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김새는 그만두고 역사와 기후 풍토가 다르다면 사고방식 또한 상이한 것은 당연하지만 일반적으로 서양 사람의 분석적, 이성적, 수리적인 사고에 반해 우리는 통합적, 관념적, 감성적인 사고를 지닌다는 것이 이어령 교수의 주장이다.
평행선을 달리듯 제 갈 길을 가면 그뿐이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선진사회의 현주소가 서구사회에 있으므로 이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양인들은 사물과 현상은 물론 사람도 분석하고, 수량화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의식세계인 두뇌까지 지능지수라는 수치로 나타내어야 직성이 풀린다. 애정도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의 화학작용으로 해석하고 변화무쌍한 감정도 수치화하여 정체를 밝히려고 안간힘을 쓴다.
예컨대 동물 쇼에 출연시키려고 코끼리 훈련을 조련사에게 맡긴다고 치자. 우리 같으면 코끼리가 몸을 흔들어 춤추게 하면 끝나지만 저네들은 음악에 맞추어 코끼리가 오른쪽 앞발은 네 번 들었다 내려놓고, 왼발을 세 번 앞에서 뒤로 흔들며 이 때 긴 코를 다섯 번 상하로 흔들 수 있도록 한다는 따위로 춤의 의미를 매우 구체적으로 제한하여 계약한 다음에야 훈련을 시킨다. 책임과 요구수준이 분명하여 군말이 덧붙을 여지가 없다.
학교 교육도 마찬가지로 수학선생이 어느 학교에 채용될 때, 중학교 2학년 100명 중 1학기 종료 시까지 80명이 등치법, 대입법, 가감법으로 1차 방정식을 풀도록 가르친다는 명시적인 계약을 맺는다. 이에 미달하면 책임져야 하고 목적을 달성하면 보수 이외에 소박한 보상을 받는다. 체육과 교사도 10월말까지 1학년 학생들 90%가 뜀틀 오단 구르기를 할 수 있는 기능을 신장시킨다는 따위로 학습목표를 세운다.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는 우리네의 졸업식 안내장에 비해 입장 티켓 소지, 학생들의 복장, 비디오촬영 여부, 구두와 바지의 높낮이까지 제시되고, 경건한 졸업식을 위해 식장에서 개별적인 박수, 휘파람, 고성을 삼가야 한다는 내용까지 담은 서구의 학교 졸업식 안내장은 정보의 양에서 이미 우리를 주눅 들게 만든다.
팩에 든 우유의 용량이 몇 밀리리터만 부족해도 독일에서는 소송거리가 되기도 한다는데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합리성은 바로 따지고 파고드는 태도, 거기에 숨어 있는 것이다. 세계화니 글로벌시대라는 것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람을 비롯한 모든 현상을 이성적인 시각으로 분석하는 따지기 문화를 일컫는다.
우리네 사회생활에서 이런 식으로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속 좁고 답답하며 몹쓸 사람으로 낙인찍혀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다. 째째하고 몰인정하고 상대 못할 사람이 되고 만다. 못 본체 과오는 묻어 주고,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이 두리뭉실하게 처신하는 그 사람이 너그럽고 통 큰 사람으로 평가 받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이성적으로 접근하여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저네들의 태도가 정을 느끼지 못하면 배타적으로 변하는 감정적인 온정주의에 젖은 우리들에게는 못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꼼꼼하게 따지지 않고서는, 냉정한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서는 자고나면 발생하는 이익집단들의 온갖 사회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기초의원의 과도한 보수 인상이 보도를 통해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더니 마침내 행자부가 재제에 나섰다. 대부분 지역의 의원 연봉이 3,000만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지역의 의원 보수도 재정자립도, 인근 시군결정사항, 물가상승률, 지역주민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25.5% 인상하여 3,162만원으로 결정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뭣 하나 명백하게 밝힌 것이 없다. 재정자립도를 보수인상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했는지, 대표성을 지닌 지역주민을 어떻게 선정했으며 여론조사 방식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을 뿐더러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의원들이 하는 일이 지난해와 다르지 않는데도 25.5%로 대폭 인상하는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 의정비심사위원회는 사무관의 급료를 기준으로 삼아 인상했다고 하는데 영리행위가 엄격하게 제한당하고 매일 출근하는 사무관의 보수가 무슨 근거로 의원 보수인상의 준거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낮은 재정 자립도를 감안하면 오히려 인하하는 것이 타당성을 지닐 수도 있다. 반대여론이 있었지만 이들의 주장 또한 논리적, 분석적으로 인상의 부당함을 제시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에는 미흡했다.
야간에 회의를 개최하는 독일 기초의원들이 밤에 일하기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낮 동안 자신의 영리활동을 한 다음 야간을 이용해서 회의를 하는 것이기에 굳이 연봉을 챙길 이유가 없다는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시민들이 길들인 결과일 것이다.
금번 기초의원의 인상된 연봉은 무엇에 근거하여 책정되었는지 실로 신비롭고 은밀스러운 비밀인 셈이다. 비분석적, 비합리적, 감성적인 태도를 극복할 때 우리들을 매몰시키려는 함정을 넘어 선진사회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