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사연표 읽는 법
임병식 rbs1144@hanmail.net
나의 역사연표 읽는 법은 두 개의 키워드가 있다. 하나는 거점별로 주요인물의 출생연대를 고정해 놓은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간지(干支)로 연대를 확인하는 것이다. 먼저 간지 확인은 10간중 갑(甲)에 4를 부여하여 갑4로 읽는다. 그러면 자연히 순차적으로 다음의 을은 5, 병은 6이 되는데 이것은 바로 중요연대의 끝 숫자가 된다.
그리고 다른 방법은 마음속에 굳건히 지주를 하나 세우는 것이다. 그건 조부님과 아버지, 그리고 나의 출생년도이다. 조부님은 1887년생, 아버지는 1914년생, 나는 1946년생인데 이를 연대순으로 놓고 다른 주요인물과 사건을 살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간지로 부여한 숫자로 구체적인 연대를 짚는데 그리하면 보다 생생하게 실감도 난다. 한국사는 조선후기와 해방공간의 역사가 복잡하다. 그 중에서도 망조가 든 조선 후기는 고종과 흥선대원군, 그리고 민비의 갈등이 첨예하게 점철되어 있다.
나이어린 고종을 왕위에 밀어올린 대원군이 10년 섭정 후 청국으로 끌려가고 환국하여 수개월, 다시 실권을 잡은 후 또 다시 물러났다가 임오군란으로 재등장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왕비와 끊임없는 암투로 결국 나라를 패망의 나락으로 내몰았다.
그렇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고비를 간지로 짚어보는 것이다. 나의 이러한 기억법 활용은 조금은 특별하지만 어디서 따로 배운 것은 아니다. 순전히 개인학습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누구에게 모범으로 권장할 것도 못되고 ‘그렇게 외우는 사람도 있나’하고 여기면 될 것이다.
그러면 먼저 지간으로 연대를 알아보는 법을 보자. 어느 시기, 한 때 유행한 말에 '묻지 마라 갑자생(甲子生 )'이 있다. 이것은 물론 그 간지가 첫 번째로 들어있기도 하지만 알려진 유래가 있다. 우선 여기에 (甲)이 등장했으니 부여한 숫자는 당연히 4인데, 1924년에 태어난 이 갑자생은 유독 고난을 많이 겪었다. 이들이 스무살이던 1944에는 태평양전쟁이 터져서 일제에 의해 '묻지 마' 징집을 당했던 것이다.
그 통에 끌여간 1/3은 전사를 했고, 살아남은 사람도 또 다시 6년 후, 6.25 전쟁이 일어나 갖은 고난을 겪은 것이다. 그래서 이 갑자생을 지지리 복도 없고 고생을 한 출생자라 일컫는다.
다음으로, 을(乙)이 들어가는 을사년은 어떤가. 끝수가 5자가 들어간 국난의 해는 1895년. 이 해는 바로 명성황후가 일본 미우라 공사가 이끈 불량배에 의해 시해를 당했다. 나는 이 사건을 떠올리면 조부님이 태어난 1887년이 생각난다. 조부님이 태어나서 8년이 지난 후이어서 인데 이해는 단재 신채호선생 출생(1888년)한 7년 후이기도 하다. 이렇게 연관지어서 생각하면 그해에 일어난 동학혁명과 그 전에 일어난 갑오개혁(1894년)도 함께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 해는 김구선생이 21세에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비분한 나머지 이듬해에 일본중위 스치다를 때려죽인 시기이기도 하다. 다음해 보성 안치마을을 찾아와 김두호라는 가명을 쓰고 숨어들기도 했다.
김구선생은 1876년생, 나의 조부보다 11세가 위다. 이처럼 할아버지의 출생연도를 대입하면 기억이 생생해진다. 그렇게 비교해 보면 근대 인물이지만 얼마나 오래 적 인물인가를 알게 되고 실가하게 된다.
다음은 문학인을 보자. 근대문학은 20세기에 들어서 꽃을 피웠으니 이때는 아버지 출생연도(1914년)를 대입한다. 이렇게 하면 시인 이상은 1900년생. 그보다 두 살이 아래인 김소월은 1902년이고 박목월, 박두진은 아버지 보다 두 살이 아래인 1916년생, 윤동주는 세살 아래인 1917년생으로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된다.
조선은 1800년, 정조임금이 승하하자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노론 벽파는 장용영을 해체하고 세도정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현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뜨자 힘없는 전계대원군(은언군)의 서자 철종을 왕에 앉히고, 국사를 농단했다. 그리고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이번에는 조대비의 지원으로 대원군은 자기 아들을 왕위에 밀어 올렸다.
이후에 벌어진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만들었다. 이런 와중에 엎친데 덮쳐서 외부의 통상압력과 일본의 내정간섭은 극에 달하여 나라는 추락했다.
메지지 유신에 성공한 일본은 약체가 되어버린 조선을 호시탐탐 노렸다. 암중모색끝에 청국과 러시아를 물리친 일본은 운요호사건을 빌미로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1876년)을 체결하고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청국과 러시아를 물리치고 굴욕적인 을사늑약을 체결하였다. 그 과정에서 조선은 잠시 대한제국으로 간판을 바꿔달았지만 허울뿐인 정권이었다.
일제는 1909년 안중근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척살한 것을 기화로 이듬해 한일합방이라는 경술국치(庚戌國恥 .1910)의 치욕을 당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고종은 옥쇄를 끝내 내놓지 않았으나 매국노 이완용 송병준 등은 멋대로 국서에 수결하여 자발적으로 나라를 헌납했다. 이어서 작위를 수여받고 은사금 잔치를 벌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 과정에서 겪은 백성의 고통은 어떠했던가.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지고 남부여대하여 국경선을 넘었다. 1920년 벌인 청산리 전투, 봉오동전투에서는 한때 승전의 기치를 올리기도 했으나 곧바로 일제의 무자비한 폭압으로 수많은 동포들이 도륙을 당하였다.
고종이 승하하자 일어난 기미년 3.1만세운동. 동학군 토벌이후 다시 국토는 피로 물들고, 그 와중에서 러시아 동포들은 스탈린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정책으로 20여만명이 끌려갔고 이동 중 수 천명이 얼어 죽었다. 실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런 쓰라린 역사를 생각하면서 반성의 기록한 줄이 없을 수가 없다. 500여 년간 지탱해온 나라를 과연 누가 말아먹었는가.
정권을 잡은 노론 벽파의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무엇을 했던가. 나라안위와 백성돌보기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 당파를 챙기고 타 당파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굴었다. 그야말로 반대파와 힘없는 백성에게는 취모멱자(吹毛覓疵), 털을 후후 불어서 비위와 약점을 찾고 캐는 데만 몰두했다.
그리하여 퍼뜨려 혹세무민한다는 이유로 천주교도를 살육하고 귀양 보내며 내쳤다. 그러면서 자기끼리는 벼슬과 재물을 나누고 노론 벽파당의 철옹성을 쌓았다.
그들은 정권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허수아비 임금을 세우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능력이 부족한 왕을 선호하여 주색에 빠져들게 하고 제멋대로 허울 좋은 명분론으로 포장을 하였다. 그 일례로 북벌론을 주야장천 주장했으나, 막상 효종이 군사를 일으키려할 때는 발목을 잡은 그들이었다.
그 마지막 노론벽파당수가 이완용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누가, 어느 당파가 나라를 말아먹었는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나는 나대로, 키워드를 만들어 역사를 읽으며 굽이굽이에서 일어난 큰 사건들에 가슴 아파하며 주요인물과 사건의 연표를 기억해 보곤 한다.(2020)
첫댓글 선생님의 연대법에 귀가 번쩍 뜨입니다
갑4 을5 병6...대단한 연상법이군요
저도 근대의 연혁을 더듬을 적에 1894갑오개혁에 60년 후 제가 출생한 1954갑오년을 자주 활용합니다 멀리는1592임진란을 불러내기도 하지요 해방 이후로는 1945 해방된 해의 을유문화사를 따올리고 이어50년의 경인년을 생각하지만 선생님과 같이 세세하게 새겨 본 기억이 없습니다 참고로, 출생연도와 띠를 알면 그해의 간지를 바로 아는 방법이 있는데 3을 제하면 됩니다
선생님의 연도 기억법의 비밀이 이것이었군요. 기발한 발상입니다. 세계사 공부할 때, 연도 외우는 게 곤혹이었는데.. 선생님이 쓰신 방법을 써봐야겠습니다.
이렇게 외워두면 절대로 잊어먹지 않지요.
나대로 고안한 방법입니다.
이선생님이 간지를 알아내는 방법도 특이합니다.
소선생님, 여기에 살짝 제 영업비밀을 공개했습니다.
그렇게 해두면 절대로 잊어버리고 않고 무슨 사건 하면 금방 연대를 알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