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財物(재물)을 이 땅에 쌓고 있는가? 하늘에 쌓고 있는가?(마 6:19~21)
"너희를 위(爲)하여, 보물(寶物)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害)하며, 도적(盜賊)이 구멍을 뚫고 도적(盜賊)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爲)하여, 보물(寶物)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銅綠)이 해(害)하지 못하며, 도적(盜賊)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盜賊)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寶物)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나들福 敎會(出入福 敎會, Go out and Come in Blessed Church, 2022/11/13)
◾本文(본문) 말씀에 대한(質疑應答(질의응답)
(1)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순종을 하는가? 무시를 하는가?
(2)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지 않으면, 바리새인과 종교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가?
(3) 바리새인들과 종교인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가?
(4) 이제부터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둘 것인가? 이 땅에 쌓아 둘 것인가?
(5) 재물을 더 사랑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할 것인가?
(6) 신앙생활의 가장 큰 대적은 재물이라는 것을 아는가?
(7) 돈 주머니가 회개를 하지 않는 자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웨슬리의 말에 동의를 하는가?
(8) 심지어 목사와 장로와 권사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아는가?
(9) 헌금은 하나님이나 목사나 교회가 아니라, 나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가?
(10) 우리는 신앙은, 아브라함의 신앙인가? 청개구리의 신앙이 아닌가?
* 序論(서론) 및 背景(배경)
우리는 청개구리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청개구리는 부모가 하는 말을, 반대로 행한다. 가라고 하면 오고, 하라고 하면 하지 않고,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서쪽으로 간다.
✔ 신앙의 청개구리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사랑을 하라고 하는데 미워한다. 기도를 하라고 하는데, 하지를 않는다. 전도를 하라고 하는데도, 하지를 않는다. 믿음으로 살라고 하는데, 자신의 마음대로 산다.
범사에 감사를 하라고 하는데, 원망과 불평을 한다. 예수님처럼 살라고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신앙 산다. 주의 종을 사랑하라고 하는데, 사사건건 시비와 태클을 건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산상수훈의 내용이다. 재물을 이 땅에 쌓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선교사와 목사와 장로와 권사도, 재물을 이 땅에 쌓고 있다.
✔ 재물을 하늘에 쌓는 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이는 바로 우리의 재물을 가지고, 헌금을 하고, 구제를 하고, 선교를 하고, 선행을 하는 것이다.
✔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했다. 그러나 결코 하늘에 쌓지를 않고, 죽어라고 이 땅에 쌓고 있다. 이는 바로 신앙의 청개구리라는 확실한 증거이다.
✔ 이제부터는 바리새인들과 종교인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믿는 청개구리의 신앙을 버리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말씀에 100% 순종을 하는, 진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자! 그렇다면 본문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해석을 해서, 오늘날 우리의 교회와 자신과, 그리고 신앙생활에 적용을 해 보자.
1.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메 데사우리제테 휘민 데사우루스 에피 테스 게스).
마태복음 6장 2절부터 18절까지는, 종교적인 의식에 빠지기 쉬운, 대표적인 신앙의 덕목인, 구제(2~4)와, 기도(5~15)와, 금식(16~18)에 대한 교훈이다.
✔ 19절부터 24절 까지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아서, 천국의 시민이 된 자들의 일상생활과 관계된 문제 가운데, 특별히 재물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재물과 신앙 사이의 우선순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의 시민이 된 자들에게, 재물에 대한 교훈을 주셨다. "먼저 쌓아 두지 말라...보물을"로 번역된, 헬라어 ≪메 데사우리제테...데사우루스는≫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있다.
여기서 부정어 ≪메≫와, 쌓아 두라라는 뜻이 있는, 현재 명령형 ≪데사우리제테≫가 결합된 ≪메 데사우리제테≫는, 물론 "쌓아 두지 말라"(do not store up)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재 시제를 보다 강조하여 번역을 하면, "쌓기를 그만 두라"(stop storing up)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 즉 더 이상 지체를 하지 말고, 지금 바로 보물을 땅에 쌓는 그릇된 행동을, 아주 단호하고 과감하게, 끊어 버리라는 의미이다.
"보물"로 번역된, 헬라어 ≪데사우루스≫는 상업적인 용어로서, "저축하다"와, "보관하다"라는 의미가 있는, ≪티테마≫에서 유래가 되었다.
✔ 헬라어 ≪티테마≫는, 어떤 물건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이다. 즉 은행이나 주식이나 아파트나 부동산이나, 증권이나 채권이나 귀금속이나 금고나, 골통품이나 미술품 등이다.
헬라어 ≪티테마≫는, 창고나 보배합(마 2:11)을 가리킨다. 또한 그 가운데 있는, 보화(마 13:44, 52)와 보배(고후 4:7)를 가리킨다.
"쌓아 두라"로 번역된 헬라어 ≪데사우리조≫는, 바로 앞에서 설명한 바 있는, 보물에 해당하는 ≪데사우로스≫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보물을 쌓다"와, "보물을 모으다"라는 의미이다.
✔ 즉 본 단락은, 동일한 어근에서 유래한, 동사형과 명사형을 사용하는 언어 유희로서, 보물에 집착하는 인간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 그러나 본 단락은, 재물을 죄악시하라거나, 저축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은, "너희를 위하여"(for yourselves)라는 뜻이 있는, 헬라어 ≪휘민≫이란 표현과 더불어, "땅"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 테스 게스≫라는 표현에서 확인된다.
즉 본 단락은, "너희를 위하여"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재물을 축적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20절에 나오는, "하늘에"로 번역된 헬라어 ≪엔 우라노라≫는 표현과 대응되는, 본 단락의 "땅에"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드시, 영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이 땅의 일에만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왜 우리의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했는가? 이는 바로, 2가지 이유 때문이다.
(1) 좀과 동록이 먹기 때문이다
"좀"은 헬라어로 ≪세스≫이다. 좀은 의복을 갉아 먹는 "해충"이다. 또한 ≪세스≫는, 구리를 부식시키는 "푸른 녹이"다.
"동록"은 헬라어로 ≪브로시스≫이다. ≪브리시스≫는, "먹다"(요 6:13)라는 뜻을 가진, ≪비브로스코≫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이는 "먹어 없어져 버리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히 12:16).
✔ 따라서 RSV는, ≪브리시스, 동록≫를 "녹"(rust)으로 번역을 했다. 그러나 난하주(번역하기 어려운 것)에서는, "벌레"(worm)로 보았다.
그러므로 ≪브리시스, 동록≫가, 정확하게 무엇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땅의 재물은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단어이다.
(2)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기 때문이다
"도적이 구멍을 뚫고"라는 것을, 헬라어로 번역을 하면, ≪카이 호푸 클렙타이 디오륏수신≫이다. 이를 직역을 하면, "그리고 거기는, 도적들이 구멍을 뚫는다"이다.
한글 성경은 생략을 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는, "거기에"를 가리키는 헬라어 ≪호푸, 장소≫가 사용되었다. 이 땅은 재물을 보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장소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글 성경에는, 도적이 단수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서 ≪클렙타이, 도적들≫는 복수형으로 사용되었다. 즉 수많은 도적들로 기록되었다.
이 땅에 쌓아 둔 재물을, 끊임없이 넘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서, 재물에 대한 불안감과 위기감을 보여 주고 있다.
"구멍을 뚫다"로 번역된 헬라어 ≪디오륏소≫는 "~을 통하여"라는 뜻이 있는, 전치사 ≪디아≫와, "땅을 파다"라는 뜻이 있는, 동사 ≪오륏소≫의 합성어이다. 이는 "땅을 파서 뚫라"라는 의미이다.
✔ 고대 팔레스틴의 가옥들은, 진흙 벽돌을 사용하여 집을 지었다. 그러므로 침입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벽을 허물고 집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 그리운 배내경 목사님!!
✔ 지난 주일(2019.6.20)에 있었던 일이다. 저희 교회에,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한분이 계신다. 직장생활을 하는 손주가 집에 오면, 훨체어를 타고 손주의 도움으로 교회에 오신다.
할머니는 교회에 오시면, 얼마나 좋아 하시는지, 주름진 얼굴에 기쁨이 넘친다. 할머니는 코로나로 인하여, 존재감이 없이 잊혀진 영혼이었다.
✔ 할머니는 집안 형편이, 참으로 어려우신 분이다. 그런데 지난 주일 예배가 시작되자, 손주가 휠체어를 밀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 왔다.
예배를 마치고, 모든 성도님들이 돌아 갔다. 할머니는 혼자 남아서 저를 찾았다. 할머니! 오셨어요? 반가움에 휠체어를 타고 계신, 할머니 손을 꼭 잡아 드렸다.
할머니는 얼마나 성전을 사모하는지, 반가움에 제 손을 꼭 잡았다. 나는 할머니께서 몸이 늘 아프니까, 건강을 위해서 기도 를 받으려나 보다 생각하고,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이 딸은 기도를 쉬지 않는 딸이다. 겉 사람은 다 망가지고 쇠하여 졌지만, 할머니의 영혼은 끊임없이 기뻐하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었다.
✔ 기도가 끝나자, 할머니는 봉투를 하나 주셨다. 예배가 방금 끝났는데, 웬 헌금인가 싶었다. 할머니 무슨 봉투예요? 할머니는 제 손에, 봉투를 꼭 쥐어 주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하나님이 꿈 속에 나타 나서, 저를 찾아 오셨어요. 음~ 하나님께서 저보고, 신발을 한 켤레를 사달라고 하셨어요.
✔ 그래서 제가, 신발 한 켤레를 사드렸더니, 그 신발 뒷 쪽에 금을 박으시더니, 목사님께 드리라고 했어요. 지난 5월에 그랬는데, 목사님 제가 이제야 왔어요.
네! 할머니 그러셨어요? 할머니의 말씀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데 목사님! 하나님께서 신발 뒷 쪽에 금을 박아 주시던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 나는 순간적으로 생각이 났다. 할머니! 전도하는 발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주신 봉투를 들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이 소중한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발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죽음의 바람 속에서, 전도를 통해서 생명의 바람으로, 죽어 있는 영혼을 살리는 일은, 천지가 개벽할 엄청난 일이다.
✔ 인간이 무엇인가? 혼을 가지고 몸 안에 사는 영이다. 그래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 만큼 소중한 일은 없다. 이것이 예수의 사랑이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신 금 구두를 신고, 신나게 탭댄스를 추면서 복음을 전하자.
배내경 목사님 사랑합니다. 오늘도 기도의 힘을 보냅니다. 앗싸! 꿈같은 일이 일어 납니다. -수원 온누리 교회 이영철 목사 올림-
2.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데사우리제테 데 휘민 데사우루수 엔 우라노).
본 구절에 나오는, 헬라어 접속사 ≪데≫는, 많은 경우에 절과 절 사이에 사용되는, 두 내용이 서로 대조되는 것을 강조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6:1, 6, 15 17).
✔ 본 구절에서도 "오직"으로 번역된 헬라어 접속사 ≪데≫는, 이와 같은 뜻을 가지므로, "그러나"(but)로 번역을 하는 것이 좋다.
한편 헬라어 접속사 ≪데≫는, 부정어 뒤에서 "차라리"와, "도리어" 등의 뜻을 지닐 수도 있다는 점에, 유념을 해야 한다.
✔ 20절에서는, 19절의 내용을 강하게 부정을 하고, 21절의 내용을 강조하는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오직을 "도리어"로 번역을 한다면, 그 뜻이 보다 선명하게 전달된다.
20절의 "하늘에 쌓아 두라"라는 명령은, 19절의 "땅에 쌓아 두지 말라"라는, 헬라어 부정어 ≪메≫만 빠진, 현재 명령형 진행형 형태이다. 그러므로 ✔ "지금 당장 하늘에 쌓기를 시작하라"라는 말이다.
✔ 여기서 보물을 하늘에 쌓는 다는 것은, 병행 구절인 누가복음 12장 23절에 따르면,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성경은 형제의 부족함을 헤아리고, 적극적으로 도와 주는 구제를 장려하고 있다. 그리고 구제에 대한 보상을 기록한 말씀이 자주 나온다.
"또 누구든지 제자(弟子)의 이름으로, 이 소자(小子) 중(中) 하나에게, 냉수(冷水)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者)는, 내가 진실(眞實)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決斷)코, ✔상(賞)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穩全)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所有)를 팔아, 가난한 자(者)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寶貨)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마 19:21).
"흩어 구제(救濟)하여도, ✔더욱 부(富)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過度)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 11:24).
"가난한 자(者)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善行)을 갚아 주시리라"(잠 19:17).
그러나 이는, 당시 외식을 하는 자들처럼 해서는 안되고, 자신의 이름을 과시할 목적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마 6:1~2).
✔ 다만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고전 13:3), 인색함이 없이(고후 9:7), 기회가 주어 지는 대로, 적극적으로 구제를 실천해야 한다(갈 6:10).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厚)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대로 되어 줌)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6:38).
🔥 경북 안동 김명철 집사/ 육종 암 수술 39번을 하다
✔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침상에 누워서, 배내경 목사님께서 선교를 떠나신다는 말씀을 듣고서, 기도를 하는 중에, 저의 마음 속에 형편이 되면, 30만원 정도의 선교 헌금을, 드리고 싶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 그러나 30만원이, 암 치료비도 부족한 가난한 저 한테는, 아주 큰 돈이라서, 마음 뿐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까지 하나님께서, 저도 모르는 방법으로, 30만원을 모두다 채워 주셨네요.
✔ 선교비를 마련해 주신, 하나님의 섭리와 방법이, 참으로 신기하고 너무나도 오묘한 큰 은혜이기 때문에, 저의 눈시울이 뜨거워 져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역시 우리 하나님이 최고이시죠? 저는 부자가 아니라서, 다행이 작은 금액이지만, 쉽게 후원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 가난한 암 환자가, 선교를 후원할 수 있도록, 선교비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암 수술을 39번이나 한, 가장 가난한 저에게 주시는 큰 복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직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시는, 배내경 목사님을 만나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날마다 빠짐없이 생명의 말씀으로, 저의 믿음을 더욱더 돈독하게 해주시고, 올바른 믿음의 길로 걸어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배내경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절대로 잊지를 않겠습니다.
주후 2022년 8월 19일(금)
경북 경산시에서 김명철 집사 올림
3.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21~)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호푸 카르 에스틴 호 데사우로스 수 에케이 에스타이 헤 카르디아 수).
"네 마음도"로 번역된, 헬라어 ≪카이 헤 카르디아 수≫는, 표준 원문에는, 제 2인칭 단수인 ≪수, 네≫가 아니라, 복수인 ≪휘몬, 너희≫인 너희로 나와 있다.
그러나 양자 사이의 의미는,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단수 형태를 취하면, 사람 개개인의 성향을 강조하여,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바로 너도,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머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복수 형태를 취하면,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머물고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부자 청년을 보라! 청년이다. 부자이다. 공회 회원이다. 어려서 부터 계명들을 다 지켰다. 이는 예수님도 인정을 했다.
✔ 부자 청년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만족이 없었다. 마음이 허전하고 텅 빈 것 같았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찾아 와서, 마음 속의 허전한 고민을 상담했다. 예수님은 재물을 팔아서 구제하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라고 했다.
✔ 그러나 부자 청년은 재물이 심히 많은 고로 한참 동안 고민을 했다. 재물이냐? 예수님이냐? 이 세상이냐? 하늘 나라이냐?
✔ 결국 부자 청년은, 예수님보다 재물을 선택했다. 저 하늘 나라보다, 이 세상을 선택했다. 영혼의 구원보다, 육신의 안락을 선택했다.
✔ 우리는 부자 청년을, 어리석다고 말한다. 부자 청년을 불쌍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만일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을, 지금 우리들에게도 하신다면, 우리는 순종을 할 수 있는가? 아니면 순종할 수 없는가?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5~36).
🔥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을 할까?
✔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는, 좋은 방법으로 최대한 많은 돈을 벌라. 모은 돈을 최대한 아껴서 쓰라.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 본인도 실제로 책을 통해서 번, 거액의 인지세를 대부분 헌금했다.
✔ 미국의 대통령인 아이젠하워는,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돈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는 많은 돈이 있는 것은, 필요한 일에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의 아이젠하워는, 유능한 장군이었다. 그러나 모아 놓은 돈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자가용도 없었다.
✔ 아인슈타인은 200만원이 든 돈과 함께, 책을 잃어 버렸다. 자신의 필기가 적힌 책을 잃어버린 것을, 돈을 잃어 버린 것보다, 훨씬 더 안타까워 했다.
✔ 강철왕 카네기는, 개인적인 일에는 절대로 돈을 낭비하지 않는 구두쇠였다. 그러나 교회에 사용하는 돈은, 조금도 아까워하지를 않았다.
독일의 기업가 보쉬와, 미국의 부호인 워런 버핏은, 부자가 되어서도, 길가에 떨어진 십 원짜리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워서 저축을 했다.
성도들이 돈을 대하는 자세는, 이 세상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물질에 지배를 당하지 않고, 물질을 지혜롭게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 結論(결론) 및 敵用(적용)
우리는 예수님이 명령하신 것처럼, 재물을 하늘에 쌓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생각대로, 이 땅에 쌓고 있는가?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교회를 위한 것인가? 목사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인가?
우리는 부자 청년처럼, 돈이 더 좋은가? 아니면 바울처럼, 예수님이 훨씬 더 좋은가?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재물을 다 팔아서 구제를 하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면, 아~멘하고 순종을 할 수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지갑이 거듭났는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에, 인색한 마음이 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구원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가?
최후 음식을 드린 사렙다 과부와,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과, 1천 번제를 드린 솔로몬과, 옥합을 드린 마리아와, 생활비 전부를 드린 가난한 과부와, 5병2어를 드린 소년처럼, 우리도 기꺼이 드릴 수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손해인가? 이익인가? 플러스인가? 마이너스인가? 쪽박인가? 대박인가?
오늘 이후로 우리의 재물을, 이 땅에 쌓지 않고, 하늘에 쌓아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오늘 설교를 듣고도, 이 땅에 재물을 쌓는 다면, 바리새인들과 종교인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가?
우리가 천국에 재물을 가지고 갈 수는 없어도, 미리서 보내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Nadulbok≫ Church bnk Pastor.
▪Doctor of ≪Preaching≫.
▪Doctor of ≪Missiology≫.
▪≪Thailand≫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 College Professor.
▪≪Laos≫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 College Professor.
▪≪Myanmar≫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 College Profes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