자 생활도 이에 발맞추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자 생활도 기계화하지 않아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한자를 몰아내지 않고서는 글자 생활의 기계화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근대 다른 나라들의 눈부신 진전에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하여 한자를 몰아내고, 한글만으로써 글자 생활의 기계화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3. '한글 전용'은 한자어를 배척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한글만 쓰기로 하자는 것은 한자를 말살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자어일지라도 그것은 한자로써 쓰지 말고 한글로 바꾸어 쓰자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글 전용은 '학교'를 '배움집'으로, '비행기'를 '날틀'로와 같이 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한글 전용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의 고의적인 모략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학교'를 '學校'로 '비행기'를 '飛行機'로 적지 말고 우리의 발음대로 '학교' '비행기'로 적자는 것이다. 그러나, 한자어를 얼른 들어서는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많고, 발음은 같아도 뜻이 다른 말이 상당히 많다. 이런 것은 언어 상통의 한 병폐임을 뜻한다.
따라서, 될 수 있으면 친근하고 빨리 알아 챌 수 있는 쉬운 말을 가려 쓰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4. 모든 학교 과목에 쓰이는 용어는 될 수 있는 대로 알기 쉬운 우리말로 해야 한다.
한자어가 원활한 언어 상통을 방해하는 것이 많다는 것은 앞에 말한 바와 같으므로 우리들은 일상 생활의 용어를 될 수 있는 대로 알기 쉬운 우리말로 하기를 힘씀과 동시에 모든 학과목에서 쓰는 용어도 또한 알기 쉬운 말로 해야 할 것임을 주장한다.
5. 한문의 전문적 학습은 지금보다 더 철저히 해야 한다.
한글 전용과 한문의 학습은 양립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한문은 중국 민족의 말에 맞추어 적는 글이다. 우리의 과거의 기록은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 있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과거를 알자면, 곧 한문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문 전공 분야를 두어 지금보다 더 철저히 한문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한문은 국어와는 다른 언어의 기록이며, 한문 학습과 한글 전용은 양립될 수 있다.
6. 한자로 적힌 우리의 고전은 빨리 한글로 번역되어야 한다.
아무리 고전 지식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모든 국민을 한문학자로 만들기는 절대 불가능하며, 또 불필요하다. 그러므로, 한자로 적힌 우리 및 동양의 고전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한글로 번역하여서, 모든 국민이 그 필요를 따라 마음대로 읽을 수 있게 되어야 한다.
7. 우리 나라의 신문 잡지는 다 한글만 쓰기로 하여야 한다.
말과 글을 국민 대중의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현대 인류 사회의 절실한 요청이요 사조이다. 신문과 잡지가 한글만으로 되어야만 국민의 지식이 보급되고 생활이 향상되어, 민주주의 실현이 가능하게 된다. 오늘의 신문은 한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대중은 사회악 기사로 들어찬 삼면 기사 이외에는 다른 유익한 소식을 읽을 수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 신문이 국민을 위한 존재이지, 국민이 신문을 위한 존재는 아니다. 교육의 목표를 신문 읽기에 둔다는 것은 본말 전도사고 방식이다. 신문은 쉬운 말과 쉬운 글로써 국민 대중에게 섬김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위와 같은 주장은, 우리 학회 창립이래 일관된 정신인 바, 이번 1964년 11월 15일 제43회 정기 총회의 총의로써 이를 다시 밝히는 바이다.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 쓰려는 문교부 방침에 반대한 성명서(1964. 11. 15.)
1. 뜻밖에 돌변한 문교부의 국어 교육 방침
문교부는 뜻밖에도 20년 가까이 실천해 오던 한글 전용 방침을 버리고,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 쓰려는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듣건대, 문교부는 1,300자의 한자를 제한 사용하는 방침을 세우고, 국민 학교에서 600자, 중학교에서 400자, 고등 학교에서 300자를 각각 가르치기로 하되, 일제 시대에 쓰던 국한문 교과서식으로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쓰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벌써 누차에 걸쳐,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서 발표되었고, 전국 각급 학교에 이미 시달되었으며, 새로 검인정될 교과서도 이 방침에 의해서 접수되었다고 한다. 해방이래 오늘까지 20년 가까운 동안 '한글 전용'은 가장 중요한 문교 정책으로 일관되어 왔으며, 문교부가 여기에 기울인 노고와 정성도 자못 컸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바이다.
그런데, 문교부는 20년의 전통을 깨뜨리고, 우리 나라 교육에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올 이 크고도 중요한 문제를, 극소수의 동질적인 인원으로 구성된 '교과서 편찬 위원회'의 결의로써 손쉽고 거뜬하게 결정하고 말았다. 그래서 스스로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모순된 거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