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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스가랴가 본 8개의 환상 가운데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인 날아가는 두루마리와 에바 속 여인의 환상입니다. 이 환상들의 의미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지난 시간에 배운 말씀들을 복습해봅니다.
스가랴가 성전과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순금등대 옆에 금 기름을 흘러내리는 두 감람나무의 환상을 보았다 하십니다. 여기서 순금등대는 성전과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기름을 흘러내리는 두 감람나무는 성전재건의 사명을 맡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상징하고 있는데, 이들을 통해 16년 전에 시작된 성전재건을 하나님이 마치게 하시겠다 하십니다(9).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비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진행하고 있는 성전재건 사업은 그 규모가 초라한 “작은 일”(10)이지만, 하나님은 이 작은 일을 통해 큰일을 행하실 것이라 하십니다. “금 기름을 흘러내리는 두 감람나무”는 일차적으로는 성전재건의 사명을 맡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상징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참된 성전을 지으실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는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이스라엘 회복의 사명을 맡은 두 증인을 “두 감람나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이 두 증인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거할 때,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회개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순금등대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본문의 말씀들을 통해 주시는 교훈들을 살펴봅니다.
I. 날아가는 두루마리의 환상(1-4절)
1. 1절,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하십니다.
스가랴가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3)가 적혀진 “날아가는 두루마리”(1)를 보았다고 했는데, 이 두루마리는 종말의 때에 온 땅에 내려질 저주와 심판에 관해 기록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종이의 발견으로 책(冊)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갈대로 만든 파피루스나 양의 가죽으로 만든 두루마리에다가 글을 기록했는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두루마리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 특별히 저주와 심판이 기록된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인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1절에서 스가랴 선지자가 환상 중에 이 두루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는 것인데, 이는 말씀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모습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NASB)”하심은 성경은 오래 전에 기록된 죽은 말씀이 아니라 지금도 운동력이 있는 살아있는 말씀이라는 뜻인데, 이는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는 분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얼마 전 다보스포럼의 자문위원인 유발 하라리가 “AI가 새로운 성경을 쓸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바가 있는데, 그가 “새로운 성경”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내세운 근거도 오래전에 기록된 성경은 지금의 시대와 맞지 않는 죽은 문서라는 겁니다.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히 13:8)이 주신 말씀에 유통기한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하셨습니다. 성경은 과거에 쓰여진 죽은 문서가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히 13:8)이 기록하시고, 일점일획도 남기지 않고 모두 성취될 때까지 영원토록 유효하고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2. 2절,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이다.”하십니다.
a.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면 가로가 9미터, 세로가 4.5미터의 두루마리인데, 이렇게 큰 두루마리 안팎에 저주가 적힌 글이 쓰여 있다는 것(3)은 먼저, 하나님의 심판이 크고 엄중할 것임을 보여주는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신”(마 10:30) 하나님이 인간들의 죄악들을 이 큰 두루마리에 모두 기록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b.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라는 두루마리의 크기는 솔로몬의 성전에서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는 성전 현관의 크기와 동일한 것인데(왕상 6:3), 이처럼 성전의 현관과 동일한 크기의 두루마리는 세상을 향한 심판이 성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는 모습인 것입니다. 만물의 창조자요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마지막 때가 되면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신다는 겁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 9:27)하셨습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가 아니라도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심판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뿐 아니라 믿음을 가진 성도들도 피할 수 없는 것인데, 다만 믿지 않는 자들이 지옥에 보내기 위한 심판을 받는다면, 믿는 자들은 상급을 결정하기 위한 ‘베마의 심판’(고후 5:10)을 받는다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여하튼 오늘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지 늘 자신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c. 성전의 현관과 동일한 크기의 두루마리는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성전(교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라 할 수 있는데,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늙은 자로부터 심판이 시작되는 모습을 보았다 했습니다(겔 9:6). 마지막 때에 주어질 심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베드로전서 4장 17절에서도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심판은 나누는 것입니다. 알곡과 가라지, 양과 염소, 천국갈 자와 지옥갈 자를 나누는 것이 심판입니다. 교회에서 심판이 시작된다는 것은 교인과 목사들 가운데, 알곡과 가라지, 양과 염소를 나누는 심판이 먼저 진행되고 그 다음에 세상에 대한 심판이 시작된다는 것인데, 최근 WCC 종교통합과 동성애 문제로 교회와 교인들이 나뉘어지는 모습을 보면 교회에 대한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하튼 배도의 시대라고 하신 이 마지막 때에 진리 안에 서 있지 못한 교회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3절,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하십니다.
a.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는 말씀은 두루마리에 적힌 저주의 대상이 “온 지면(the whole earth)” 다시 말해 온 세상이라는 뜻인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환상이 마지막 때에 있을 종말론적 심판, 7년 대환난에 관한 예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b. 3절에서는 또 죄에 대한 기록이 두루마리의 이편과 저편, 다시 말해 두루마리 양편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두루마리에 글을 기록할 때는 양편이 아닌 한편에 글을 기록하고 이를 안으로 말아 기록된 내용이 지워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인 두루마리와는 달리 두루마리 양편에 죄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는 것은 죄가 관영하여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상태를 보여주는 모습인 것입니다. 노아의 때와, 롯의 때가 바로 죄악이 관영한 때인데, 이처럼 이 땅에 죄악이 관영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될 것입니다.
c. 스가랴가 두루마리의 이편과 저편, 즉 양편에 죄와 심판에 관한 말씀이 기록된 것을 보았다고 했는데, 요한계시록 5장 1절에 나오는 일곱 봉인이 된 두루마리에도 그 안팎으로 죄와 심판에 관한 기록이 적혀 있었다 했습니다. 이 두루마리에서 봉인이 떼어짐으로 인과 나팔과 대접의 재앙이 시작된 것인데, 본문에 등장하는 안팎으로 기록된 두루마리가 바로 사도요한이 본 일곱봉인이 된 두루마리인 것입니다.
d. 두루마리 양편에 쓰여진 죄목 가운데 “도적질하는 자”에 관한 것은 십계명의 8계명을 범한 죄에 관한 것이고, “맹세하는 자”에 관한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출 20:7)하신 십계명의 3계명을 어긴 죄에 대한 기록입니다. 십계명 중에서 대표로 3계명, 8계명을 언급하며 이 계명을 지킨 죄로 심판이 주어질 것임을 보여주신 것인데,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바로 십계명으로 상징되는 말씀이라는 겁니다. 예수님도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하셨습니다. 동성애 우상숭배와 같이 세상에서는 죄로 여기지 않는 일이라도 성경이 금하신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 말씀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4. 4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하십니다.
도적질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지은 자의 집에 들어가 그 터전을 불살라 버릴 것이라 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범죄할 때 그곳을 유황불로 불태워 심판하신 것처럼, 마지막 때가 되면 큰 성 바벨론으로 상징되는 세상 나라를 불태워 심판하실 것입니다. 세상은 불의 심판을 받고 사라질 장망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하십니다.
II. 에바 속 여인의 환상(5-11)
1. 5-7절,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하십니다.
a. 5절부터 11절까지는 일곱 번째 환상인 ‘에바 속 여인의 환상’인데, 여기서 말하는 에바는 곡식의 부피를 재는 가장 큰 단위로 36.44리터를 담을 수 있는 도량형 기구를 말합니다. 아모스 8장 5절에는 장사꾼들이 일부러 이 에바를 작게 만들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죄에 대해서 지적하는 말씀이 등장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에바도 탐욕의 도구로 볼 수 있고, 이 에바 가운데 앉아 있는 악한(8) 여인도 탐욕과 죄가 가득 찬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b. 곡식의 부피를 재는 도구인 에바는 또 세상의 경제권을 붙들고 있는 권세자들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이런 에바 가운데 앉아 있는 여인은 마지막 때에 세상의 경제권을 붙들고 있는 자들, 다시 말해 유태 자본가들로도 불리우는 세계정부주의자(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의 보호를 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c.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 에바 속 여인이 누구일까요? 대부분의 종말론 학자들은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탐욕이 가득 찬 이 에바 속 여인을 요한계시록 17장에 등장하는 ‘음녀 바벨론’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2절, 3절에 보면 “땅의 임금들로 더불어 음행하는 음녀가 일곱 머리와 열뿔을 가진 짐승을 탔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스가랴 본 에바 속 여인이 바로 이 음녀 바벨론이라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을 강해할 때 살펴본 것처럼, 에바 속 여인이 상징하는 음녀 바벨론은 현재 땅의 임금들(일루미나티들)과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등에 업고 종교통합에 앞장을 서고 있는 로마 카톨릭을 의미하는데, 요한계시록 17장 4절에서는 이 음녀 바벨론이 “-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은 로마 카톨릭의 추기경과 주교들이 입는 옷이고, 금잔을 든 음녀의 모습은 그대로가 교황이 성례를 집행할 때 금잔에 포도주를 담아 들어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17장 6절에서는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2,000년 교회 역사 속에서 참된 성도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들을 가장 혹독하게 핍박한 세력이 바로 로마 카톨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특별히 개신교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예수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성도들을 고문하고 개종을 강요하다 이를 거부하면 불에 태워 죽여버리곤 했는데, 알다시피 지금의 교황인 프란치스코가 바로 이 예수회 출신의 첫 번째 교황입니다. 프란치스코와 저를 옹립한 예수회가 지금은 발톱을 숨기고 있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저들이 참된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2. 8절,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하십니다.
8절에는 “악이라”고 언급되는 에바 속 여인, 혹은 음녀 바벨론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으로 에바 아구리 위를 덮어 놓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때가 이르기까지 에바 속 여인이 상징되는 악한 세력들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보여주는 모습인 것입니다. 종말의 때를 설명하고 있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7절에서는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하셨습니다. 초대교회 당시부터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살후 2:3)로 묘사되는 적그리스도를 옹립하기 위해 활동하는 “불법의 비밀스런 세력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막는 자가 있어 본격적인 활동을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막는 자”는 성령 하나님, 혹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탄생한 교회를 의미하는데, 이런 참된 교회가 이 땅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적그리스도를 옹립하려는 음녀 바벨론, 큰성 바벨론과 같은 세력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막는 자” 혹은 “에바 아구리를 덮은 납조각”과 같은 교회가 휴거의 사건으로 이 땅에서 옮겨지게 되면 “불법의 비밀”이 “불법의 사람”인 적그리스도를 옹립하기 위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3. 9절,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하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을 고고한 선비의 기상을 보여주는 새로 생각하지만, 레위기 11장 19절에서는 이 학을 올빼미, 부엉이, 박쥐 등과 함께 부정한 동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학의 날개를 가진 두 여인은 에바 속에 있는 여자를 원래 있던 거처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고용된 사악한 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10, 11절,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매.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하십니다.
a. 학의 날개를 가진 두 여인이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어 옮기는 모습을 본 스가랴 선지자가 “그들이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10)라고 천사에게 묻자, 천사가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11)하십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에바 속 여인이 그 옛날 니므롯이 바벨탑을 세웠던 시날 땅으로 거처를 옮겨 갈 것이라는 말씀인데, 이런 이유로 본문에 등장하는 에바 속 여인을 음녀 바벨론으로 보는 것입니다.
앞에서 에바 속 여인, 혹은 음녀 바벨론을 로마 카톨릭이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 현재 이 로마 카톨릭의 본거지는 로마의 바티칸입니다. 지금은 바티칸이 로마에다 본거지를 두고 있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바티칸을 예루살렘 혹은 바벨론 땅으로 옮기려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라면 바티칸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시날 땅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이는데, 개인적으론 휴거의 사건으로 미국이 퇴락의 길을 가게 되면, 유럽은 세계의 정치 질서를 주도하고, 동방의 왕인 중국은 세계의 경제 질서를 주도하고, 로마 카톨릭은 세계의 종교질서를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유럽과 중국과 바티칸이 만나는 중심지인 시날 땅에 음녀 바벨론과 큰 성 바벨론의 본거지가 세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b. 시날 땅을 메소포타미아라고도 하는데, 각기 히브리어와 헬라어인 시날과 메소포타미아는 모두 ‘두 강 사이에 있는 땅’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의 두 강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말하는데, 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은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네 강들(비손, 기혼, 힛데겔(티그리스), 유브라데, 창 2:10-14) 가운데 두 강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많은 성경학자들이 이 시날 땅에 에덴동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날 땅이 처음 등장하는 곳이 바로 창세기 10장과 11장인데, 이 말씀을 보면 “처음 영걸이요,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인 니므롯”(창 10:8,9)이 바로 이 “시날 땅에 바벨탑을 세웠다”(창 11:2-4)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걸(mighty one)”이라 함은 ‘강력한 권세를 가진 자’라는 뜻이고,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씀은 정확히 말하면 ‘여호와를 대적(against)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특이한 사냥꾼”은 ‘잔혹한 전쟁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고로 “영걸(mighty one)이요,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a mighty hunter before the Lord)”이라는 말씀은 니므롯이 ‘자신이 가진 권세와 힘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잔혹한 전쟁을 일으켜 마을과 도시들을 정복함으로 최초의 세계 제국이라 할 수 있는 바벨론 혹은 바벨탑을 건설한 자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니므롯이 바로 마지막 때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는 것입니다.
c. 창세기 11장에는 이런 니므롯이 지은 바벨탑의 모습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11장 4절을 보면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과 대”는 “city and tower”(NASB)라고 해서 직역하면 ‘도시와 탑’이라는 뜻입니다. 바벨이 ‘탑 형태의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런 바벨탑을 쌓으면서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자”라고 했던 것을 보면, 바벨탑의 또 다른 기능은 신의 세계로 가기 위한 ‘종교적 건축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바벨’이라는 단어는 본래 문(gate)이라는 뜻을 가진 ‘밥’과 신(god)이라는 뜻을 가진 ‘엘이 합쳐진 단어로 ‘신의 문(the gate of god)’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니므롯과 함께 이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이 바벨탑을 높이 쌓으면 신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바벨이라는 ‘성과 대’는 ‘성(city)’으로 상징되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대(tower)’로 상징되는 ‘종교’가 통합된 최초의 세계정부라 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바벨탑을 모델로 현재 세계정부주의자들이 전 세계의 정치와 경제와 종교가 통합된 세계정부를 만들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d. 바벨탑의 종교적 성격을 조금 더 살펴보면, 바벨론 전승에 따르면 이 니므롯에게는 ‘세미라미스’라고 하는 아내가 있었는데,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에스겔 8장 14절에도 등장하는 ‘담무스’입니다. 이 니므롯과 세미라미스와 담무스가 바벨론 종교의 삼위일체라 할 수 있는데, 바벨론 종교에서 태양신으로 섬기고 있는 니므롯은 광명의 천사 루시퍼를, 니므롯의 아들 혹은 니므롯의 화신인 담무스는 적그리스도를, 세미라미스는 에바 속 여인 혹은 음녀 바벨론으로 상징되는 로마 카톨릭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로마 카톨릭의 본부인 바티칸이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의 본부가 세워질 시날 땅으로 옮겨져 창세기 11장에서처럼 전세계의 정치와 경제와 종교가 통합된 바벨론 제국, 다시 말해 New World Order를 완성한 뒤, 마지막엔 그 자신도 적그리스도에 의해 배신을 당해 멸망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겁니다(계 17:15).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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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랑하는 마음은 건강을 가져오고 행복을 안겨 줍니다.
사랑이 꽃피고 행복이 넘치는 웃음 가득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