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레마을과 故鄕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김유정은 여섯 살 무렵 서울로 이사했지만, 스물세 살에 다시 실레마을로 돌아와 금병의숙이라는 야학을 열어 농촌 계몽운동을 펼쳤다. 이때 직접 보고 겪은 농촌 사람들의 삶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으며, 남긴 30여 편의 단편 가운데 12편이 실레마을을 무대로 하고 있다. 편지도 다달이 한 번씩밖에 안 오는 50호도 못 되는 아주 빈약한 촌락이라고 애정을 담아 그렸다.
특히 이 지역의 지명이 작품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더욱 친밀함을 더해 주며, 그래서 이곳을 김유정 문학촌이라고 했다고 전상국 작가께서 신나는 초창기 설명이 떠오른다.
봄'봄에 장인과 데릴사위 이야기는 실제 이 마을에 봉필 영감이 김종필이며 데릴사위는 최순일로, 딸 둘을 농사를 위해 결혼을 미끼로 사기를 친 게 사실이라고 생전에 자형(姉兄)께서 증언해 웃었다. 김유정은 청풍김씨 24세 손으로 실레마을에 5대째 120년간 살아왔다. 잡초 같은 서민에게 힘을 대변한 김유정 선생. 평소 더벅머리에 우글쭈글한 벙거지를 쓰고 다녔고, 뚱한 성격에 말까지 더듬던 김유정은 술만 취하면 능변으로 좌우를 압도하였다.
생전에 제자셨던 조문희 님이 사돈 어르신이라, 들은 얘기로 김유정은 투포환을 맞자 아픔이 시작되었지, 실레에서 야학을 가르칠 때 여름이면 한들 개울가에 가서 물구나무를 서서 징검다리를 건널 정도라고 했다. 야학 중에 불이 나자 지하에서 아이들을 공깃돌처럼 밖으로 피신시켰으며, 금병의숙과 농우회에서 등불을 높이 들었다.
새로 바뀐 김유정 문학 촌장께 축하를 드린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망과 맞대결해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건강한 땀 냄새에 천착한 유 박사님, 목청 놓아 부르던 강원도 아리랑을 아시겠지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띠어라 노다가게/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 구 암자/재재붕붕에/ 아들 딸 날라고 백일기도두 말게우/타관 객지 나선 손님을/괄세두마라. 신연강 금전판 물골 이야기와 20명에게 야학을 통한 문맹퇴치운동을 하던 현장 금병의숙에 농우회를 재연하면 어떨까 감히 제안 드린다.
최근 신예 소설가가 잇따라 실레마을 이웃 은둔의 고장을 등장시켜 감사드린다. 어릴 때 안마산이 명당이라고 H 한의원장도 안마산에 모셨다. 흰 사탑이 있어 사자우가 된 정족리, 발전이 늦어 푸념하던 고향이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임을 뒤늦게 느낀다.
또한 명강의로 십 년째 이끌던 고전반 강대 권 교수님도 명당처럼 자주 정족리란 지명을 올려 자부심을 느낀다. 전 강원 도백인 최문순 님도 이곳이 고향이며, 도백을 마친 김 지사도 이곳에 집을 짓고 안착한다고 언론에 파다하다. 쇠와 불과 물이 합친 정鼎 솥의 위력이 주역에서 길한 괘로 고향에 자부심이 어느 때보다 넘친다. 춘천을 전 세계에 알린 김유정의 실레마을 이웃에, 전쟁이 끝나자 진병산에 올라 물구지를 울겨 끼니를 때우며 연명하던 형제 마을이 아닌가!
春川에 살면서 김유정 작가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파수꾼이 되며, 앞으로 이곳은 분명 신동면이 아닌 김유정 면 유정리가 되지 않을까. 불과 2년의 짧은 창작 기간임에도 단편 31편, 번역 2편, 동화, 수필 12편 해서 총 50여 편이 전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수급불유월 水急不流月처럼 더욱 유명해져 행복하다. 한가위 내내 구름떼처럼 역사(驛舍)는 또 얼마나 분주할까 한껏 기지개를 펴고 그려본 가을날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