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향기라고 하면 꽃향기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꽃에만 향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습니다. 고급 향수나 고가의 화장품을 발라서 나는 향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인품과 삶에서 우러나오는 향기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세상에는 아직도 그런 향기를 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태석 신부님이 그런 사람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었기에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사제였는데,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로 불리는 수단의 남부 톤즈로 해외 선교를 나갔습니다. 그곳으로서 십 년 가까이 열정적으로 의료, 교육 사업을 펼치다가 마흔둘의 한창나이에 대장암에 걸려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워낙 환경이 열악한 곳이라서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인스턴트식품으로 대강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았답니다. 친지들은 아마도 이것이 병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많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남을 보살피다가 자기 건강을 미처 살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신부님이 세상을 떠난 2010년에 그분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가 나왔는데,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영화에서 나온 신부님의 고백이 마음에 큰 여운을 남깁니다.
“신부가 아니어도 의술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데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아프리카까지 갔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
마지막으로 10남매를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다.”
2. 이태석 신부님은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에 영향을 받아 살다가 스스로 아름다운 향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아름다운 향기는 예수님입니다. 이천 년 교회 역사를 보면 예수님의 아름다운 향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여서 그분에 대한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하느라 험지에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이들, 그분을 위해 삶을 통째로 내놓은 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죄와 허물 많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고자 세상에 내려오셔서 사람이 되시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에 대한 극진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낮추고 비우셨기 때문에 아름다운 향기를 내실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고 부르면서 사랑한다고 해서 자신을 낮추어 개나 고양이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강아지가 예뻐서 죽겠다는 사람에게 “강아지가 그렇게 예쁘면 네가 강아지가 되면 어떠냐?”하고 얘기하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버럭 화를 낼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하십니다. 인간에 대한 큰 사랑, 헤아릴 수 없이 큰 사랑에서 당신 아드님을 ‘하늘’의 영광스러운 자리를 버리고 ‘지상’의 수고로운 자리로 기꺼이 내려오게 하십니다.
이 사랑의 신비를 오늘 제2 독서인 히브리서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2) 또한 오늘 복음인 요한복음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그리고 이렇게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고 말합니다. 또한,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2,6-7)
3. 예수님의 가장 아름다운 향기에 취해서 이태석 신부님은 아프리카 남수단의 오지 톤즈에서 예수님을 닮아 아름다운 향기를 뿜는 사람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카를로 아쿠티스 복자의 유해를 이 센터에 모시는데, 그도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향기를 받아 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991년 영국 런던에서 한 이탈리아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는 바로 그해에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주했습니다. 아쿠티스는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선행을 했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능숙하게 다루었는데, 이 재능을 젊은 세대에게 신앙을 전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아쿠티스는 세상에 알려진 성체의 기적을 목록화하고 가톨릭교회가 승인한 성모 발현의 목록을 유지하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전념했습니다.
아쿠티스는 이탈리아인 복자 자코모 알베리오네(1884-1971) 신부를 본받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미디어를 사용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선포하려는 목적으로 여러 수도회(성 바오로 수도회, 딸 바오로 수녀회)를 설립하였는데, 아쿠티스는 자신의 웹사이트로 복음을 전파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급성 백혈병에 걸려 15세의 나이로 이탈리아 몬차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아쿠티스는 "우리는 모두 독창적으로 태어나지만, 많은 이들이 복사본으로 죽는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2018년 청년 시노드를 마무리하는 문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문구를 인용하며 그를 다음과 같이 칭찬했습니다. “카를로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젊은이들이 겉으로는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 권력자들이 소비와 무감각의 메커니즘을 통해 강요하는 것들을 쫓아감으로써 실제로는 서로 비슷해진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주님이 그들에게 주신 선물들이 자신들 안에서 흘러나오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각자에게 심어 주신 개인적이고 독특한 선물을 세상에 제공하지 않습니다.” 아쿠티스는 자신이 받은 좋은 재능을 시류를 따라가는 데가 아니라 하느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아쿠티스가 세상을 따난 지 4년 만이 2009년에 췌장 질환을 앓던 브라질의 한 소년의 어머니가 아쿠티스에게 전구를 해서 치유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기적은 근거로 아쿠티스는 2020년에 시복되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에 두 번째 치유 기적이 일어나서 내년 2025년에 시성될 예정입니다. 아쿠티스 복자가 시성이 되면 2027년 서울 WYD의 주보 성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4. 주님 성탄 대축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가장 아름다운 향기인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입니다. 그분의 은총에 힘입어서 우리도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다운 향기를 지니면 좋겠습니다. 비록 이태석 신부님이나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 등 다른 위대한 인물처럼 진한 향기를 뿜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은은하고 잔잔한 향기라도 내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만나서 작은 위로와 용기를 얻고 잔잔한 기쁨과 위로를 느낀다면, 그게 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은은한 향기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각박하고 삭막해서 그런 향기가 많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향기의 전달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2천 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오늘 내 안에서도 태어나셔서 그분의 아름다운 향기가 내 안에 가득 차서 그 향기를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은혜를 청하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