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퀴즈(pop quiz)
금요일 저녁이다. 팝 퀴즈 때문에 바쁘다. 서점에 가서 손주가 다니는 학교 이름을 대고 공부하는 책을 찾아서 뒤적인다. 책을 펴놓고 읽어 보면 생각보다 어려운 내용이 들어 있다. 손주의 입장을 헤아려가며 몇 개 골라서 적는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으면 책을 사 와서 집에서 읽어 본다. 토요일 아침이면 가족 카톡방에 먼저 아침 안부를 묻는다. 굿-모닝, 손주에게 한 주 고생 많았다고 격려의 메시지를 올린다. 끝에 ‘팝 퀴즈 할 사람.’ 한마디 덧붙인다.
손녀가 ‘넹.’ 하고 짧게 답한다. 이내 손자 녀석도 ‘저도요.’ 하고 손을 번쩍 든 이모콘을 보내온다. 요즘 팝 퀴즈가 유행이다. 잉글리시 팝 퀴즈, 자격증 시험 팝 퀴즈, 심지어 치매 예방 팝 퀴즈까지 등장했다. 팝 퀴즈라는 말은 원래 외래어다. 팝(pop)이라는 단어는 ‘갑작스러운’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퀴즈(quiz)는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맞히는 놀이나 그 질문을 이르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예고 없이 치르는 시험, 일명‘쪽지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문득 지난 기억이 머리를 헤집고 나온다. 연말이면 예산 작업하느라 눈코를 뜰 새 없다. 직원들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인건비, 기관운영비, 각 사업비를 각자 맡은 대로 따져야 수요를 판단하고 재원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직원이 하나라도 빠지면 진행이 어렵다. 어느 날 지인이 찾아와서 식사하자고 한다. 그는 함께 근무하던 직원의 부친이다. 얼마나 바쁘면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냐고 내게 따진다. 가만히 들어보니 손주 때문이다. 손주에게 전화하면 바쁘다고 끊어버린단다.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는 궁리 끝에 짜장면을 시켜놓고 아들 가족을 부른 것이다. 아들이 온다고 해놓고 예산 작업하느라 짜장면이 다 불어 터지도록 오지 않자, 속이 상해서 찾아온 게다. 바쁜 아들에게 부담 주지 말고 손주와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그 일이 남의 일이 아니다. 어느새 내가 그 자리에 와있다. 손주와 소통하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팝 퀴즈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는 누구인가, 할아버지는, 외할아버지’는 하면서 가족에 머물렀다. 자주 소통하며 학교생활 그리고 사회생활까지 이어졌다. 손주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찾느라 긴 시간이 걸렸다.
“팝 퀴즈 ① 승연아. 이번 주 기억에 남는 일은.”
이번 주는 ‘붕어빵 장사’라고 한다. 손녀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보고 느낀 일까지 보내온다. 동네 어귀에 붕어빵 장사가 나타난 게다. 사진까지 찍어서 붙였다. 하긴 더운 여름이 떠나기 싫어서 뭉그적대다가 엊그제 떠났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자, 붕어빵 장사가 등장하여 신기하게 보였나 보다.
“팝 퀴즈 ②. 준선아. 스티커 274개를 가지고 있다. 이 스티커를 친구 한 명에게 12개씩 나누어주려고 한다. 남지 않게 나누어 주려면 스티커는 적어도 몇 개가 더 있어야 할까.”
손자는 답을 올리며 으쓱거린다. 암산으로 풀었다고 자랑이다. 조금 수준 높은 문제를 올려보았다. 어렵다고 내동댕이친다.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상금까지 걸고 게임을 하는 손주를 카톡으로 불러들였다. 여기저기 물어 본듯하다. 정답이 올라왔다. 손자 통장에 상금과 보너스를 바로 입금하였다. 이렇게 매주 말이면 팝 퀴즈로 소통한다. 그간 헤아려보니 칠백여 개가 넘는다. 이쯤 아들과 며느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늙을 막 외롭지 않게 소통할 수 있는 손주를 낳아주어서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느님만 알 일이다. 유언 삼아 마지막 팝 퀴즈는 미리 보내 놓는 게 좋을성싶다.
“승연아. 준선아. 증조할아버지께서 내게(할아버지) 당부한 말은 무얼까.”
당연히 모를 거다. 행여 치매가 오면 알려 줄 수 없을 것 같아서 미리 답을 알려 준다. 어린 날 시골에서 살았다. 밭에서 쟁기질할 때다. 증조할아버지가 갈아놓은 이랑은 반듯한데, 내가 갈면 밭이랑이 삐뚤빼뚤했다. 증조할아버지가 내 모습을 보며 당부한 말이다.
“밭을 반듯하게 갈려면 바로 아래를 보지 말고 멀리 있는 뽕나무 그루를 보고 가라.”
귀로의 에움길에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손주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거나, 아들에게 짜장면 시켜놓고 먹으러 오라 해도 오지 않았다고 넋두리할 일 아니다. 농경사회가 아닌 유목문화 속에 살아가고 있다. 아들딸 며느리 손주가 세계를 누비고 있다. 이제 그들 입장에서 바라보고, 그들 상황에서 생각하고, 그들 마음으로 느껴보는 일 외에는 없지 않을까. 물리적 공간만 우길 게 아니라 가상공간에서라도 소통하면 되리다.
벌써 한 주가 지났다. 팝 퀴즈를 준비하여야 할 시간이다. 이번 주는 무슨 주제로 손주와 이야기를 나눌지 고심 중이다. 국어 영어 수학보다 ‘지혜의 날개를 달아 주는 팝 퀴즈’를 카톡에 올리고 싶다.
첫댓글 유병덕 수필가님의 수필 잘 읽었습니다.
주제가 강합니다.
좋은 수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