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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골 3:12-14절
제 목 :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라
일 시 : 2022. 7. 10.
골로새서 3:12-14/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여러분, 늑대소년 이야기를 들어보셨죠? 그 중에 실제적으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1867년 늑대의 무리에서 양육된 인도 소년 디나! 당시 사냥꾼에게 발견된 디나의 나이는 여섯 살이었고 늑대와 함께 네 발로 걸어다녔습니다. 그를 구출하여 문명 세계로 데려왔고 말을 하지 못하는 그는 늑대처럼 울부 짖으며 날고기만 먹고 담배를 배워 평생 애연가로 살다가 35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명했습니다.
사람은 모방을 통해서 배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2:18/...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인간답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족이나 학교나 교회나 군대나 기업과 같은 공동체생활을 통해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서로에게서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표준은 성경말씀이며 본받아야 할 참된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본이 되고 귀감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아하기도 하고 본받고 싶어하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도 결국은 그들 안에서 그들의 삶을 바꾸시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받고 닮아 가야할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서 빌2: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외모가 아니라 그분의 성품과 마음을 품고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성품들은 너무나 많고 다양합니다. 우리가 많은 세월동안 즉 주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나라로 부르시는 그 날까지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는 일에 진력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의 성품은 매우 깊고 넓기 때문이며 평생의 과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본받고 닮아야 할 예수님의 성품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예수님의 무엇을 본받아야 합니까?
1. 먼저 상징적인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했습니다.
12절 말씀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는 말씀입니다. 상반 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라고 했으며, 하반 절에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했습니다. 상반절의 말씀은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로서 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까? 창세 전에 선택하셨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마치 리브가의 태안에서 자라고 있는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벌써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사랑하는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저와 여러분을 선택해 주셨습니다. 대단한 축복입니다. 2) 거룩하신 자입니다. 거룩하다란 하기오스라고 하는데 (육체적으로)순결한, (도덕적으로)결백한 또는 (종교적으로)봉헌된, (가장)거룩한(사람, 사물), 성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봉헌되고)구별된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도록 구별된 존재라는 뜻입니다. 3) 사랑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사랑받는이란 아가파오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은 한 번 사랑하시면 영원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코 변절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합니다. 이상의 세 가지는 성도인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밝혀 주는 성도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바르게 정립되지 않으면 결코 다른 사람을 바르게 대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월감을 갖거나 열등감을 갖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우상시하거나 반대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두가 자신의 정체성이 바르게 정립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존귀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자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을 때 다른 사람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존재로 선택받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 주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사람은 자신을 그렇게 여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을 보는 시각이 곧 자신을 보는 시각입니다. 자신이 존귀하다면 다른 사람들도 존귀하고, 자신이 거룩하다면 다른 사람도 거룩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다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서로를 존중하게 됩니다.
모든 성도들은 성경이 말하는 정체성에 근거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반절은 바른 정체성을 가진 성도로서 입어야 할 주님의 성품들이 무엇임을 소개합니다. 곧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옷들은 여러 벌이 됩니다. 겹겹이 덧입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은 아무리 많이 껴입어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더욱더 편안하고 활동적이고 행복한 삶을 선사해 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슨 옷을 입어야 합니까?
1) 긍휼입니다.
긍휼이란 스플랑크논이라고 하는데 (복수로)내장, 상징적으로 동정, 애정이라는 뜻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인간을 향한 애절한 동정심이 곧 긍휼이 여기는 마음입니다. 죄로 인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마치 창자가 끊어질 듯한 아픔이 동반되는 안타까운 마음 즉 반드시 도와주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죄 가운데서 건져 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은 계속되기 때문에 죄인들을 도와줄 수 밖에 없는 마음이 곧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우리에게도 멸망받아 지옥에 갈 죄인에게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2) 자비입니다.
자비란 오이크틸모스라고 하는데 동정, 자비라는 뜻입니다. 자비란 말은 인자하고 친절하다는 뜻으로 엄위(嚴威)이라는 단어와는 정반대입니다(롬11:22). 자비는 마음속에 있는 긍휼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긍휼이 마음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감정이라면 자비는 긍휼이 외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비를 친절이라고도 말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친절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밖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뜻입니다.
3) 겸손입니다.
겸손이란 타페이놉흐로쉬네라고 하는데 마음의 굴욕감, 즉 겸손, 마음의 비하, 겸양이라는 뜻입니다. 겸손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빌2:3/...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① 먼저 자신의 부족과 결함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지 않으면 결코 겸손할 수가 없고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가 없습니다. ② 두 번째는 사람의 높고 낮음을 판결하시는 때는 지금 현재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때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서 잔치의 자리에서 상석을 택한다는 것은 외람된 일입니다. 눅 14:8-10절의 비유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지상교회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사람들을 연회에 초청함과 같습니다. 그런데 교회생활(연회에서 상석을 차지하는 것)에 있어서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높인다면, 그것은 연회에 초청된 객으로서 연회를 주관하시는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월권하는 무례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말석(末席)을 차지하는 것이 더욱더 정당합니다. 언제 말입니까? 지금의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실제로 우리는 높여 주시는 때는 언제입니까? 지상교회 안에서가 아닙니다. 천국혼인잔치에서 우리를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생활을 하는 우리는 결코 교회 안에서 높아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 서로 높아지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회안에서도 높아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천국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낮은 자로 살아가는 사람을 천국에 가서 높은 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4) 온유입니다.
온유란 프라오테스라고 하는데 온유, 온순, (함축적 의미로)겸손이라는 뜻입니다. 온유란 말에 대하여 크레다너스 라는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온유)은 ① 베는 듯하고 쏘는 듯하고 찌르는 듯 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며, ② 남에게서 손해와 방해를 받고도 격분되거나 원한을 품거나 반동하거나 복수하지 않는 것이고, ③ 대인접물(對人接物, 예를 들면 사람을 교훈하거나 사업을 경영함과 같은 것에 있어서는 조급, 경솔, 조포(粗暴/행동이 몹시 거칠고 사나움), 열광, 잔인, 속단, 흥분 등과 정반대되는 인내, 신중, 화순(和順), 조절, 포용, 유화(柔和), 침착으로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습니다. 온유한 삶이 쉽지는 않죠? 그러나 주님의 가장 중요한 성품이기 때문에 반드시 온유라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5) 오래 참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오래 참음이란 마크로뒤미아 라고 하는데 (대상이)오래 참음, 또(주체가)꿋꿋함, 인내라는 뜻입니다. 오래 참음이란 나를 괴롭게 하는 시험거리로 인하여 변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음을 의미할 수 있지만, 특히 다른 사람이 나를 해치거나 혹은 은혜를 배반하는 경우에도 노하지 않고 변함없이 덕행(德行)을 계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언에는 오래 참는 덕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 14:29/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라고 했으며, 잠15:18/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고 했으며, 잠16:32/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으며, 잠17:27/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오래 참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은 롬2: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라고 했으며, 롬9:22/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라고 했으며, 벧후3:9/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고, 인간이 인간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는 권면은 딤전 1:16/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으며, 딤후 4: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루터는 그의 갈라디아서 주석(5:22)에서 오래 참는 덕의 필요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사단은 그가 시험하는 사람을 폭력으로 정복할 수는 없으므로 같은 시험을 오랫동안 계속함으로 그 목적을 성취하려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은 질그릇과 같아서 계속적 시험에는 넘어가는 줄 그놈이 알기 때문이다. 그놈은 이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넘어뜨렸다. 이와 같이 장기적 시혹(試惑)을 이기려면 우리는 오래 참는 덕을 소유해야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옷 입고란 우리의 행동과 습관은 옷과 같이 남의 눈 앞에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남의 평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행동과 습관들은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없이 나타나서 그분의 판단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켜 깨끗한 옷을 입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그대로 들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계 19:8/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마 22:11-12/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라고 했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들어온 이 사람은 평상시에 그의 삶이 깨끗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즉 평상시에 교회는 다니고 자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믿었지만 삶이 깨끗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2. 누구에게 불만이 있어도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13절에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했습니다.
1)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라고 했습니다.
불만이란 몸프헤라고 하는데 비난, 즉(함축적으로)실수, 다툼이라는 뜻입니다. 불만이란 비난 받을 만한 실수를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서로에게 이런 불만과 실수가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용납하다란 아네코마이라고 하는데 태연하다, (상징적으로)용서하다, 견디다, 겪다, 고통을 당하다라는 뜻입니다. 용납하다란 자신에게는 고통이 되고 아픔이 되지만 그것을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이 하는 행동이 기쁘거나 즐겁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곧 용납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용서하다란 카리조마이라고 하는데 호의로서, 즉(친절, 용서, 구조하는 의미에서)아무 이유없이 허락하다, 인도하다, (솔직하게)용서하다, (무료로)주다, 수여하다 라는 뜻입니다. 용서하다란 아무런 조건이나 이유를 달지 않고 받아들이고 친절을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도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우리는 용서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13절의 말씀은 앞에서 말씀 드린 다섯 가지 미덕(美德) 즉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긍휼과 자비를 실제생활 속에서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적용하는 것이 곧 용납이며, 2) 또한 긍휼, 자비를 적용한 것이 곧 용서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중요한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서로 용납하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 사이에서 생기게 되는 원망이나 다툼의 책임은 오직 한쪽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엄밀한 의미에서는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원망을 받는 자에게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고, 원망거리를 용납하지 못하고 거기에 대해서 불평하는 자에게도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라는 아가페 사랑의 표준에서 벗어난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피해자 측에서는 용납하는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서로 용서하되 라는 말씀을 어떤 번역에서는 너희 자신들을 용서하되 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번역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한 성도가 다른 성도를 용서하면 그것은 실질적인 면에서 자기 자신을 용서함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혐의가 있고 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이어서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창조주이시고 구원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반역하고 주님의 원수가 되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께서는 친히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대하여 불평을 하시려고 하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큰 희생을 당하시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우리를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벵겔(Bengel)은 말하기를, 우리를 책 잡으려면 얼마든지 그리할 만한 최대이유의 소유자는 그리스도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하되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그렇게 조건없이 용납하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이 일이 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 사람이며,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교회 안에서 성도끼리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금식하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서로가 서로를 고소하고 고발하고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3.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14절에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란 앞에서 말씀드린 다섯 가지 덕목과 서로 용납하고 서로 용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덕목들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사랑이란 아가페 라고 하는데 사랑, 존경 즉 애정이나 자비심 a) 그리스도인 최고의 덕목 b) 신의 인간을 향한, 인간의 신을 향한, 인간의 인간을 향한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최고의 사랑, 즉 십자가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더하다란 에피라고 하는데 ~위에 첨가하다 라는 뜻입니다. 온전하게란 텔레오테스라고 하는데 상태의 완전(정신적이거나 도덕적으로)이라는 뜻입니다. 메는 띠란 쉰데스모스라고 하는데 연결하는 선 (끈), (상징적으로) 연합시키는 원리, 통제력, 매임, 굴레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야말로 하나님과 성도, 그리고 성도와 성도를 서로 완전하게 연합시키고 묶어 주는 굴레 라는 뜻입니다.
참된 성도는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결국에는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진 한 몸이며 한 지체로서 하나됨을 지켜야 합니다.
4. 그러나 결코 용납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3,18-23/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0절을 보시면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결코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이세벨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음행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일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진노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이라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사람들이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의 행실이 올바르고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특별히 다른 성도들을 사랑으로 용납하고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 홀로 앉으십시오.
1. 골3:12-14절을 읽고 예수님을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해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사람은 모방을 통해서 배우지만 성도는 누구만을 본받아야 합니까?
2. 성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세 가지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3. 성도가 입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이란 무엇입니까(다섯 가지)?
4. 겸손해지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두 가지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5. 오래 참음의 의미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6. 용납과 용서의 두 가지 원칙은 무엇입니까?
7. 하나님과 성도, 성도와 성도를 완전하게 묶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아멘
아멘
아멘아멘
1.에수님
2.1)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존재 2)거룩하신자 3)사랑받는자
3.주님의 성품으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입니다
4.1)먼저 자신의 부족과 결함을 심각하게 인식해야하며 2)사람의 높고 낮음을 판결하시는 때가 지금 현재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때라는 것을 인식하는것입니다
5.1)나를 괴롭게하는 시험거리로 인해서 변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2)다른사람이 나를 해치거나 혹은 은혜를 배반하는 경우에도 노하지 않고 변함없이 덕행을 계속하는것입니다
6.1)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고 2)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
7.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