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을 만나고 육력동심의 아름다움까지 목격하다니!
솔향 남상선/수필가
중추절 연휴 첫 날이었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79명을 위한 중부기도를 마치고 운동하러 나갔다. 발길이 미친 곳은 평시 맨발로 자주 걷는 바로 아파트 놀이공원 공터였다. 일천 보 정도는 걷고 있을 때였다. 이순(耳順) 정도는 돼 보이는 부인이 갑자기 나타나 맨발 걷기를 하는 거였다. 맨발 걷기 동지가 생겼다는 반가움에 인사말을 건넸다. 반응은 소 닭 쳐다보듯 하는 묵묵부답이었다.
‘안녕하세요!’이 한 마디로 대꾸만 해줬어도 겸연쩍지는 않았을 터인데, 많이 무안했다. 인사를 해도 반응이 없는 여인을 보고 많은 걸 깨달았다.
말은 중언부언(重言復言)해서도 안 되지만 침묵이 금이라는 식으로 입을 닫고만 있는 것도 환영할 일은 못 된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언어구사로 분위기를 맞출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 하겠다.
나는 오랜만에 스승을 만난 기분이었다. 건네는 인사말에 일언반구도 없는 무응답으로 나를 깨우쳤으니 말이다. 언제어디서 만나는 사람이 누가 됐던지 아는 체하거나 인사말을 해 왔을 때에는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 도리라는 걸 짧은 시간에 터득하게 해 주었으니 이 어찌 나의 스승이 아니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신‘삼인지행 필유아사(三人之行 必有我師 : 길 위에 세 사람이 걷고 있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란 말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길 가는 3인 가운데에는 나보다 나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나보다 못한 사람, 아니면 나와 동격이 될 만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은 나에게 그분처럼 살아야겠다는 깨우침을 준다. 나보다 못한 사람은 그런 사람처럼 살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을 갖게 한다.
깨우침과 깨달음을 주는 분들이니 이 어찌 나의 스승이 아니겠는가!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아 나보다 못한 사람도 나의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성인의 경지와 말씀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수천 보를 걸어서인지 추웠던 몸이 제법 온기로 덥혀지고 있었다. 한참을 더 걷노라니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놀이터 공터를 쓸고 있었다.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는 낙엽과 담배꽁초를 쓸어 모으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던지 운동하다 쉬고 있던 두 아낙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아낙은 빗자루로 낙엽을 쓸고 다른 한 아낙은 쓸어 모은 낙엽을, 군데군데 비치해 놓은 수거용 부대에 담아놓고 있었다. 실로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여럿이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함께하는 육력동심(戮力同心)’이 그 위력과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경비아저씨와 아낙은 낙엽을 열심히 쓸고 그 곁엔 한 아낙이 쓸어 모아 놓은 걸 날라다 수거용 부대에 담고 있었다. 실로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 수 없었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더니 십여 분이 지난 뒤엔 땀이 흐르는지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낙엽을 쓸어 모으는 모습은 복을 불러들이는 모습으로 보였으며, 얼굴의 땀을 닦는 손동작은 악귀를 쫒아내는 의식으로 보였다.
그분들이 가고난 후에 빗자루가 미치지 못한 곳은 내손으로 완전하게 해 놓았다. 교화가 좋다지만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실천궁행을 못한다는 비난과 손가락질이 따르기 때문에 그런 사람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름다운 모습은 많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모습은 자기가 하는 일에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하는 모습이다. 대장간의 그 뜨거운 불 옆에서 무뎌진 칼날을 벼리려고 땀을 뻘뻘 흘리는 대장장이의 모습이며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뙤약볕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농부의 모습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산업현장 도처에서, 일터에서,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땀 흘리는 모습은 아름다운 화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땀 흘리며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함께하는 육력동심(戮力同心)의 상부상조(相扶相助)는 더 아름답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다 방점을 찍어 행동하고 살아야겠는가?
가족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육력동심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만들고, 국가는 국민이 하나가 되어 육력동심하게 될 때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할 수 있다.
우리는 괴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족도 위하고 나라도 위한 길이겠는가! .
실로 오늘은 운수가 억세게 좋은 날이 아닐 수 없다. 깨우침을 주는 스승도 만났고, 상부상조(相扶相助)하며 살라는 육력동심(戮力同心)의 아름다움을 지불 없는 대가로 그 몫을 내가 차지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스승을 만나고 육력동심의 아름다움까지 목격하다니!’
이 나이에 깨우침을 주는 스승을 만나고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함께하는
육력동심의 아름다움으로
상부상조의 미덕을
터득했으니
일석이조요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첫댓글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선생님께선 나쁜 일 조차
깨달음의 원천으로 느끼시는군요.
"육력동심" 잘 깨닫겠습니다.
감사한 아침입니다.
말씀대로 아름다운 모습은 많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네잎클로버만 찾느라 지천에 널려있는 세잎클로버에는 눈길 하나 안주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게 아닐까요.
평범함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