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ㅡㅡㅡㅡㅡ 언젠가 도라지꽃이 한창인 8월 화단에서 교미중인 호랑나비를 본 적이 있다. 대서의 땡볕을 불사하고 무려 사십 여분을 꼼짝없이 도라지 꽃대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며, 캬! 소리를 내며 감탄했었던 것은, 대학시절 우리보다 네 살 위였던 편입생 동기의 자취방이야기가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선풍기하나로 잠을 설치던 여름밤 그 더위 속에,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신혼부부의 방에서 새어나온 신음소리를 우리에게 전해주던 그 형은 지금 어디에서 잘 늙어가고 있을까?
유래에 없던 무더위는 아직 그대로인데, 마지막 더위를 걷어간다는 처서가 지났다고 귀뚜리가 울고, 며칠밤사이 풀벌레 소리가 짙어졌다. 모든 생존욕구는 결국 종족보존에 귀착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생명체도 무한생명은 없다. 자주감자는 자주 꽃을, 흰 감자는 흰 꽃을 피우듯, 개구리가 올챙이를 낳고, 고래가 고래를 낳듯, 사람은 사람을 낳는다. 소유와 보존의 질문에 부단히 정진하지만 생로병사의 굴레를 벗어날 수도, 유고한 자연의 역사를 거스를 수도 없다. 생명존엄의 궁극에는 종족보존이라는 유고한 문서에 유전자를 기록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문명의 이기가 극에 달한 지금, 인류파괴의 주범은 자신의 영위를 위해 출산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