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원 에세이 『시와 산책』(시간의 흐름, 2024)을 읽고
아름다운 문장가로 유명한 한정원 작가의 글은 늘 바쁘다는 나를 책상에 붙잡아 앉혔다. 책 속에 빠져 일어나지 못했다. 책장을 덮을 때까지. 아니, 책장을 덮고도 긴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슬픔과 아름다움을 품었다.
세종사이버대학교 평생교육원 에세이 창작 10주 과정 프로그램, 지도 선생님이신 임희정 작가님의 추천 도서다. 좋은 책도 추천해서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며, 글 쓰는 법을 알려 주시는 임희정 작가님은 “글쓰기 연금술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출한 글을 꼼꼼하게 짚어서 피드백 해주신다. 글쓰기를 배우면서 마음 쓰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글쓰기 실전을 배워가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더 정확하게 표현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낀다. 이 책이 글쓰기와 사유에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것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시와 산책』에서는 밥을 먹는 것처럼 시를 읽고, 산책하는 것 같은 한정원 작가의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다시 시가 되는 것 같다. “그 무엇도 하찮지 않다고 말하는 마음이 시”라는 인용구에 밑줄을 긋고, 너무 좋아서 한참을 머물렀다. 시인의 마음과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말들이 아름답다는 생각 너머로 삶을 참 밀도 높게 살아가는 작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온 우주보다 더 큰」이라는 첫 번째 글에서부터 마음을 끌었다. 작가는 “사랑하는 것을 잃었을 때, 사람의 마음은 가장 커진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가장 깊어진다”라는 표현이 맞다고 생각했었다. 상실은 생각이 속으로 깊어지고, 그 범위가 넓어지면서 인생을 알아가게 한다. 그렇게 큰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가장 커진다는 표현도 적절하다고 이해되었다.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에서 “겨울에 말을 타고 언 강 위를 지나간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듬해 봄에 강이 풀리고 나자 그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강이 얼어갈 때 소리도 같이 얼어 봉인되었다가, 강이 풀릴 때 되살아난 것이다.”(p18)
작가도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라고 말했지만, 나는 처음 들어 본 말이었다. 언 강이 소리까지 얼린다고 하면, 시시때때로 하고 싶은 말을 무심결에 해버리는 행위는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긴 세월 봉인되었다가 풀려도 좋을 다정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여름을 닮은 사랑」에서 “혹서에 자신의 열기를 견디다 못해 옆의 가지와 부딪혀 불을 내는 나무가 있다고 한다. 자연발화라고는 하지만, 나무 스스로 불을 지르는 셈이다. 자신의 뜨거움을 몰아내려 오히려 뜨거움으로 뛰어들고 마는 참혹한 형편이다.”(p59)
자연발화의 현상을 바람결에 나뭇가지가 자연스럽게 흔들려서 일으키는 것으로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나무가 스스로 행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놀라웠다. 열기가 그렇게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열로 인한 뇌 손상으로 병을 얻게 된 사람들도 살아남기 위해 어느 한 곳의 손상을 무릅쓰고 열을 발산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았다.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도 터지려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 그러는 거겠거니 생각되었다.
「영원 속의 하루」에서 “시어는 말 그대로 돌멩이, 가시, 구름 같은 단어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얼굴이나 사건일 수도 있다. 그것은 아주 깊은 곳에 잠겨 있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예민하고 집요하게 찾아 헤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어둠 속으로 첨벙 뛰어들어야 한다.” (p73)
시를 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경험으로 안다. 작가의 말처럼 ‘집요하게 찾아 헤매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만 이 말은 몰랐다. ‘어둠 속’에서 시어를 찾아야 한다는 것. 밝은 언어도 어두운 언어도 일단은 어둠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밤하늘의 별이 빛나는 것은 주위에 어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둠이어야만 빛나고 반짝이는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한정원 작가야말로 어둠 속에서 시어를 줍는 사람이고, 스스로 빛을 내며 살고 있는 사람이다.
「잘 걷고 잘 넘어져요」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발을 내디뎌요. 괜찮아요. 걸어요. 자꾸 걸어요.” 그가 커튼을 닫고 나간 후 다시 혼자 남아 누워 있으면서, 나는 어쩐지 후련하고도 글썽글썽한 기분이 되었다. 발목을 고쳐달라 했더니 마음을 고쳐주고 그래요. (p91)
사실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고였다. 이 부분을 읽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흘렀다. 며칠 전에 눈꺼풀이 찢어져 수술하게 되었다. 잔뜩 겁을 먹고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의사가 다가왔다. 자기 행동을 말로 계속 설명하면서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마취하고 그런 후에도 만지고 만지고 또 매만졌다. 마치, 상처를 달래는 것 같았다. 아니, 마음을 달래는 것 같았다. 의사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녁이 왔을 뿐」에서 “나는 시와 저녁이 잘 어울리는 반려라고 느낀다. 모호함과 모호함, 낯설음과 낯설음, 휘발과 휘발의 만남. 바로 그러한 특질 때문에 시도 저녁도 어려운 것인데, 어느새 나는 그것에 기대서만 간신히 살아간다. 뚜렷하고 익숙하며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 세계 어디에도 없음을 알게 되어서이다.” (p124)
삶이 계획대로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시도 저녁도 삶도 모호하고 낯설고 휘발’된다는 것을 느끼지만, 이토록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할 재간은 없었다. 나도 ‘그 어려운 것’들에 기대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담담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다만, 그 담담함 속에서 쓸만한 문장 하나, 시어 하나 건져낼 수 있기를 “예민하고 집요하게 찾아 헤매”는 중이다.
『시와 산책』이라는 제목처럼 시와 산책 이야기다. 산책길에서 사유를 줍고, 시를 얹어 한 편의 에세이들이 완성되는 방식이다. 가볍고 편한 제목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깊고 서정적이며 아름답다. 나도 얼른, 운동화의 끈을 매고 커다란 주머니를 준비해야겠다. 작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작가의 말과 생각들을 주워 오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