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도 자신의 신화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즉 신화 중에서 수필신화도 있다. 그런데 수필신화도 다른 문학과 예술의 신화와 마찬가지로 <삶의 즐거움>(enjoyment of life)을 창작하고 감상한다고 본다. 수필신화의 내용은 삶의 즐거움이며, 삶의 즐거움은 환상과 진리라는 메시지를 동반하여 전달한다고 본다.
그런데 수필신화의 내용에 나타나는 메시지 중에서 환상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러시아 형식주의자 낯설게 하기의 창시자인 슈클로브스키가 말한 <낯설게 하기>에서 온다. 여기서 낯설게 하기란 문학이나 예술을 보았을 때, 이게 뭐야 즉 <어?>하고 감탄할 때 오는 논리와 감정입니다. 한편 신화수필의 내용에 나타나는 메시지의 다른 하나는 진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상징적 진리>에서 온다. 특히 신화에서 나타나는 상징적 진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모델이다. 12가지인데, 치료(therapy), 교육(education), 조직화(organization), 기원해석(origin-interpretation) 놀라움(surprise), 성화(sacralization), 구원(salvation), 아이디어(idea), 상상력(imagination), 통일(unification), 모델(model) 그리고 종교의 근거(a scientific basis of religion)이다. 그런데 신화가 제시하는 상징적 진리보다 가장 난해하고 고급의 진리인 역설적 진리를 통하여 진정한 문학성이 회복된다고 본다. 역설적 진리가 문학의 메시지를 한 차원 높여주는 장치라고 본다. 그런데 종교의 근거가 되는 역설적 진리는 신화의 상징적 진리의 일부인데, 상징적 진리와 현실의 상식적 진리와의 사이에 학문적 진리가 나타난다. 이상적 진리에는 상징적 진리와 학문적 진리가 있다. 한편 학문적 진리도 결국 현실의 상식적 진리로 환원된다. 학문적 진리가 강이라면 현실의 상식적 진리가 바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진리 중에서 역설적 진리는 신화의 상징적 진리 속에 포함되지만, 세상에서 가장 난해하고 고급의 진리는 역설 진리(paradoxical truth)이다. 즉 역설적 진리는 신화의 진리 가운데 종교의 근거가 되는 진리이다. 예를 들면 불교의 역설 진리 가운데 공사상(나갈쥬나, 용수)이 있다. 진공묘유(없으면서도 묘하게 있음)이다. 즉 없으면 없지, 없으면서도 묘하게 있는 것이 공사상이다. 그러나 성경의 역설이 더 인간적이고 포괄적이라고 느껴진다. 즉 불교의 역설 진리는 너무나 형이상학이다. 즉 형이상학을 무한부정하는 것이 공사상이라고 하지만, 역설 진리로 보면 오히려 너무 형이상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편 고급의 진리인 역설적 진리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역설 진리는 「신약성경」의 산상수훈(산상설교. 마태오5:1-10. 혹은 루가 6:20-23) 혹은 진복 8단으로 알려진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즉 “1)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2)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3)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4)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5) 자비를 배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6)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7)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8)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참된 행복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아홉 번째(9)의 역설적 진리는 기독교의 핵심 화두인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그런데 원수란 이미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얼른 보면 틀린 말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화를 낼 때도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원수를 위하여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하여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즉 자기가 자신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칼 융으로 말하면 원수는 자신의 그림자이다. 즉 예수님은 자신의 그림자를 사랑하라고 역설한 셈이다. 그림자의 사랑은 자신의 혼(아니마-아니무스)을 살려내서 쾌활한 활기(lively vitality)를 회복하는 일상생활을 이끌 수 있다. 예를 들면 원수를 즉 자신의 그림자를 사랑하는 작품이 「로미오와 쥴리엣」이다. 만약 원수를 심리학의 그림자 이외에도, 사회학적인 면에서 금기사항으로 보면,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에 해당하는 「춘향전」(성춘향이 양반이 되고자 가상의 김춘향을 생각하는 것)도 사회에서 금기(taboo)하는 즉 금지된 사랑(forbidden love)이란 면에서는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변학도가 없다면 작품은 성공하지 못한다. 물론 그림자로 나타나지만 변학도는 성춘향이를 통과의례를 통하여 사회질서도 잡아주고, 통과의례를 통하여 성춘향이를 양반 서열에 올려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즉 모티프와 사건과 소재 그리고 플롯에서 다르다 하더라도 사회의 모레스(mores, 사회의 관습)상 금지라는 면은 「로미오와 쥴리엣」과 서로 비슷한 것이라고 본다. 물론 사회 관습상 「주홍글씨」도 포함될 수도 있는데, 작품의 죄인은 헤스터인데 사회의 그림자이다. 그러나 그림자 즉 죄인이 천사로 바뀌는 아이러니가 일어난다. 따라서 죄인이 천사로 바뀌는 즉 그림자가 아니마-아니무스로 바뀐다. 그리고 「토지」에서 서희에게 그림자였던 길상이를 아니무스로 선택한다. 또한 「타이타닉」의 잭도 사회의 그림자인데 로즈양에게 아니무스로 작용한다. 더 나아가「채털리부인의 사랑」도 사회의 그림자인 멜로우가 채털리 부인에게는 아니마-아니무스로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통과의례의 주된 사회학적 기능은 희생양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질서를 회복하여 조화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보다 더 나은 것은 문학에서 통과의례가 문화의 본질인 원형의 성격에 질서를 회복하여 건전한 삶을 유지하게 도와준다. 더욱이 환상과 시간의 지배 그리고 진리를 습득하게 한다. 그러나 덧붙여서 신화의 위대성을 살펴보면, 신화는 삶의 즐거움(enjoyment of life)을 위해서 두 가지를 우리에게 안겨준다. 먼저 신화가 삶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 환상이다. 환상은 주로 신화의 낯설게 하기의 다섯 가지와 관련이 있다. 다음으로 신화가 삶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 진리이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상징적(혹은 은유적 진리)이다. 이러한 상징적 진리는 12가지 기능을 가진다. 따라서 신화는 환상과 진리를 통하여 삶의 즐거움을 준다. 특히 신화의 통과의례는 희생양과 같이 사회의 질서 회복을 목표로 한다. 과거에 문학이 (삶의) 즐거움과 교훈을 전달한다고 보았으나, 필자는 신화(문학과 예술을 포함)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삶의 즐거움에 대한 환상과 진리(특히 상징적 진리)로 보았다.
다음으로 신화(혹은 문학의 스토리)는 환상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가 낯설게 하기이다. 낯설게 하기에 대하여는 등장인물에서 기인들의 등장(하극상 등의 낯선 행동가 및 의인화 등), 시간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이동이라는 의식의 흐름, 공간으로는 낯선 공간으로의 이동 즉 신과 초자연의 등장, 플롯에서 본능인 리비도와 전통 플롯인 긴장(혹은 경악) 플롯과 연결하기와 신화의 상징적 원형의 재활용, 문학 용어로는 문학 이론들로 독자를 설득하는 수사적 기교(a rhetorical device)의 요소 즉 아이러니, 풍자, 역설, 알레고리, 패로디, 부조리 등이다. 여기서 이상적인 작품에 환상의 낯설게 하기의 요소를 모두 다 사용한다고 효과가 높은 것이 아니라 몇 개만 사용하더라도 환상을 높일 수 있도록 작가가 유념하면 된다. 그런데 낯설게 하기를 통하여 스토리에 환상을 첨가하여 체험의 상징성을 효과적으로 높여 줌으로써, 통과의례를 강도 높게 경험하게 하여 자기실현을 구체적으로 달성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분석심리학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두 가지의 예를 들면, B씨의 한 작품에 나타난 것으로 우리가 환상과 관련된 낯설게 하기의 예를 비평 할 수 있다. 먼저 수필 신화는 다른 장르와 다르게 상징에 따른 신화로 자신의 체험을 전달합니다. 문제는 시간과 공간의 이동으로 환상을 준다는 겁니다. 즉 낯설게 하기의 장치라고 보여집니다. 유년시절 그리고 과거의 살던 곳으로의 이동은 독자에게 환상을 줍니다. 작품속의 유년의 나는 기인으로 보입니다. 이것도 낯설게 하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유년시절에 대한 패로디로 풍자가 섞임으로서 낯설게 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신화는 우리에게 좋은 상징적(혹은 은유적) 진리 즉 모델과 치료 그리고 상상력과 교육을 시켜줍니다. 수필신화의 환상과 진리를 잘 체험하고 나갑니다. 또 다른 작품에서 비운에 간 장화왕비와 관련된 수필신화를 건져냈습니다. 문학과 예술이 <삶의 즐거움>이란 목표로 글을 쓴다고 볼 때, 전달하는 메시지는 환상과 진리라고 보여집니다. 장화의 생애는 우리를 낯설게 하였고, 그보다 과거로의 여행 즉 시간 여행도 우리를 낯설게 합니다. 성혈이 있는 무덤도 우리를 공간이동을 시켜줍니다. 하여간 상징적 진리는 우리에게 삶에 대한 상상력과 삶의 모델 등을 전달하는 것이라 보여집니다.
첫댓글 예나 지금이나 묵묵히 이어가시는 배 선생님의 속 깊으심에 무한한 경의를 보냅니다. 함께 한 지도 벌써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갔군요. 올리시는 글 빠뜨림 없이 읽고 있습니다. 힘에 부치는 면 없진 않지만요. 좋은 나날 만들어 가십시오. 호시절도 잠시잠간인가 봅니다.
가끔씩 뵙습니다만 공부하려고 노력은 합니다만 밋밋합니다. 빠짐없이 읽으신다니 한 편으로 좋기도 합니다만, 정말 마구잡이로 올리는 글이 많아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언제 차한잔 나눌 시간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요사이 이동민씨의 권유로 심화학습반에 나갑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