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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king maker). 미국의 영화제작 프로듀서 '하비 웨인스타인'의 별명이다. 크라잉 게임(1992) 펄프 픽션(1994), 킹스 스피치(2010),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2012), 장고-분노의 추격자(2012)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들을 줄줄이 성공시켜 30년간 할리우드의 영화 권력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연기파 배우 메릴 스트리프는 오스카상 수상식에서 그를 ‘신(神)’으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영광은 길었지만 추락은 한순간이었다. 그는 이젠 ‘성범죄자’로 더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작년 10월 5일 뉴욕타임스가 하비 웨인스타인이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앤젤리나 졸리, 귀네스 팰트로, 셀마 헤이엑 등 수많은 여배우들을 성추행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그의 화려한 인생은 끝장났다. 멕시코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여배우 셀마헤이엑은 영화촬영중 호텔방까지 쫒아와 집요하게 추근대는 웨인스타인 때문에 몸서리쳐질만큼 힘들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할리우드 여성 배우^감독^제작자 등 300명이 미국 내 성폭력 성차별에 공동 대응하는 단체인 ‘타임 수업’을 결성했으며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유하는 ‘미투 운동(#Metoo)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그 미투 운동이 3개월여만에 한국에도 상륙했다. 그런데 출발지점이 의외다. 다른 곳도 아니고 '사회정의 수호자'이자 '법의 집행기관'인 검찰이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는 검찰 내부만 인 이 프로스에 2010년 장례식장에서 안태근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증언과 글을 첨부했다. 글에는 조직 내에서 목격한 부조리한 일상의 단면들이 소설 형식을 빌려 소개됐다. 형사·공안·특수·공판부 등 검찰청마다 부서 단위로 가동되는 조직에서 술자리, 회식 등을 통해 숱하게 경험한 성폭력·언어폭력이 등장했다. 여기에서 성폭력은 강간을 의미한다. 서 검사는 "부장검사가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해 여자(서 검사)의 손을 주물러댈 때, 왜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침묵하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해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직 검사로는 드물게 종편채널에도 출연해 증언했다. 서 검사의 증언 이후 전현직 여검사들이 언론을 통해 추가 증언을 이어갔다. 검찰판 미투 운동이다.
성범죄는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폭넓게 발생하고 있다. 직장 내 성추행^성희롱은 흔하다. 지난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여비서에게 성추행했다가 그룹 총수 자리에서 내려왔다. 호식이 치킨 사장 역시 여직원에 추잡한 행동을 했다가 브랜드 이미지가 땅에 떨어져 프랜차이즈 업주들까지 피해를 입기도 했다. 군대 내에서도 성추행은 뜨거운 감자다. 여성 장교가 상관의 못된 짓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례는 잊을 만 하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한다.
하지만 검찰 내 여검사를 상대로 성추행^성희롱이 만연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다. 가해자나 피해자나 사법고시를 패스하기 위해 수년간 법전(法典)을 파고들었으니 누구보다도 법을 잘 알고 법을 집행하면서 인권의 소중함과 윤리교육도 제대로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검사들의 실상을 보면 국민 정서와 거리가 멀다. 법을 다루고 있지만 자신의 편의에 따라 법을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은 물론 상식 밖의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골프장에서 캐디를 성추행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손녀뻘 되는 여성의 신체를 만지다가 항의를 받자 “귀여워서 그랬다"라고 말해 ‘국민 노추(老醜)’라는 비난을 받았다.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인물의 법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다. 그에게 성범죄는 특권층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검찰 내부에서 성추행이 많은 것은 특유의 상명하복(上命下服) 때문이라고 한다. 명령체계가 일사불란해 감히 상사와 선배의 말을 거역하기 힘든 조직문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항의했다가는 외려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 검찰의 검은 속살을 드러낸 영화 ‘베테랑’, ‘더킹’, ‘검사 외전’에서도 표현됐듯이 상사의 잘못된 지시에 항명했다가는 조직에서 발을 못 붙인다. 서 검사도 지난 7년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면서 좌천도 당했고 유산까지 했다고 한다. 검찰과 법무부가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진작에 조사해 사실관계를 규명했다면 불명예스러운 성추행 논란에 휘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에게 ‘사정의 칼’을 쥐여줬으면 처신이 엄격하고 반듯해야 한다. 검찰의 위상이 밑바닥을 드러내고 ‘정권의 시녀’노릇을 한다는 비판이 과하지 않다.
서 검사가 성추행을 증언한 날 정승연 대구지검 김천지청장이 관사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기도했다. MB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된 전력 때문에 좌천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검찰이 스스로 혁신해 정치검찰, 서열화된 권위적인 검찰이 아닌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려면 자정(自淨)능력부터 갖춰야 한다. 여검사 인권조차 지키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국민의 인권을 지켜줄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어렵다.
/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jbnews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