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첫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 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갑니다.
둘째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입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 만큼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성(城) 과도 같습니다.
셋째와 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합니다.
그러 나, 넷째에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지만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합니다.
어느 날 그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러 나, 첫째는 냉정히 거절합니다.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둘째에게 가자고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합니다.첫째도 안 따라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셋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셋째는 말합니다.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 없습니다." 라고…….
그는 넷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넷째는 말합니다."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나갑니다.
이 이야기는 잡아함경(雜阿含經) 에 나오는 이야기로
이 이야기의 "머나먼 나라"는 저승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내는 육체를 비유합니다.
육체가 곧 나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 아내는 재물을 의미합니다.
든든하기가 성과 같았던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합니다.
셋째 아내는 일가친척, 친구들입니다.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릴 것이니까요.
넷째 아내는 바로 마음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음뿐입니다.
어두운 땅속 밑이든 서방정토든 지옥의 끓는 불 속이든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마음이 자주 다니던 길이 음습하고 추잡한 악행의 자갈길이었으면 늘 다니던 그 자갈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고
선과 덕을 쌓으며 걸어가던 길이 밝고 환한 길이었다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업을 짓느냐가 죽고 난 뒤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여보 게 친구
살아 있는 게 무언가?
숨 한번 들여 마시고 마신 숨 다시 뱉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 어느 한 순간
들여 마신 숨 내뱉지 못하면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 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리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네,
극락이 따로 없다네.
생이란 한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의 한 점 눈(雪)이로다
논갈이 소가 물위로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갈라지는구나.
삶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오.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위 시는 서산대사(휴정: 1520-1604)께서
묘향산 원적암에서 칩거하며 많은 제자를 가르치다 85세 나이로 운명하기 직전 읊고 나시어
제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잠든 듯 입적 하셨다고 합니다.
踏 雪 野 中 去 (답설야중거)
不 須 湖 亂 行 (불수호란행)
今 日 俄 行 跡 (금일아행적)
燧 作 後 人 程 (수작후인정)
눈 내린 들판을 밟아 갈 때는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
위 시는 서산대사의「선시(禪詩)」라고 합니다.
서산대사는(1520~1604. 중종15~선조37)는 법명이 휴정休靜으로 호는 서산 외에 청허당淸虛堂이 유명하다.사명대사 유정의 스승이며 임진왜란 때 73세의 노구로 왕명에 따라 팔도십육종 총도섭이 되어
승병 1,500명을 모집하여 명나라군대와 합세해 서울수복에 공을 세운 분이시다.서산대사는 일선一禪 선사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는데 일선은 울주군 온양읍 발리 마을 출신이다.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는 호가 청허(淸虛)이며 법명이 휴정(休靜)이고 속성은 최 씨이다. 오랫동안 묘향산에 살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서산대사라고 불렀다. 스님은 안주(安州)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는데 고을 군수의 도움으로
한양에 올라와 공부하였다.
15살 때 진사과(進士科)에 응시했다가 낙방하고 여행길에 올랐는데 지리산에서 숭인장로(崇仁長老)를 만나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일선(一禪)화상으로부터 계를 받고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서 법을 배웠다.
이후 오대산과 금강산 등의 명산을 구름처럼 떠돌다가 33세 때에 문정왕후와 보우(普雨)선사에 의하여 부활된 승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36세에 판교종사(判敎宗師)와 판선종사(判禪宗師)가 되었고 이어서 선교양종판사라는 최고의 승직에까지 올랐으나 곧 이를 버리고 금강산·두륜산·묘향산 등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 모반사건에 관련되었다는 무고로 옥에 갇혔으나 결백이 밝혀져 선조의 명으로 석방되었다.
3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군이 패퇴하고 임금마저 의주로 피난하였는데,
73세의 휴정은 선조의 간곡한 부탁으로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 되어 전국의 모든 승려들이 총궐기하여 싸움에 나설 것을 호소하였다.
이리하여 스님의 문도가 중심이 되어 전국 각지에서 의승군(義僧軍)이 일어나니 그 수가 5000명이나 되었다.
이듬해 의승군은 휴정의 지휘로 명나라 군대와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는데 큰 전공을 세웠으며 왕이 환도한 후에는 늙었다는 핑계로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총섭(摠攝)의 일을 부탁하고 묘향산으로 돌아갔다.
첫댓글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삶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사는 한조각 구름이 흩어지는 것!
넷째 아내를 잘 닦아서 저 하늘 끝까지 같이 해야겠지요!^ ^
음악도 구슬프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