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대(李之帶)
※검교(檢校)는 명예직을 말한다.
공의 호는 죽은(竹隱)이고, 관직은 자헌대부(資憲大夫行), 검교한성윤(檢校漢城尹)이며,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과 망년지교를 맺었다. 세종조에 남쪽으로 내려와 경주에 그대로 거주하였는데, 이때에는 집현전 제공이 많이 피살되었기에 마침내 벼슬에 뜻을 끊고 전야(田野)로 물러나서 거주하며 은(隱)으로 자호(自號)하였다.
산소는 경주부 동쪽 명활산(明活山) 아배동(阿陪洞) 신좌(辛坐)인데, 원래 묘갈이 있었다. 배위는 평해황씨로 교리 불권헌(不倦軒) 황정(黃玎)의 딸이며, 생원 상길(裳吉)의 손녀이다. 구보에는 배위가 실전되었는데, 지금 황씨의 족보를 고찰해 보니 곧 황정의 딸이다.
“이지대는 관직이 판윤이고 경주인”이라는 문장의 주에 공 이상의 3대의 휘자(諱字)를 기록해 두었는데, 명백하여 의심할 것이 없으므로 지금 비로소 기록해 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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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李之帶
號竹隱, 資憲大夫、行漢城判尹, 與佔畢齋宗直爲忘年交. 世宗朝落南, 仍居慶州, 是時, 集賢殿諸公多被誅, 遂絶意仕宦, 退居田野, 隱以自號. 墓慶州府東明活山阿陪洞辛坐, 原有表碣. 配平海黃氏, 校理不倦軒玎女, 生員裳吉孫.
舊譜失傳配位, 而今按黃氏譜, 則黃玎之女. “李之帶, 官判尹, 慶州人”文註, 錄公以上三代諱字, 昭然無疑, 故今始懸錄.(『慶州李氏派譜』의 之帶 항목에서 발췌) <끝>
※족보에 자헌대부(資憲大夫) 행한성판(行漢城判尹)은 착오인듯하다.
자헌대부(資憲大夫) 검교한성윤(檢校漢城尹)으로 해야 옳은 것이다.
이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