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운문록 실중어요(室中語要) 13.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여기서 조주스님에 대하여 좀 알아보겠습니다.
조주(趙州) 종심스님은 출생은 778년 산동성(山東省) 임치현(臨淄縣) 입적은 897년 조주성(趙州城) 관음원
속명 학씨 조주종심(趙州從諶, 778∼897)은 중국 당나라 산동성(山東省) 임치현(臨淄縣)에서 태어난 선승이고, 마조도일에서 이어지는 남전 보원(또는 남천보원)의 제자이다.
평생 검소한 생활을 하고, 시주를 해라고 권하지 않아서 오래된 부처(고불)라는 칭송을 받았다.
120세에 입적을 하여 상당히 오래살았다. 특히, 화두를 많이 남겨 〈벽암록〉에 전하는 100개의 화두 중 12개가 조주종심의 것이다.
생애를 보면은 어려서 고향의 용흥사에서 출가했다. 숭산 소림사 유리계단(琉璃戒壇)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80세 전까지는 행각(떠돌이 생활을 하며 수행)을 하였다. 이때 7살 사미라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울 것이고, 100살 노인이라도 가르칠 것이 있으면 가르친다는 마음가짐으로 행각을 하였다.
80세가 되어 조주성(趙州城) 동쪽 관음원의 주지가 되 머물러서, 호가 조주가 되었다. 897년 120세로 입적하였고, 제자들에게 사리를 줍지 말라고 하였다.
120세까지 장수했기에 풍요롭고 편안한 일생을 보냈을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다음은 <조주록>에 실려 있는 12시가(十二時歌) 중 일부이다. 조주종심의 솔직한 삶이 드러난다.
닭 우는 축시(丑時)
가난한 마을인지라, 절 꼬락서니는 말할 것도 없다.
부처님께 마지 공양은 그만두고, 아침 죽 끓일 쌀알조차 없으니
창문 틈새마다 수북이 앉은 먼지나 바라볼 밖에…
반갑지 않은 참새만 짹짹대고, 친한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혼자 앉아 낙엽 지는 소리를 듣는다. 누가 말했던가! 출가자는 애증(愛憎)을 끊는 거라고…생각할수록 눈물이 나 손수건을 적신다.
해가 높이 뜬 사시(巳時)
머리 깎고, 이 지경에 이를 줄을 누가 알았으랴 어쩌다 청을 받아 들여, 시골구석 중이 되고 보니 굴욕과 굶주림, 처량한 신세에 죽을 지경이다. 키다리 장삼(張三)과 껌둥이 이사(李四), 그들은 눈꼽만큼도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 아까는, 갑자기 문 앞에 나타나서는
‘차 꿔달라’, ‘종이 꿔달라’ 떼만 쓰고 가더라.
일화에 보면은 조주가 남전(또는 남천)을 만나다
남전선사가 조주종심이 자신의 절로 오자, 방장실에 누워있다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조주종심은 서상원(瑞像院)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자 남전선사는 상서로운 모습을 보았는가라고 물었다.
이건 서상원(瑞像院)의 한자가 상서로울 서(瑞), 모양 상(像), 절 원(院)이라서 언어유희를 한 것이다. 그러자 조주종심은 서상(상서로운 모양)은 보지 못하고, 누워있는 부처는 보았다고 말했다.
남전선사가 흥미를 보이며 일어나더니 다시 묻기를, 주인이 있는 사미(유주사미)인지 주인이 없는 사미(무주사미)인지를 물었다. 그러니 조주종심이 주인이 있는 사미라고 했다. 남전선사가 주인이 누구냐고 하자, 조주종심은 동짓날이 매우 추우니 큰스님(화상)께서는 몸조심하시라고 말하였다. 이에 남전선사는 조주종심을 기특히 여겼다.
뜰 앞의 잣나무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의 화두
어느 한 스님이 조주종심에게 와서 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는 인도에서 달마대사가 동쪽인 중국 당나라로 온 이유를 묻는 말이다.
그러자 조주종심은 뜰 앞의 잣나무라고 말했다. 질문을 했던 스님은 큰 스님께서는 경계를 써서 응하지 말라고 하였다. 조주종심은 산승(산에 사는 승려)은 경계를 써서 응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질문 했던 스님이 다시 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이유를 물으니, 조주종심은 뜰 앞의 잣나무라고 말했다.
끽다거(喫茶去) : 차나 마시거라라는 화두
조주종심이 자신의 절에 온 승려에게 전에 온 적이 있는 지를 물었다. 승려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주종심을 차 한잔 마셔라고 했다. 조주종심이 또 다른 승려에게도 똑같이 절에 온 적이 있는 지 묻자, 다른 승려가 없다고 말했다. 조주조심이 또 다시 차 한잔 마셔라고 했다.
이걸 본 원주(주지)가 조주종심에게 왜 절에 온 적이 있던지 없던지 차를 한잔 마시라고 하는 지를 묻자, 조주종심은 원주에게도 자네도 차 한잔 마시고 가라고 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에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의 화두
한 학인이 조주종심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냐고 물었다. 조주종심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학인은 불성은 부처님으로부터 개미까지 다 있는데, 개는 어떻게 없냐고 다시 물었다. 조주종심은 업식성(業識性 : 중생심이 밝지 못하여 망념이 일어나 업이 움직이는 첫 모양의 성질)을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것이 조주종심의 화두 중 가장 유명한 일명 무자(無字) 화두이다.
["저는 이제 막 총림에 들어왔습니다. 스님께서 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물었다.] 여기서 “저는 이제 막 총림에 들어왔습니다.”라고 초발심자임을 밝히는 대목이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辨正覺)이란 부처님의 말씀이다.
처음 발심(發心)한 마음 바로 이것이 변정각(辨正覺)이라 편만한 바른 깨달음이라는 말이다.
불교에 입문하는 근본 목적은 무엇입니까? 오직 성불(成佛)일 것입니다. 직지인심(直旨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성품을 바로 보아 부처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그럼 지금 이 법문을 듣는 사람들은 이를 믿습니까?
이 말을 믿지 안하는 사람은 불교인은 아님니다. 사마외도(邪魔外道)라고 합니다. 즉 기독교 천주교 회교 유교 도교 사마니즘 모든 종교가 사실 사마외도인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종교학자나 철학자 논술가들은 불교만이 진리를 표방하는 종교이고 다른 종교는 사상과 철학과 절대적인 신(神)을 믿는 유신사상(有神思想)이니 귀신을 믿는 신앙인 것이지요.
하나님도 만들어 세워진 가설이며, 기독교는 예수라는 깃발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유독 석가모니 자신을 믿지 말고 오직 내가 밝혀낸 진리를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초발심은 조사선에서는 돈오돈수(頓悟頓修)라고 말합니다.
육조 혜능선사가 지식과 상식에 물들지 않는 무식한 나무꾼이였든 총각이 금강경 한 줄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起心)이라는 한 마디에 깨달아 버렸습니다.
이것을 돈오돈수(頓悟頓修)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렇게 깨달아 지는 것은 한 소식한 것이지 모든 우주의 진리와 천상천하 산하대지 비금조수 초목총림의 자연적 법칙을 터득해야만이 성불(成佛)인데
깨달음이 성불이라는 논리는 맏지 않습니다.
돈오점수(頓悟漸修)설은 조계종의 초조는 임제선사의 맥을 이은 것이고 중시조로 조사선의 창시자 마조 도일선사의 제자인 남전스님에게 조사선을 깨달은 보조 지눌선사가 남전스님을 시봉하시면서 30여년을 남전선사의 무파비를 배우고 익혀 고려말 한국의 구산선문을 통합하여 지금의 송광사 옛이름인 수선사(修禪寺)에서 정혜결사(淨慧結使)를 일으켜 중조가 되어 지금까지 이러오고 있는 중시조를 조계종의 선맥(禪脈)인 것입니다.
이렇게 한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저는 이제 막 총림에 들어왔습니다. 스님께서 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하시어 초발심인데 아무것도 모름니다. 좀 가르쳐 주십시요라고 배움을 청했습니다.
그럼 배울 것이 있는가? 없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바른 답을 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죽은 먹었느냐?"]고 다른 질문을 하십니다.
왜 이른 과거심을 물었을까요?
이것은 대기설법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기설법은 차제설법이라고 하였듯이 석존께서도 오시교라고 하는
성도 후에 제일 먼저 설한 것이 바로 화엄경일 것이듯이 21일간 설법을 하였으나 오비구는 아무도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자기가 깨달은 적정열반(寂靜涅槃)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바로 설법을 하지 않고 열반에 들고자 하시였습니다. 그 때 도리천의 법왕이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게 하시면서 부처님이시여 열반에 바로 드시면 저와 같은 범천왕도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는데 저희들을 위하여 설법을 해 주실 것은 관곡히 원하였고 지신이 땅을 뚫고 올아와 법을 청하며 육진으로 진동을 하였음으로 다시 설법을 하되 어쩔 수 없이 아함경 방등경 반야경 법화시 열반시로 나누어 차제법문을 하시였듯이 대 선지자인 조주스님은 초발심자인 학인을 위하여 인연법으로 묻고 계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4가지 중에서 제일구는 바로 먹고. 싸고. 하고. 잔다라는 사구계중에서 제일구인 “죽은 먹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 이 말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했다. 그러니 이 스님은 이렇게 바로 회답을 합니다.
["먹었습니다."]라고 하여 생멸법으로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그 함이 함이 없다는 본래자리로 돌려 놓으려고 조주선사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발우를 씻도록 하라."] 이것역시 삼세인과법으로 한 마디 하십니다. 죽을 먹었으면 그 다음인 차제는 무엇일까?
발우를 씻어 제자리로 돌려 보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그대는 지금 여기에는 이미 지나간 과거심이다. 모든 것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니 제자리로 돌려 놓으라는 뜻으로 “발우를 씻어라”라고 하시어 제행무상법을 한 소리 하시였습니다.
알겠습니까? 돌~~~~~!!!!!!!!!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운문선사는 왜 이른 지나간 조수선의 선문답을 지금 여기에 가져와 거론을 하실까요. 깨닫고 보면 과거다 현제다 미래다 하는 것도 사실 다 지금 여기인 것입니다. 즉삼세인과법은 인연법이며 이 인과 연의 뒤바뀜은 존재치 않고 오직 지금 여기의 일인 것입니다.
이 납승이 1300년 전의 선어록을 재 해석하는 것도 다 지금 여기 과거에 있었든 일이지만 지금 여기와 다르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깨달아 알고 보면 모든 것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이기 때문인 것이며 시공을 벗어난 진리를 투득하는 선기방편이기 때문입니다. 돌~~~~!!!!!!!!!!
그리고는 운문선사는 조주스님의 선기방편을 거론하시고는 이렇게 향상일구를 던지십니다.
["말해보라, 가르쳐 준 것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자 가르쳐 준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기서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의 심경을 비추어 한 마디 해 보십시오? 배움이 있다 하면은 이것은 알음알이 견문각지(見聞覺知)가 되어 번뇌망상(煩惱妄想)만 뜨 오를 것이니 이것이 오히려 법집이 되어 푸른하늘에 구름이 끼듯이 맑은 허공을 더럽힐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만약에 없다고 한다면 구름이 없는 하늘인 허공을 볼 수 있습니까? 본래부터 허공은 텅빈 구름한 점 없는 허공일 뿐인대 허공을 볼수가 없지요, 그러니 알음알이 견문각지를 떠나 텅빈 청정법신인 허공을 어떻게 알아낼수 있습니까?
이것이 양변인 것입니다. 이 양변을 다 벗어나야만이 진정한 공(空)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문선사는 다시 이렇게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가르쳐 준 바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에게 무슨 말을 해주었겠으며, 가르쳐 준 바가 없었다고 한다면 그 스님은 어떻게 깨닫겠느냐?"]
라고 하시면서 말후구를 설파하십니다.
즉 “가르쳐 준 바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에게 무슨 말을 해주었겠으며,”라고 하시는 것은 가르쳐 준 바가 있었다고 한다면“
생멸법인데 이것은 허망한 것이라고 하였듯이 본래공에서 본다면 가르칠 것이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르친다는 것은 생멸법인 것이니 그럼 생멸법이 없다는 것이냐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일심에는 무위법(無爲法)도 있고 생명법(生滅法)도 있어 석존께서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설하시어 모든 것은 다 있는 그대로인 실상론을 제시하였습니다. 세간법과 출세간법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이렇게 없다는 무위법(無爲法)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십니다.
“가르쳐 준 바가 없었다고 한다면 그 스님은 어떻게 깨닫겠느냐?"라고 역순으로 묻고 있습니다.
무위법(無爲法)과 생멸법(生滅法) 다른가 별도로 존재하는냐 인 것입니다. 이것은 손등과 손바닥같이 하나인 손인 것인 듯이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일진법계(一眞法界)인 것입니다.
그러니 깨달음이라는 말은 미혹(迷惑)의 상대법인 것이지요.
가리킨다는 수행은 사실 필요가 없겠지만 사람들은 내가 본래부터 부처이며 깨달아 있다는 것을 모를 뿐이지 다 깨달아있고 본래부터 부처이지만 그 형상이나 작용이나 체성이 들어나지를 않으니 알지 못했다고 해야지요 왜 모르는냐 진리가 본래부터 몸이나 마음이나 우주가 다 감각할 수 없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깨달음을 성취하는냐 깨달음이 아닌 무명(無明)에서 무명을 회광반조(廻光返照)하여 뒤집힌 전도몽상(轉倒夢想)을 빛이라는 광명을 이용하여 다시 뒤집으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라는 진리를 밝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정심으로 삼라만상을 사바세계라고 하고 있는 것이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빛의 화현을 이용하여 바로 뒤집어 놓으면 깨달음이라는 본래불(本來佛)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첫댓글 운문록을 통하여 인연성불 요인성불하시어서 본불본락 하옵소서 옴~바아라 믹!!!_()_