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42. <포병 장교의 프라이드>
당시, 일반인은 물론, 우리들도 군에 대한 상식이나 구체적인 개념이 없었다. 전쟁이 끝난지 불과 얼마 되지 않었지만, 사회의 구조 자체가 군과 많은 거리 관계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포병 학교에 들어 오기 전, 우리들은 포병도 다른 병과와 다름 없이 여러 병과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포병 학교에 입교를 하여, 이제 졸업하는 마당에서 우리들은 다른 병과와는 달리, 기대하였던 것보다 훨씬 많은 과목을 이수하였고,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포병의 초급 장교로서의 자격과 품위를 유지 하는 것은 물론, 타 병과를 압도할 수 있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데 우리의 보람과 희망을 밝게 가질 수 있었다.
포병은 포병 자체로서의 고유의 분야가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포병은 포병으로서의 독립적인 운영보다는 보병, 또는 기갑과의 합동, 연계 작전을 필연, 필수적으로 수행하여야 한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화력의 지원이 없는 보병과 기갑은 칼 없는 병정이나, 말 없는 장수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포병 자체의 전술은 물론, 보병과 기갑의 전술도 함께 배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실제로 포병의 관측 장교와 연락 장교들은 보병과 기갑에 배속되어 그들과 함께 움직인다. 전투 현장에서 화력의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관측 장교가 없는 부대는 갑옷이나, 무기가 없이 전쟁 마당에 투입되고, 엄폐물 없이 노출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전사상자의 85% 내지 95%는 다 포병의 화력에 의한 것이다. 보통의 경우, 보병화기(소총이나 기관총등)에 의한 전사상자의 비율은 3만 발의 하나이다. 즉, 3만 발의 소총 탄환을 쏴야 한 사람이 맞어서 죽거나 부상을 당할 정도이다. 그러니, 전쟁 마당에서는 사람이 총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총알이 사람을 피한다는 말이 성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전의 경우는 특이해서 대략 5만 발의 하나로 되어 있다. 그만큼 전투가 치열하고, 총을 많이 쏘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병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화포의 제원과 탄약의 종류와 용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포병은 자체 방어, 특히 대 기갑, 대 항공을 위한 방위 수단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를 위한 무기와 운영 체제에 대한 전술을 습득 하여야 한다. 그 외에, 차량이 많고, 통신 기재가 많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도 공부를 하여야 한다. 또한, 각종 포탄 등 병기 분야에 있어서도 일가견이 있어야 하다. 이와 같이, 포병은 고유의 자기 분야는 물론 관련되는 여러 타 병과에 대한 분야까지 섭력해야 하기 때문에 머리가 좋고, 다재 다능해야 한다. 또한, 수학 실력도 뛰어 나야 하고, 기본적인 물리 개념도 필요하다. 그래서, 단위 부대의 화력 계획은 포병이 위주가 되서 보병의 화력까지 장악, 통제의 범위에 넣게 되는 것이다. 당시는 사단장 유고 시, 다음의 지휘 책임은 부사단장이나, 참모장, 또는 고참 연대장이 맡지 않고 포병 사령관이 맡도록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